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환 "혐오 부추긴 과거 반성, 저항가요의 힘은 마음 열게 하는 것"
[이선필,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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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4월, 13집 앨범 < Always in my heart > 발매를 앞둔 안치환 가수가 1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 이정민 |
'저항가수'로 잘 알려진 안치환에게 그래서 운명을 물었다. 약 40년의 음악 인생이 사회적 부조리와 권력에 저항한 노래들로 점철된 게 결국 그의 소명이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오는 4월 정규 13집을 발매하고, 대극장 콘서트를 준비하는 그는 언젠가부터 대중 매체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누구보다 치열하게 곡 작업을 준비했고, 보란 듯이 열네 개의 노래가 꾹꾹 담긴 앨범이 공개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18일 오전 서울 연남동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피가 있다고 생각한다. 거창하게 얘기하고 싶진 않고 반 농담처럼 말한다. 안중근, 안두희를 보면 둘 다 테러리스트다. 하지만 한 사람은 이토 히로부미를, 다른 사람은 김구를 죽였다. 그게 운명이라면 운명일 테고… 제게도 그런 게 있다. 모든 걸 걸고 노래할 때가 있었다. 적어도 두려워서 노래를 멈춘 적은 없다. 물론 두려웠던 때도 있지만, 노래를 안 하지는 않았다. 그걸 피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음악의 길이기도 하다."
새 앨범으로 보는 안치환, 논란의 너머
저항이 비주류를 상징하지만, 1990년대를 풍미하며 안치환의 노래는 대중에 매우 가까이 머물렀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비롯한 숱한 그의 노래가 각종 투쟁 현장에서 불렸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같은 노래는 대학 축제, 직장 회식 자리에 단골처럼 등장했다.
그런데 그의 13집은 좀 다르다. 시인들의 시를 가사로 따오고, 거기에서 떠오른 악상을 붙여 새롭게 해석하는 방식은 여전했지만, 날을 세워 폐부를 찌른다거나 강한 다짐 혹은 풍자의 메시지가 아닌 삶을 돌아보고('난 언제나',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주위를 둘러보려는 의지('어떤 기쁨', '가을이 오는가봐' 등)가 제법 담겨있다. 여기에는 그간 그가 어떻게 음악을 해왔고, 어떤 음악을 할 것인지 결기 어린 고백('언제나 내 마음속에')까지 있다.
"8집, 그러니까 2003년부터 이 작업실에서 모든 노래를 만들었다. 이미 14집, 15집을 작업 중이기도 하고. 8집부터 12집까지 내면서 그때 상황에 맞는 노래들을 선별해 앨범에 넣었다. 근데 그때마다 빠지는 곡이 있더라. 보니까 포크 장르였다. 그간의 뜨거움을 좀 누른 초탈함이라고 할까. 언제 발표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들어도 휴식 같은 노래들이 있다. 내 음악적 뿌리를 보여드린다는 의미도 있고 해서 13집엔 그런 노래들을 모았다. 내용도 뭔가 부담 없이 편안한, 그래서 아내가 이 앨범을 좋아한다(웃음). 여러 이유로 이전 앨범엔 빠졌지만 더 내버려 둘 수도 없고, 이제 이 노래들의 자릴 찾아줘야겠다 생각했다. 왜냐하면 앞으로 제 노래가 더 거칠어지거나 강렬할 수도 있으니.
좀 덧붙이면, 앨범 마지막 곡이 영어로 'Always in my heart'(언제나 내 마음속에)다. 사실 이 노래는 내가 음악을 그만둘 때 들려주고 싶은 노래였다. 내 뿌리는 이거였다 말할 수 있는. 실명들을 거론한다. 비틀즈, 밥 딜런, 남미의 메르세데스 소사같이 저항가요에 영향을 준 사람들, 국내로 오면 김민기도 얘기하고 중학생 때부터 좋아했던 조용필도 나온다. 그리고 시인은 김남주, 정호승 님도 나오고. 이런 이름들이 내겐 소중한 음악적 밑거름이었다. 나의 시대였고, 내 음악이었던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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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이 명확했던 시대를 지났다. 물론 여전히 역사를 회귀하는 수구적 세력들을 비판해야 하지만 어떻게 이것을 이야기하고 노래할 것인가 새롭게 고민할 시기다" |
ⓒ 이정민 |
이 얘길 더 해볼 필요가 있었다. 대통령 후보 부인을 소재로 한 노래가 소위 외모 비하 논란으로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공격을 받았다. 전후로도 그는 '바이러스 클럽', '껍데기는 가라', 'You're not alone' 등의 디지털 싱글을 발표하며 세상과 접점을 만들어 왔다. 안치환은 긴 호흡으로 일련의 일들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전두환, 노태우의 독재 타도를 놓고 싸웠던 시대의 노래로 시작해 지금까지 음악을 해오고 있지만 현실적 주제를 한 번도 회피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간간이 제가 생각했던 대중성을 넓히기 위해 발표한 3집, 4집 등이 큰 성공을 거뒀다. 좋은 노래로 대중에게 저항가요 메시지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노래에 대한 제 생각도 전해왔다.
시대가 완전히 바뀐 게 1995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다. 정지원 시인과 함께 만든 노래가 굉장히 좋은 계기였다. 피 끓는 투쟁의 시대가 끝나고 사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겐 음악적 발전이기도 했고, 나름 고루하지 않게 노랠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의 일들로 일반 대중의 생각이 나와 같지 않다고 느꼈다. 적이 명확했던 시대를 지났다. 물론 여전히 역사를 회귀하는 수구적 세력들을 비판해야 하지만 어떻게 이것을 이야기하고 노래할 것인가 새롭게 고민할 시기다."
실망과 분노 후 피어오른 깨달음
극단의 진영 속에서 안치환은 자신의 노래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한다. 그는 "더 절망적인 건 내 노래조차 그 분열로 조장된 혐오를 치유하기는커녕 더 부추기진 않았나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이 맥락에서 그는 앞으로 디지털 싱글 앨범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의 세대 음악은 지금처럼 즉각적인 반응보단 좀 시간이 흐르고 곰 삭히며 사귀는 게 맞다"며 "한 사람의 뮤지션으로 생각과 삶의 흔적을 정규 앨범으로 담아야겠다"고 그는 말했다.
"나의 스타일대로 내 세대의 음악 흐름대로 하자는 생각이다. 8집 이후에 방송 홍보라는 걸 일절 안 하고 있다. 방송국 PD를 구워삶아 노래를 틀게 하고 돈을 쥐어주는 시스템이 싫어서다. 그렇게 지금까지 왔다. 어떻게 하면 대중의 관심을 잃지 않는지 알면서도 안 한 것들이 있다. 비겁한 상황이나 더러운 상황을 눈감아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도 어떻게 하면 구독자를 늘릴 수 있는지 여러 방법들이 있겠지만 안 한다.
개인 SNS가 발현하며 사람들은 자신들 팔로워가 힘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건 그들의 팬덤일 뿐이고, 그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정치로 치면 한 진영의 이야기고, 색깔인 것이다. 제 노래가 갈 길은 그게 아니었거든. 민주당 전당대회 같은 곳에서 제가 한 얘기도 '당신들이 하는 정치는 당원들 좋아라하는 걸 하는 게 아니라 당원 아닌 사람들이 귀 기울이게끔 하는 것'이라 말하곤 했다. 내 노래도 그렇다,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게 저항가요의 힘이고 노래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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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4월, 13집 앨범 < Always in my heart > 발매를 앞둔 안치환 가수가 1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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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민원을 넣은 한 가족이 있다.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을 발표했을 무렵인데 <조선일보>에서 옳다구나 프레임을 바꾼 셈이다. 김건희에서 건축물로 말이다. 근데 불법이었으면 왜 허가가 났을까? 지금까지도 문제없이 계절마다 공연도 해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진보인 것처럼 하던 사람들이 취한 얄팍한 태도에도 실망했다. SNS라든가 유튜브 같은 즉각 반응이 나오는 매체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다. 사적인 문제지만 나로선 사실 부끄러운 게 없다.
그 이후 쓴 노래들이 있다. '어떤 기레기들을 위한 송가'라는 곡이 있고, 열등감과 권력의 비굴함에 찌든 한 인간에 대한 노래도 있다. 그 사람이 나에 대해 쓴 글을 보고 너무 화가 났다. 넌 날 조롱했지만, 난 널 위해 노래를 만든다는 내용이다. 이것들도 발표 안 하고 있다. 제가 생각하는 노래 운동과는 거리가 있어서 말이다. 조선일보 같은 수구 언론의 프레임 놀이에 놀아나지 말고 본질을 봤으면 싶다. 모두 깨어 있는 시민이 되라고까지 꼰대질 하고 싶진 않지만,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살라고 얘기하고픈 마음도 있었다."
"노래로 얻은 상처는 노래로 치유"
그런 만큼 13집 앨범은 이런 격정과 분노에서 한 발 떨어진 산물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 분노가 극단으로 치미는 걸 보고 이 이상은 가지 말자 돌아보고 있다"며 그는 "노래로 받은 상처는 노래로, 무대에서 든 아쉬움은 무대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느 무대에서 내가 너무 못해서 화가 났을 때, 결국 다음 무대에서 잘하게 되면 좀 치유가 된다. 노래도 그렇다. 프레임 때문에 속상했고, 그런 일이 판치는 세상이 아니었으면 싶다. 시간을 두고 최근에 만든 노래가 있다. 'TV 리모콘'이라는 제목이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아내와 나 사이에 리모콘 하나가 놓여 있길래 만든 곡이다. 예전엔 당신과 나 사이에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서로 사랑하는 때가 있었고, 어느 날 아이들이 우리 사이에서 잠들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당신과 나 사이에 TV 리모콘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내 곁에 있는 당신의 고른 숨소리가 날 너무 편하게 해 준다는 내용이다.
이 노래가 요새 좋아서 계속 듣고, 수정하고 있다. 최근에 핸드폰 메모장으로도 계속 글을 쓴다. (검색하며) 이런 글이 있다. '그래도 나는 끝까지 지켜나갈 것이다. 비루한 삶의 과정에서 대부분 잃거나 버리거나 포기하는 것, 의리'. 왜 이걸 썼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떤 생각을 하다 쓴 것이다. 나의 아이들이 커서 나중에 뮤지션인 아버지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때가 오면 단호하게 음악을 그만둔다고 4집 앨범에 후기처럼 쓴 글이 있다. 그만큼 세상을 노래하는 데에 열정이 있었다. 알량한 히트곡 한두 개로만 살고 싶지 않아서 지금까지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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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거라 시대야. 망설이지 말고. 이 낡은 길을 지나 새날을 열어라'. 가수 안치환이 최근 만든 노래 '모두 다 잊혀지겠지'의 가사 일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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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월 27일 예정된 그의 콘서트 부제가 'HISTORY'다. 그가 지금까지 발매한 정규 앨범별로 상징적인 곡들을 노래할 예정이라고 한다. "좀 거창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안치환이라는 사람이 해온 음악의 궤적을 보여드린다는 차원으로 별 생각 없이 붙인 제목"이라 그가 다소 멋쩍어하며 설명했다.
'가거라 시대야. 망설이지 말고.
이 낡은 길을 지나 새날을 열어라'
인터뷰 말미 그는 최근 만든 노래 '모두 다 잊혀지겠지'의 가사 일부를 읊었다.
"저 역시 낡은 길이다. 그리고 저 또한 내 시대를 떠나보내는 게 아쉽고, 조금 슬프다. 그렇지만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 난 나의 세대로 살면 된다, 내일의 세상은 내 세상이 아니다. 그러니 이젠 다른 세대가 새날을 열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안치환 콘서트 < HISTORY > 관련 정보. 예매 : 인터파크 티켓 : bit.ly/3T8m4KD 멜론 티켓 : bit.ly/3wtIz3X 크라우드 펀딩 : 오마이 컴퍼니 : https://www.ohmycompany.com/reward/14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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