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우먼, 이청아

2024. 3. 2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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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곁에 있을 것. 나와 당신 사이의 거리를 지키되 다정할 것. 젠틀우먼, 배우 이청아와 밤을 걸으며 나눈 이야기들.

Q : 드디어 만났네요.

A : 만나기 전에 공유해주신 질문지를 읽었는데 심상치가 않은 거예요. 설마 하고 시안의 크레딧을 확인했는데, 제가 기억하는 에디터분이 맞더라고요.

Q : 제가 진행한 권해효 배우의 인터뷰를 공유하면서 “이런 인터뷰어와 인터뷰해보고 싶다”고 개인 SNS에 인용해주신 적이 있죠.

A : 사회에 대한 주관부터 카메라, 자동차에 대한 취향까지 ‘이렇게 멋져야 배우가 될 수 있는 건가?’ 생각했어요.하하. 제가 그때 권해효 선배님 인터뷰를 읽고 에디터님의 글과 인터뷰를 최근 것부터 쭉 거슬러 올라가며 찾아봤거든요.

Q : 저도 언제나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었기에 화보 콘셉트를 바로 떠올렸어요. ’젠틀우먼’이라는.

A : 그 제목이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제게 젠틀우먼이란 건 선을 지키는 사람이란 이미지예요. 저는 늘 매너를 지키려고 하는데, 사실 편리를 위한 것이죠. 사람 사이의 거리감을 지켜야 자기 자신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가장 화를 많이 내는 대상은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잖아요? 부모, 자녀, 연인… 가까이 있을수록 나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엄마나 딸이 돼버리죠. 그래서 저는 늘 간격을 지키려고 합니다.

Q : 그런 단독자의 모습을 오늘 화보로 멋지게 담아보자고요.

A : 좋아요. 헤어나 메이크업에 많이 손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느슨하게 풀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예전에 케이트 블란쳇이 턱시도를 입고 타이를 느슨하게 푼 채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화보를 본 적 있어요. 평상시에 그런 옷을 입는 게 자연스러운 사람처럼 보여서 좋더군요.

Q : 슈트를 좋아하죠?

A : 정확히는 팬츠 슈트 셋업. 중학생 때 저의 가장 큰 불만은 왜 바지 교복과 치마 교복 중 선택할 수 없는지였어요.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슈트와 턱시도를 여성도 입을 수 있도록 가장 먼저 선보인 생 로랑이라는 브랜드에도 애정이 있어요.

Q : 사실 슈트는 편한 옷이기도 하죠.

A : 자기 몸에 맞춘 넉넉한 슈트는 정말 편해요. 그리고 슈트 스타일링은 실패하기 어려울 만큼 쉽죠. 연예인이기 때문에 화면에서 돋보이는 옷을 입을 때도 많지만, 사실 저는 미니멀한 걸 더 좋아하고, 심심하게 입는 것도 좋아해요.

니트 톱, 미디스커트 모두 구찌. 로고 캡 웰던.

Q : 언제부터인가 이청아를 좋아하게 됐어요. 그런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눠보면, 그 시점들이 다 비슷하더라고요.

A : 그럴 거예요. 배역 외에 모습을 잘 안 보여드리는 편이고, SNS도 늦게 시작했고. 진짜의 저에 가까운 모습을 보게 된 시점이 있었을 테니까요.

Q : 〈늑대의 유혹〉 〈꽃미남 라면가게〉 류의 캔디형 주인공을 연기하던 이청아에서, 〈VIP〉 〈셀러브리티〉의 서늘하고 품격 있는 여성을 연기하는 현재의 이청아까지. 확실한 터닝 포인트가 있었던 배우예요.

A : 어떤 분들은 그 기점을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라고 말하고, 어떤 분은 드라마 〈VIP〉라고 말하시더라고요. 드라마 〈꽃미남 라면가게〉 작가님과 연을 이어가고 있는데, 어느 날 무슨 배역인지 말도 안 해주고 “해줘야 할 게 있어”라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할 수 있는 역이냐고 묻자 “자기랑 너무 잘 어울리는 역이야”라고 하셔서, 바로 오케이했어요. 저를 너무 잘 아는 분이라, 하하. 그때 많은 걸 덜어내는 시도를 했어요. 액세서리도, 메이크업도 덜어내고, 염색하지 않은 머리색 그대로 가고, 고집스럽고 촌스러운 게 자기 멋인 사람을 만들었는데 이청아와 많이 닮아 있었던 거죠. 성격적으로도요. 후에 그 작가님은 이렇게 말하셨어요. “청아는 신사적이야.” 제가 장착한 기본 매너가 있대요. 의자를 빼준다든지, 가방이랑 옷을 받아준다든지. 정소민 씨와 연기할 때 그런 태도가 자연스럽게 드러났는데 그걸 좋아하시더라고요.

Q : 이청아는 밝고 서툰 여성과 대비되는, 성숙한 ‘전 여친’이나 능력 있는 ‘라이벌이자 조력자’ 역할로 자주 등장하죠. 거기서 항상 제가 주목하는 건 여성 주인공과의 케미스트리였습니다. 그 묘한 긴장감이 좋거든요.

A : 팬분들 댓글 중에 “언니 ‘퍼컬’ 최소 전 여친”이라는 글을 봤어요. 처음엔 이게 뭔 말인가 했는데, 제가 전 여친 역할을 잘하고, 여자랑 케미스트리가 좋다는 뜻이래요. 하하하. 전 멜로 장르를 꽤 좋아해요. 다양한 멜로를 만나고 싶네요.

Q : 드라마 〈하이드〉로 이보영 배우와 연기하죠. 분위기가 잘 붙어서 굉장히 기대돼요.

A : 맞아요. 다들 비슷한 계열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차분한 느낌이 있다고. 연기하면서 보영 선배님이랑 붙을 때마다 재미있어요. 제가 찍으면서도 ‘이 신 너무 재미있는데?’라고 느꼈던 구간이 많아요. 기대해주시면 좋겠어요. 뭘 말해도 스포일러가 되는 캐릭터라 여기까지만 할게요.

Q : 여자 팬들, 많죠?

A : SNS에서 팔로어 비율을 볼 수 있는데 남녀 비율이 2:8 정도예요. 그래도 드라마 〈연인〉을 마치고 3:7 정도로 가고 있어요.

베스트, 와이드 슬랙스 셋업 토즈. 반지 모두 아티카. 안경 샤넬.

Q : 드라마 〈안녕 드라큘라〉에서 서현과의 연인 연기도 좋았죠. 언젠가 〈캐롤〉 같은 영화도 해주시면 좋겠네요.

A : 제가 좋아하는 케이트가 둘 있는데, 케이트 윈슬렛과 케이트 블란쳇이에요. 〈캐롤〉은 겨울이 되면 늘 다시 보는 영화예요. 저는 퀴어 영화가 사랑 그 자체에 대해 더 깨끗하게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퀴어든 아니든, 멜로는 언제든 환영. 요즘 제가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장르예요.

Q : 캔디형 캐릭터를 연기하던 데뷔 초 이야기도 궁금해요.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기분이었나요?

A : 시대마다 유행하는 캐릭터가 있어요. 영화 〈늑대의 유혹〉은 두 남자 사이에 낀 한 여자아이를 그린 전형적인 하이틴 로맨스예요. 그 후 캔디형 캐릭터들이 들어오면서 배우 생활의 고난이 시작됐어요. 가장 많이 들었던 디렉션이 “톤 올려”, ”밝게, 귀엽게”였어요. 근데 제가 그다지 귀여운 사람은 아니라서 많이 힘들었죠. 저는 일하지 않을 땐 늘 학교로 도망쳤어요. 그래도 학교는 제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었거든요.

Q : 돌아갈 곳이 있어서 다행이었네요.

A :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그냥 학생이었고 2학년 때 〈늑대의 유혹〉이 개봉했죠. 그래서 동기들에게 저는 연예인도 아니었고, 그 영화 속 캐릭터도 아니었어요. 하지만 점차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의 모습을 저라고 생각하며 대했고, ‘대중이 진짜 내 모습을 사랑할까?’, ‘사람들이 내게 다음을 기대할까?’ 하는 의문들이 생겨났어요. 하지만 그냥 사라질 순 없다고 생각했어요. ‘연기 잘한다는 소리 한 번만 듣고 사라질 테다. 이대로 사라지면 오명이다’ 그런 마음으로 연기에 임했어요.

Q : 오래 걸렸지만, 결국 자기 옷을 입었어요. 그걸 대중도 알아본 거고요.

A : 맞아요. 저는 그 세월에 감사해요. 항체가 생겼거든요. 처음부터 지금 같은 역할만 했다면 오히려 연기할 수 있는 폭이 좁았을 거예요. 그 덕에 지금 저는 사회성을 장착하게 됐고, 따듯하고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었어요. 오히려 지금 제게 캔디 같은 캐릭터나 까부는 캐릭터를 시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 고난이 이청아의 그릇을 넓혔네요.

A : 그렇죠. 저는 고난이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마냥 행복하기만 한 것은 지루하죠.

Q : 단단하네요. 저는 여전히 고난을 좋은 것이라 생각할 수 없는데.

A : 저는 진짜 힘든 날 생각하는 게 있어요. 내가 지금 80세에서 돌아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제가 80세여서 “젊은 날로 돌아가게 해주세요”라고 빌었는데 딱 깼더니 지금인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해결책이 막 보여요. 갑자기 이 하루에 생동감이 생기죠. 주변인들도 새삼 반갑고요.

Q : 좋은 팁이에요.

A : 지금 조금 바뀌었죠, 무드가.

Q : 그렇다면 지금에서 스무 살로 돌아가는 건 어때요?

A : 전 20대로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지금 아는 걸 조금이라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거든요. 지금 찾은 이 균형감과 적응력이 얼마나 간신히 얻어진 것인지 아니까. 게임으로 치자면 지금이 가장 많이 업그레이드해둔 상태인 거예요.

톱, 쇼츠, 스카프, 벨트 모두 프라다. 귀고리 모니카 비나더. 사이하이 부츠 찰스앤키스.

Q : 지금의 목소리 톤, 분위기, 화법, 모든 것이 본연의 모습에 가깝고, 또한 잘 벼려진 것이기도 하니까.

A : 지금의 제 나이에 그것들이 어울리는 탓도 있는 것 같아요. 20대 때의 저에겐 그런 것들이 절 무겁고 심각한 아이로 보이게 했나 봐요. 그때 저한테 기자분들이 “요즘 고민은 뭐예요?”라고 했는데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해요“라고 답하면 얼마나 곤란하셨겠어요? 하하. ‘이걸 어떻게 받아줘야 하지’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Q : 저라면 좋아했을 텐데.

A : 하하. 그러셨을 것 같네요. ‘영화계 신데렐라’ 같은 타이틀로 인터뷰를 하고 있을 때였는걸요. 다들 귀엽고 여린 소녀를 기대하셨을 텐데 저는 그렇지 못했죠. 다행히 지금은 저라는 사람과 제가 하는 배역들이 잘 어울리는 시기가 왔고, 여기서 또 나이가 더 들면 지금과 다른 모습이 찾아올 텐데, 먼 미래엔 귀여운 호호할머니 같은 사람이 돼 있길 바라요.

Q : 저는 샬롯 램플링이나 이자벨 위페르 같은 중년을 기대하고 있는데.

A : 하하. 전 프렌치 스타일은 아녜요. 개인적인 사람은 맞는데, 그렇게 시크하지 못하죠. 뭐 바람으로는 키가 훤칠하고 각진 얼굴이 돼서 롱 코트나 슈트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에 저는 좀 더 동그랗고 좀 더 작아요.

Q : 이청아가 생각하는 이청아는 어떤 사람이에요?

A : 모순적인 사람이요. 제가 아침마다 표어처럼 되새기는 문장이 있어요. “어제의 나에게 발목 잡히지 말자.” 어제 화가 났다고 오늘도 화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자는 거예요. 어제 힘들었지만 오늘은 그래도 힘이 좀 있는데, 괜히 사무실 들어가면서 어제 나 힘들었으니까 좀 힘든 분위기로 들어가야지, 하는 거. 뭔지 알죠? 프로젝트가 잘 안 돼서 다들 의기소침해 있다고 “우리 빵 먹을래?”라는 말을 못 하는 상황을 만들진 말자는 거예요. 쟤는 좀 일관성 없고 이상하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빨리 사과하고, 빨리 좋아하고, 특히 부정적인 감정은 끌지 말고 빨리 끝내버리는 거예요.

Q : 지금의 이청아는 대중에게 오해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나요?

A : 오늘 제게 멋지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그게 오해 같아요. 미디어에서 저를 표현하는 수식들을 보며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짐작하곤 하는데, ‘워너비’라는 수식어를 자주 달아주세요. 아니요. 저는 꽤 하찮은 사람인걸요. 하하. 다만 요즘 주변에서 “너 요즘 좋아 보인다. 편해 보여”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그건 좋아요. 아마 그건 지금이 순탄해서가 아니라, 제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일 거예요.

Q : 이청아의 때는 지금인가요?

A : 80대에 만개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네요.

Q : 다독가로 유명해요. 어떤 책을 읽어요?

A : 책은 취향이 계속 변해요. 요즘엔 철학과 과학 분야 책을 좋아해요. 대학생 땐 잘 안 읽던 분야인데, 어떤 이야기든 내가 받아먹을 수 있는 상태일 때 봐야 하나 봐요. 요즘 다시 보면, 분명히 읽었던 아도르노인데 완전히 달라요. 어릴 때 공부 머리가 더 잘 돌아간다고 하지만 저는 지금의 제가 학습력이 더 좋다고 느껴요. 30대 초반까지 읽었던 철학서들은 제가 가진 생각과 태도를 강화하는 용도로 읽은 것 같거든요.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방향으로요. 쇼펜하우어의 글처럼 굉장히 냉소적으로 읽혔던 책들도 지금 다시 보면, 그럼에도 인간이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나아가길 바란 게 아닐까 되레 따듯하게 느껴져요.

Q : 위스키를 좋아하는 이유는 뭐예요?

A : 위스키는 참 파볼 만해요. 피트 위스키만 좋아했는데, 요즘엔 좀 넓어졌어요. 셰리나 버번을 한두 잔 마시고 마지막은 피트로 끝내는 게 그렇게 행복하더라고요. 밤새 마시는 건 힘들어서 딱 밤 12시까지만 마신 뒤 집에 가서 잘 자고 다음 날을 지장 없이 시작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러기에 위스키는 최적의 술입니다.

레더 셔츠 질샌더. 안경 레이벤. 타이 보스. 슬랙스,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Q : 취하면 어때요?

A : 저요? 제 만취한 모습을 본 사람은 세상에 몇 안 될걸요? 하하. 적당히 들어가면 좀 귀여워집니다. “음악 줘” 이러고 춤도 춰요.

Q : 좀 뜬금없지만 바흐의 ‘인벤션’을 좋아한다면서요? 단순하면서 고결해서 저도 좋아해요.

A : 하하. 권위적이신가요? 저는 ‘인벤션’을 좋아하는 사람은 좀 권위적이라고 생각해요. 딱딱하달까, 고딕함이 있죠. 그래도 그런 종류의 굳건함은 좋습니다. 미니멀리즘의 미학은 ‘이렇게 뺐는데도 아름답지?’라는 자부심에 있는 것 같은데, ‘인벤션’이 바로 그런 곡이에요. 대위법의 수학적 아름다움도 좋아해요.

Q : 바흐는 수학이죠. 좋아하는 연주자는 글렌 굴드겠죠?

A : 그럼요.(웃음) 저는 그를 철학자라고 생각해요. 굴드는 후대를 교육하기 위해 자신의 음악 지침 같은 걸 남기지 않았대요. 그런 걸 생각하면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요. 실존주의적인 사람인데 연기자에 대입할 수 있는 모습이 참 많아요. 연주하는 순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도, 자유로워지는 것도. 그런데 질문지를 보니, 프랜시스 베이컨 좋아하세요?

Q : 좋아합니다.(웃음) 그러고 보니, 저희 지난 프리즈 아트페어에서 마주쳤어요.

A : 여러 부스를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죠.(웃음) 사실 전 한 화가의 전 생애 작품을 좋아하는 적이 없거든요? 호크니도 LA 시절의 그림만 좋아하죠. 그런데 프랜시스 베이컨은 말년까지 그린 모든 그림을 좋아해요. ‘교황’을 봤을 때 평온함을 느꼈어요. 전쟁 같은 그 그림 앞에서 오히려 고요해졌죠. 그리고 그림보다 인간에 대해 열광하는 건 프리다 칼로입니다. 그렇게 고통으로 얼룩진 삶을 살았는데도 유작으로 ‘인생이여, 만세’라는 그림을 남긴 건 정말 대단하죠.

Q : 이런 취향들이 이청아라는 사람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A : 아니요. 못 할 것 같아요. 나를 진짜로 알아주는 사람은 평생 나밖에 없을 거예요. 사람들은 제가 보여주는 모습으로 저라는 사람을 보게 될 테고, 어떻게 보느냐 역시 그들의 몫이죠.

Q : 언젠가 책을 내볼 생각 없어요?

A : 제목은 정해져 있어요. ‘내가 내 곁에 있을 것’. 언젠가 안식년을 가지고 써보려고 합니다.

Q : 불안을 마주하는 이청아만의 방법이 있어요?

A : 불안의 본질을 보려고 노력해요. 제가 불안에 대해 결국 깨닫게 된 건 ‘아, 내가 저것에 절실하구나’라는 것이었어요. 애인이 나만 사랑했으면 좋겠는데, 나한테 정말 좋은 배역이 들어오면 좋겠는데 ‘아니면 어떡하지?’라는 절실함이 불안이 되는 거죠. 그럴 땐 빨리 포기해야 돼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일단 저를 따듯한 물에 집어넣고, 그날은 특별히 일반 딸기가 아닌 설향 딸기를 삽니다. 그렇게 자신을 돌보는 거예요.

Q : 첫 책의 제목처럼, 내가 내 곁에 있을 것.

A : 정말 힘들던 시기에 일기에 그렇게 적은 적 있어요. “나는 한 번도 내 곁에 앉아준 적 없구나.” 보통 사람들은 자기한테 가장 나쁜 걸 줘요. 남은 나한테 제일 좋은 걸 줬으면 하면서 말이죠. 우리, 그러지 말자고요.

Q : 좋은 인터뷰어가 될 것 같아요. 이청아에게 가장 궁금한 건 뭔가요?

A : 제일 해방되고 싶은 것이 뭔지 물을래요. 답은 남들의 평가. 또 제일 집착하는 게 뭔지 물어볼래요. 괴롭히려고. 하하.

Q : 그 답은요?

A : ‘진짜’요. 얼마 전 이 고민을 한 선배에게 털어놨더니 제게 그러더라고요. “아직도 너는 진짜에 대해 고민을 하는구나.” 가장 오랜 친구도 나를 온전히 다 알 수 없는데, 어떻게 스크린 건너에 있는 대중에게 진짜 나를 알리겠다 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늘 진짜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Q : 곁에 어떤 사람들을 둬요?

A : 씩씩한 사람? 적당한 무관심에도 굴하지 않는 사람. “언니는 원래 이렇게 혼자 다녀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요, 전 그래요. “어, 나 혼자 다녀.” 여행 가서도 방은 두 개를 잡는 스타일이에요. 거리가 있어야 저는 다정할 수 있거든요.

Q : 이청아는 뭘 믿나요?

A : 내 세상은 내 것이라는 것. 눈앞에 보기 싫은 사람이 있으면 눈을 감아보세요. 그럼 그 사람은 내 세상에서 사라져요. 내가 눈을 뜨고 들여보내줘야 내 세상에 들어올 수 있고요. 결국 세상은 내가 꾸리기 나름이에요. 내가 내 삶을 어떤 장르로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죠. 이를테면 너무 힘들 때는 내 삶은 지금 블랙코미디라고 생각해요. 뇌는 똑똑하지만 동시에 멍청해서 ‘이거 지금 웃긴 상황이야’라고 생각하면 웃긴 이유를 찾아봐요. 결국 우리의 삶은 스스로가 이 순간을 어떤 톤의 필터로 선택하냐에 달려 있어요. 내 세상의 톤과 장르는 내가 정할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장르는 매번 바꾸어도 돼요. 힘들 때는 코미디로 바꿨다가, 진한 멜로를 하다가, 잘 안 되면 시트콤으로 바꾸는 거죠. 자, 이제부턴 〈프렌즈〉로 가보자고. 하하. 그냥, 내 삶은 내 거다. 그걸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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