권유리 "배우로서 뚜렷한 색 없는 현재가 황금기" [D:인터뷰]

류지윤 2024. 4. 1.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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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권유리가 영화 '돌핀'으로 첫 스크린 주연에 나섰다. '돌핀'은 지방 소도시에서 지역 신문 기자로 일하는 평범한 30대 여성 나영이 소박한 일상을 지키며 살아가지만, 우연히 접한 볼링을 통해 용기를 얻어 세상으로 튀어 오르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소녀시대로 데뷔해 스포트라이트 아래 있었던 권유리와, '돌핀' 속 변화를 두려워 하는 나영은 거리가 먼 인물처럼 비친다.

권유리는 자신의 화려함을 걷어내고 나영 그 자체고 관객들에게 보일 수 있을지 고민을 거듭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이내 자신과 나영이 겹쳐 보이면서 표현의 실마리를 얻었다.

"처음에는 나영이란 인물이 제게 조금 어려웠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많은 걸 이뤄나갔잖아요. 매번 새로운 도전을 하고 변화도 많았고요. 그런데 '돌핀' 시나리오 만났을 때 제가 소녀시대로부터 홀로서기를 하는 시점이었어요. 저만의 시간, 저를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보다 내가 나영과 닮은 구석이 있구나 싶더라고요. 사실 저는 생각보다 조금 느린 사람이거든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미숙함이 제 깊은 곳에도 있었어요. 그게 소녀시대라는 좋은 배경으로 잘 포장이 됐던 것 같아요. 잘 가꾸어지고, 다듬어진 인간의 형태로 비쳤을 뿐이죠."

나영은 평생 가족이 자신의 세상이라고 믿으며 지키고 살아왔지만, 재혼을 계획하는 엄마, 서울로 상경하고 싶어 하는 남동생을 바라보며 두려움과 쓸쓸함을 느끼는 인물이다. 더 좋은 일자리를 제안 받아도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아 거절한다. 그러나 나영의 의지와는 별개로 주변의 인물들로 인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권유리는 이 과정을 담담하고 묵직하게 그려나갔다.

"나영을 연기하면서 집중했던 건 '어떻게 하면 작은 마을의 지킴이처럼 느껴질 수 있을까' 였어요. 그런 의미에서 연기적으로 많이 걷어냈죠. 나영이가 가지고 있는 상처나 아픔들이 담백하게 고스란히 보이길 바랐거든요. 외적으로도 분장도 최대한 배제하고 같은 의상을 돌려 입었어요. 최대한 생활감이 느껴지도록요. 제가 기존에 했었던 작품들과 다른 측면에서 고민이 많았어요. 작품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게 익숙했거든요. 그런데 나영은 켜켜이 쌓아서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끌고 가야 했죠. 그래서 연기하면서 항상 의심이 따라왔어요."

'돌핀'은 나영이 극적인 순간을 맞이하거나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 하지만 나영이 볼링을 치게 되면서 인생을 알게 되고.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된다. 결국 나영이 자신이 꽉 쥐고 있었던 가족에 마음에 힘을 조금씩 풀면서 이야기가 막을 내린다. 나영의 진짜 시작은 영화가 끝난 후 부터다.

"나영이 볼링이랑 매개체로 자신을 채우기 시작하잖아요. 비워내고 흘려내리는 법을 알게 된 거죠.마지막에 이상한 고집을 피우며 달지 않았던 도락을 달잖아요. 그러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기다리게 된 나영을 봤어요. 누군가에게는 미미할 수 있지만 나영에게는 그렇지 않죠."

좀처럼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나영은, 영화 속에서 딱 한 번 눈물을 흘린다. 이 장면은 권유리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돼 이뤄졌다.

"원래 나영이는 한 번도 크게 울지 않아요. 저는 감독님께 한 번은 나영이가 웃거나 울어야 하는 지점이 있어야 하지 않나 말씀 드렸죠. 그래서 제가 인대를 다쳐서 병원 갔을 때의 경험을 들려 드렸어요. 발목을 쓰다가 다쳐서 무리하지 않아야 하는데, 잘 멈추지 못하겠더라고요. 결국 병원에 갔고 당시 '많이 힘들었겠어요'라는 낯선 의사의 말에 엉엉 울어본 적이 있거든요.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거든요. 나영이도 그럴 것 같았어요.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친구다 보니 의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솔직하게 반응할 것 같았죠. 눈물을 흘리는 것도 나영이 답게 소리 내지 못하고 참으면서 억지로 눈물이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의논 드렸고, 그 장면은 수월하게 촬영했어요."

'돌핀'에서 선보이는 권유리의 말간 얼굴과 담백한 연기는 지금까지 봐왔던 권유리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결이다. 권유리는 자신에게서 반대의 모습을 발견한 배두리 감독에게 캐스팅한 이유를 물어봤단다.

"직접 용기 내서 여쭤봤어요. 첫 미팅 때 묵직하고 단단해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감독님이 제게 가을을 닮았다고 해주셨는데, 그런 감독님의 표현방식이 신선하고 흥미롭더라고요. 저의 새로운 걸 면을 봐주셔서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돌핀'은 영화의 제목이 곧 메시지다. 볼링에서 레인의 양 끝인 도랑에 빠져서 핀에 가까워질 때쯤 돌고래(돌핀)처럼 튕겨져 올라 다시 레인 끝에 있는 핀을 쓰러뜨리는 기적 같은 플레이를 뜻하는 돌핀이라는 뜻을 통해 '뜻 밖의 행운'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저희 영화가 말하는 주제가 '순환'이라고 생각해요. 비우고 채우고를 반복하는 볼링이란 스포츠 안에서 돌핀 같은 순간도 오고요. 순간에는 돌핀을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지난 후에 돌이켜보면 매 순간이 돌핀 같은 순간들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권유리는 국내를 대표하는 장수 걸그룹 소녀시대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배우로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렇다 할 대표작은 아직 없지만, 지금 이 시기가 자신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시기인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과 사랑 받는 '배우 권유리'가 될 자신도 있다.

"배우로서 부단히 고민하고 있어요. 인생 자체가 과제 풀기의 연속인 것 같아요.(웃음) 소녀시대 활동을 토대로 돌아보면 히트한 노래가 있으면 그걸 뛰어넘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그만큼 소녀시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 게 장점이었죠. 배우 권유리로 말씀 드리자면 지금 뚜렷한 색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게 황금의 타임 인 것 같아요. 가능성이 무한하잖아요. 물론 대표작이 있길 간절히 바라고는 있어요.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 보고, 나에게 더 잘 맞는 옷을 찾기 위해 많이 입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자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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