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이젠 주민들이 더 원한다는 해상풍력, 왜 더딘가…탐라해상풍력단지 가보니

강희종 2024. 3. 3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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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했던 소음·어획량 감소없고
관광명소화로 지역경제 활성화
주민들이 해상풍력 확장 먼저 요구
인허가 절차 복잡, 사업은 지체
"BESS 등 인프라 확대 병행" 지적도

지난 28일 찾은 제주 한경면 금등리 부둣가. 이날 제주엔 강풍주의보 속에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해변에서 500m 이상 떨어진 곳에 해상풍력 발전기 여러 대가 돌고 있었으나 파도와 바람 소리에 묻혀 발전기 소음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이곳에 해상풍력발전이 들어서기 전 소음을 걱정하며 반대했던 주민들은 이젠 오히려 풍력 발전기 확장을 바라고 있다. 풍력발전기가 설치된 이후 어족 자원이 더욱 풍부해진 데다 관광객이 몰리며 지역 경제가 살아났기 때문이다. 한적했던 시골 마을에 카페와 숙박시설도 들어섰다.

이곳에서 만난 고춘희 금등리 이장은 “처음엔 해녀들이 가장 반대를 많이 했으나 지금은 어획량도 줄지 않고 관광객들이 몰리며 마을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만족해하고 있다”며 “주민들은 풍력발전 확장을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8일 제주 한경면 금등리에서 본 탐라해상풍력단지 모습. 이날 바람소리와 파도소리에 묻혀 풍력발전기의 블레이드가 돌아가는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2024.3.28. 사진=강희종기자

블레이드(풍력발전기의 날개 부분)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바람이 불어야 하는데, 바람이 불면 파도가 함께 치기 때문에 결국 블레이드 소음은 들리지 않는다는 게 마을 주민들의 설명이다.

"어획량 오히려 증가…남방 돌고래도 떠나지 않았다"

2017년 9월 준공한 탐라해상풍력발전이 올해로 상업 운전 7년째를 맞고 있다. 탐라해상풍력발전 단지에는 한경면 두모리~금등리 공유수면 일원에 3메가와트(MW) 규모의 풍력발전기 10기(총 설비용량 30MW)가 설치돼 있다.

탐라해상풍력발전은 전력을 생산해 판매할 수 있는 국내 첫 상업용 해상 풍력으로 이후 진행됐거나 현재 추진되고 있는 해상풍력발전 사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탐라해상풍력발전 이성호 본부장은 “운영 상황을 견학하기 위해 해마다 2000~3000명이 다녀간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운영 결과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까지 가동률은 98%, 평균 이용률은 29%로 사업 추진 당시 목표(가동률 95%·이용률 28.9%)를 상회하거나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가동률은 가동 조건(풍속 3m/sec~25m/sec)에서 풍력발전기가 얼마나 작동했는지를, 이용률은 실제 전력 생산량을 기준으로 한다. 가동이 되더라도 바람의 세기가 충분치 않아 출력이 떨어지면 이용률은 낮아진다.

지금까지 생산한 전략량은 약 50만 메가와트시(MWh)에 이른다. 이는 가구당 평균 전기 사용량을 기준으로 제주 전체 가구(31만3000명)가 약 6개월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탐라해상풍력발전 종합상황실에 풍력발전기 가동 상황이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다. 사진=강희종기자

운영 실적도 양호하다. 탐라해상풍력발전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총 165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작년까지 매출액은 1340억원으로 81.2%를 회수했다. 최대주주사인 한국남동발전은 208억원을 투자했으며 작년까지 140억원의 배당금을 받아 67.3%를 회수했다.

당초 어민들이나 환경단체에서 우려하던 어획량 감소나 환경 파괴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해양수산자원개발원(KMI)이 모니터링한 결과 풍력발전소의 하부 구조물이 어초 역할을 하면서 자리돔 등 어족 자원이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어획량이 늘어난 덕분에 해녀들의 작업 시간이 이전보다 줄어들었다. 남방돌고래도 여전히 목격돼 해상풍력이 서식지를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도 불식시켰다.

해상풍력발전소 설치 이후 늘어난 관광객을 상대하기 위해 식당, 카페, 숙박 시설 등 상권이 형성되며 한경면 일대 경제가 살아나는 부수적인 효과도 거두고 있다. 최근 남동발전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활용해 풍력발전기에 야간 조명 설치하고 곳곳에 포토존도 마련했다. 주민들은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지역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야간 경관 조명등이 설치된 탐라해상풍력발전기의 모습. 사진제공=한국남동발전

처음 해상풍력발전에 반대했던 인근 주민들은 이제 반대로 확장공사를 강력히 원하고 있다. 남동발전은 지난 2020년 주민들의 강력한 해상풍력 확대 요청에 따라 주민 수용성 확보를 완료했다. 2021년 경관심의 통과 이후 지난해 5월 지구 지정변경까지 마쳤다.

탐라해상풍력 확장사업에서는 8MW 설비 용량을 갖춘 해상풍력 발전기 9기(총 72MW)가 새로 지어질 예정이다. 기존 설비와의 호환성을 위해 두산에너빌리티가 발전 설비를 공급한다. 총 예상 사업비는 약 4000억원 규모다. 확장 사업을 완료하면 탐라해상풍력의 설비 용량은 102MW까지 늘어난다.

탐라해상풍력발전이 지금은 성공적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착공까지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이 사업은 처음에 민간에서 허가를 받았지만 주민 수용성 등의 문제로 사업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2006년 8월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후 2015년 4월 착공까지 10년이나 걸렸다. 그 사이 소유권이 3번이나 변경됐다. 처음 추진하는 상업 해상풍력발전이다 보니 주민 보상에 대한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없었다.

각종 민원으로 사업이 지지부진해지자 탐라해상풍력의 직전 대주주였던 포스코에너지는 2014년 지분을 한국남동발전에 넘기고 철수했다. 남동발전은 이때부터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신뢰 쌓기에 나섰다.

당시 사업을 추진했던 남동발전의 이효우 풍력운영부 부장은 “초기에는 아무리 설명하고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해도 믿어주지 않았다”며 “밀어붙이기보다는 소통을 통해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나갔다”고 말했다. 직접적인 피해 보상은 감정평가기관의 용역 결과를 토대로 지급했고 간접적인 피해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보상 체계를 마련했다.

탐라해상풍력발전 단지와 그 일대를 항공 촬영한 모습. 사진제공=한국남동발전

사업성을 담보하기 위해 계통한계가격(SMP)과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의 합이 적정 수준에서 유지되도록 계약했다. 주민 수용성과 사업성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금융권으로부터 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고 사업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한국남동발전은 탐라해상풍력의 성공을 바탕으로 2021년 10월 320MW 규모의 인천 용유무의자월 해상풍력, 지난해 7월 320MW급 인천덕적 해상풍력의 발전 사업 허가를 얻는 등 2.6기가와트(GW) 용량의 해상풍력 발전 사업 허가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완도금일해상풍력(600MW)과 신안우이해상풍력(390MW) 사업의 환경영향평가를 완료하고 착공 준비에 들어갔다.

◆주민이 강력히 요청한 사업도 인·허가에만 2~3년

육지에서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을 큰 폭으로 확대하기 어려운 국내 여건상 해상풍력이 신재생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2017년 세운 재생에너지3020계획에 따르면 2030년까지 해상풍력 보급목표는 12GW로 육상풍력 보급 목표의 약 두배다. 제10차 전력 수급계획에서 세운 2036년 해상풍력 발전량 목표는 26.7GW로 전체 풍력발전의 77.8%에 달한다.

해상풍력 프로젝트가 급증하고 있지만 진척 속도는 매우 느리다.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2022년말 기준 해상풍력 발전사업허가를 받은 사업의 용량은 20GW로 2030년 목표치인 12GW를 훨씬 웃돈다. 하지만 실제 보급된 해상풍력은 124.5MW로 목표치의 1%에 불과하다.

사업이 지체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복잡한 인허가 절차가 꼽힌다. 국내 해상풍력 인허가 관련 법률만 29개에 달하며 주관부처도 10여곳이다.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고 발전 허가를 받았다 하더라도 복잡한 인허가 과정이 남아있다.

실제로 주민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추진돼 아무런 민원이 없는 탐라해상풍력 확장공사의 경우도 실제 착공은 2~3년 후를 바라보고 있다. 해역이용협의 및 해역이용영향평가(해양수산부), 환경영향평가(환경부), 전파영향평가(국방부) 등 남은 인허가 절차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한 해상풍력특별법이 21대 국회에서 추진됐지만 결국 무산됐다.

해상풍력발전에서 생산한 전력을 적절히 처리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많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증가한 제주의 경우 전력 계통에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최근 2~3년 사이 출력 제어가 크게 늘고 있다.

탐라해상풍력발전 이성호 본부장은 “재작년에 72회, 작년에 92회의 출력제어가 있었으며 이로 인해 작년에만 8~9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남동발전 이효우 부장은 “해상풍력발전 보급을 위해서는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BESS)를 확대하거나 육지로 남는 전력을 보낼 수 있는 송전선로 구축 등 인프라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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