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지연·중단 속출…신탁사 재무 상태 ‘악화 일로’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조동현 매경이코노미 기자(cho.donghyun@mk.co.kr) 2024. 3. 27.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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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돌변 ‘책임준공’…‘풍전등화’ 신탁사 [스페셜리포트]
부메랑 된 책준형

건설사 부실 → 신탁사로

고금리에 건설 업황 침체가 겹치자 저금리 때 수주한 사업장에서 수면 아래 있던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불거진다. 책준형을 연결 고리로 중소 건설사 리스크가 줄줄이 신탁사로 전이되는 양상이 뚜렷하다.

첫째, 지방 사업장을 중심으로 원자재, 인건비 상승 여파로 공사가 지연되거나 아예 중단하는 곳이 속출한다. 특히 책준형 토지신탁의 8할은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 건설사로 이뤄진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2022년 9월 기준 책준형 신탁 사업에 참여한 시공사 가운데 시공능력평가 10위 이상 기업은 한 곳도 없다. 100위 이상 기업이 41%로 가장 많았다. 500위 미만 시공사가 27%로 뒤를 이었다.

둘째, 책임준공을 약속했던 중소 건설사가 준공 의무를 포기하거나 기한 내 공사를 완료하지 못했을 경우 이들 건설사는 채무 인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대한건설협회와 건설산업연구원 등에 따르면 지방 중소 건설사가 참여한 대부분 사업장에서 건설사가 대주단에 책임준공과 조건부 채무 인수, 연대보증 약정을 줄줄이 걸어놨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1~2년간 원자재 가격 급등과 인건비 상승, 파업 등으로 공사 기간이 길어지자 상당수 시공사가 책임준공 기한을 넘겼다. 즉, 이들 건설사가 채무 인수 위험에 노출됐거나 채무를 떠안을 처지에 놓였단 의미다.

대한건설협회와 건산연이 국내 중소 건설사(시공능력평가액 40~600위)를 대상으로 실시한 ‘부동산 신탁사 참여 PF 사업장 현황 분석 결과’에 따르면 신탁사가 참여한 총 70개 사업장 가운데 62곳이 채무 인수 약정을 체결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20~2022년 부동산 활황기 시절 착공한 상당수 사업장에서 조만간 책임준공 기한이 도래한다. 채무 부담을 떠안을 건설사가 급증할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채무 인수 리스크에 쓰러진 건설사도 속출한다. 지난해 폐업한 건설 업체는 1948곳으로, 2006년 이후 17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 들어서도 시공능력평가 순위 100위권 중견 건설사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있다.

건설업계와 법원 등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지난 2월 말 법정관리를 신청한 새천년종합건설에 대해 최근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포괄적 금지명령은 정식으로 회생 절차를 시작하기 전 당사자 자산을 모두 동결하는 것이다. 법원 허가 없이 가압류나 채권 회수가 금지되고, 회사도 자체적으로 자산을 처분 못한다. 전남 나주에 본사를 둔 새천년종합건설은 1999년 설립된 시공능력평가 순위 105위 업체다.

이외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송학건설과 세움건설이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포괄적 금지명령을 받았다. 이에 앞서 시공능력평가 122위 선원건설도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포괄적 금지명령을 받았다. 경기 가평에 본사를 둔 선원건설은 통일그룹 계열사로, 2000년 설립돼 교단 발주 사업과 함께 토목 사업과 아파트, 오피스텔 등 주택 사업을 벌여왔다. 이 밖에 중원건설, 씨앤티종합건설 등이 법원에 회생 절차를 신청했으며 인천 영동건설, 울산 부강종합건설 등은 회생 절차에 돌입했다.

셋째, 이렇게 시공사가 줄줄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신탁사 재무 상태는 악화 일로를 걷는다. 시공사가 책임준공을 이행 못하면 신탁사가 본래 준공 기한으로부터 6개월 이내 2차 책임준공 확약을 대주단에 제공해야 한다. 이 경우 공사를 진행시키려면 신탁사 자체 자금 투입이 불가피하다. 상당수 시공사가 건설을 포기하면서 최근 신탁사 자체 자금 투입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국내 부동산 신탁사 14곳의 신탁계정대여금은 지난해 말 기준 4조9000억원으로, 2022년 말 2조5000억원보다 90% 가까이 늘었다. 신탁계정대여금은 부동산 신탁사가 사업비 조달을 위해 고유계정(자기자본)에서 신탁계정으로 빌려준 자금을 뜻한다.

문제는 본 PF에서 신탁계정대여금이 은행 등 금융기관 대비 후순위라는 데 있다. 우여곡절 끝에 신탁사 자체 자금을 투입해 공사를 진행했더라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진짜 위기는 준공 후 미분양이다. 1~2년 뒤에도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부동산 투자 심리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자칫 더 큰 리스크를 안을 수 있다. 준공 후 미분양이 쌓이면 이때부터 금융사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진다. 주로 은행이 참여하는 선순위 채권단은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를 반값에만 팔아도 원금을 건진다. 후순위는 할인 분양폭이 대략 20%를 넘는 순간 손실이 본격화한다.

또 책준형은 물류센터나 지식산업센터, 오피스텔 등 비(非)주거형이 많아 경기 변동성이 높고 분양 성공률이 낮다. 대체투자업계 관계자는 “주요 유통 대기업이 수익성 중심 경영으로 전략을 선회하면서 물류센터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엑시트)가 난항을 겪고 있어 회수 불확실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책준형 비중이 높은 일부 신탁사는 신탁계정대를 투입할 고유 자금이 부족해 미완공 사업장을 일부 부도 처리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안다”며 “시공사가 부도나는 상황도 곤혹스럽지만 신탁사 자기자본을 투입해도 사업장이 부도날 상황이라면 추가 자금 투입이 큰 의미가 없다는 점도 고민거리”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1호 (2024.03.20~2024.03.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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