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성장기 이끈 '관료집단' 무너진다…"이젠 다르게 뽑자" [젊은 공무원 엑소더스]

김선미 2024. 3. 2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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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을 떠나 사기업으로 간 퇴직 공무원이 지난해 역대 최대로 나타나는 등 ‘탈(脫) 관직’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양적·질적으로 우수한 인재가 공직에 투입돼 고도 성장을 이끌었던 과거와 달리 공직 사회 전반에서 인재가 이탈하는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인사혁신처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 기업·기관에 이직하기 위해 재취업심사를 신청한 공무원 996명 중 887명이 취업 승인 판정을 받았다. 2022년 대비 143건(약 20%) 증가한 수치로, 2001년 공무원 취업심사 제도가 도입된 이래 가장 큰 규모다.

지난 23일 치러진 올해 9급 공무원 공채시험 응시자 4명 중 1명(24.2%)이 시험장에 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젊은 공무원의 이탈도 심화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해 근속연수 5년 미만인 퇴직 공무원은 1만 3566명으로, 2019년(6500명)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유입도 주는 추세다. 올해 9급 공무원 공채시험 경쟁률이 21.8대 1로 3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지난 23일 치러진 시험에 응시자 4명 중 1명(24.2%)이 시험장에 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인력 이탈이 공공 부문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육동일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정책 품질 저하와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며 “공직 관련 교육·노동 등 필요한 분야에서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사회적 혼란과 비용을 치르고 국가 미래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인 수원대 행정학과 교수도 “젊은 우수한 인재 유입이 줄면 급변하는 사회 환경에서 공공 부문의 경쟁력 확보나 안정적인 정책 수행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행정안전부·인사혁신처는 26일 일부 9·8급 보직을 각 8·7급으로 변경하고, 지방직 9급에서 4급으로 승진하는 데 필요한 기간을 현행 13년에서 8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직급 상향안을 발표했다. 또 공휴일에 일할 경우 지급되는 초과수당과 관련해서도 초과근무 상한시간을 확대하기로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더 적극적인 인사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공직 입문 과정인 채용 과정부터 획일적인 과목 중심에서 벗어나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발굴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은 “공무원 시험을 주관하는 인사혁신처뿐 아니라 인재 양성·선발 시스템을 만들어 각 분야에서 공무를 수행하고 싶은 인재를 뽑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도 “골방에 3~4년씩 박혀 시험 준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조직과 호환될 수 있는 보편적인 글로벌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 채용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옥 기자


연공서열이나 근무연수에 따라 보수·승진을 결정하는 대신, 성과 위주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특히 국민과 접촉면이 넓고 젊은 공직자 비율이 높은 6~9급의 처우가 개인 능력에 따라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판석 전 인사혁신처장은 “공직의 하부를 차지하는 9급 공무원의 절대다수는 대학졸업자이지만 인식과 대우는 과거부터 이어진 고등학교 졸업 입직자를 전제로 한 것으로 보인다”며 “현실과 괴리가 큰 보수 체계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실천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순환근무제’ 등 공무원이 전문성을 쌓는데 걸림돌이 되는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근면 전 처장은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의 인재를 오래 양성하기 위해선 순회근무에서 제외하는 등 투 트랙 인사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김동원 인천대 행정학과 교수도 “5급 이상의 공무원이 전문성을 발휘하고 경력을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관장 등 리더들에게 보다 자율적으로 인력배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선미·이보람·장서윤·박종서·이아미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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