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탄 사다리… 공부도 인생도 ‘꽝’

김유나,차민주 2024. 3. 30.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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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넘은 청소년 사이버 도박
판돈 대주는 또래 사채꾼까지 교실에 움튼 도박 생태계
돈 딴 경험이 무용담으로… 유행처럼 번져
게티이미지뱅크


경기도 시흥의 한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A군(16)은 지난달 말 주변 친구의 권유로 온라인 도박의 일종인 ‘바카라’를 접하게 됐다. 또래 친구가 카카오톡 메신저로 보낸 바카라 사이트 링크에 접속해 재미 삼아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용돈을 모아 마련한 10만원으로 게임을 하던 A군은 조금씩 돈을 따기 시작했고, 재미를 느껴 게임에 돈을 다 넣었다가 잃은 뒤 친구들에게 10만원을 빌리기도 했다.

돈을 다 잃었지만 도박 재미에 빠진 A군은 당장 돈을 마련하기 위해 중고 거래까지 손을 댔다. 하지만 큰돈이 필요했다. 결국 A군은 중고 거래 사이트에 ‘아이폰을 택배로 저렴하게 판매한다’며 30만원을 받고는 물건을 보내지 않았다. A군은 아이폰 외에도 다른 물건도 판다며 허위 글을 올려둔 상태였다. A군은 사기 혐의로 경찰서에 가게 됐다. A군 부모는 지도 교사와의 상담에서 “우리 아이가 도박에 빠질 줄은 몰랐다”며 “아이에게 경고를 강하게 해도, 주변 친구들이 다 도박을 하기 때문에 또다시 빠지게 될까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청소년 도박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도박이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불법 도박에 대한 위험성을 모르는 채 재미 삼아 ‘게임’의 일부로 가볍게 여기는 청소년이 늘어나면서 예방책 마련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이 지난달 29일 펴낸 ‘청소년 사이버도박’ 이슈페이퍼에 따르면 전국 중·고등학생의 3%가량은 사이버도박 위험군인 것으로 나타났다. 개발원이 여성가족부와 교육부, 시·도교육청과 함께 매년 청소년 인터넷·스마트폰 이용 습관 진단조사를 하고 있는데, 지난해부터는 사이버도박이 진단조사에 추가됐다.


전국 중학교 1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87만7660명을 대상으로 중독증상 10문항을 조사한 결과 사이버도박 위험군은 전체 3.3%(2만8838명)로 집계됐다. 중학교 1학년의 경우 1만6049명, 고등학교 1학년은 1만2529명으로 연령이 낮을수록 위험군 비중이 높았다. 성별로는 남학생이 2만399명으로 70.7%였고, 여학생은 29.3%였다.

청소년 도박이 우려스러운 건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돈을 딴 경험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면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원이 공개한 상담 개요를 보면 중학교 2학년인 B학생의 경우 수학여행에서 처음 온라인 사다리 타기로 도박을 접했다. 그러다 재미를 느껴 수학여행 내내 친구들과 사이버도박에 참여했고, 이후에는 사이버도박으로 딴 돈을 친구들한테 나눠주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친구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베풀 수 있구나. 뭔가 한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고 한다. 도박할 돈을 모으기 위해 물건을 팔거나, 부모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는 과정에서 불법에 노출될 우려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청소년 도박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금전 문제 외에도 중독을 일으켜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 상담한 한 청소년은 “즉각적인 보상이 이뤄지고 빨리 결과가 나오다 보니 작은 자극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며 “학교가 재미없어지고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도 시시해졌다”고 말했다.

돈을 갚지 못해 또래 간 다툼으로 번지는 경우도 생긴다. 심용출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 기획운영부장은 29일 “청소년 사이에서도 도박을 위한 돈을 빌려주고, 못 갚으면 받아내기 위해 부모를 찾아간다거나 아이를 데리고 집단 폭력 등 위협을 하는 등 조직화한 사채놀이를 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높은 이자를 받는 등 도박에 노출된 친구를 옭아맨다는 것이다.

범죄에 노출되는 청소년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실이 지난해 10월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도박 범죄와 관련해 검거된 10대 청소년은 2013년 12명 수준이었지만 2020년 91명으로 크게 늘었다. 이후 2021년 66명, 2022년 76명으로 소폭 줄긴 했지만 여전히 100명에 근접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에 따르면 도박 문제군과 위험군 청소년들의 절도 경험(25.1%)이 비문제군(8.8%)보다 3배가량 높았다. 학교생활에 문제를 겪는 경우(26%)도 비문제군(8.8%)보다 3배 높았다. 자살 생각 경험은 35.5%로 비문제군(8.0%)보다 4배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결국 학교나 부모가 개입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개발원은 “청소년 사이버도박에서 중요한 것은 예방과 즉각적인 개입”이라며 “도박 예방 교육을 진행하고, 초기 개입을 할 수 있도록 대응하고 있다. 전문개입이 필요한 청소년을 대상으로는 도박 전문기관에 의뢰하는 통합적 모델을 개발해 청소년 문제에 개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녀가 도박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때에는 금전 문제를 본인이 직접 해결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심 부장은 “사례자들을 보면 부모가 도박 빚을 대신 갚아주면 거기서 끝이 나는 게 아니라 다시 도박에 손을 대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깝긴 하지만 본인이 아르바이트해서 갚는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본인이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행심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를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 심 부장은 “성폭력이나 학교폭력처럼 사회 문제가 발생하면 그 부분에 대해 교육을 하는 것처럼 도박도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서 알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특히 사회적으로 코인이나 주식처럼 한 번에 대박을 내는 것들이 개인의 능력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다 보니까, 청소년들도 그런 분위기에 따라서 ‘대박이 날 수 있는 사이트’라고 하면 호기심이 생겨서 도박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유나 차민주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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