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케이멘즈 랩소디’, 한국 남자 남성성 신화 해부

장지영 2024. 3. 30.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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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계에서 박녹주(1905~1979)는 대명창으로 추앙받는 여성 소리꾼이다.

10대 시절부터 명창으로 이름난 박녹주는 20대 초반 전국구 스타가 됐다.

박녹주는 1960년대 국가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 판소리 '춘향가'와 '흥보가' 보유자로 지정됐으며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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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 공연
현대사 통해 남자 정체성 돌아봐
“21세기 한국 남성 변화 출발점”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의 ‘케이멘즈 랩소디’ 2022년 초연 장면.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부터 오늘날까지 형성된 한국 남자의 정체성을 현대사의 장면을 통해 되돌아본다.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 제공


국악계에서 박녹주(1905~1979)는 대명창으로 추앙받는 여성 소리꾼이다. 10대 시절부터 명창으로 이름난 박녹주는 20대 초반 전국구 스타가 됐다. 해방 이후엔 여성 소리꾼들과 함께 남성 중심의 국악계에 반발해 여성국악동호회를 결성한 뒤 ‘옥중화’(춘향전)를 올렸는데, 바로 여성국극의 시작이다. 박녹주는 1960년대 국가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 판소리 ‘춘향가’와 ‘흥보가’ 보유자로 지정됐으며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박녹주는 젊은 시절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던 학생의 광적인 구애, 오늘날 용어로는 ‘스토킹’ 때문에 심하게 고생했다. 나중에 소설 ‘동백꽃’ ‘봄봄’ 등을 쓰는 작가 김유정(1908~1937)이 바로 그 학생이다. 김유정은 박녹주에게 반해서 2년간이나 집요하게 쫓아다녔다. 박녹주가 거절하자 김유정은 혈서를 보내는가 하면 시도 때도 없이 찾아가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김유정은 형을 상대로 한 재산 분배 소송 등도 있어서 갑자기 스토킹을 멈춘 후 낙향했다. 다행히 고향 춘천에서 그는 문학적 재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절제한 생활 속에 결핵과 치질로 요절했다. 황당하게도 김유정이 죽자 그의 친구가 박녹주를 찾아가 “김유정은 당신이 죽였다”며 매도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김유정의 스토킹은 오랫동안 애달픈 짝사랑으로 묘사됐다.

극작가 겸 연출가 김재엽이 이끄는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의 ‘케이멘즈 랩소디(K-Men’s Rhapsody)’(4월 6~21일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는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오늘날까지 형성된 한국 남자의 정체성을 현대사의 장면을 통해 되돌아보는 작품이다. 김유정과 박녹주의 이야기를 비롯해 남성 중심의 식민지 조선 문단에서 평론을 가장한 비방을 당하던 김명순 등 여성 문인들,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8년 여성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자 사측이 남성 노동자들을 동원해 인분을 투척했던 동일방직 사건, 2016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여성 혐오 살해 사건 등 실화에 기반을 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 남자들이 모태신앙처럼 믿어온 ‘남성성’이 한국 현대사가 만들어낸 불구화된 초상이라는 게 이 작품의 요지다. 남성성이라는 권력이 흔들릴 때마다 여성에 대한 소외와 혐오가 증폭된 것이야말로 그 증거다.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은 다큐멘터리성, 동시대성, 테제(정치적·사회적 운동의 기본 방침이 되는 강령)가 중심이 되는 작품에 천착해 왔다. 지난 10년간의 동시대적 테마로서 ‘역사와 경제’를 선택했다. 경제와 관련해 자본주의, 금융자본, 플랫폼을 각각 다룬 ‘자본’ 1~3 시리즈가 대표적이라면 역사와 관련해서는 ‘알리바이 연대기’에 이어 이번 작품이 2022년 초연 당시 주목을 받았다.

김재엽 연출가는 “이 연극은 21세기를 사는 한국 남성이 변화를 모색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 제공


김재엽 연출가는 “남성 중심적 역사관으로 인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한국 여성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싶었다”면서 “일제 식민지 시대의 신여성에서 시작해 남성 못지않게 노동운동에 참여한 여성 노동자들을 쭉 따라오다 보면 자연스럽게 요즘 여성들의 목소리와 이어지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발현되는 여성들의 정당한 분노와 창조적인 저항은 지난 수 세기 동안 남성 인류가 여성 인류를 동등한 주체로 보지 않은 결과”라면서 “이 연극은 21세기를 사는 한국 남성이 변화를 모색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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