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카고 트리뷴 기자가 추적한 예수 부활의 증거

2024. 3. 3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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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스트로벨의 예수 부활 5가지 증거

만일 예수 부활이 사실이라면 예수가 하나님이 유일한 아들이라는 정체가 확증되면서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영생의 문이 열릴 것이다. 그러나 만일 부활이 전설이거나 착각이라면 예수는 수많은 혁명가와 거짓 메시아들의 뒤를 이어 십자가 처형 틀에 희생된 또 하나의 불운한 인물이 지나지 않을 것이다. 부활에 대한 증거가 더 많을까. 아니면 부활은 없다는 역사적 자료가 더 많을까. 1975년부터 전문가들은 최근까지 프랑스어와 독일어, 영어로 된 자료를 모았다. 미국 리버티대 학장을 지낸 게리 하버마스는 그 자료만 2200편 이상을 모았다.

미국 시카고 트리뷴 법률담당 기자로 일했던 리 스트로벨은 예수 부활의 사실 여부를 추적했다. 그는 신학자와 고고학자, 역사학자, 의학자 등 이 분야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 결과는 놀랍게도 부활에 대한 증거는 차고 넘쳤다. 오히려 부활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하기가 더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는 복음서와 바울 서신서의 기록, 고고학적 성과, 다양한 고대 역사기록과 유대교의 기록물, 초기 교회 교부들의 문서 기록, 구전, 그리고 고대 문화적 맥락 등을 고려한 결과였다. 실제로 신약성경은 기독교의 경전일 뿐 아니라 역사적 가치를 가진 1차 자료로서 학계가 인정하는 추세다. ‘예루살렘 전기’(시공사)를 쓴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예루살렘 역사를 기록하면서 신구약 성경을 주요 참고문헌으로 삼는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실제로 죽으셨다

2000년 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건은 역사적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선 신약성경의 4 복음서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 하나같이 이 일을 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기독교 바깥에서도 이를 전한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예수가 티베리우스 황제 재위 중에 극형을 당했다”고 썼고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빌라도가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했다”고 전했다. 2세기 그리스의 풍자작가 사모사타의 루키아노스와 마라 바 세라피온은 예수가 처형당한 사실을 확인한다. 유대교 ‘탈무드’에도 예수가 죽임을 당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제자들은 그분이 부활해 자기들에게 나타났다고 믿었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실제로 다시 살아나 자기들에게 나타나셨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제자들에 관한 사도 바울의 증언, 초대교회에 전해진 구전(口傳), 초대교회의 기록 문서 등 세 가지가 있다.

사도바울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을 직접 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도행전 9장 26~30절, 15장 1~35절 등에 나와 있다. 바울은 이렇게 사도들을 알았으며 사도들도 자기처럼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을 선포했다고 전하고 있다.

다음은 구전으로, 당시엔 글로 기록될 때까지 자연히 말로 전해오는 구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자들은 이 구전이 신앙고백, 찬송, 설교 요약 등의 형태로 신약성경에 그대로 옮겨져 있는 곳을 몇 군데 찾아냈다. 구전이 신약성경이라는 기록물보다 먼저 존재했어야만 신약성경 저자들이 그것을 인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대단히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 중 하나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쓴 첫 번째 편지(고린도전서)에 옮겨져 있다. 고린도전서는 AD 55년쯤 쓴 편지로 신앙고백의 내용은 이렇다.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세상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다음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고전 15:3~7)

많은 학자는 이 고백이 바울이 회심한 지 3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베드로와 야고보를 찾아갔을 때 그들에게서 이 신앙고백을 전해 들은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십자가 사건이 있은 지 채 5년이 지나기 전이었다. 이 신앙고백은 시기가 매우 일렀을 뿐 아니라 바울에게 그것을 전해준 사람들 또한 분명히 목격자들이거나 바울이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더 신빙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전설의 산물이기에는 시기가 일러도 너무 이르다.

구전은 이 신앙고백 말고도 사도들의 설교가 몇 편 남아 있다. 초창기 사도들의 가르침이 사도행전에 요약된 이 설교들 속에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그 설교들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몸으로 부활하셨음을 선포한다. 예를 들어 바울은 베드로가 사도행전 2장에서 했던 오순절 설교와 비슷하게 사도행전 13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행 13:36)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같은 4 복음서와 같은 기록 문서가 있다. 이들 복음서가 1세기에 기록됐다는 것은 회의적인 역사가들 사이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학자들도 인정한다. 이 네 편의 전기는 예수의 생애로부터 70년 이내에 기록됐으며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제자들의 주장을 명확하게 전하고 있다.

이는 고대 역사 문헌과 비교하면 더욱 뚜렷하다. 예를 들어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관한 가장 훌륭한 문헌 두 편은 그가 죽은 후 400년이 지나서야 기록됐다. 그 밖에 사도 교부들이라 불리는 1~2세기 초에 살던 소수 작가는 사도들을 직접 알았거나 사도들을 아는 사람과 친했다고 한다. 그들의 저작물엔 사도들의 가르침이 그대로 반영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예수의 부활이 사도들에게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했다.

초기 교부 이레나이우스는 클레멘트가 사도들과 직접 대화했다고 했고 아프리카의 교부 테르툴리아누스는 클레멘트가 베드로에게 직접 안수를 받았다고 했다. 순교자 폴리캅은 사도 요한을 비롯한 사도들에게 직접 배웠고 그리스도를 직접 본 많은 사람과 대화했다. AD 110년쯤 폴리캅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예수의 부활을 다섯 번이나 언급했다.

스트로벨은 “이 증거의 심도를 생각해보라”며 “바울, 구전, 기록 문서 등 세 가지 범주에 9가지의 증거 자료가 있다. 다수 목격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보았다는 제자들의 주장을 아주 이른 시기부터 증언한 것이다. 제자들은 이것이 자신들의 존재의 핵이라 믿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부활을 믿지 않았다면 굳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며 순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이 믿음을 사수하기 위해 고난도 마다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초기 자료는 7가지가 된다. 여기다 바울의 순교, 예수의 동생 야고보의 순교까지 합하면 증거는 더 늘어난다. 거짓말을 위해 순교할 사람은 없다. 그들이 죽음을 불사한 것은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진실 때문이었다.

교회를 박해했던 바울의 회심
사도 바울은 자신의 신앙 때문에 평생 고난은 물론, 죽음까지도 불사했다. 고대 자료에 그렇게 기록한 작가는 바울 외에도 누가, 로마의 클레멘트, 폴리캅, 테르툴리아누스, 고린도의 디오니시우스, 오리게네스 등 6명이나 된다.

바울은 사울이었던 시절, 예수를 박해하던 사람이었다. 그가 십자가 사건이 있고 난 뒤 간절한 바람이나 슬픔 때문에 저절로 예수의 환영을 보았을 사람이 아니다. 바울은 기독교 운동을 저지할 생각밖에 없었고 그리스도인들이 거짓 메시아를 따르고 있다고 믿었다. 박해자였던 그가 오히려 선교사로 180도 바뀐 데는 설명이 필요하다. 최고의 설명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점이다. 만일 예수를 만나지도 않고 억지로 꾸며냈다면, 그렇게 해서 그가 얻은 것이라고는 고난과 순교를 자초하는 것 말고는 없다.

예수의 동생인 회의론자 야고보의 회심
예수께서 살아계실 당시 야고보가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 마가와 요한 둘 다, 예수와 형제들이 아무도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기록했다.(막 3:21; 6:3~4; 요 7:3~5)

그런데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오는 고대 신앙고백에 따르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야고보에게 나타나셨다고 돼 있다. 이 기록 역시 시기가 매우 이른데 사실 야고보도 이 신앙고백을 바울에게 전해준 사람 중 하나였을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야고보는 그 신앙고백에 담긴 자신에 관한 내용을 직접 시인한 셈이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결과, 야고보는 그리스도인이 됐을 뿐 아니라 나중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됐다.(행 15:12~21, 갈 1:19) 부활 사건으로 인해 야고보는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철석같이 믿게 됐고 결국 순교자로 생을 마감했다. 이 사실은 기독교 내에서는 물론 기독교 외부의 자료로도 입증된다(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등).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었다
학자들의 75%가 빈 무덤을 역사적 사실로 보고 있었다는 게 리스트로벨의 취재 결과다.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증거는 예루살렘 요인, 적들의 증언, 여자들의 증언 등 세 가지다.

예루살렘 요인이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공개 처형되고 장사 되었고 부활도 같은 도시에서 했다는 뜻이다. 예수의 시신이 무덤 속에 그대로 있었다면 예루살렘은 기독교의 발상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 들려온 말은 무덤이 비어있다는 유대인 지도자들의 증언들이었다. 그들은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갔다고 했지만 시신이 무덤 속에 그대로 있었다면 왜 굳이 훔쳐갔다고 말하겠는가. 이는 무덤이 비어 있었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게다가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는 발상 자체가 조악한 설명이다. 제자들이 공모해 시신을 몰래 빼돌린 뒤, 그 뻔한 거짓말을 위해 평생 고난과 죽음까지 감수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시신을 훔쳤다는 것은 워낙 황당한 발상이라 오늘날 학자들은 누구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여자들의 증언이다. 1세기 유대문화와 로마문화에서 여자들은 항상 차별을 받는 대상이었다. 여자의 증언은 믿지 않았다. 그런데도 복음서들은 예수의 부활 소식의 첫 목격자로 여자들을 말한다. 만약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꾸미려면 굳이 여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했다고 쓰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베드로나 요한 같은 남자들이었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복음서 저자들은 이런 신빙성 떨어지고 불리한 여성들의 말을 기록했을까. 그것은 부활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며 거기서 파생될 신빙성의 문제와 관계없이 사실을 정확하게 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옥스퍼드대 윌리엄 워드는 ‘기독교는 역사적 종교인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엄밀한 역사적 증거가 빈 무덤을 지지하고 있다. 빈 무덤을 배격하는 학자들은 그 근거가 과학적 역사가 아닌 다른 데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 글은 ‘리 스트로벨의 부활의 증거’(두란노) 중 내용을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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