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영어→수학→미술’ 초1 주연이의 즐거운 늘봄

이도경 2024. 3. 3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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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학교 한달] 부산 문현초 1학년 장주연군의 하루 동행 르포
부산 문현초 1학년 장주연군이 늘봄학교 미술특강에 참여하고 있다. 문현초 제공


요즘 맞벌이 가정 초등학생의 하루는 가정과 학교, 학원으로 이어지는 ‘이어달리기’ 같은 모습이다. 한순간이라도 ‘바통’ 연결이 끊기면 부모 중 한 명은 일손을 놔야 한다. ‘아이 혼자 낯선 학교와 학원 뺑뺑이를 견딜 수 있을까’ 같은 걱정은 오롯이 부모의 몫이다. 직장 다니는 엄마들이 자녀의 취학 시기에 맞춰 휴직이나 퇴사를 고민하는 이유였다.

교육부가 기존 방과후 프로그램과 돌봄교실을 통합 개편한 ‘늘봄학교’를 추진한 배경이다. 학교에 학생을 되도록 오래 머물도록 하되 단순 돌봄을 넘어 ‘쉼과 배움’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업그레이드한다는 목표다. 늘봄학교는 올해 1학기부터 전국 초등학교 2700여곳에서 시작해 시행 한 달을 맞았다. 지난달 27일, 늘봄학교에 참여하는 부산 문현초 1학년 장주연군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아침늘봄 ‘악기 해봄’
주연이는 아침 7시20분 중학생인 작은누나와 집을 나섰다. 고교 교사인 엄마와 고교생 큰누나의 아침 시간이 훨씬 빠듯해 막내인 주연이 등교 담당은 작은누나다. 작은누나는 7시35분 막내가 학교에 들어가는 걸 보고 자기 학교로 향했다. 주연이는 “3학년에는 혼자 다닐 거에요. 지금은 찻길 (건너는 게) 좀 어려워요”라며 씩씩하게 웃었다.

주연이는 오전 7시40분 아침늘봄 프로그램 ‘악기 해봄’에 참여했다. 드럼스틱을 두드리며 아침을 깨우는 시간이다. 주연이까지 7명이 음표가 그려진 카드를 쥐고 드럼스틱을 열심히 내리쳤다. 강사는 “리듬 읽기 수업이다. 아침인데도 호응이 좋아 놀라고 있다. ‘어! 벌써 여기까지 따라왔네’라며 다음 수업을 고민하게 한다”고 했다. 아침늘봄은 정규수업과 달리 학교가 제공하는 간식을 먹으며 친구와 얘기하는 등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주연이는 정규수업 1교시가 다가오는 오전 8시30분쯤 자리를 떴다.

주연이의 어머니 김미현씨는 아침늘봄 덕을 본다고 했다. 첫째와 둘째가 취학했을 때는 남편이 자영업을 하고 있어 괜찮았다. 하지만 현재는 직장을 다니고 있어 막내 등교가 곤란했다. 누나가 도와줄 수 있지만 시간이 문제였다. 막내 등교에 맞추면 누나는 지각하기 쉽고, 누나 시간에 맞추면 막내는 너무 일찍 학교에 나와 방치될 듯했다. 김씨는 “학교 적응까지 휴직을 고민했었다”고 했다.

무료 2시간 늘봄프로그램
정규수업 뒤 점심을 먹고 오후 1시쯤 늘봄교실로 온 주연이를 늘봄전담사가 맞아줬다. 늘봄학교에 참여하는 모든 1학년은 무료로 두 시간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주연이의 첫 시간 영어 프로그램은 오후 1시10분부터 40분 동안 진행됐다. 20분 휴식 뒤 수학 시간까지 마치자 오후 2시 50분이었다. 초등 저학년 학부모들은 학교 정규 수업이 너무 일찍 끝나는 게 고민이었다. 퇴근 시간까지 사교육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늘봄학교가 제공하는 무료 2시간 프로그램은 하교 시간을 2시간 늦추는 효과가 있었다.
문현초 학생들이 늘봄교실에서 바둑돌 놀이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문현초 제공

주연이는 오후 3시20분까지 자유시간을 가졌다. 늘봄교실은 일종의 쉼터다. 학생들이 다른 프로그램을 가기 전 대기하기도 하고 프로그램을 모두 마치고 귀가하기 전까지 휴식을 취하도록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초등학생용 도서와 보드게임, 편하게 기댈 빈백 의자가 있었다. 방바닥처럼 뒹굴며 보드게임을 하는 아이, 뭔가 틀어졌는지 눈물을 보이며 친구를 쏘아보는 아이도 있었다. 늘봄전담사는 마치 엄마처럼 아이들 사이를 다니며 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늘봄학교 아이들의 동선은 모두 달랐다. 학원 가는 시간이 변경돼 아이를 내보내 달라는 학원 차량 운전기사 연락도 있었다.

주연이는 오후 3시20분부터 늘봄교실에서 이뤄지는 미술특강에 참여했다. 강사와 늘봄전담사의 협력 속에 수업이 진행됐다. 늘봄전담사가 곳곳에 흩어진 아이들을 모아 책상에 앉히고 강의가 원활하도록 도왔다. 수업을 참관한 부산교육청 관계자는 “이 학교에선 없었지만 외부 강사 혼자론 힘든 경우도 있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아이라도 있으며 늘봄전담사 역할이 큰 데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주연군이 학교를 마치고 택권도학원 차량을 기다리고 있다. 문현초 제공
학교에서 학원으로
미술특강이 끝나자 오후 4시30분쯤이었다. 주연이는 늘봄전담사 도움을 받아 짐을 챙겨놓고 간식을 먹으며 태권도학원 연락을 기다렸다. 학원 차량 기사로부터 전화를 받은 늘봄전담사가 주연이 손을 잡고 나섰다. 아이는 ‘피곤하지 않아?’란 질문에 “지금은 피곤하지 않아요. 태권도 하고 나면 좀 피곤해요”라며 미소 지었다. 태권도는 오후 6시쯤 끝난다고 했다. 이 학교는 다양한 예체능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연이가 체육 대신 영어·수학 프로그램을 고른 이유는 학원에서 충분히 땀을 흘리기 때문이라고 학교 관계자가 귀띔했다. 주연이는 “태권도 끝나고 집에 가면 작은누나가 있어요. 집에서 학습지 조금 풀고 유튜브 보면서 쉬어요”라며 학원 차에 올라탔다. 주연이 어머니는 전화 통화에서 “원래 태권도 말고도 미술학원이나 국영수 학원 2~3개 생각했는데 (늘봄학교로) 학원비가 굳었다. 무엇보다 학원 사이를 이동하지 않고 학교에 머무르며 꽤 수준 높은 방과후 프로그램을 듣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주연이가 나간 뒤에도 학생 20여명이 늘봄교실에 남아 있었다. 오후 5시가 되자 모두 학원으로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어떤 아이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 교문을 나섰다. 할아버지 손에는 작은 아이 책가방이 들려 있었다. 학교 측은 “늘봄학교는 오후 8시까지 남을 수 있지만 우리 학교는 현재는 오후 5시에 모두 귀가한다”며 “오후 8시까지 남는 아이가 나오더라도 돌봄과 저녁 식사와 간식을 제공할 준비를 마쳐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문현초 학생들이 체육관에서 이뤄지는 늘봄학교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문현초 제공
늘봄학교 구성원은
늘봄학교는 기존 초등학교와 별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늘봄지원실이 있고 늘봄지원실장이 생긴다. 늘봄지원실장은 현재 교감 혹은 공무원이 담당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지방공무원이 전담한다. 늘봄학교 행정을 지원하는 행정실무직원이 있다. 현재는 기간제 교원이나 지방공무원이 맡고 있는데 내년부터 기간제 교원은 빠질 예정이다.

또 늘봄교실에서 학생을 돌봐주는 늘봄전담사가 있다. 일종의 담임교사 혹은 부모 역할을 한다. 학생들은 휴식을 취하는 늘봄교실과 방과후 프로그램을 오가며 공부와 휴식을 하다 시간이 되면 학원 혹은 집으로 흩어진다. 늘봄전담사는 학교정규 수업 이후 학교 내 아이들의 스케줄을 관리한다.

방과후 프로그램은 주로 외부에서 초빙된 늘봄프로그램강사가 맡는다. 해당 학교의 교사가 희망할 경우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할 수도 있다. 주로 강사를 구하기 어려운 곳에선 교사의 프로그램에 의존할 것으로 보인다. 노인 등 지역 주민이 주축이 되는 자원봉사자도 학생 안전 등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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