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쿠와 세계' 포스터 속 세 남녀의 동상이몽

이원호 2024. 3. 1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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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오키쿠와 세계>

[이원호 기자]

 영화 <오키쿠와 세계>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영화의 포스터를 보면 세 남녀가 오두막 같은 곳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 이 모습은 황순원 소설가의 단편소설 <소나기>와 손예진, 조승우 주연의 멜로영화 <클래식>을 떠올려본다면 로맨틱하고, 낭만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난 후에 이 포스터를 다시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영화 <오키쿠와 세계>는 사무라이 가문의 딸 오키쿠(쿠로키 하루)와 인분을 사고 팔며 살아가는 야스케(이케마츠 소스케), 그리고 야스케와 함께 일하게 되는 츄지(칸 이치로)의 이야기다. 앞서 인분이라고 표현했지만 쉽게 말해서 똥을 사고 파는 사람의 이야기인데, '똥'이라는 단어가 주는 천박함의 이면에는 아주 강력한 유머가 있다. 사람마다 웃게 되는 유머코드는 다양하겠지만 '똥'에 관련된 유머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다. (물론 화장실 유머처럼 너무 자극적인 건 호불호가 나뉘기도 한다) 

다시 포스터 이야기를 해보자면 세 남녀가 로맨틱하고, 낭만적으로 비를 피해 서 있는 오두막은 사실 변소... 즉, 화장실이다. 똥 냄새가 나는 화장실 앞에서 남녀가 비를 피하고 있는 것이다. 로맨스 영화처럼 보였던 포스터가 코미디 영화로 보이게 되는 설정이다.  

이 영화는 관객 입장에서 초이스를 하기엔 손이 가지 않은 부분 투성이다.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감독이나 배우가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국내에서 선호하는 일본영화의 장르(애니메이션)도 아니다. 게다가 일본의 시대극, 흑백영화라는 설정도 고리타분하거나 어렵고, 지루하거나 너무 진지하기만 한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똥'이라는 설정까지 나온다고 하니 영화를 보고나서 불쾌한 기분이 드는 건 아닌지 의심도 하게 된다. 

그런 수 많은 의심과 부정적인 선입견에 반기를 들고싶은 건 이 영화를 본 관객 중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내가 관람했던 극장 안에 모든 관객들은 박장대소하며 영화에 빠져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가볍기만 한 것도 아니다. 세 남녀의 이야기를 웃으면서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신분이나 계급, 그리고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 떠올리게 된다. 

포스터 속 세 남녀의 표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키쿠는 본인의 이미지와 품위를 신경쓰는 것인지, 아니면 호감 있어하는 남자에게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다소 긴장한 모습이다. 하지만 두 남자는 오로지 하늘만 쳐다보며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로 인해 본인의 일에 차질이 생길 것이 염려되어 오늘 하루 일당을 걱정하는 모습이, 그런 건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한 오키쿠의 표정과 대비된다. 

많은 사람들이 연예인의 모습을 보며 관심을 갖거나 웃게 되는 건, 자신과는 다른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예전 시대로 말하면 광대인데, 사람 중에 가장 낮은 계급이 광대이다.(물론 현 시대 연예인의 계급은 높다고 볼 수 있지만 도덕적인 잣대로 바라보며 구설수나 이성을 사귀는 문제에 있어서 비난을 받을 때는 그 어떤 계급보다 가혹하기도 하다) 

<오키쿠와 세계> 속 츄지가 종이를 주워서 파는 일을 포기하고 야스케와 함께 똥을 사고 파는 이유는 '종이 일'보다 '똥 일'이 벌이가 더 낫기 때문이다. '종이 일'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똥 일'은 일단 마음을 정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의 일이다.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까지 내려놔야만 할 수 있는 '최하층민 분뇨업자'라는 일을, 츄지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낮은 신분이기 때문에 절박한 마음으로 시작했고, 지금도 계속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영화 <기생충> 속 기택(송강호)를 보며 박 사장(고 이선균)과 사모님(조여정)이 코를 막는 것처럼 츄지와 야스케는 일 때문에 방문하는 길마다 모두가 싫어하는 똥과 같은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모두가 함께 사는 주거 공간에 자연의 흐름에 의한 대참사가 벌어져서 똥을 빨리 치워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츄지와 야스케를 구원자처럼 바라보기도 한다.

그런 시선은 관객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부자가 되고 싶지만 부자가 될 수 없는 일장춘몽인 세상에서 부자도 할 수 없는 일을 야스케와 츄지가 해결해줌으로써 모두가 누릴 수 없는 평등함을 그나마 공평하게 대리만족 시켜주는 존재로 보여진다. 마치 <배트맨> 영화를 볼 때, 91조 원의 주인공 배트맨이 빌런을 물리치는 것보다는 그 빌런이자 광대라고 할 수 있는 조커를 보면서 그의 언더독에 더 열광하는 것처럼 말이다. 

<오키쿠와 세계>라는 제목의 원래 일본 제목은 <오키쿠의 세계>이다. 그럼 주인공은 '오키쿠'인 것일까... 국내 수입사에서는 왜 제목을 <오키쿠와 세계>로 바꾼 것일까.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19세기 에도시대라는 가문의 몰락이라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추측이 된다. 다른 나라 입장에서는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신분과 계급의 상대성'인 것 같다. 오키쿠 입장에서는 가문이 몰락한 자신의 모습이, 호감을 느끼는 츄지에 비해 초라하다고 느꼈을 수 있지만 츄지 입장에서는 똥을 사고 파는 더럽고 냄새나는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비록 몰락한 가문이라 할지라도 격식을 갖춘 모습의 전통이 있었던 사무라이 가문 딸, 오키쿠에 비해 초라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분과 계급이라는 것이 절대적이기도 하지만 각자의 '세계'에 있어서는 상대적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키쿠의 아버지가 츄지에게 말한 '세계'라는 말이 츄지의 고백으로 이어지면서 느껴지는 감동은 <오키쿠와 세계>라는 제목이 '누가 주인공이냐'는 것보다 '어떤 세계가 주인공이냐'를 떠올리게 된다. 나의 세계는 어디까지 왔고, 누구에게 가장 아름다운 걸까. 분명한 것은 모두에게 청춘이라는 세계가 있을 것이고, 그걸 인지하는 순간 츄지처럼 말할 것이다. 

"청춘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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