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영어→수학→미술’ 초1 주연이의 즐거운 늘봄
요즘 맞벌이 가정 초등학생의 하루는 가정과 학교, 학원으로 이어지는 ‘이어달리기’ 같은 모습이다. 한순간이라도 ‘바통’ 연결이 끊기면 부모 중 한 명은 일손을 놔야 한다. ‘아이 혼자 낯선 학교와 학원 뺑뺑이를 견딜 수 있을까’ 같은 걱정은 오롯이 부모의 몫이다. 직장 다니는 엄마들이 자녀의 취학 시기에 맞춰 휴직이나 퇴사를 고민하는 이유였다.
교육부가 기존 방과후 프로그램과 돌봄교실을 통합 개편한 ‘늘봄학교’를 추진한 배경이다. 학교에 학생을 되도록 오래 머물도록 하되 단순 돌봄을 넘어 ‘쉼과 배움’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업그레이드한다는 목표다. 늘봄학교는 올해 1학기부터 전국 초등학교 2700여곳에서 시작해 시행 한 달을 맞았다. 지난달 27일, 늘봄학교에 참여하는 부산 문현초 1학년 장주연군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주연이는 오전 7시40분 아침늘봄 프로그램 ‘악기 해봄’에 참여했다. 드럼스틱을 두드리며 아침을 깨우는 시간이다. 주연이까지 7명이 음표가 그려진 카드를 쥐고 드럼스틱을 열심히 내리쳤다. 강사는 “리듬 읽기 수업이다. 아침인데도 호응이 좋아 놀라고 있다. ‘어! 벌써 여기까지 따라왔네’라며 다음 수업을 고민하게 한다”고 했다. 아침늘봄은 정규수업과 달리 학교가 제공하는 간식을 먹으며 친구와 얘기하는 등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주연이는 정규수업 1교시가 다가오는 오전 8시30분쯤 자리를 떴다.
주연이의 어머니 김미현씨는 아침늘봄 덕을 본다고 했다. 첫째와 둘째가 취학했을 때는 남편이 자영업을 하고 있어 괜찮았다. 하지만 현재는 직장을 다니고 있어 막내 등교가 곤란했다. 누나가 도와줄 수 있지만 시간이 문제였다. 막내 등교에 맞추면 누나는 지각하기 쉽고, 누나 시간에 맞추면 막내는 너무 일찍 학교에 나와 방치될 듯했다. 김씨는 “학교 적응까지 휴직을 고민했었다”고 했다.
주연이는 오후 3시20분까지 자유시간을 가졌다. 늘봄교실은 일종의 쉼터다. 학생들이 다른 프로그램을 가기 전 대기하기도 하고 프로그램을 모두 마치고 귀가하기 전까지 휴식을 취하도록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초등학생용 도서와 보드게임, 편하게 기댈 빈백 의자가 있었다. 방바닥처럼 뒹굴며 보드게임을 하는 아이, 뭔가 틀어졌는지 눈물을 보이며 친구를 쏘아보는 아이도 있었다. 늘봄전담사는 마치 엄마처럼 아이들 사이를 다니며 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늘봄학교 아이들의 동선은 모두 달랐다. 학원 가는 시간이 변경돼 아이를 내보내 달라는 학원 차량 운전기사 연락도 있었다.
주연이는 오후 3시20분부터 늘봄교실에서 이뤄지는 미술특강에 참여했다. 강사와 늘봄전담사의 협력 속에 수업이 진행됐다. 늘봄전담사가 곳곳에 흩어진 아이들을 모아 책상에 앉히고 강의가 원활하도록 도왔다. 수업을 참관한 부산교육청 관계자는 “이 학교에선 없었지만 외부 강사 혼자론 힘든 경우도 있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아이라도 있으며 늘봄전담사 역할이 큰 데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연이가 체육 대신 영어·수학 프로그램을 고른 이유는 학원에서 충분히 땀을 흘리기 때문이라고 학교 관계자가 귀띔했다. 주연이는 “태권도 끝나고 집에 가면 작은누나가 있어요. 집에서 학습지 조금 풀고 유튜브 보면서 쉬어요”라며 학원 차에 올라탔다. 주연이 어머니는 전화 통화에서 “원래 태권도 말고도 미술학원이나 국영수 학원 2~3개 생각했는데 (늘봄학교로) 학원비가 굳었다. 무엇보다 학원 사이를 이동하지 않고 학교에 머무르며 꽤 수준 높은 방과후 프로그램을 듣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주연이가 나간 뒤에도 학생 20여명이 늘봄교실에 남아 있었다. 오후 5시가 되자 모두 학원으로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어떤 아이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 교문을 나섰다. 할아버지 손에는 작은 아이 책가방이 들려 있었다. 학교 측은 “늘봄학교는 오후 8시까지 남을 수 있지만 우리 학교는 현재는 오후 5시에 모두 귀가한다”며 “오후 8시까지 남는 아이가 나오더라도 돌봄과 저녁 식사와 간식을 제공할 준비를 마쳐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또 늘봄교실에서 학생을 돌봐주는 늘봄전담사가 있다. 일종의 담임교사 혹은 부모 역할을 한다. 학생들은 휴식을 취하는 늘봄교실과 방과후 프로그램을 오가며 공부와 휴식을 하다 시간이 되면 학원 혹은 집으로 흩어진다. 늘봄전담사는 학교정규 수업 이후 학교 내 아이들의 스케줄을 관리한다.
방과후 프로그램은 주로 외부에서 초빙된 늘봄프로그램강사가 맡는다. 해당 학교의 교사가 희망할 경우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할 수도 있다. 주로 강사를 구하기 어려운 곳에선 교사의 프로그램에 의존할 것으로 보인다. 노인 등 지역 주민이 주축이 되는 자원봉사자도 학생 안전 등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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