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제 가노라”…역사 속으로 사라진 33년 문화계 산실 학전 [D:이슈]

박정선 2024. 3. 20.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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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소극장 문화를 이끌어 온 학전이 15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비록 학전이라는 이름의 공간은 사라지지만, 이곳이 남긴 가치와 역사는 예술인들뿐만 아니라 함께 공연을 즐기고 추억을 쌓았던 관객들의 마음속에도 깊게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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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가노라 서러움 모두 버리고…”

대학로 소극장 문화를 이끌어 온 학전이 15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91년 3월 15일 개관한 지 꼭 33년 만이다. 폐관 전날인 14일, 서울 종로구 학전 블루 소극장에서 열린 ‘학전 어게인 콘서트’에서 울려 퍼진 ‘아침이슬’은 33년 한 자리를 지켜온 학전의 마지막 외침이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학전 어게인 콘서트’는 오랜 경영난과 김민기 대표의 투병이 겹치면서 지난해 폐관 소식이 알려지자 학전과 인연이 있는 배우, 가수들이 뜻을 모아 기획한 공연이다. ‘학전 독수리 오형제’로 불리던 배우 설경구, 장현성, 황정민부터 가수 동물원, 시인과 촌장, 윤종신, 세계적인 재즈 가수 나윤선까지 모두 출연료 없이 노개런티로 동참했다.

지난달 28일부터 이어진 총 20회 릴레이 공연은 티켓 예매 시작 10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 회당 150여명의 관객이 찾았고, 릴레이 콘서트 기간 3000명이 넘는 관객이 다녀갔다. 티켓 수익금은 제작비를 제하고 모두 학전에 기부된다.

학전의 마지막은 ‘김민기 트리뷰트’ 무대로 꾸며졌다. 학전과 김민기에 얽힌 서로의 기억을 보듬고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을 비롯해 가수 박학기·권진원·정동하·알리 등이 학전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못자리 농사’라는 의미의 학전은 문화예술계 인재를 키워 추수한다는 이름처럼, 모두에게 배움의 터전이었다. 학전이 기획·제작한 359개 작품으로 배출된 배우, 연주자, 스태프만 780명. 설경구, 황정민, 김윤석, 조승우, 이정은, 장현성 등 굵직한 이름들이 탄생했다. 1991~1995년 학전에서 1000회 라이브 공연으로 이름을 알린 고(故) 김광석을 비롯해 들국화, 안치환, 이소라, 장필순, 윤도현, 성시경, 유리상자, 장기하 등도 학전에서 노래했다.

‘학전 독수리 오형제’로 불리는 황정민은 “학전은 제게 배우로서 포석이자 지금의 저를 만든 마음의 고향”이라고 소회를 밝혔고, 학전에서 뮤지컬 ‘의형제’로 데뷔한 조승우는 지난 1월 열린 ‘뮤지컬어워즈’에서 “학전에서 많은 걸 배웠다. 21살 아무것도 모르는 때에 무대가 줄 수 있는 감동을 알고 마음 깊이 새겼다. 학전은 배움의 터전이었고 집 같은 곳이었고 추억의 장소였다. 김민기 선생님은 나에게 스승님이자 아버지이지 친구이자 가장 친하고 편안한 동료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비록 학전이라는 이름의 공간은 사라지지만, 이곳이 남긴 가치와 역사는 예술인들뿐만 아니라 함께 공연을 즐기고 추억을 쌓았던 관객들의 마음속에도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이제 학전은 다음 달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을 맡아 새로운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문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의미 있는 공간이 학전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해 공연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한 가운데, 소극장들의 폐관 소식은 더욱 씁쓸하다. 사실상 대부분의 소극장은 여전히 수익조차 남기기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 학전의 폐관에 앞서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나무와 물, 정미소, 종로예술극장 등이 문을 닫았고 경영난에 시달리던 세실, 동숭아트센터 등은 주인이 바뀌어 운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2년부터 21년간 운영되던 한얼소극장도 지난해 높은 임대료와 지속되는 적자로 폐관했다.

한 극단 관계자는 “꿈을 키우고, 예술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이 설 수 있도록 소규모 극장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사실상 소극장은 대규모 극장의 공연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져 운영에 어려움이 늘 따라왔다. 모든 소극장에 해당할 순 없지만, 많은 예술가들의 배움이 터전이 되는 극장들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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