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핫플 아니죠”… 상권 양극화 홍대, 흥망성쇠 분기점 [핫플의 추락③]

이정헌 2024. 3. 23.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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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오후 7시 홍대 정문 앞 사거리가 텅 비어있는 모습. 이정헌 기자

[대표 상권의 추락, 넘쳐나는 공실]

저마다의 개성과 독창성으로 트렌드를 선도했던 서울의 대표 상권들이 추락하고 있다. 아기자기한 소품숍과 의류매장, 맛집들이 어우러져 핫플로 떠올랐던 일부 지역은 자영업자들이 치솟는 임대료 부담을 이기지 못해 주변으로 서서히 밀려난 것을 시작으로 상권 자체가 매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됐다.

사람들로 넘쳐났던 거리는 공실로 가득하며, 상권의 노후화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국민일보는 3회 기획보도를 통해 서울의 대표 상권으로 주목받았지만 지금은 과거의 활력을 잃어버린 곳들을 찾아 소개한다.

지난달 25일 오후 7시 '걷고싶은거리'에 인파가 북적이는 모습. 발길이 끊긴 홍대 정문 앞 내리막길의 풍경과 대조된다. 이정헌 기자

지난 19일 오후 5시35분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정문에서 내려다 본 ‘걷고싶은거리’(어울마당로)엔 길을 건너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걷고싶은거리에서 불과 150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정종완(44)씨는 상권이 예전같지 않다고 한탄했다. 걷고싶은거리 인파를 바라보던 정씨는 “여기(가게 앞)는 이제 흐르는 거리밖에 안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카페를 차린 8년 전 홍대 정문 앞 내리막길은 내외국인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줄지어 다닐 만큼 번화했고 가게도 손님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지금은 수업을 마친 대학생들이 통학하는 이동로 성격이 강하다. ①‘홍대 정문~어울마당로 구간’에는 어림잡아 공실 상가가 최소 17곳이었고, 빌딩이 통으로 빈 곳도 4곳에 달했다.

국내 문화·예술의 꽃을 피워온 홍대 상인들이 상권의 극심한 양극화로 신음하고 있다. 중심 상권인 걷고싶은거리(어울마당로)는 많은 사람이 몰려 혼잡하지만 중심에서 벗어난 상권에선 무더기 공실과 소비 위축으로 상인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2010년대 중심 상권으로 통했던 ②‘홍대 정문~상수역 구간’도 ‘플래그십·팝업 통 임대’를 내붙인 3~4층 빌딩이줄지었다.과거 ‘미술학원거리’로 불리던 ③‘홍대 정문~경의선숲길 구간’과 ④서교초 인근 골목 상권에서도 텅 빈 상가와 빌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눈에 보이는 공실 외에 가게를 내놓고 장사하는 임차인들도 많다”며 “다음 세입자에게 권리금을 받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가게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숙기 홍대 상권, 임대료는 구름 위

지난 19일 오후 4시 홍대 정문 앞 정류장에서 대학생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 뒤쪽 6층 규모의 건물(연면적 935.09㎡·282평)은 공실 상태로 '임대 문의' 현수막이 붙어있다. 이정헌 기자

홍대라는 이름값에 오를대로 오른 임대료는 홍대 상권 공실 사태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한번 오른 임대료는 결코 조정되지 않는다.” 국민일보가 만난 공인중개사 다섯 명이 입을 모아 말했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홍대 상권을 아우르는 마포구 서교동의 3.3㎡(평)당 환산 임대료는 코로나19 여파 속에도 상승해 2023년 1분기 19만553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4분기 대비 지난해 4분기 환산임대료도 17.80% 올랐다

체감 임대료는 데이터 평균치를 한참 웃돈다. 홍대 정문 내리막길(홍익로) 골목 어귀에 위치한 7평 상가는 2년째 비었지만 월세 530만원(보증금 1억2000만원) 선은 공고하다. 줄지어 선 연면적 330㎡(99.82평) 이상인 중대형 상가도 월세 1000만원(15평 기준) 선을 호가한다. 인근 공인중개사 윤모씨는 “내리막길 상가가 60% 가량이 공실 상태”라고 말했다.

천상현 홍익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발전 단계상 ‘성숙기’에 다다른 홍대 상권은 임대료가 굉장히 높은 단계에 이르렀다”며 “와우산로와 홍익로 일대에 공실이 많지만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수요층의 범위가 굉장히 얇아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합정·망원·홍대를 아우르는 '마포구 서교동'의 임대료 추이(아래). 2023년 1분기에 1평당 환산임대료 19만553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사진(위)은 홍대 상권 내 '공실 상가' 일부.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 제공, 이정헌 기자

‘핫플’에 포위된 홍대

지금 홍대 상권은 ‘합정-상수-연남-망원’에 사방이 포위된 형세다. 홍대를 찾은 유동인구도 홍대 상권 골목골목으로까지 스며들지 않고 주변 신흥 핫플로 흡수돼버린다. 19일 만난 터키 국적의 야스민(30)씨는 “저희는 이쪽 길(걷고싶은거리)만 알고 있다. 제 생각에 가장 인기 있는 이 거리만 찾았다”고 말했다. 홍익대 3학년에 재학 중인 박동준(24)씨도 “친구들과 주로 합정·연남에 가서 노는 편”이라면서 “지금 홍대에는 즐길 만한 게 없다”고 말했다.
홍대 상권의 유동인구가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홍대 정문~상수역 구간에 발길이 줄어든 모습. 인근 상가는 텅 빈 채로 '팝업, 플래그십 통 임대'가 적힌 현수막이 붙어있다. 이정헌 기자


홍대 상권의 유동인구 축도 ‘북쪽’으로 옮겨갔다. 방문객이 유입되는 통로가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에서 서울 지하철 2호선·공항철도·경의중앙선이 교차하는 5번 출구로 이동한 것이다. 천 교수는 “경의선숲길과 연남동 쪽에 유동 인구가 늘어나면서 ‘움직이는 축’이 많이 변동했다”며 “유동인구의 흐름이 곧 돈의 흐름인데 (주변 상권은) 상당히 단절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과거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역할을 하던 거점 공간들도 하나둘 힘을 잃었다. 문화예술 공연이 열리던 ‘홍익문화공원’은 코로나 사태에 방역 거점이 되면서 상권 단절을 심화시켰다. 서교초 골목 상권과 이어주던 ‘미술학원거리’도 2013년 홍대 입시에서 ‘실기 비중’이 줄어든 뒤 쇠락했다. 특히 홍대 정문 앞 스타벅스와 파리바게트의 철수는 인근 상인들에게 상징적인 사건으로 통한다. 홍대 상권에서 14년 동안 꽃 가게를 운영한 전모(54)씨는 “스타벅스와 파리바게트는 소비자를 붙잡아 주는 상권의 기둥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며 “3년 전 상권이 무너지더니 아직도 회복되질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오후 3시43분 ‘홍대 정문~경의중앙선 구간’ 미술학원 거리. 서울 내 주요 미대에 높 합격률을 보이던 미술 학원이 문을 닫고 '임대문의' 현수막이 붙은 모습. 이정헌 기자

홍대 중심 상권, 젠트리피케이션도 여전해

홍대 양극화는 인근 상권의 확장과 맞물려 있다. 백종배(62) 서교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은 “연남동·망원동 인근 상권도 넓어지면서 전체 소비자의 파이도 분산됐다”고 지적했다. 홍대 걷고싶은거리에서도 발길이 끊긴 골목을 들여다보면 공실 상가가 심심찮게 발견됐다. 홍대생 박로아(22)씨는 홍대가 핫플은 아니라고 단호히 말했다. “홍대에는 애플 같은 대형 브랜드만 남고 진짜 힙하고 트렌디한 것은 다른 곳으로 빠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런데도 홍대 중심 상권은 임대료가 여전히 급등하는 상황이다. 기존 임차인이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도 현재 진행 중이다. 지난 4일 홍대 걷고싶은거리에서 만난 연재용(40)씨도 오는 8월 재계약을 앞두고 카페에서 쫓겨나게 생겼다면서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카페가 지금 터에 자리 잡은 지 어느덧 12년이다. 그는 “건물주가 건물 노후화를 핑계로 재계약 중단을 통보했다”며 “12년 전 내고 들어온 권리금도 회수하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고 하소연했다.

연씨가 입주한 상가는 면적 254.64㎡(77평)의 지상 2층 규모 건물(등기부등본 기준)의 일부이다. 임대인은 그간 건물을 3개 상가로 나눠 합계 2000만원의 월세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홍대 상인들 사이에선 건물주가 월세를 4000만원으로 올린 뒤 대기업에 ‘통 임대’를 하려 한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맞은 편 16층 규모의 빌딩에는 애플스토어, 올리브영 등이 있다. 박세권 홍대상인회 회장은 “중심 상권의 공실도 결국 높은 임대료 때문에 생긴다”며 “이젠 중심 상권 상인마저 주변으로 밀려나는 도미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대·합정을 포함한 부동산 상가 공실률 추이(아래). 연면적 330㎡ 이하인 소규모 상가를 빼고는 공실률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 사진(위)은 홍대 상권에 발생한 공실 상가. 한국부동산원 제공. 이정헌 기자

외국인 관광객, ‘홍대 상권 활로’ 될 수 있을까

지난 19일 홍대 중심 상권인 '걷고싶은거리'(어울마당로) 횡단보도에서 홍대 정문을 향해 촬영한 사진. 홍대를 찾은 관광객들이 횡단보도를 지나고 있다. 이정헌 기자

구청은 나름대로 활로를 찾으려 애썼다. 주변 상권으로 분산된 수요를 되돌릴 방안을 모색해왔다. 홍대 상권에서 줄어든 소비를 견인할 존재, 바로 외국인 관광객이다. 지난 2021년 마포구청은 홍대 상권의 ‘관광특구 지정’을 끌어냈다. 서교동을 중심으로 동교동·합정동·상수동을 포함한 면적 1.13㎢ 일대이다. 한국산업개발연구원이 마포구청에 제출한 연구 용역을 보면, 홍대관광특구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그해 9064억5900만원으로 기대됐고, 2025년엔 1조1946억7300만원으로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외국인 관광객이 홍대 상권 활성화에 기여하는 측면은 적지 않다. 박세권 홍대상인회 회장은 “(홍대 중심 상권에) 사람은 엄청나게 많지만 내국인 체감 경기가 좋지 않은 탓에 큰 소비층은 없다”며 “외국인 관광객이 그나마 소비를 지탱하고 있다. 이들의 접근과 소비를 유인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에서는 역효과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관광특구’가 되레 상권 임대료를 끌어올린다는 지적이다. 공론화 단계부터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보였던 정문식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이사는 “관광특구 지정이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렸다”며 “코로나19 이후 일상 회복을 거치면서 관광객이 늘어났을 뿐이지 관광특구로 지정해서 상권이 활성화된 사례는 없다”고 주장했다. 마포구청도 SWOT(강점, 약점, 기회, 위협 등 네 가지 요인을 분석하는 경영기법) 분석에서 “관광특구 지정 시 임대료 상승 등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마포구청의 상권 개발이 중심 상권에만 치우쳤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마포구청은 지난해 11월부터 경의선숲길과 한강을 잇는 계획으로 걷고싶은거리 개선 공사에 착수했다. 거리 이름도 외국에 친화적인 ‘레드로드’로 바꿨다. 인근 상인 정종완씨는 “(마포구청에서) 레드로드 등 메인 거리 개발에만 치중하고 있다”며 “저쪽은 네온사인으로 번쩍번쩍한데 여기(홍대 정문)는 상가도 다 닫혔고 가로등도 높아 엄청 깜깜하다. 무서워서 올라올 엄두도 못낸다”고 지적했다.

홍대, 흥망성쇠 분기점
홍대 정문에서 인접한 상가에서 1층이 비어진 모습. 이정헌 기자.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홍대 상권은 높은 임대료와 공실 장기화 등으로 시들고 있긴 하지만 아직 쇠퇴기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의 위기를 상권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천상현 홍익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홍대는 작은 대학가·근린상권이 20~30년 만에 한류·관광·클럽 등을 아우르는 세계적인 상권으로 발전한 유일무이한 사례”라면서 “상권이 워낙 커지다보니 새로 개발된 지역, 매력이 있는 공간으로 유동 인구가 움직이는 것은 불가피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는 장기적인 측면에서 홍대 상권이 지속 발전하고 재생산해낼 수 있는 원동력과 중심 가치를 숙고할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덧붙였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홍대 양극화 현상의 핵심은 일반 상인들이 대기업·프랜차이즈와 차별화할 수 있는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가”라면서 “중심 대로변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진 곳부터는 마포구 차원의 지원·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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