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의 뮤지션’ 서리, ‘백소현’의 감정을 이야기하다 (그리고 이문세) [D:인터뷰]

유명준 2024. 3. 2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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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유튜브에 올린 아비르의 ‘탱고’(Tango) 커버 영상이 단숨에 전세계 리스너들의 관심을 모았다. 2020년 데뷔 음반 ‘후 이스케이프드’(?depacse ohw) 발매하자, 방탄소년단 정국을 비롯해 아티스트들의 플레이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자리를 차지했다. 데뷔 1년 만에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협업하는 등 케이팝(K-POP) 가수들 앨범 피처링 작업에 참여했고, 마블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OST와 ‘이두나!’ ‘사랑한다고 말해줘’ 등 다양한 OST 가창에 참여했다.

가수 서리(Seori, 본명 백소현)가 짧은 시간에 남긴 굵직한 행보다. 그리고 3월 22일 두 번째 미니앨범 ‘페이크 해피’(Fake Happy)를 발매했다. 그간 서리의 노래들은 심오함과 더불어 몽상가적인 느낌이 강했다. 이번 앨범도 제목과 동명의 타이틀곡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이 곡의 내용은 열심히 달려가다가 문득 드는 회의감 같은 것을 생각하면서 썼어요. 제가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정말 일기처럼 그냥 쭉 나열하면서, 가사를 먼저 쓴 곡이에요. 이후 제목을 고민하다가 다시 옛날 일기를 쭉 보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열심히 가는데, 저 끝에, 결과적으로 도달하는 정상에 있는 것이 가짜면 어떡하지’라고요. 거기서 착안해서 뭔가 ‘가짜 행복’ 이야기를 넣은 거죠. 막 가다가도 ‘내가 잘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지금까지 내가 해온 발자취랑, 미래에 대한 걱정 이런 것들을 이야기한 거죠.”

타이틀곡 ‘페이크 해피’에는 사이렌 소리와 기타 소리를 비롯해 여러 ‘새벽의 소리’가 들린다. 흔히 적막한 새벽의 소리들은 사실 불안하다. 아이들이 떠들거나, 새소리 등 ‘아침의 소리’와는 다르다. 그러다 보니 불안감을 들게 한다. 이는 음악을 듣는 이를 ‘끌어 내리는’ 느낌을 갖게 한다. 사실 이런 불안감은 선공개곡 ‘브로큰’(Broken)에서 유사하게 느꼈다. 단지, ‘페이크 해피’가 듣는 이를 끌어내리는 느낌을 준다면, ‘브로큰’은 사라지는 느낌을 준다.

“‘브로큰’은 (제 감정 때문에) 오래전부터 꼭 한번 다루고 싶었던 주제였어요. 저 스스로 타인과 비교를 많이 하는 부분이 있어요. 음악을 하면서 ‘이 사람도 잘하고, 저 사람도 잘하는데 나는 왜 이러지’ 이런 생각을 많이 해서인지, 질투나 부러움의 감정을 한 번쯤 다루고 싶었는데, 그게 좀 ‘깊숙한 열등감’이라는 느낌이 된 것 같아요. 그간 계속 생각해 왔는데, 이제야 다룬 이유는 사실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했던 거죠. 열등감이란 감정과 마주할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해 계속 미뤘고, 어떻게 다룰지도 몰랐죠. 앨범을 준비하면서도 막막했죠. 그런데 그냥 팬들에게 ‘사람 백소현’에 대해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제 안에서 가장 꺼내기 힘들었고, 그 마주하기 힘들었던 감정을 보여주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용기를 내본 거죠. 그동안 타인과 비교해 자존감도 낮았던 저를 좀 꺼내서 볼 기회가 생겼죠. 그런데 (곡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까, 제게 너무 필요한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이번 앨범은 ‘사람 백소현’이 어렸을 때부터 겪었던 일과 감정, 그리고 회피하려 했던 감정 등의 내용을 ‘가수 서리’가 부른 셈이다. 지금이야 밝은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서리가 아는 ‘백소현’의 모습은 서리가 끄집어내기 전에는 누구도 몰랐을 텐데, 그것을 서리가 이번 앨범에 담은 것이다. 이는 다른 곡에서도 일부 투영된다. 서리가, 백소현이 하루 하루 살아가면서 느꼈던 감정을 전달하려 했다.

“첫 번째 곡은 밝고 가벼운 주제예요. ‘킬 더 데이’라는 곡은 허무하게 하루를 날려버린 그런 날에 관한 이야기죠. ‘오늘 쉬어야지’ 그런 느낌이 아니라, 그냥 눈 떠서 휴대폰만 보다가, TV만 보다가 ‘하루 다 갔네’라는 그런 느낌이요. 그래서 하루를 의인화한 거죠. 그런데 이번에 곡을 쓰면서 알게 됐는데, 해외에서는 이 말이 ‘오늘 하루 기막히게 보냈어’라고 반대의 의미더라고요. 그래서 흥미로워서 양쪽의 뜻이 보이게 가사를 써봤어요. 처음에는 하루 날렸는데, 후렴에는 이제라도 오늘 하루, 오늘 밤이라도 기막히게 보낼 것이라고요. 마지막 곡 같은 경우는 사실 사운드적으로 가장 어두운 곡이에요. 제가 파티라든지 그런 사람 많은 곳을 별로 안 좋아해요. 행사 애프터파티 등을 제외하면 클럽 등을 놀러간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런 곳을 가면 오히려 고립되는 느낌을 받아서 거부감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좀 스스로 너무 일반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서 ‘나는 왜 이럴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쓰게 된 곡이죠. 군중 속의 외로움을 나타낸 곡이에요. 제가 느낀 외로움을 조금 깊게 다뤄본 거죠.”

서리의 곡은 한국어와 영어가 자연스럽고 교묘하게 이어진다. 처음 서리의 음악을 듣는 이들은 이 과정에서 ‘뭐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영어 가사가 나오다가 다시 한국어 가사가 나오는데, 툭 튀어나온다기보다는 쓱 넘어가는 느낌이다. 이번 앨범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이전 앨범보다 영어 비중이 다소 증가했다.

“이번에 영어 비중이 앨범 전체적으로 많이 늘었어요. 사운드 등 여러 면에서 도전을 한 곡이지만, 좀 더 글로벌 팬들이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영어를 최대한 많이 섞어본 거죠. 앞으로 쭉 그럴 계획은 아니고, 오히려 이번에 이렇게 영어 가사에 집중한 앨범을 냈으니까, 다음 앨범은 한국어로 서정적인 느낌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어 가사는 아직도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어서 자꾸 헷갈리기도 하더라고요. 한국어는 그럴 일이 없으니까요.”

서리의 데뷔 연도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2020년이다. 이 당시 가요계에 데뷔한 이들은 ‘코로나19’로 모든 오프라인 활동을 중단했어야 했다. 음악방송은 물론, 콘서트, 팬미팅 등 모든 것이 정지됐던 시기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온라인으로 무대를 옮겼다. 여기서 벌어진 재미있는 상황이, 실력 있는 케이팝 가수들의 경우 해외 팬들이 증가했고, 뮤지션들끼리 서로 밀어주면서 ‘실력파 신인’들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만들어지도 했다. 서리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 팬보다는 해외 팬들이 먼저 그를 알아봤다.

“사실 제 음악의 특성상 공연도 많이 다닐 수 있었는데, 하필 데뷔가 2020년이다 보니 그러지 못했어요. 제가 대면으로 관객들과 만난 것도 데뷔 후 거의 2년이 지난 다음인데, 심지어 그것도 해외 공연이었어요. 데뷔 초반에 그런 상황이 되어버리니, 이젠 한국 팬분들이 너무 그리워요. 해외 팬들도 너무 감사하고 사랑하지만, 한국 팬분들의 마음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요즘 고민하고 있어요.”

의아한 것은 이번 앨범 발표 시기다. 데뷔 앨범 후 무려 4년 만이다. 중간에 OST 작업도 했지만, 본인을 담는 앨범의 작업 시간은 너무 길었다. 코로나 시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의외였다.

“사실 중간에 준비했던 앨범이 있었어요. 앨범의 주제가 사랑이었는데, 다양한 사랑에 대해 풀어보고 싶었죠. 집착이라든가, 가족의 사랑, 굉장히 아픈 사랑, 행복한 사랑은 물론 스타를 향한 팬의 사랑 등을 계획하고 있었죠. 그런데 한 곡씩 싱글로 나오고, 여러 가지 상황이 생기면서 그게 흩어져 버린 거예요. 그래서 제 계획은 이번 앨범 활동이 끝나면 미발매곡을 유튜브 등을 통해서 팬분들에게 보여드리는 거예요. 그렇게 한 곡 한 곡 들려드리고, 이 곡들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려드리면 좋겠다는 생각했죠.”

그런 면에서 ‘브로큰’의 1월 선공개 이후 미니앨범 포함은 특별해 보였다. 자칫 앞선 곡들의 길을 따라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앨범 전체적으로 내면을 볼 수 있는 차분한 스타일이라면, 선공개는 밝은 곡으로 시작해도 괜찮았을 텐데, 굳이 ‘브로큰’을 선택한 것도 의외였다.

“앨범을 갑자기 내는 것보다는 팬들에게 ‘나 드디어 앨범 나와’라는 것을 알리는 확성기 역할을 할 곡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제 곡을 쭉 들어보시더니, ‘브로큰’을 그냥 삽입곡으로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이야기하시고, 저도 선공개곡으로 좋다고 생각했죠. 왜냐하면 ‘브로큰’이 가장 한겨울 느낌이 나는 곡이라 생각해서죠. 저는 곡을 쓸 때 비디오나 이미지 연상을 많이 하는 편인데, ‘브로큰’을 쓸 때 제 옛날 모습을 떠올렸어요. 지금은 많이 건강해졌지만, 저는 옛날에 자존감이 낮았고 소심했어요. 그런 제 모습이 황량한 눈밭에서 혼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가사를 썼어요. 그 ‘한겨울 느낌’이 선공개에 맞다고 생각이 들었던 거죠. 마침 또 공개할 때가 한겨울이었으니까요.”

앞서 타인에 대한 열등감을 이야기했고,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서도 외로움을 잘 느낀다고 말했지만, 이것이 어릴 적 낮은 자존감에서 기인했다는 점이 의아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과정은 자존감이 낮은 상태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굉장히 소심했어요. 초등학교 때 학교 특별활동에 방송반이나 스포츠 댄스 등이 있었잖아요. 그 문 앞까지 엄마 손 잡고 갔다고 ‘나 못하겠다’ 이러면서 들어가지도 못했어요.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좀 무서워했죠. 고등학교 때도 밴드부나 방송반을 하고 싶었는데, 도전하지 못했죠. 그래서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쯤 음악 하겠다고 하니, 부모님이 너무 당황하셨어요. 부모님이 ‘네가’라고 생각하실 정도로 소심하고 좀 존재감 없는 스타일이었죠,”

그러던 서리에게 유튜브는 ‘기회’였다. 누군가의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불러서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플랫폼은 ‘소심한 백소현’을 ‘가수 서리’로 만들어 주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어릴 적에 ‘슈퍼스타K’ ‘케이팝 스타’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았어요. 제가 10대 때부터 20대 초반까지 주변에서 ‘너 음악하고 싶다며’ ‘너 노래하는 거 좋아한다며’ 라며 그런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보라고 했어요. 음악 한다고 말은 한 상황에서, 부모님이나 친구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보라고 할 때 너무 무서운 거예요. 거기에 출연해 제 꿈이 꺾일 것을 걱정했죠. 그런데 주변에서 유튜브에 커버곡을 많이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 이 정도면 나도 한번 해도 되지 않을까’ 약간 이런 생각으로 시작했죠. 그게 도움이 많이 됐고, 제 내면에 낯 가리고 그런 모습을 많이 깨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사람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소심했던 성격은 ‘서리’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스스로 그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확실히 변화했다. 코로나19 시기가 지나고 대면 팬미팅을 가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50명씩 두 차례 총 100분을 뵀죠. 처음으로 뵙는 팬들이라 소중한 시간이었죠. 제 나름으로는 최대한 뜻깊은 시간으로 만들고 싶었죠. 사실 그런 것도 있었어요. 코로나 시대에 제 음악에 대한, 저에 대한 반응을 인터넷 댓글로만 볼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이 팬들이 실존할까’라는 의문이 있었죠. 그런데 팬미팅을 진행하면서 ‘진짜 실존하는 사람들이 나를 보러 와주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의미 있는 자리였던 것 같아요.”

서리는 인터뷰나 방송에서 종종 선배 가수 이문세를 언급했다. 함께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내용이다. 많은 선배 가수와 협업하거나 피처링에 참여하긴 했지만, 1959년생 이문세와는 시대의 차이가 좀 컸다. 참고로 이문세가 12년간 ‘10대들의 친구’로 기억된 ‘별이 빛나는 밤에’의 마이크를 1996년 12월 2일에 내려놨고, 서리는 1996년 11월 18일에 태어났다.

“선생님이랑은 콜라보를 너무 해보고 싶어요. 저희 엄마가 너무 팬인데, 운전할 때마다 항상 이문세 선생님 노래를 들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같이 노래를 좋아하게 됐고, 웬만한 노래는 다 알아요. 그래서 제가 성공을 한 후에, 선생님이 괜찮으시다면 콜라보레이션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리고 가능하다면 ‘애수’를 같이 불러보고 싶어요. 보컬은 말할 것 없이 편곡, 가사, 멜로디 모든 것이 들을 때마다 매번 감동 받아요. 많은 사연도 떠오르고요. 또 엄마 벨소리라 익숙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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