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사이 54개국 → 74개국 ‘독재국가 지도’ 넓어졌다

김철오 2024. 3. 30.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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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독재 49개국 온건 독재 25개국
탈세계화 속 제3세계의 독재화 속도
서유럽 곳곳 우경화 민주주의 약화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부터). 뉴시스


독일 싱크탱크 베르텔스만재단의 ‘베르텔스만혁신지수(BTI)’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전 세계에서 독재가 팽창하고 민주주의가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137개 신흥국 및 체제 전환국 가운데 절반이 넘는 74개국이 올해 BTI에서 독재국가로 분류됐다. 2014년 54개국에서 10년 사이 20개국이 늘어난 것이다. 반면 민주주의 국가는 10년 전 75개국에서 올해 63개국으로 감소했다.

브렉시트(2016년), 미·중 무역전쟁(2018년), 코로나19 팬데믹(2020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2022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2023년)으로 이어진 지난 10년의 탈세계화 흐름 속에 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독재국가 전환 속도가 빨라졌다. 서유럽 곳곳에서도 우경화 바람이 불면서 민주주의 동맹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크게 울린다.

북·중·러 능가 ‘최악 독재국’은 예멘

베르텔스만재단은 미국·서유럽·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서방국과 인구 100만명 이하 군소국을 제외한 137개국의 민주주의, 시장경제, 거버넌스의 질을 분석해 지수화한 BTI를 2년마다 발표한다. 올해 BTI는 지난 19일 공개됐다.

BTI에서 각국은 3단계의 민주국가, 2단계의 독재국가로 분류된다. 민주국가는 ‘공고한 민주주의’ ‘결함 있는 민주주의’ ‘큰 결함을 가진 민주주의’로, 독재국가는 ‘온건 독재’와 ‘강경 독재’로 나뉜다. 올해 강경 독재는 49개국, 온건 독재는 25개국으로 집계됐다.

재단은 선거제도, 삼권분립, 표현의 자유, 결사·집회권, 민권, 지도자의 지배력, 무력 독점의 7가지 항목을 1~10점까지 채점한 뒤 하나라도 기준 점수에 도달하지 못하면 독재정권으로 판단한다. 까다로운 기준 탓에 선진화된 경제·사회 시스템을 갖춘 국가도 BTI에서 독재정권으로 분류될 수 있다. 싱가포르가 대표적이다. 엄벌주의를 고수하는 싱가포르는 종합 5.5점으로, ‘큰 결함을 가진 민주주의’에 포함된 레바논(5.3점)보다 높은 점수를 받고도 ‘온건 독재’로 분류됐다.

후티 반군에 장악된 예멘은 가장 낮은 점수(1.6점)를 받아 최악의 강경 독재국가로 뽑혔다. 재단은 예멘에 대해 “안사르알라(후티의 다른 이름) 지도자와 지지자들은 갈취, 납치, 성폭력 혐의를 받고 있다”며 “국가는 역성장, 높은 인플레이션, 광범위한 빈곤에 빠졌다”고 평가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실권을 쥔 사우디아라비아는 강경 독재 톱10 문턱에서 북한과 순위를 다투고 있다. 북한은 남수단과 함께 2.6점으로 공동 11위, 사우디는 2.7점으로 13위에 올랐다.

지난해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 이후 내부 통제를 강화한 중국(3.2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30년 집권이 확정된 러시아(3.4점)도 강경 독재 그룹에서 빠지지 않았다. 재단은 중국에 대해 “역량보다 충성심을 중시하고 있다. 시 주석은 객관적인 정보를 차단당할 위험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독재국 지도 넓히는 ‘글로벌 사우스’

지난 10년간 BTI에서 독재국 증가분은 20개국이지만, 실제로는 24개국이 늘고 4개국이 독재 카테고리에서 빠졌다. 독재 팽창 속도는 남반구와 저위도 국가 중심의 제3세계를 통칭하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에서 유독 빨랐다. 신규 독재 24개국 중 아프리카가 15개국으로 가장 많았고 아시아 4개국, 중남미 3개국, 유럽과 오세아니아 2개국 순이었다.

2014년까지 큰 결함을 가진 민주국가로 분류됐던 태국, 이집트, 니카라과, 부룬디, 부르키나파소, 과테말라는 10년 만에 강경 독재국가로 전락했다. 태국의 경우 왕실모독죄 개정을 주장한 전진당이 선거에서 이기고도 친군부 진영 등의 반대로 집권하지 못한 지난해 5월 총선 이후 정국이 민주주의 후퇴 배경으로 지목됐다.

튀르키예, 방글라데시, 이라크, 나이지리아, 튀니지, 엘살바도르는 10년 전 민주주의 진영에 있었지만 지금은 온건 독재로 넘어갔다. 재단은 튀르키예에서 장기 집권 중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해 “외교정책이 자의적이고 정치화돼 국제관계상 신뢰를 의심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엘살바도르는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 집권 후 대대적인 범죄조직 소탕으로 살인율을 극적으로 떨어뜨렸지만, 그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가 무시된 점이 문제가 됐다.

제3세계에서 독재화가 빨라지는 가운데 서유럽 국가들의 선거 때마다 극우 정당이 약진하고 있어 민주주의 진영의 급속한 약화가 우려된다. 지난 10년간 독재에서 민주국가로 변모한 사례는 말레이시아, 네팔, 스리랑카, 아르메니아 4개국뿐이다.

올해 BTI에선 우루과이(10점), 에스토니아(9.8점), 대만(9.6점)이 ‘공고한 민주주의’ 톱3에 올랐고 한국(8.6점)은 10위를 차지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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