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욱과 이준영, 홍수주의 숲
Q : 오늘 세 사람을 보고 영화 〈몽상가들〉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극중 루이 가렐이 연기한 주인공의 이름도 〈로얄로더〉에서 당신이 맡은 캐릭터, 태(테)오인 거 아나요
A : 정말요? 몰랐어요. 아직 〈몽상가들〉을 못 봤거든요. 이름이 같을 줄이야!
Q : 실제로 보니 루이 가렐 같은 분위기도 있군요. 이재욱은 어떤 영화를 즐겨 보나요
A : 옛날 영화요. 그중에서도 인간적인 드라마를 선호해요. 〈포레스트 검프〉 〈굿 윌 헌팅〉 〈죽은 시인의 사회〉 같은 영화요. 특히 로빈 윌리엄스를 좋아하는데, 스무 살 때 〈죽은 시인의 사회〉를 연극으로 올린 적 있어요. 그때 그에게 빠져 인터뷰도 찾아봤죠. 그가 한 말 중에 마음에 담아둔 게 있습니다. “사람은 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다.” 배우의 길을 찾아가는 저에게 큰 자극이 됐어요.
Q : 한 배우가 당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셈인데, 반대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나요
A : 그럼요. 제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는 건 아니고요. 드라마가 16편이라면 시청자는 적어도 16시간을 투자한 셈인데, 그 시간 동안 좋은 기운을 드릴 수 있다면 이것만큼 보람찬 일이 어디 있을까 싶은 거죠.
Q : 그래서 허투루 연기하지 않겠군요
A : 이전에 연극 연출가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있어요. 작품 러닝 타임은 두 시간 남짓이지만, 관객은 그걸 보기 위해 정보를 찾고, 예매하고, 공연장까지 오고…. 그러니까 하루를 연극에 쓴 거잖아요? “배우는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감동을 줘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말을 늘 되새기고 있어요.
Q : 〈로얄로더〉 이야기를 해볼까요? 태오를 연기하면서 어땠나요
A : 이렇게 비밀스럽고 감정을 감추는 캐릭터는 처음이었어요. 감독님께 여쭤봤죠. “제가 태오랑 어울린다고 생각하냐”고. 그랬더니 “어울리는 건 모르겠지만, 이재욱이라는 배우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갈구하고 찾아내고 구축하는 스타일 같다. 그래서 또 한 번 이미지 변신을 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에 힘을 받아서 캐릭터에 더욱 파고들었죠.
Q : 실제로 이재욱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갈구하고 찾아내고 구축하려는 사람인가요
A : 그렇다고 믿어요. 특히 캐릭터가 겹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써요. 많은 배우가 같은 마음이겠지만, 저도 제 안에 있지만 보여드리지 못한 이재욱을 꺼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Q : 태오는 그런 노력의 연장선에서 연기한 인물입니다. 함께 출연한 이준영 배우가 제작보고회에서 당신이 “잘 이끌어줘서 난 잘 이끌려 다녔다”고 말했어요. 또래 사이에서 좀 어른스러운 편인가요
A : 일단 준영 형이 칭찬을 잘해주는 선배예요. 그리고 어른스럽냐고 물으신다면… 어른스럽다기보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신중한 편이에요.
Q : 신중함이 타고난 기질인가요
A : 말이 지닌 힘을 알고 있거든요. 뱉은 말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조심하려는 거죠.
Q : 대중의 관심이 커질수록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런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나요? 혹은 배우라는 직업인으로서 받아들여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A :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죠. 요리사가 요리하다가 손이 다칠 수도 있는데, 다치는 게 싫다고 요리를 그만둘 건 아니잖아요. 배우는 대중에게 자신을 보여주고 또 보여지는 직업이기에 평가가 따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Q : 〈로얄로더〉는 우정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죠. 이재욱이 생각하는 좋은 친구란
A : 저를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게 가장 좋은 친구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솔직함이 약점이 될 수 있으니 말을 아껴라. 하지만 진짜 친구는 내가 어떤 부분을 이야기해도 그것을 약점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있는 그대로 이해해 줄 것 같아요. 특히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상 가끔 가족에게도 말 못할 상황이 생기거든요? 현장의 설움이라든지 캐릭터 구축의 고단함 같은 것들. 진짜 친구들과 그런 것을 나누죠.
Q : 부모님께는 걱정할까 봐 말 못하는 거겠죠
A : 맞아요. 워낙 걱정도 많으신데 아들이 또 노출이 많은 직업이라 작은 반응도 큰일처럼 받아들이세요.
Q : 본인이 효자라고 생각하나요
A : 네! 효자 같아요. 하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저와 누나를 키우셨어요. 어머니랑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데, 저희를 키우느라 놓친 취미나 포기했던 것들을 다 할 수 있게 해드리고 싶어요.
Q : 태오는 모의교사 전국 0.1%에 드는 수재죠. 그 좋은 머리를 권력 상승을 위한 무기로 쓰는데, 당신이 0.1%에 드는 수재였다면 그 재능을 어디에 썼을 것 같아요? 연기 아닌 다른 일을 했을까요
A : 만약 이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간다면 태오의 지능을 지녔더라도 연기할 것 같아요. 저는 많은 사람을 만나 작업하는 환경을 좋아해요. 이만한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직업이 제게 또 있을까요? 아무래도 없는 것 같아요.
Q : 연기를 사랑하는군요
A : 좋아하죠.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진심이고요. 그래서 작품이 끝나면 늘 아쉬워요. 인물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었는데 하는.
Q : 살면서 연기할 인물 중에 후회 없이 보낼 수 있는 캐릭터가 생길까요
A : 그런 순간이 온다면 제 은퇴식이지 않을까요(웃음)? 매 신이 완벽의 연속이고, 더 이상 내가 표현할 수 없다고 느껴진다면 은퇴할 것 같아요. 아시잖아요. 절대 만족이라는 게 존재하기 힘든 직업이라는 거. ‘신이 잘 나왔다’는 있을 수 있지만 ‘완벽해!’라는 게 있을까 싶은 거죠.
Q : 배우는 짧은 시간에 한 사람의 인생을 살아내야 해요. 타인의 삶을 연기한다는 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직업으로서의 일일 수도 있고, 희열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무엇일 수도 있는데
A : 얘기한 모든 게 다 엮여 있어요. 희열도 느끼고 직업인으로서 책임감도 느끼죠. 다만 늘 생각하는 건 이재욱 개인의 매력이 보여지는 게 아니라, 작가님이 설정해 준 캐릭터로 보여져야 한다는 거예요. 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숲이 됐으면 좋겠어요.
Q : 〈로얄로더〉 공개 후 시청자 반응을 찾아봤을 텐데 인상적인 코멘트가 있었다면
A : “너 힘들었겠다!” 저는 애교가 없는 사람인데, 이번 작품에서 인하의 무기로 내세운 게 애교입니다. 그러다 보니 연기하다 ‘현타’가 온 적 많았죠. 애교스럽게 풀어지는 연기를 하다 ‘컷’ 사인이 들어왔을 때 급속도로 밀려드는 부끄러움이란….
Q : 애교가 없다니 반전인데요? 너무 자연스러워서 실제 모습이 나온 줄 알았거든요
A : 아쉽지만 없습니다. 힘들었겠다는 피드백을 받아 오히려 놀랐죠. 내 고충을 알아주는구나 싶고….
Q : 인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서자입니다. 2017년 연기 데뷔작 〈부암동 복수자들〉에서도 혼외자를 연기했었습니다
A : 그때뿐인가요.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에서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죠. 그러니까 저는 혼외자 전문(웃음)? 그래서 캐릭터가 겹쳐 보이지 않을까 걱정한 것도 사실이에요. 지금은 그런 걱정보다 디테일로 싸워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인하는 보여지는 것 이면에 다른 모습이 많은 친구여서 초고를 읽을 때부터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욕망과 아픔, 두 가지 감정을 잘 표현하고 싶었죠.
Q : 이재욱 배우와의 브로맨스가 흥미롭더군요. 옥상에서 둘이 이어폰 나눠 끼고 음악을 듣는 장면은 은근 로맨스의 클리셰를 부수는 느낌이라 재밌었습니다
A : 저희도 찍으면서 많이 웃었어요. 애드리브도 많이 나왔는데, 인하가 태오에게 “엄마가 가수야?”라고 묻는 게 대본엔 없었거든요. 제 애드리브에 재욱 씨가 또 “미친!”이라고 절묘하게 받아치고(웃음). 현장이 웃음바다가 됐죠. 인하와 태오는 그렇게 현장에서 만들어간 부분이 많았어요.
Q : 원래 애드리브를 잘 구사하는 편인가요
A : 아뇨. 저는 딱 교과서입니다. 대본에 충실한 편인데 강인하여서 그랬던 것 같아요. 사실 재벌가 혼외자는 설정상 뻔한 캐릭터잖아요? 그 틀을 깨보고 싶었죠.
Q : 태오가 ‘포커페이스’라면 인하는 감정 표현에 솔직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기 힘든 인물 같기도 해요. 동시에 배우 이준영이 지닌 장점도 이와 같다고 생각했는데요. 예컨대 매우 밝은 이미지인데, 표정에 따라 언뜻언뜻 차가워 보일 때가 있는 것처럼요
A :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제가 또 고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어도 티를 잘 안 내요. 안 그래도 10년을 안 친구가 얼마 전에 “넌 힘들 때 있냐?”고 묻더군요. “있지, 사람인데.” “그런데 왜 얘기 안 해?” “이야기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뭐.” 제가 이래요. 문제의 본질을 스스로 찾고 정리하고 해결하지 표현하지는 않아요.
Q : 어째서인가요
A : 누군가와 고민을 나눈다는 게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기보다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는데요. 그게 때로는 이기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상대는 안 듣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 나보다 더 힘든 일이 있어서 심적으로 여유가 없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아무리 오랜 기간을 안 사람이라도 만났을 땐 기분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에요. 그게 저에겐 상대를 대하는 애티튜드입니다.
Q : 데뷔 11년 차인데, 지난 11년간 일어난 일 중 가장 인상적인 건
A : 홀로서기를 한 일이죠. 2021년에 11년을 함께한 형과 회사에서 나와 독립했는데 그때가 저에겐 변곡점이었던 것 같아요. 마인드가 단단해졌거든요. 물론 무서웠지만 형과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먹고 열심히 달리다 보니 감사하게도 더 다양한 작품을 만나게 됐죠.
Q : 〈황야〉가 공개된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렇게 〈로얄로더〉를 내놓게 됐어요. 〈약한영웅 Class 2〉 〈폭싹 속았수다〉를 준비 중인 상황에서 〈멜로무비〉 캐스팅 소식도 들리더군요. 쉴 틈 없이 작품을 찍고 있는데, 배우로서 지금 어떤 시기라고 생각하나요
A : 그냥 걷는 중인 것 같아요. 제가 산책을 자주 하는데, 산책할 때 끝을 정하지 않고 나가요. 어떤 날은 30분 걷다 들어오고, 어떤 날은 2~3시간 걷기도 하죠. 길을 걸을 때의 잔잔한 흐름을 좋아해요. 배우로서 이준영 역시 그렇게 ‘바이브’를 느끼며 걷는 중이죠.
Q : 걸을 때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이 있고 비우는 사람도 있는데
A : 저는 다른 걸 합니다. 다양한 노래를 ‘디깅’하고, 공부하면서 걸어요. 남들이 보면 웃길 거예요. 리듬 타면서 한강을 걷고 있으니까. 제가 춤을 췄었거든요.
Q : 댄서를 다룬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말한 적 있어요. 진전은 좀 됐나요
A : 썼다가 지웠죠. 하하. 계속 공부하는 중이에요. 〈황야〉를 함께 작업한 (마)동석 선배에게도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어요.
Q : 아, 마동석 배우가 시나리오 개발 창작 활동을 하고 있죠
A : 네. 어제도 만나서 조언 구하고 그랬어요.
Q : 인하는 버림받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죠. 이준영은 어떤가요? 어떤 욕망이 가장 큽니까
A : 옛날에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이준영은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고, 다 잘해!’ 이런 인정을 갈구했죠. 신기하게도 그게 사라졌어요. 지금은 그보다 제 안에 있는 감정이 큰 변동 없이 쭉 이어지면 좋겠다 싶어요. 그게 제 욕망이에요.
Q : 가장 어려운 욕망을 가지고 있군요
A : 하하하. 맞아요. 이게 정말 어려운 거죠. 감정이라는 게 하루하루 예측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욕망인 거죠. 또 다른 말로 목표인 거니까.
Q :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데는 어떤 이유가 있나요
A : 저 스스로가 별로더라고요. 너무 멋없게 느껴졌어요. 갓 걸음마를 시작했는데 뛰려고 했달까.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선 ‘한참 멀었는데 왜 자꾸 인정해 달래’ 이렇게 보일 수도 있잖아요? 그걸 깨닫게 되면서 내가 바보 같았음을 알았죠. 물론 그런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시간을 겪고 나니 조금 여유로운 사람이 됐으니까요.
Q : 자신의 어떤 면을 사랑하나요
A : 저 꽤 바보 같은 면이 많아요. ‘신문물’이나 트렌드를 잘 몰라서 가끔 허술해 보일 때도 있는데, 특별히 유행을 따라가진 않아요.
Q : 내 걸음대로 걷고 싶은 거군요
A : 맞아요. 내 호흡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Q : 본명이죠? 뜻이 뭔가요
A : 빼어날 ‘수’, 나라 ‘주’. 나라에서 빼어난 사람이 돼라는 의미예요(웃음).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어요.
Q : 연기자의 길은 할아버지 말씀이 현실이 되는 길이기도 하겠네요
A : 하하. 그러면 좋겠어요.
Q : 긴 호흡의 드라마 주연은 처음이잖아요? 〈로얄로더〉 찍으면서 부담과 기대가 몇 대 몇 비율로 존재했나요
A : 솔직히 말씀드리면 부담이 80~90%?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마음보다 준영 씨와 재욱 씨 모두 잘하는 친구들이니까 내가 피해가 가지 않게 열심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Q : 첫 방송은 어디서 봤나요
A : 집에서 봤어요, 혼자. 같이 보면 부끄러울 것 같아서…(웃음).
Q : ‘흙수저’라는 열등감을 딛고 성공하기 위해 악착같이 나아가려는 욕망이 가득한 나혜원은 감정의 층위가 상당히 두터운 인물이죠. 어떻게 해석하면서 접근했나요
A : 혜원이는 자존감이 굉장히 높아요. 자존심도 세고요. 욕망이 강한 캐릭터인데 그것을 과도한 욕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 욕망을 뭔가를 꿈꿔 나가려는 에너지와 희망이 큰 것으로 해석했거든요. 주관이 뚜렷한 인물, 그게 혜원이라고 생각했고요.
Q : 혜원은 열등감이 있지만, 그렇다고 상류층 앞에서 굽히는 성격도 아니죠. 실제 홍수주는 그런 혜원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A : 혜원이랑 저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저는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는 스타일이에요. 조급해하지 않고, 무엇이든 좋게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Q : 일희일비하지 않는군요
A : 맞아요. 감정 기복이 크지 않아요.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럴 수도 있지, 이런 스타일이라서 친구들이 스님 같다고 해요. 하하.
Q : 부러운 성격이군요. 늘 타인의 평가에 예민한 직업을 갖기에도 좋을 것 같고요
A : 그런가요? 그런데 저는 반대로 그런 분들이 부러워요. 감정의 희비를 예민하게 느끼는 분들. 감정의 폭이 큰 건 배우로서 장점이거든요.
Q : 오, 그럴 수 있겠군요. 어릴 때부터 감정이 무던했나요
A : 음… 철학책의 영향인가 싶기도 해요. 어릴 때부터 철학책을 많이 읽었는데, 알게 모르게 영향받지 않았나 싶어요.
Q : 철학의 어떤 면에 끌린 건가요
A : 고등학교 때 ‘윤리와 사상’ 과목을 배우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신기한 사상이 많긴 한데, 생각해 보면 다 맞는 말 같더라고요. 그때부터 철학과 인문학 관련 책을 찾아 읽었어요. 그러면서 많은 걸 배웠고요. 가령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싫어할 수도 있잖아요? 저는 안 그래요. 그냥 ‘나랑 우선순위가 다르구나’라고 받아들이는 편이죠.
Q :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홍수주가 그나마 흥분하는 게 있다면
A : 게임할 때. 특히 ‘롤’(〈리그 오브 레전드〉)할 때 기분이 ‘업’되곤 해요. 직접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경기 보는 걸 더 좋아하죠. 롤은 업데이트가 자주 되고 관련 대회도 주기적으로 열려서 흥미를 갖고 계속 보게 되는 것 같아요. 큰 틀은 정해졌지만, 그 안에서 조금씩 새롭게 바뀌기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고요. 그걸 보면서 느끼죠. 연기든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구나.
Q : 배우 이전의 삶이 궁금해요. 광고 모델로 활동한 적도 있지만 일찍부터 배우의 길을 꿈꿨나요
A : 처음에는 피팅 모델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러다가 지금 회사를 만나 광고 모델을 시작했죠. 많이 내향적인 성격이라 이런 진로를 꿈꾸지도 못했는데, 회사 대표님이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먼저 제안하시고 조언도 해주셔서 연기도 시작하게 됐어요.
Q : 적극적으로 배우를 꿈꿨다기보다 가능성을 알아본 사람들의 제안을 받고 시작하게 된 셈이군요
A : 진심으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하는 일에 감사한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고요. 저는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살면 실제로 좋은 운이 들어온다고 믿는 편이에요. 열심히 해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Q : 2020년 웹 드라마 〈도시 남녀의 사랑법〉으로 연기를 시작해 〈드라마 스페셜 2021-비트윈〉, 넷플릭스 〈스위트홈 시즌 2〉 등에 출연했어요. 지금 이렇게 〈로얄로더〉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요. 배우로 보낸 지난 4년 동안 배운 게 있다면
A : 지나간 일에 후회를 잘 안 하는 성격인데, 연기는 달라요. ‘그게 최선이었을까’ 하는 후회가 늘 남거든요. 영상 매체의 경우 촬영이 끝나고 그것이 화면에 담기면 다시 수정할 수 없기에 연기할 때 최선을 다해 집중해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적어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진 않다는 것도요.
Q :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제까지 나온 작품 중에서 연기해 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A : 〈클로저〉에서 주드 로가 연기한 ‘댄’이요. 그 영화를 연령별로 여러 번 봤는데, 어릴 때는 댄이 이해가 안 됐어요. 상대가 상처받을 텐데 왜 저렇게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는가 싶었거든요. 커서 다시 보니 이면의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하는 본능적인 캐릭터가 댄인 것 같더라고요. 그 본능의 감정을 연기해 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Q : 요즘 인생의 화두는
A : 제가 그렇게 어리진 않아요. 94년생이니까 또래 배우보다 연기를 늦게 시작한 셈이죠. 그런데 내향형 인간이라 감정 표현을 잘 못해요. 어떻게 하면 배우로서든 인간으로서든 나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부쩍 생각하는 중이에요.
Q : 남보다 스타트가 늦어서 조바심이 들진 않나요
A : 조바심이라기보다 저만의 속도가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과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두 가지가 공존하는데, 잘할 수 있다는 것에 더 가능성을 두고 스스로를 믿으면서 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저를 믿고 주어진 일에 감사하면서 열심히 하다 보면 계속 좋은 일이 찾아오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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