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로 입양된 한국인, 축사의 송아지 안고 자는 사연

김상목 2024. 3. 19.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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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조용한 이주>

[김상목 기자]

다큐멘터리인 줄 알았는데 극영화다. 북유럽의 고즈넉한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데 어째 초현실적 이미지가 출몰한다. 지구를 닮은 외계 행성이라 해도 무방해 보일 만큼 독특한 질감을 전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말이 거의 없고, 그의 주변 인물들은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에게만 보이는 비현실인지 관객을 헷갈리게 만든다. 뭔가 사연이 잔뜩 있어 보이긴 하는데 영화는 내내 속 시원하게 주인공의 과거에 대해 풀이해주지도 않는다.

그저 담담하고 건조하게 일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가도 민감한 정치사회적 배경이 툭툭 개방되기도 한다. 익숙하지 않은 맛이지만 한번 적응되면 잊지 못할 느낌의 영화가 도착했다.

덴마크 한적한 시골 마을에 불시착한 청년의 이야기
 
▲ "조용한 이주"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19살로 갓 성년이 된 청년 '칼'은 부모님이 거주하는 시골 마을로 돌아온다. 그는 자신이 기숙학교에서 생활하는 동안 건강에 문제가 있는 아버지를 도우며 농장 일을 배운 동유럽 청년 '안제이'와 친분을 쌓고, 자연스럽게 농장 일에 함께한다. 송아지가 새로 태어나고, 늙고 병든 암소는 팔려간다. 농사를 위해 새로 트랙터를 할부로 도입하고, 매일 소에게 먹이를 주며 돌본다. 크게 부유하진 않지만, 열심히 일하면 먹고 사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일 정도의 형편은 된다. 칼은 어느 날 풀밭에 움푹 파인 구멍을 발견한다. 누가 일부러 땅을 헤집어놓은 것 같진 않은데, 마치 우물처럼 깊숙하게 사람 한 명 가볍게 삼킬만한 깊이다. 칼은 그 속에서 평범해 보이지 않는 돌멩이를 발견하고 집으로 가져와 자기 방 침대 아래 간직한다.

이제 연로한 부모는 자신들이 운영하던 낙농가를 아들이 물려받아 주길 원한다. 칼은 뚜렷하게 의견을 밝히지 않은 채, 묵묵히 이야기를 듣기만 한다. 농장은 부모님과 칼, 안제이 외에는 가축과 풀밭만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이라 마치 다른 세계처럼 도시와 동떨어져 있다. 담배 한 갑 사려 해도 자동차나 오토바이로 한참 나가야만 마을에 도착하는 곳이다. 칼과 안제이는 종종 함께 마을 술집이나 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것으로 권태로움을 달랜다. 혈기왕성한 청년들에게 농가에서의 고즈넉한 일상은 나쁘진 않지만 뚜렷한 목표가 없다면 사실 감옥에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안제이는 농장에서 일을 배우고 돈을 모아 자신의 농장을 언젠가 꾸릴 계획이 있지만, 칼은 그런 꿈을 꾸는 것 같지는 않다.

칼의 생일이 다가오는데 공교롭게도 친척 이모의 생일과 1주일 간격이다. 부모님은 친척의 생일잔치에 함께 가길 권유한다. 편한 표정은 아니지만, 칼은 함께 오랜만에 일가친지가 잔뜩 모여든 행사장으로 향한다. 술에 취한 친척 한 명이 칼에게 시비를 건다. 그는 외국인이 나라를 어지럽힌다며 주정을 부리다 괜히 칼을 향해 트집을 잡는다. 부모님은 칼에게 원래 멍청한 술주정뱅이이니 신경을 쓰지 말라며 달래지만 굳이 아들을 위해 맞서 싸우진 않는다. 그런데 왜 친척은 칼을 표적으로 주사를 부리는 걸까?

칼은 한국에서 카렌과 한스 부부에게 해외 입양으로 가족이 된 존재다. 아주 어릴 적에 양부모에게 입양되었고, 친부모의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덴마크 말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내성적이긴 해도 딱히 문제가 될 행동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겉으로는 가족의 일원으로 그를 대하는 친척들은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는 경우는 드물지만 보이지 않는 벽을 둘러치고 칼을 특별한 존재로 대하는 기색이 종종 엿보인다. 그런 미묘한 기류는 칼과 부모님 모두 일상적으로 체감하고 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거나 다투려 하진 않는다. 그런 가운데 부모님은 칼이 농장을 물려받을 때가 왔다며 양부의 건강 때문에 이제 은퇴할 때가 되었음을 통보한다. 칼은 부모님이 생일선물로 준 여행상품권으로 한국에 다녀오고 싶다고 의사를 전한다. 결단의 때가 칼에게 다가온다.

해외입양 청년이 겪는 일상적 차별과 배제의 풍경
 
▲ "조용한 이주"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칼은 집에서 자신의 입양 기록을 발견한다. "2002년 4월 10일생, '서지훈', 본관 한양, 부모 기록 없음"이 전부인 단편적인 내용이다. 그에게 원래 한국에서의 이름은 별 의미가 없다. 주변의 모두가 그를 '칼'이라 부른다. 칼은 북구 바이킹의 후예로 쉽게 연상하는 덴마크 표준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덴마크를 포함해 북유럽 국가들에선 입양과 이민, 난민 수용 등으로 다문화사회가 들어선 지 오래다. 칼의 농장에서 함께 식사하는 네 사람, 엄마 카렌과 아빠 한스, 칼, 그리고 계약일꾼 안제이 가운데 외관상으로는 자연스럽게 덴마크에 녹아들 것 같은 안제이는 정작 외국인이고 칼은 엄연한 덴마크 시민권자다. 안제이가 경제적으로 열악한 다른 유럽국가 출신이란 핸디캡이 있다면, 칼은 덴마크인으로 성장했지만, 외모로 구분되는 인종적 차이로 편견에 처한 경우다. 동아시아 끄트머리의 한국인 관객에겐 별로 주목되지 않더라도 미세한 변별점이 확연한 묘사다.

친척의 생일 파티에서 벌어지는 친지들의 수다는 그런 미묘한 긴장감의 향연이기도 하다. 그냥 보면 다들 유쾌하고 친절해 보이는 덴마크 평균치의 농민들은 와인을 마시며 유쾌하게 오랜만의 친지 상봉을 즐기지만, 말 속에선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위험한 표현이 새어 나오고,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듯 악의를 실어나르는 편견이 넘실댄다. 현재 유럽 내에서의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불만이 자연스럽게 압축된 것처럼 펼쳐진다. 모두가 EU에 불평불만을 토해내지만, 유럽연합의 분야별 보조금이 아니라면 덴마크의 소농은 상당수가 파산할 지경이란 점에 분노는 금방 쑥 들어가버린다.

술주정뱅이 '피터'는 외국인이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며 목청을 높이며 주변에 시비를 걸어대지만 정작 그는 아무리 봐도 농장일과는 무관해 보인다. 오랜만에 모인 좋은 자리이건만, 친척들은 서로 자신의 주관적 경험을 들먹이며 가난한 나라에서 일하러 덴마크에 와줘야 노동력을 소화할 수 있다느니, 외국인의 저임금 노동 때문에 자국민 실업이 문제라느니 끝없는 갑론을박에 여념이 없다. 그런 광경을 보고 있자면, 유럽 정치를 뒤흔드는 극우주의가 저렇게 자연스럽게 태동하는구나 하고 무릎을 탁하고 칠 법한 순간이 적지 않다. 다들 처음부터 대단한 악의를 갖고 낯선 타자를 증오하고 적개심을 품는 건 아닐 테다. 그저 사소한 오해, 그리고 무지에서 유래된 음험한 기운이 사회적인 관심과 배려를 통해 교정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왜곡되면서 초래되는 비극의 탄생과정인 셈이다.

엄마인 카렌은 파티에서 귀가한 후, 남편인 한스에게 왜 칼의 편을 적극적으로 들어주지 않냐고 점잖게 항의하지만 한스는 별 소용이 없다며 칼을 달래기만 한다. 아마 지난 십수 년간 이런 경험이 워낙 허다하기에 굳이 친척들과 척 질 각오보다는 그저 넘기는 것으로만 일관해 온 기색이 역력하다. 게다가 이 부부가 멀리 한국에서 피부색이 다른 아이를 입양한 데에는 나름대로 '실용적' 의도가 추정되기도 한다. 도시화가 진전되고 농민의 자녀들이 가업을 물려받기를 기대하는 건 이미 어려워진 유럽 사회 현실에서 2세를 갖는 데 어려움을 겪던 이들 부부가 가업을 물려주고 노후를 책임질 후계자를 물색하려는 목적이 없다고 보긴 힘들 테다. 칼 역시 그렇게 자신에게 기대되는, 혹은 부과되는 역할과 책임을 모르진 않는다. 이 가족은 기묘한 계약관계와 가족애가 엇갈리는 가운데 고요한 일상을 이어간다.

해외입양 주인공에 대한 제3의 길 경향에 충실한 작업
 
▲ "조용한 이주"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특이한 건 이 영화가 그런 배경을 풀어내는 구조와 방식이다. 대개 해외입양 당사자를 영화가 표현하는 방식은 둘 중 하나로 기울게 마련이다. 첫 번째는 그들의 잔혹한 운명을 극대화하는 비극성으로 승부수를 던진다. 가난하던 시절 국내에서 잘 사는 나라인 유럽이나 북미로 입양이 되면 잔치를 열어줄 정도였다고 하지만, 정작 그렇게 풍요로운 나라에서 정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해외입양의 어두운 그림자는 의외로 넓고 깊었다. 그저 부유한 나라에서 온 양부모라 하기에 모든 게 잘 풀릴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제대로 아이를 양육할 조건에 미달하거나, 혹은 나쁜 의도로 데려간 경우도 존재했다. 박광수 감독의 1991년 영화 <베를린 리포트>에서 고 강수연 배우가 담당한 '마리엘렌' 캐릭터처럼, 양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고, 이를 보다 못한 오빠가 양부를 살해하는 기구한 사연이 영화에서만의 이야기는 아니던 것이다.

두 번째로는 마치 '인간극장' 같은, 머나먼 타국으로 가 적응하느라 어려움을 겪긴 해도 가족의 사랑과 반듯한 본인의 자세로 해당 사회에서 성공 사례가 되는 경우다. 종종 미디어에 오르내리곤 하는, 해외입양아가 타국에서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누리며 한국에 금의환향해 친부모를 찾는다는 설정이다. 이런 사례는 심심하면 곳곳에서 접할 수 있지만 잘 된 선례만 소개한다는 편향성을 극복하기 어렵다. 그런 가운데 '제3의 길', 즉 명백한 차별이나 범죄에 시달리지도, 그렇다고 모범생으로 성장하지도 않은 사례들, 어쩌면 가장 흔하디흔할 유형을 당사자 혹은 주변의 경험에서 발견하고 소개하는 작업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벨기에 입양아로 성장한 융 헤넨의 자전적 그래픽 노블과 이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 <피부색깔=꿀색>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시가 될 테다. 해당 국가와 사회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경계인으로서 본인의 자리를 찾기 위한 고투가 펼쳐지는 공통분모를 갖는 이야기들이다.

<조용한 이주>의 감독 말레나 최 역시 태어나자마자 덴마크로 입양되어 성장한 경우다. 전작에선 덴마크 입양아들의 한국 방문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했던 감독은 이번에는 상징적인 장치를 대거 수용한 실험적 드라마를 선보인다. 정적인 공간을 조망하며 통상적인 극영화들에 비해 한없이 느린 속도감을 연출에 도입해 덴마크의 한적한 시골 농장을 마치 외계 우주의 행성처럼 변모시킨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건초더미가 때로는 성벽처럼, 때로는 거인처럼 주인공 앞에 나타나고, 조각배에 탄 채 호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 수평선에는 대도시의 전모가 펼쳐진다. 암시와 은유의 효과가 또렷하게 각인된다. 처음엔 그 저속 진행에 당황하고 난감해할 수 있지만, 관객은 익숙해지면 굳이 주인공과 가족들이 구구절절 신파를 늘어놓지 않더라도 그가 고민하는 지점들, 그에게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 대해 독자적으로 추론하고 상상하기에 이를 테다.

칼이 영화 초반에 우연히 발견해 애지중지하는 돌멩이는 사실 '운석'으로 보인다. 외 우주에서 대기권을 뚫고 날아온 다른 세계의 물질이다. 부모님들에겐 그저 흔한 돌멩이에 불과하지만, 칼에겐 마치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가 된다. 그 역시 자연스럽게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존재가 아니라 어느 날 문득 덴마크 시골에 떨어진 것 마냥 이곳에 당도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태어났다는 한국에 무의식중에 이끌리지만, 정작 그곳에 대해 별로 아는 건 없다. 한국 땅을 밟는다고 해서 그가 수소문해 생모를 찾거나 마땅히 연락할 곳이 있지도 않다. 그는 좋건 싫건 덴마크 땅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하지만 양부모가 기대하던 것처럼 시골 농장을 물려받는 건 자신이 원하는 삶일 리 없다. 칼은 동아시아계 입양아라는 정체성과 함께 농촌 지역을 벗어나고픈 청년세대라는 보편적 특징을 한 몸에 지닌 존재다. 그를 단선적으로 규정하기란 어불성설이다.

독특한 관조로 그려낸 성장통, 마침내 구현되는 가족의 탄생
 
▲ "조용한 이주"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필름다빈
 
칼에겐 환영 같은 존재가 종종 눈에 들어온다. 오직 그만이 포착하고 교감할 수 있는 대상들이다. 때로는 자신과 같은 외모를 지닌 또래 여성, 때로는 생모를 연상케 하는 외모의 성인 여성으로 그 존재는 출몰한다. 또래 여성은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칼이 외딴 시골 농장에서 꿈꿔온 상상 속 친구 혹은 형제자매, 어쩌면 자신의 여성형 같은 존재로 형상화된다. 그는 칼이 방황하거나 혼란에 시달릴 때마다 위로하거나 보듬어주곤 한다. 반면에 성인 여성은 칼과 직접적인 대화나 교감을 나누진 않고 환영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실제로 친부모에 대한 기억 자체를 박탈당한 주인공이라면 당연한 차이일 테다. '칼' 역을 맡은 코르넬리우스 원 리델클라우센은 실제 입양 자녀로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거리에서 감독이 길거리 캐스팅으로 발견한 비전문 연기자다. 그래서 연기가 투박하다고 느껴지는 관객의 인상은 지극히 옳다. 하지만 연기로는 표출하기 힘든 분위기와 정서가 그의 어눌한 인상을 통해 극대화될 수 있었다.

칼의 양부모는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친자식처럼 키워왔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전반부에선 아들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 일정한 간격이나 계산이 엿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머니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우울증에 시달려 왔고, 아버지는 농장의 후계자를 구하려는 목적을 결코 숨기려 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렇게 결정하고 데려온 것이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가족 간의 사랑으로 그들은 칼이 느끼던 장벽을 조금씩 열어젖히고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만들어간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은연중에 인종차별적 언행을 저지른 친척과 격하게 충돌하며 아들을 옹호하고, 어머니는 오래 묵혀둔 비밀을 고백하며 아들의 편을 들어준다. 칼 역시 진정한 자식이라면 떳떳하게 자신이 품은 결심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하나씩 자신들이 갖고 있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고, 어려운 결단을 내리기에 이른다.

그렇게 격동의 유럽 대륙 한복판에서, 지구 반대편에서 기구한 사연을 품고 외계의 별 같은 시골 농장에 떨어진 별똥별 운석 같은 주인공과, 외롭게 늙어갈 운명이던 노부부가 마침내 진정한 가족이 된다. 물론 그렇다고 칼에게 순탄한 길이 열리진 않을 테다. 덴마크는 물론 갈수록 우경화되는 유럽 대륙 한복판에서 보이지 않는 소소한 차별과 텃세를 짊어지고 갈 운명은 변치 않는다. 그가 시련에 봉착할 때마다 밖으로 토해내지 못하는 체증을 달래기 위해 종종 취하는 수단들이 제법 흥미롭게 보일 법하다. 칼은 아무도 없는 시골의 비포장 농로를 뛰거나 스쿠터를 타고 달린다. 어머니가 우울하고 힘들 때면 나이든 현명한 소를 안고 위안을 얻는다는 비밀을 공유해준 후 종종 칼은 축사의 짚더미에 누워 송아지를 끌어안고 잠들곤 한다. 그렇게 각자의 처지에 이입할 대상을 찾아내 견딘다.

1980년대엔 10년간 무려 6만6511명의 아이가 해외입양의 길을 떠났다고 한다. 1년 기준으로만 7천 명에 가까운 적지 않은 숫자다. '아이 수출국'의 오명을 뒤집어쓰기 차고 넘치는 숫자다. 그저 어딘가에서 잘 살겠지 하는 막연한 방치와 함께 이미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한 이들에 대해 뒤늦게 발동한 민족 감정 등으로 인한 우여곡절이 적지 않게 발생해 왔다.

하지만 정작 한국 사회가 내버리고 나서 뒷북으로 '동포애'를 들먹이는 것도 일방주의가 아닐까. <조용한 이주>는 물론 입양 당사자가 자신들의 생생한 체험을 보편적 공감으로 승화해낸 일련의 작업들은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일부로서 '경계인'의 삶을 우리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해준다. 이 소중한 경험은 그들의 삶과 이면의 고통이 우려낸 씁쓸한 진실에 대한 공감으로 직결되어야 할 테다.

<작품정보>

조용한 이주 The Quiet Migration
2023│덴마크│드라마
2024.03.20. 개봉│103분│12세 관람가
감독 말레나 최
각본 말레나 최, 시셀 달스가드 톰센
출연 코르넬리우스 원 리델클라우센
수입/배급 필름다빈

2023 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
2023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초청
2023 11회 디아스포라영화제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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