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홍규의 달에서 화성까지] 대한민국 우주항공청, 철학과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2024. 3. 25.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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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

미국 워싱턴DC 덜레스 국제공항에는 하루 한 번 한국 국적기가 뜬다. 우리 공무원의 출장이 많아서다. 바다 건너온 출장자에게 도심까지 한 시간 걸리는 공항은 달갑지 않다. 일행은 14시간 만에 짐을 찾고는 워싱턴 메트로의 은색 노선 연결통로에 고단한 몸을 실었다. 양쪽 벽에는 허블우주망원경이 찍은 천체사진 패널이 열 지어 섰다.

우리가 찾은 곳은 히든 피겨스 남서길 300번지. ‘매리 W. 잭슨 NASA 본부’ 주소다. 영화 ‘히든 피겨스’(2016)와 등장인물의 이름에서 따왔다. 영화는 아폴로와 제미니 프로그램 이전의 머큐리라는 미국 최초 유인 우주 프로그램 때 벌어진 일들을 그렸다. 흑인 여성 수학자 캐서린 존슨과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이 나온다. 이 건물이 한국 H금융지주 소유라는 걸 아는 이는 드물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한국 기업에 임대료를 낸다! 일행은 제임스 W. 웹 기념 강당을 들어섰다. 본부에서 열린 마라톤 회의에 관해 길게 늘어놓으려는 건 아니다. 두 달 뒤면 한국의 우주항공청이 문을 연다. 우리 정부가 그 모델로 삼는 NASA 본부는 어떤 곳일까.

「 미국 NASA 수장은 장관급 자리
여러 부처와 지근거리에서 협력
과학임무국, 다른 임무국 이끌어
한국 우주청, 과학은 부속품 취급

NASA는 국(局)이 아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 한국과학 기술회관에서 우주항공청 채용설명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우리는 NASA를 ‘국’(局)이라 낮춰 부르지만 실제 수장은 국장이 아닌, 대통령이 임명하는 장관급이다. 그는 연구개발 프로그램과 예산 우선순위를 결정하며 NASA 최고과학자와 최고공학자, 최고기술자를 둔다. 직속으로 법률과 재무·경제·중소기업, 교육과 보건의학, 안전 및 임무 보증뿐만 아니라 국제협력 부서도 있다. 부(副) 수장은 백악관과 의회, 부처와 연방 기관, 해외 기관들과 소통한다. NASA 본부와 긴밀하게 협력하는 의회와 백악관은 본부로부터 약 1㎞, 보건복지부는 600m, 과학한림원은 약 2㎞, 상무부와 연방항공청은 대략 5㎞ 거리에 있다. 에너지부와 교통부·교육부·해양대기청(NOAA)은 약 7㎞, 국무부·국립보건원(NIH)까지는 각각 12㎞, 14㎞쯤 된다. 국립항공우주박물관은 코앞이다. 일행은 걸어서 5분 걸리는 대학우주연구협회(USRA) 본부에서 NASA 최고기술자가 주관하는 회의에 들어갔다. NASA 본부에는 5개 임무국과 행정 부서가 있다. 미국의 항공 기술개발은 NASA의 항공임무국(AMD)이 책임지며, 그 기술은 민항기와 산업, 승객에까지 혜택을 미친다.

탐사시스템 개발임무국(ESDMD)은 NASA의 유인 탐사를 총괄한다. 달과 화성에 사람을 보내는 아르테미스와 ‘달에서 화성까지’(M2M) 계획을 지휘하는 부서다. 물론, NASA의 최대 관심사다. 달 궤도와 표면, 화성 유인 탐사 핵심기술을 정의하며, 유인 로켓과 달 기지, 게이트웨이, 유인 착륙선, 로버, 우주인의 선외 활동을 망라하는 연구를 관리한다.

과학임무국(SMD)이 이끄는 과학적 발견은 다른 부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과학임무국은 과학적 질문을 선별해 임무 우선순위를 매길 때 NASA 안팎 과학자들을 초청하며 NASA의 지구과학과 우주과학 연구를 지휘·감독한다.

우주운영임무국(SOMD)은 유인 탐사 임무와 운영을 맡는다. 국제우주정거장(ISS) 상업발사, 지구궤도에서 달, 화성, 태양계 끝의 NASA 비행체와 발사체 운영과 유지, 궤도 상의 광범위한 연구를 관리한다. NASA 비행체를 돕는 국내외 기관의 통신, 항법 서비스를 전담하는 곳도 우주운영임무국이다.

임무지원국(MSD)은 본부 6개 조직 중 유일한 행정부서로 NASA의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해 인력·수단·역량을 투입한다. 인력 확보와 조달·계약에 필요한 법률·시설·장비를 관리하는 광범위한 업무를 관리한다.

마지막으로 우주기술임무국(STMD)은 화성의 유인 탐사 기술개발을 총괄하는 한편, 달에서 새로운 기능을 시험한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 난제에 도전하는 연구원과 수천 개 기업체를 포함해 미국 최고의 인재들을 지원하고 산학연, 해외 기관과 협력한다. NASA 본부 5개 임무국과 행정 부서의 수장은 한국에서는 국장급이다.

유럽·일본 우주청, NASA와 비슷

5개 임무국은 어떻게 이뤄져 있을까. 과학임무국의 경우 지구과학·행성과학, 생물 및 물리과학, 태양권물리학, 천체물리학을 포함한 6개 부서가 있다. 한국 천문연구원은 과학임무국과 1대1 대응조직을 갖춰 임무헌장(Mission Charter)에 서명하고 워킹그룹을 운영한다. 태양권물리와 탐사과학, 천체물리 분야가 그것이다. 과학임무국 본부와 협력해 ISS에 실리는 태양 카메라와 달 착륙선 과학 장비, 우주망원경을 만든다.

NASA는 우리와 인력·예산·연구 수준이 비교가 안 되지만, 조직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최근 언론 보도로 알게 된 우리 우주항공청 조직은 NASA와 달랐다. 기술만 강조했을 뿐, 철학과 비전은 보이지 않았다. 달과 화성에 사람을 보내는 아르테미스 계획과 M2M(달에서 화성까지) 프로그램의 그림은 실종됐으며, NASA가 중시하는 과학은 부속품 취급이다.

정부가 참여하겠다는 아르테미스와 M2M을 견인하는 것은 과학이다. 시험·인증이 설립목표인가? 유럽과 일본 우주기관은 NASA와 비슷하다. 과학 조직과 탐사 조직이 그렇다. 상대와 조직이 비대칭이면 협상도, 협력도 대칭일 리 없다. 비대칭이 해소될 기미가 안 보인다. 개선할 생각이 없다면 앞으로 협력 기회를 놓칠 확률이 높다. 축구도 포지션이 맞아야 뛴다. NASA 본부 회의가 끝났다. 배웅 나온 친구는 우리 우주항공청이 들어선다는 경남 사천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궁금해했고, 우리의 답을 듣고는 웃음을 거뒀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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