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에서 매각으로…신동빈 ‘마지막 경고’, 성장 전략 대전환…롯데의 아픈 손가락들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4. 3. 2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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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첨단기술군 육성과 부진한 기존 사업 매각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뒤 계열사에서는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금까지 숱한 인수합병(M&A)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온 롯데가 선택과 집중을 위한 매각으로 성장 전략 대전환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그룹 총수가 실적 부진을 겪는 계열사에 던진 ‘마지막 경고’라는 시각도 제기된다. 바이오와 2차전지 등 신사업 분야와 뚜렷한 시너지를 기대하기 힘든 기존 사업군을 중심으로 매각 대상이 추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사업구조 고도화의 일환으로 롯데케미칼이 말레이시아 LC타이탄 매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사진은 롯데케미칼 타이탄 인도네시아 전경과 신유열 전무. 신 전무는 올해 만 38세로 한국 국적 취득에 나설 전망이다. (롯데케미칼 제공)
롯데, LC타이탄 매각 추진

경영진단, 매각 수시 검토

롯데그룹 사업 구조 재편이 빨라질 것이라는 진단이다. 최근 국내 2위 석유화학 기업인 롯데케미칼은 말레이시아 롯데케미칼타이탄(LC타이탄) 가치평가 등 사전 매각 작업을 거쳐 잠재 인수자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롯데케미칼 측은 “LC타이탄과 관련해 다양한 전략 방안을 검토 중이며 구체적인 사항은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지만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롯데그룹 포트폴리오 재편에 가속이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에서는 신 회장의 매각 의지 천명 이후 LC타이탄 매각설이 불거졌다는 점을 예사롭지 않게 본다. 신 회장은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지난 1월 말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상장 등 주식 상장, 편의점과 타사 주류 사업 매수 등 M&A로 사업을 확대했지만 지금은 방침을 바꿨다”며 “몇 년 해도 잘되지 않는 사업은 다른 회사가 하는 게 직원에게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앞으로 몇 가지 매각하겠다”고 매각 의지를 명확히 했다.

그러면서 그는 “4개 신성장 영역을 정해 신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향후 그룹의 4대 신성장동력으로 바이오테크놀로지(BT), 메타버스, 수소에너지, 2차전지를 꼽았다. 이미 롯데그룹은 호텔·유통·식품·화학군HQ에 속한 계열사별로 사업 전략 점검과 구조조정 등이 진행 중이다. 신 회장 발언은 사업 구조 재편과 자원 재배치를 보다 속도감 있게 진행하라는 당부면서 실적 부진을 겪는 계열사에 사실상 마지막 경고를 보낸 것으로도 해석된다.

선택과 집중을 위한 청사진은 롯데지주 경영개선실과 ESG경영혁신실이 각자 역할을 분담할 것으로 보인다. 지주 경영개선실은 그룹 계열사 감사를 통한 경영 진단과 컨설팅 등에 주력하는 조직이다. 정기, 수시 경영 진단으로 축적된 내부 자료가 풍부한 만큼 이를 토대로 사업 재편의 중장기 전략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2024년 정기 인사에서 경영개선실 출신 임원이 대거 승진한 점은 이런 시각에 힘을 싣는다. 경영개선실 수장 고수찬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주우현 경영개선1팀 상무는 전무로 올라갔다. 각각 부회장과 부사장으로 승진한 이영구 식품군HQ 총괄대표와 차우철 롯데GRS 대표도 경영개선실 출신 임원이다.

ESG경영혁신실은 신사업 M&A를 주도했으나 앞으론 인수보다 매각에 방점을 두고 역할을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2024 조직 개편에서 ESG경영혁신실을 그대로 둔 채 미래성장실을 별도로 둔 것은 역할 세부 조정이 반영된 조치라는 게 재계 시각이다.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인수합병은 미래성장실이, 사업 구조 고도화를 위한 체질 개선은 ESG경영혁신실이 맡는 식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신 회장 장남 신유열 전무가 미래성장실장을 겸직하고 있는 만큼 향후 바이오를 중심으로 4대 신사업에서 활발한 인수합병으로 승계 정당성 확보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신 전무는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과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을 겸직하고 있다.

신유열, 올해 한국 국적 취득할 듯

인수합병 등 승계 정당성 확보 전망

롯데그룹의 달라진 경영 기조는 여러 곳에서 엿보인다. 롯데 경영 전략은 기존 사업 효율성 추구, 부진 계열사 경영진단과 매각,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 등 크게 세 갈래로 나뉠 것으로 분석된다.

첫째, 규모보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면모는 유통군에서도 두드러진다. 롯데그룹은 예전부터 매출, 점포 숫자 등 규모 면에서 1위에 대한 강박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에 비춰, 최근 비쳐지는 일련의 점포 효율화 작업을 두고 업계에서는 이례적이라 평가한다. 지난해 말 기준 롯데슈퍼 매장 수는 358개로 2019년 말 521개에서 31% 줄었다. 국내 1위 슈퍼마켓 지위도 GS리테일(매장 434곳)에 내줬다. 롯데마트도 2019년 말 125개였던 매장을 지난해 말 111개로 줄였다. 적자를 감수하기보다 실제 수익을 내는 점포 중심으로 재편한 결과다. 효율화 전략 덕분에 롯데쇼핑은 지난해 당기순이익 기준 7년 만에 흑자를 달성했다. 롯데하이마트도 부실 점포를 과감히 정리하면서 매출은 줄었으나 지난해 영업이익 기준 흑자전환했다.

둘째, 계열사 매각이다. 실적이 부진하면서 신사업과 전략적 정렬(Strategic Alignment) 가능성이 낮아 시너지가 불투명한 곳부터 리스트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크게 바이오·메타버스·수소에너지·2차전지 등 신사업군을 제외한 호텔·유통·식품·화학 등 기존 사업군에 속한 계열사가 매각 대상으로 검토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주요 사업군에 포함되지 않은 건설·렌털·인프라 관련 계열사도 안심할 처지는 못된다. 특히, 글로벌 시장으로 산업 규모를 키울 수 있는 ‘스케일러빌리티(Scalability)’ 가능성이 낮은 곳부터 입길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재계와 자본 시장에서는 매각 대상에 오를 롯데그룹 계열사를 두고 벌써부터 여러 관측이 제기된다.

당장 그룹 주력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은 국내외 석유화학 기업과 사모펀드(PEF)를 중심으로 말레이시아에 있는 대규모 생산기지인 LC타이탄 매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LC타이탄은 롯데케미칼이 지분 약 75%를 갖고 있는 말레이시아 증시 상장사다. 석유화학 기초 소재인 에틸렌,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을 주로 생산한다. 2010년 인수 뒤 기업가치가 한때 인수가의 2.5배까지 올랐으나 최근 상황은 돌변했다. 최대 구매처였던 중국 기업이 기초 소재 자립에 속도를 내면서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2022년 2분기부터 적자로 돌아서더니 지난해 영업손실 612억원을 냈다. 기업가치는 7500억원 안팎으로 추락했다.

산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들어오면 일단 다 접고 떠나야 한다는 게 그간 산업계의 불문율이었다”며 “공산당이 한번 정책을 세우고 밀어붙이기 시작하면 손익분기점 같은 것은 다 무시하고 과잉 공급을 해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데, 롯데그룹은 유통과 화학 모두 중국과 질긴 악연이 이어지는 것 같다”고 촌평했다.

유통군에서는 롯데쇼핑 패션 계열사 롯데지에프알 실적이 악화 일로를 걷는다. 이 회사는 2022년 영업손실 규모 194억원으로 전년보다 손실 규모가 확대됐다. 2018년 이후 5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 중이다. 롯데홈쇼핑도 긴장감이 감돈다. 지난해 창사 이래 처음 희망퇴직을 단행할 만큼 곳간 사정이 악화했다. 지난해 롯데홈쇼핑 매출은 전년보다 13% 줄었으나 영업이익은 90% 가까이 급감했다. 롯데쇼핑과 롯데하이마트, 코리아세븐(국내 세븐일레븐 편의점) 등이 각각 의욕적으로 투자·인수했던 중고나라, 한샘, 한국미니스톱 등도 아직 이렇다 할 시너지를 내지 못한다는 평가다.

이 가운데 코리아세븐은 미니스톱 인수와 인수 후 통합(PMI) 비용 지출로 수익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107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이 탓에 최근 신 회장 발언과 무관하게 현금입출금기(ATM)사업부(옛 롯데피에스넷) 매각을 추진 중이다. 코리아세븐을 제외한 다른 편의점 업체는 ATM 사업 자체를 위탁 구조로 운영 중이다. 코리아세븐은 오는 3월 말까지 점포 통합과 합병 이후 인력 재배치 등으로 수익성 강화에 나선다.

호텔군에서는 롯데면세점이 ‘아픈 손가락’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면세사업부 매출액은 2조2446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40% 가까이 줄었다. 호텔롯데 총매출 가운데 면세사업부 매출이 65%여서 면세점 부진에 따른 실적 충격이 크다.

건설·렌털·인프라군에 속한 계열사 중에서는 롯데컬처웍스가 입길에 오른다. 2018년 롯데쇼핑에서 분할해 설립한 롯데컬처웍스는 지난해 희망퇴직을 단행해야 할 만큼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난해 3분기 말 롯데컬처웍스 자산과 부채는 각각 9404억원, 8143억원. 실적 악화로 순손실이 늘어 자기자본이 쪼그라들었고 부채비율은 치솟았다. 지난해 3분기 순손실은 263억원 수준으로 향후 적자 심화 땐 자본잠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롯데물산과 롯데정보통신 등은 매각 가능성이 낮게 점쳐진다. 롯데물산은 그룹 핵심 자산인 롯데월드타워·몰을 갖고 있다. 롯데정보통신은 시스템 관리(System Management), 시스템 통합(System Integration), 전기차 충전(EV-Charging) 등이 주력 사업으로 그룹 신사업과 시너지 구현이 가능한 계열사로 평가된다.

다만, 사업 구조 재편이 순탄할지 의구심 섞인 시선도 적지 않다. 롯데가 거느린 자산과 계열사 대부분은 경기 변동성이 높은 소비재에 속한다.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으로 최근 M&A 시장에서 소비재 관련 기업은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분위기다. MBK파트너스가 사들인 홈플러스도 실적 악화로 이렇다 할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롯데 ATM사업부 역시 매각이 한 차례 무산됐던 터다.

더군다나 잠재 매물로 거론되는 계열사 상당수는 이미 현금흐름 창출 역량이 훼손된 상태여서 매각가를 두고 이견이 클 수 있다. 이 탓에 보수적 성향이 짙은 롯데그룹 인수합병 기조와 맞물려 비주력 계열사 매각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시선이 존재한다. IB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 매각 사례를 돌아보면 외부 요인에 따른 불가피한 측면이 강했지 전략 정렬, 사업 구조 고도화 등의 목적에서 이뤄진 매각은 찾기 힘들다”고 돌아봤다.

롯데그룹은 사업 구조 재편, 자산 유동화 등을 통해 확보한 현금흐름을 지렛대 삼아 신유열 전무 주도로 4대 신사업군에서 성장동력을 다질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으로는 그가 등기이사로 이사회에 합류한 롯데바이오로직스를 중심으로 헬스앤웰니스(시니어·바이오·대체식품) 등 신사업 투자에 나설 전망이다. 신 전무가 한국 롯데그룹 계열사 등기임원에 등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등기이사는 미등기 임원과 달리 이사회에 속해 경영 활동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진다.

공교롭게도 2024년은 신 전무에게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1986년생 신 전무는 올해 만 38세가 돼 병역 부담을 던다. 국내 병역법 제10장(병역의무의 종료)에 따르면 현역병 입영 또는 사회복무요원·대체복무요원 소집 의무는 만 36세부터 입영 의무가 종료되지만 국적법 제9조에 따라 국적회복허가를 받아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만 38세부터 면제된다.

결국 병역 의무를 벗은 신 전무의 한국 국적 취득과 맞물려 신사업 인수합병 등을 통한 승계 정당성 확보와 롯데지주·계열사 지분 확대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재계 관계자는 “신 전무가 직원들과 한국어로 회의를 하고 보고를 받는 등 의사소통에 전혀 무리가 없는 것으로 안다”며 “오너 일가가 등기임원으로 등재된 산업군부터 인수합병이 시도될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1호 (2024.03.20~2024.03.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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