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 시절 우울... '상처 입은 치유자' 될래요"

교육언론창 차원 2024. 3. 1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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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청년 졸업생] 서울 휘봉고 박제욱 졸업생과 북서울꿈의숲에서

2010년대부터 전국에 자리 잡아 온 혁신학교. 이제 청년이 된 혁신학교 졸업생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그들의 삶에 혁신학교는 어떤 의미일까. 교육기자들이 모두 19명의 혁신학교 졸업생들을 직접 만난다. <기자말>

[교육언론창 차원]

 북서울꿈의숲 전망대에 선 박제욱 휘봉고 졸업생 ⓒ차원
ⓒ 교육언론창
"학업 실패와 무기력증... 우울 속에 지낸 시간들"

부산, 제주도를 거쳐 지난 1월 30일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 휘봉고등학교를 졸업한 박제욱 졸업생(22)을 만나기 위해서다. 우리는 북서울꿈의숲에서 만나 전망대를 둘러보고 공원 내 위치한 카페로 이동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현재 한 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에 다니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데, 과연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을지 함께 이야기를 들어보자.

고등학교와 대학교 새내기 시절, 그는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번아웃 증후군과 코로나 블루가 함께 찾아온 것이다.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그는 흔히 사람들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이 되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학생회 활동도 하는 등 노력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억지로 바꾼, 원래의 나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힘들었다. 곧 우울감과 무기력에 빠졌고 이는 대학교까지 쭉 이어졌다. 

또 다른 원인은 학업의 부담이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공부를 잘했던 그였지만 점점 성적이 떨어졌고 결국 큰 심리적인 아픔을 겪었다. "어렸을 때 공부를 열심히 잘했던 것도, 그것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어른들의 칭찬이 좋아서였다"고 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갔지만 코로나로 인해 기대했던 대학 생활은 전혀 하지 못했다. 온라인 수업으로 등교할 일도 없었고, 관광경영학과 공부도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때부터 있던 무기력과 우울감이 연장됐다. 그렇게 1학기가 지난 후 바로 휴학계를 냈다. 코로나의 영향과 대학 생활에 대한 실망으로 쉬는 중에도 우울은 쉽게 극복할 수 없었다. 그는 우선 군 문제를 해결하기로 한다.

"해군 복무, 이집트 여행, trPG 동호회 활동으로 이겨내"
 
 TRPG에 관해 설명하는 박제욱 휘봉고 졸업생 ⓒ차원
ⓒ 교육언론창
그가 선택한 곳은 해군이었다. 왜 일반적으로 많이 가는 육군이 아닌 해군이었을까 궁금했다. 그는 "우울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설명했다. "많이 고민했지만, 우울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선 뭔가 색다른 도전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또 "어렸을 때부터 바다를 좋아하기도 했다"고 한다.

박제욱 졸업생은 우울증을 극복하고 일어서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을 이 해군 복무로 꼽았다. "자신의 한계를 경험하고 시험하며 나 자신에 관해 더 잘 알고, 용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을 한 것도 좋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군대에서 기운을 얻고 난 후, 그는 이집트 여행을 가기로 했다.

이집트 역시 그가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여행지였다. 특히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 '미이라'를 매우 재밌게 봤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일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망설이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어떤 기분인지도 느껴보고 싶었다."

그렇게 7박 8일 이집트 여행을 다녀왔고, 한층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됐다. 한국에서는 잘 접하지 못했던 흥정 문화를 경험했던 것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삶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답을 구해가는 과정이었다. 그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그에게 힘을 준 것은, 인터넷에서 처음 우연히 발견해 가입한 trPG 동호회 활동이다. trPG란 Tabletop(or Table-talk) Role Playing Game의 약자로, 오프라인상으로 테이블에 모여 앉아서, 대화를 통해 진행하고, 각자가 분담된 역할을 연기하는 게임을 일컫는 용어다. 그가 한창 우울로 고생할 때도 이 활동으로 더 이상의 침체를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을 만나서 건설적인 대화를 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과 내 꿈에 대해 더 잘 알게 됐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내면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에 따르면 학교 수업에 이 방식을 도입한 선생님도 있다고 했다.

"대학교 자퇴 후 상담심리학과 입학... '상처 입은 치유자' 되고파"
 
 원래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 한 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에 23학번으로 다시 입학한 박제욱 휘봉고 졸업생 ⓒ차원
ⓒ 교육언론창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대학교 자퇴를 결정했다. 군대에서부터 결심했던 일이었다. 환경을 바꿔보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나처럼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고등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그는 정신적인 어려움으로 상담을 받았다. 이제는 그가 자신처럼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고 싶어진 거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를 '상처 입은 치유자', '운디드 힐러(wounded healer)'라고 부른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칼 융은 '모든 치유자는 상처 입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상처를 입어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치료할 때도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잘 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압도적 재능으로 선수 생활을 탄탄대로로 한 지도자보다 선수 시절 아픔과 어려움을 겪었던 지도자들이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것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그렇게 그는 처음 들어간 대학을 자퇴하고 한 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에 다시 입학해 현재 열심히 공부 중이다. 

그동안 우리는 혁신학교의 장점에 관해 주로 다뤘다. 그러나 박제욱 졸업생은 혁신학교에 다니던 시절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걸까.

우선 그는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여러 활동은 매우 재밌고 즐거웠다"고 말했다. 생각할 거리도 많고, 탐구할 것도 많았다. 특히 직접 모든 걸 기획했던 학교 축제와 실제 농촌에 가서 농부들과 함께 몇 날 며칠 생활했던 농촌 활동은 언제 떠올려도 즐거운 추억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해보지 못한 경험을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이 되니 상황이 달라졌다. 이전의 즐거움을 줬던 활동들보다는, 성적이나 공부에 대한 압박이 더해졌다. 오히려 1, 2학년과 달라진 상황에 그는 3학년 때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그는 "'혁신학교가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을 한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혁신학교도 피할 수 없는 '성적 압박'... 관련 상담 폭넓게 지원했으면"
 
 자신과 같이 성적 압박으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위한 상담 시스템이 더욱 활성화되는 것이 박제욱 휘봉고 졸업생의 바람이다. ⓒ차원
ⓒ 교육언론창
사실 이것은 이 인터뷰 시리즈를 진행하며 꽤 자주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다. 과거 직접 학교 현장에서 고3 학생을 만났을 때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혁신학교 학생들이라고 해서 다른 입시, 다른 취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발생하는 한계다. 혁신학교 학생들도 결국 극단적으로 서열화된 대학, 어마어마한 임금 격차 속에서 살아가야 하기에 교육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다. 

박제욱 졸업생은 자신처럼 이런 문제에 좌절하는 이들을 위해 학교가 더 좋은 상담 시스템을 제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사실 고등학교에서의 상담이란, '입시 상담'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성적에 대한 비관으로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그와 같은 학생들이 혁신학교라고 없을 리 없는데, 그들에 대한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그의 이야기에 크게 공감했다.

그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재밌게 읽었다"고 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라는 싱클레어의 독백을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이제 그에게는 전문 상담사가 돼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운디드 힐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 나오고 있다. 그가 꿈을 이루는 그날까지, 무한한 응원을 보낸다. 

박 졸업생을 만난 다음 주, 나는 동국대학교를 방문해 서울 삼각산고등학교 조가연 졸업생을 만났다. 우리 모두 환경, 정치에 관심이 많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역시 많은 기대와 관심을 부탁드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교육전문언론 교육언론[창](www.educhang.co.kr)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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