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아이口, 살기 힘드네

민태원 2024. 3. 26.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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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층 위협하는 ‘구강 노쇠’
음식 씹고 삼키지 못해 영양 불균형
어눌해진 말투에 사회적 고립 초래
전신 노쇠 가속화, 사망 위험 2배↑
철저한 구강·잇몸 관리가 노후 준비

게티이미지뱅크

고령 인구가 급증하면서 '노쇠(Frailty)'가 의학계 가장 큰 화두로 부상했다. 사람은 나이 들면서 신체적, 인지적 기능이 떨어지는 노화 과정을 겪는데, 정상 속도보다 급격히 진행될 때 '노쇠'로 진단된다. 체중과 활력이 줄어들고 허약해지며 보행 속도와 신체 활동이 눈에 띄게 감소하는 게 특징이다. 노쇠에 해당하면 낙상이나 장애·질병 발생 위험, 입원 가능성은 물론 사망률까지 높아진다.

근래 이 같은 ‘전신 노쇠’의 경고등으로 ‘구강 노쇠’가 주목받고 있다. 씹고 삼키고 말하는 등의 구강 기능 저하가 전신 노쇠를 가속화하는 방아쇠가 된다는 것이다.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 치의학계가 2017년 구강 노쇠 개념을 처음 제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초고령사회 앞 ‘구강 노쇠’ 주목

대한치주과학회도 올해 ‘잇몸의 날(3월 24일)’ 주제로 ‘치주 질환과 노쇠, 구강 노쇠’를 선정하고 구강 건강의 중요성을 알렸다. 강동경희대치과병원 치주과 강경리 교수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씹을 수 없는 음식이 늘거나 식사 중 목이 자주 메거나 음식을 흘리고 발음이 어눌해지는 등 증상이 나타나면 구강 노쇠를 의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노년치과의학회는 구강 위생 불량(설태 등), 구강 건조 상태(입 마름), 교합력(아래·위 치아 악무는 힘) 감소, 혀와 입술 운동 기능 감소, 혀의 압력(혀가 입천장을 미는 힘) 감소, 씹는 기능 감소, 삼키는 기능 감소 등 7가지 증상 가운데 3가지 이상 해당할 때 구강 노쇠 진단을 권고한다. 또 다른 일본 연구에선 자연 치아의 수, 씹는 능력, 발음 능력, 혀의 압력, 질긴 음식 섭취 시 어려움, 차·스프를 삼키기 어려움 등 6가지를 제시하기도 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과 대한치의학회, 노년치의학회도 2022년 공동으로 65세 이상 노인 대상 한국형 구강 노쇠 평가 도구와 기준을 마련했다. 씹는 기능, 교합력, 혀의 근력, 타액선 기능(구강 건조), 삼킴 기능, 구강 청결 유지 상태 등 6가지 중 2개 이상에서 기능 저하(위험 상태)가 관찰될 경우 구강 노쇠로 판단키로 했다. 교합력의 경우 아래·위 치아 악무는 힘이 500뉴턴(N) 미만이고 잔존 자연 치아 수가 20개 미만이면 위험 상태에 해당한다. 정상 자연 치아는 상·하 각 14개씩 28개다.

국내 노인 절반 ‘구강 기능 불량’

정상적인 구강(왼쪽)과 노쇠가 진행된 구강 모습.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제공

지난해 국민건강영양조사 기반 연구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노인의 절반(49.5%) 가량은 구강 기능에 제한이 있으며 50.3%에서 잔존 치아가 20개 미만으로 조사됐다. 연세대 치위생과 김남희 교수는 “우리나라 노인 절반 안팎이 충치와 치주질환, 치아 상실 등 구강 상태 불량으로 영양 섭취에 제한이 있으며 그에 따른 건강과 질병 문제를 겪고 있다”면서 “구강 노쇠를 선별·진단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구강 위생이 불량하고 입속이 건조하면 특히 ‘흡인성 폐렴’ 위험이 커진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 김창오 교수는 “노인들은 외부로부터 구강 내로 세균 감염이 있거나 삼킴 기능이 떨어져 음식물이 기도로 들어가면 ‘흡인성 폐렴’에 걸리기 쉽다”고 말했다. 그는 “노년층은 구강 위생에 더 힘써야 한다”면서 “실제 노인 폐렴에서 항생제 치료와 구강 관리를 병행했더니 폐렴 발생이 절반 가량 줄었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고 덧붙였다.

저작·삼킴 기능이 떨어지면 영양 저하→근감소증→신체 노쇠→장애·사망으로 이어지고 치주염 등 잇몸의 만성 염증과 저작 기능 저하는 당뇨와 심장질환, 알츠하이머병 등 인지적 노쇠까지 부른다. 발음이 어눌하고 구강의 심미적 기능이 떨어지면 사회적 고립을 초래해 결국 ‘사회적 노쇠’를 촉진한다. 강경리 교수는 “구강 노쇠로 음식 섭취가 어려워지면 단백질을 비롯한 주요 영양 공급이 불량해지고 씹는 자극이 줄어들어 뇌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등 전신 노쇠를 앞당길 수 있다”고 했다.

일본 연구진의 2018년 국제 학술지 발표 연구에 따르면 65세 이상 일본인 2011명을 45개월간 추적 관찰한 결과 구강 노쇠군은 신체 노쇠 위험이 2.4배, 근감소증 발생은 2.2배, 장애 발생은 2.3배, 사망률은 2.2배 높았다. 이 같은 결과는 노인 건강 관리에 있어 구강 건강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강 교수는 “불량한 구강 건강은 노쇠 시작의 ‘표지자’”라며 “구강 기능을 유지·향상하는 것은 노쇠와 사망률, 알츠하이머 치매 위험을 줄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아주대병원 예방의학교실 이윤환 교수는 “특히 노년에 보존된 치아가 하나 늘어날 때마다 노쇠 발생 위험이 5%씩 감소한다. 씹는 힘이 약하면 노쇠 위험이 2.8배 증가하고 잇몸병이 중한 경우 노쇠 위험이 2.1배 높아진다”면서 “하루 3번 칫솔질을 해 구강 위생을 철저히 하고 틀니를 끼는 경우 매일 세척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 6개월마다 구강검진과 치석 제거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년기 의료비 절감에도 도움

치아를 건강하게 관리하면 노년기 의료비 절감에도 도움된다. 연세대 치과대학병원 이중석 교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빅데이터(2022년 기준)를 보면 65세 이후 의료비 지출 1위가 틀니와 임플란트로 나왔다”며 “노후를 준비하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은 잇몸 관리”라고 전했다. 그는 “특히 잇몸이 건강한 사람들에 비해 치주질환자의 노화와 노쇠가 빠르게 진행된다”면서 “철저한 구강 관리와 정기 스케일링으로 치은염을 관리하면 그 보다 심각한 치주염을 90~93%까지 예방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노인 구강 건강 관리 정책 전반에 구강 노쇠의 개념을 반영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고홍섭 교수는 “현재의 건강검진(구강검진)에 구강 노쇠 평가 항목을 넣고 임플란트 개수의 건강보험 확대, 구강 노쇠 진단 관리에 건보 급여화, 노인 치과 주치의제 도입, 노인장기요양 등급 판정에 구강 노쇠 관리 여부 반영 등이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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