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1st] 30세에 은퇴하고 염소치는 K리거…감한솔이 꿈꾸는 '흑염소 테마파크'

김희준 기자 2024. 3. 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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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축구선수들은 보통 은퇴 후에 지도자가 된다. 은퇴 몇 년 전부터 지도자 자격증 교육을 받는 게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진다. 다른 몇몇은 행정가로 재능을 펼치고, 입담이 좋은 선수는 해설이나 방송계로 빠지기도 한다.


축구선수 감한솔은 지난해 11월 K리그와 작별했다. 도합 4년간 몸 담았던 부천FC1995의 2023년 마지막 홈경기에서 은퇴식을 치렀다. K리그2에서 치른 경기는 총 111경기. 끝내 K리그1에 도달하지 못한 채 30세 젊은 나이에 축구화를 벗었다.


감한솔은 은퇴 후 경기장을 아예 떠났다. 대신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있던 철원으로 돌아가 흑염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감한솔의 귀농에 '잘 생각했다'고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왜 벌써 돌아왔냐'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감한솔은 농촌에서 바쁜 삶을 살고 있다. 매일 흑염소를 관리하면서 주중에는 온라인으로, 주말에는 오프라인으로 농업 관련 교육을 받는다. 농촌 선배인 아버지와 함께 실습을 진행하고, 지역사회에 녹아들기 위해 여러 단합 활동에 참여하며, 틈틈이 초등학교 동창이 운영하는 풋살클럽에도 간다. 그리고 이러한 귀농 생활을 매주 '감한솔 염소농장'이라는 유튜브를 통해 전한다.


지난 13일 화상 인터뷰로 '풋볼리스트'와 만난 감한솔은 인터뷰 장소로 자신의 방이 아닌 흑염소 농장이 보이는 야외를 택했다. 햇볕이 들긴 했어도 아직은 바람이 쌀쌀할 터였다. 춥지 않냐고 묻자 감한솔은 "농촌의 느낌을 보여드리고 싶었다"며 풍경이 좋지 않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 K리그1과 A대표팀에 닿지 못한 '2002 월드컵 키드'


감한솔이 축구를 시작한 이유는 다른 또래 선수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감한솔은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보고 축구선수의 꿈을 키운 '2002 키드'였다. 얼마 후 포천에서 열린 박지성과 안정환의 팬사인회를 갔다가 그곳에 있던 신묵초등학교 축구부 감독님을 만났고, 테스트를 합격해 곧바로 서울 유학을 시작했다.


신묵초를 졸업한 감한솔은 경희중학교, 경희고등학교, 경희대학교를 차례로 거쳤다. 특히 경희고 시절에는 국가대표 센터백이었던 장현수를 비롯해 송승민, 김대중, 구대영 등 지금도 K리그에서 활약하는 선배들과 함께했다. 감한솔이 느낀 첫 번째 벽이었다.


"경희고 1학년으로 딱 들어갔는데 벽이 너무 컸다. 경기를 뛰고 싶어도 못 뛰었다. 중학교 때 그래도 '난 이 정도면 괜찮겠다, 1학년 때부터 경기를 뛸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너무 잘하셨다. 그래서 우상을 삼았다. 사이드백으로서는 구대영 선수를 보고 많이 배웠다. 장현수 선수는 거의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었다"


그래도 감한솔은 선배들을 따라 실력을 키워나갔고 3학년 때는 경기도 전국체전에 참가해 경희고를 3위로 이끌었다. 경희대 진학 후에도 2학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 선배들과 함께 경기를 뛰었고, 故 이광종 감독이 이끌던 U21 대표팀에도 발탁됐다.


프랑스에서 열린 툴롱컵에서는 태극마크를 달고 연령별 대표팀 데뷔전까지 치렀다. 감한솔은 "경기 전에 서서 애국가를 부르는데 가슴이 웅장해졌다. 가족과 지인들이 보고 자랑스러워하겠다는 생각에 책임감도 갖게 됐다. 경기 전에는 엄청 긴장되고 설렜는데 막상 경기장 들어가니까 모든 게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고 그날을 돌아봤다.


2015년 대구FC에 입단하며 프로 세계에 발을 내디딘 감한솔은 올림픽 대표팀에도 뽑혀 소집훈련을 다녀오는 등 성공 가도를 달리는 듯했다. 그러나 대구에서 적응에 실패해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서 결국 2016 리우 올림픽 대표팀으로 최종 선정되지 못했다.


"프로의 벽이 되게 높았다. 기회를 잘 잡지 못했기 때문에 경기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올림픽 대표팀 소집을 가니까 경기력이 나오지 않았다. 체력은 장점이었지만 경기력이 많이 떨어져서 다음 소집 때부터는 소집이 안 됐다. 실망도 하고, 자책도 했다."


"선배님들이나 감독님, 코치님들이 놀리는 식으로 '넌 왜 안 되냐?'라고 말했는데 그때는 많이 열받았다. 같이 있던 동기 중에 류재문 선수나 김진혁 선수가 있는데, 그 친구들과 저를 비교하며 선배들이 항상 장난을 쳤다. 그런 게 프로 생활에 계속해서 자극이 된 것 같다."


이후 감한솔은 서울이랜드를 거쳐 부천FC1995에서 첫 시즌 주전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듬해 부침을 겪었고, 2021년 K3리그 천안시축구단으로 이적해 리그 베스트 11에 들며 재기에 성공했다. 2022년에는 부천에 복귀했으나 십자인대 부상 등으로 인해 실제 경기에 많이 출장하지는 못했고, 2023년 은퇴를 결정했다.


프로 무대를 누볐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축구선수였지만 K리그1을 경험하지 못한 건 아쉬움으로 남았다. 감한솔은 "부모님도 K리그1을 밟아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고, 나 역시 K리그1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거기까지는 냉정하게 그릇이 아니었던 것 같다. 스스로 정말 노력을 많이 했지만 거기까지는 못했지 싶다"고 말했다.


▲ "축구보다는 어렵지 않았어요" 흑염소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흑염소는 운명처럼 찾아왔다. 여느 비유와 같이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감한솔은 2022년에 십자인대 부상을 당했고, 비슷한 시기 어머니까지 불의의 사고로 쓰러졌다. 아버지 혼자 흑염소 농장을 관리하는 상황에서 주말마다 일을 거드는 건 자발적 선택보다는 해야만 하는 일에 가까웠다.


"나도 당연히 은퇴를 하고 지도자의 길을 걸을 줄 알았다. 그런데 2022년에 십자인대를 다치면서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됐다. 내 장점이 체력, 스피드, 활동량이었는데 아무래도 30살에 다치면 그게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뭘 해야 할까 고민하는데 어머니도 불의의 사고를 당했고, 아버지 혼자 농장을 운영하는 상황이 됐다."


감한솔은 주말 경기가 끝나고 휴식이 주어지면 철원으로 가 아버지 일을 도왔다. 그러다 문득 흑염소 키우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농업이 미래에 높은 부가 가치를 실현할 성장 산업이라는 일념 하에 공부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축구선수로서 본격적인 농업 전향에 고민이 많았는데, 당시 부천에 있던 김호남과 김준형이 감한솔에게 큰 힘이 됐다.


"두 선수에게는 배울 점이 많다. 생각하는 관점의 깊이가 굉장하다. 평소에도 대화하면서 도움이 되는 말을 많이 들어서 조언을 얻었다. 내가 올해 라스트 댄스가 될 것 같다 하니 처음에는 장난으로 받아들였다. 그래도 진지하게 농업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니 좋은 말을 많이 해줬다."


"'네가 생각하는 그 길이 정답'이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은퇴 전까지는 축구가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삶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축구는 한 부분이라는 말이 너무 와닿았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축구는 다른 직업에 비해 은퇴 시기가 빠른 편이다. 축구 말고 다른 걸 도전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 후 본격적으로 흑염소 키우기를 시작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사양 관리에도 답은 없어서 직접 부딪히면서 환경에 맞게 대처법을 바꿔나가야 했다. 특히 흑염소는 예민한 동물이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갑자기 죽어있고, 울타리에 걸리거나 설사가 심해 폐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지식을 쌓고 실습을 해야하다 보니 개인 시간을 마련하기 힘들어졌다. 감한솔은 평일에 흑염소 관리를 마치고 나면 저녁에 온라인으로 농업 관련 교육을 듣는다. 주말에는 아예 서울로 올라가 오프라인 교육도 들어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참석하는 풋살클럽을 제외하고는 따로 개인 시간을 내기도 빠듯하다.


그래도 감한솔은 흑염소 키우기가 축구보다는 정답을 찾기 쉽다고 말했다. "솔직히 축구보다는 어렵지 않다. 물론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해야 할 것도 엄청 많다. 그런데 축구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것 같다. 21년을 해왔지만 정말 어렵다"며 축구보다는 흑염소를 치는 게 더 명확한 길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 '감한솔 염소농장' 감한솔이 유튜브를 시작한 계기


감한솔은 귀농과 함께 유튜브를 시작했다. 원래도 카메라에 들이대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구단 유튜브에서도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실제 귀농 브이로그를 찍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당시 부천 동료이자 '우즈벡 용병'으로 유튜브에서 이름을 날린 김보용이 많은 도움을 줬다.


"유튜브 활동을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우즈벡 용병 김보용이 부천에 입단했다. 조언도 얻고 내가 하면 어떨지도 물어봤다. 그래도 막상 하려니 힘들고 두려웠는데 김보용이 다짜고짜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로 유튜브에 필요한 걸 다 담아버렸다. 말로만 하지 말고 바로 시작해야 나중에 천천히 알아갈 수 있다고 해서 시작했다."


"활발한 성격도 있고, 귀농을 하면 시골 삶에 대해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사업을 하러 가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브랜딩에도 신경을 썼다. 1인 미디어 시대에 내가 내 개인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유튜브를 선택했다."


감한솔은 '감한솔 염소농장' 채널을 개설하고 작년 12월 26일 첫 영상을 게재했다. 잔잔하게 농촌의 삶을 그려내며 이따금 K리그와 축구선수의 현실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했다. 최근에는 K리그 전설 하대성의 동생이자 본인도 K리그에서 활약했던 하성민이 나와 자신의 축구 인생을 풀어내기도 했다. '감한솔 염소농장'은 평균 조회수 1.3만 회로 소소한 인기를 끌고 있다.


감한솔은 유튜브를 본격적으로 키울 생각이 없다. 지금처럼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것에 만족한다. "유튜브를 시작한 가장 중요한 계기는 나를 좋아하는 소수 팬들에게 은퇴 후에 이렇게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라며 "댓글을 보면 잔잔하게 힐링이 된다는데 시청자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좋다"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유튜버로서 향후 계획은 있다. 현재 감한솔은 유튜브를 통해 주로 흑염소를 키우는 모습과 축구 관련 이야기를 내보내는데, 향후에는 가벼운 먹방이나 철원 역사 탐방 등을 찍을 생각이다. 감한솔은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귀농의 즐거움은 물론 자신이 살고 있는 철원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웃었다.


▲ 감한솔이 꿈꾸는 '흑염소 테마파크'


감한솔은 전문 농업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교육과 실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농촌융복합디자인 교육을 수료했다. 감한솔은 "앞으로 귀농, 귀촌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사업을 할 건지 밑그림을 그려주고 귀농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어떤 걸 보완해야 하는지 통합적인 교육을 하는 개념"이라고 해당 교육에 대해 설명했다.


하루하루 쉴 틈 없는 삶이지만 감한솔은 귀농이 사람을 건강하게 만든다고 자부했다. "나무들이랑 바람을 느끼면서 염소들 보고, 강아지들이랑 같이 있으면 정신적으로 순환이 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3개월 된 시골 잡종 강아지 '보리'를 직접 보여주며 염소몰이견으로서는 아직 부족하지만 유튜브 귀여움 담당으로서는 충분하다며 미소지었다.


감한솔은 농업의 희망찬 미래를 믿었다. "앞으로 농업은 소득을 상당히 올릴 수 있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예전에는 힘든 노동이 결부됐지만 지금 농업은 말 그대로 첨단 산업에 가깝게 발전해가고 있다. 사회적, 공익적 가치나 자연 경관과 전통 문화를 계승한다는 측면에서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감한솔은 자신의 흑염소 농장을 발전시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자체를 하나의 관광지처럼 만들고자 계획하고 있다.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어떤 방법이 도움되는지 알려주고 설계해주는 농촌 컨설팅 회사 설립도 장기적으로 노려본다.


"농업과 관련한 큰 회사를 만들고 싶다. 흑염소 회사가 될 수도 있고, 농촌에 대한 컨설팅을 해주는 회사도 생각하고 있다. 지금 농촌에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테마파크도 하고 싶다. 예를 들어 요즘에는 흑염소를 그냥 가공해서 판매한다. 생산과 가공뿐 아니라 체험 서비스도 제공하려 한다. 카페, 흑염소 식당, 흑염소 체험 공간, 캠핑장 등을 만들어 일종의 관광지를 만드는 게 목표다."


감한솔은 앞으로도 농업에 전념할 계획이다. 아마 축구계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축구선수로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 나중에 지역에 자그마한 축구 교실 등을 열어 축구와 계속 연을 이어나갈 생각은 있다.


"나도 당연히 은퇴 후에 축구 쪽으로 갈 줄 알았는데 농업으로 갔다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한다. 농업은 내가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 그래도 내가 갖고 있는 장점이 축구 능력이기 때문에 나중에 농업하는 틈틈이 축구 교사를 할 수도 있다. 순리대로 따라봐야 할 것 같다."


"자랑스러운 K리거였던 감한솔을 앞으로는 시골 청년 농업인으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청년 농업인이 성장하는 걸 계속 유튜브 콘텐츠로 보여드릴 텐데 많은 사랑을 주시길 바란다."


사진= 감한솔 제공, 풋볼리스트, 대한축구협회 제공, '감한솔 염소농장'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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