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의 미래]이영범 원장 "대변환기…모자이크 플래닝 방식으로 접근해야"

배경환 2024. 3. 1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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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도시공간 국책연구기관 총괄
지속가능한 보행도시 갖춰 시민 공유해야
"용산 교통체계 변화가 서울의 미래 모습"

이영범 건축공간연구원 원장은 국민들의 더 나은 삶은 '도시공간의 가치 전환'에서 시작한다고 믿는다. 도시를 물리적이고 단편적인 개념에서 접근하는 게 아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적인 삶들이 결합한 총체로 봐야 한다는 논리다. 국내 최초의 건축·도시 분야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자 국내 유일의 도시공간 분야 국책연구기관인 건축공간연구원이 변화하는 사회의 요구와 직면한 과제들을 '도시공간'에서 고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대 건축학 학·석사를 거쳐 유럽 내 가장 탄탄한 건축학과 커리큘럼을 보유한 영국 AA School(Architectural Association School of Architecture)에서 주택 및 도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창조도시를 넘어서', '건축과 도시, 공공성으로 읽다' 등 도시공간에 관한 저서를 집필하며 이론을 다졌다. 용산의 미래도 '도시공간'이라는 개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용산이 글로벌 도시로 성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공간 재창출 방향을 듣고 싶다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영범 건축공간연구원 원장.

본지 충무로 사옥에서 만난 이 원장은 용산의 미래를 설계하는 방식으로 '모자이크 플래닝'을 제시했다. 작은 픽셀들로 구분돼 있지만, 결국엔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것으로, 지금의 런던이 글로벌 도시로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개발 방식이 활용됐다.

이 원장은 "부분 부분을 따로 보지 않고 긴 호흡의 마스터플랜 식으로 마련해야 한다"며 "여기에 맞춰 보존이나 재생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용산 역시 용산국제업무지구는 물론 용산공원 개방, 철도 지하화, 노후주거지 정비 등 크고 작은 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만큼 각 계획을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구성해 결국엔 유기적 개념으로 연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판단에는 용산이 가진 역사성과 지리적 이점이 있다. 이 원장은 용산을 "외세의 땅으로 기록돼 있는 곳"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용산이 새로운 국가상징공간으로 조성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 원장은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해 철도 관련 시설과 병참 군사 지휘소가 세워지면서 군사 본거지로 개발된 용산은 해방 이후 주한미군이 들어와 오랜 시간 미군기지로 사용되는 등 근현대사의 기억공간으로서의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며 "남산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생태환경 축을 구성하는 서울의 중요한 녹색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장소적 가치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범 건축공간연구원 원장.

특히 이 원장은 용산공원의 역할에 주목했다. 이 원장은 "용산국가공원이 완성되면 이곳은 국가의 주요 공공기관이 함께하면서 시민들에게는 열려 있는 광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기존의 국립박물관과 더불어 용산공원 내 미군기지 시설들을 활용한 다양한 문화시설이 들어선다면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처럼 국가의 공공기관과 공원 그리고 문화시설이 함께 모인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국가상징공간으로 조성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 원장이 제시한 용산 '모자이크 플래닝'의 밑그림은 어떻게 전개돼야 할까.

이 원장은 그 시작점으로 '지속가능한 보행 도시 네트워크'를 지목했다. 개발이 산발적으로 이뤄지더라도 개발로 탄생한 다양한 기능과 시설을 시민들이 쉽고 빠르게 공유할 수 있는 도시를 계획해야 한다는 것으로 "고층 고밀도의 복합개발을 통해 도시의 첨단 업무환경을 갖추는 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이런 보행도시로서의 공간 시스템을 구현하는 게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또 다른 축으로 '이동의 변화'를 지목한 점도 눈길을 끈다. 용산의 개발 혁명에 따라 교통 분야 역시 도시공간의 변화를 이끌어 갈 것이라는 판단으로 읽힌다.

이영범 건축공간연구원 원장.

이 원장은 "스마트 교통혁신에 따라 미래 교통은 지하, 항공, 자율주행 등 3차원 통합교통체계로 진화하는데, 용산 개발에서 스마트시티의 첨단환경을 갖추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업무, 주거, 문화, 의료, 교육, 공공시설, 녹지 등의 기능을 하나의 메가시티로 묶어 개발하는 콤팩트시티는 도시 이동량을 줄여 탄소중립을 실현하고 입체적 도시기능을 통해 새로운 주거공동체를 실현할 것"이라며 "이는 결국 유연하고 탄력적인 토지이용에도 도움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용산의 재창조 과정에서 고령화나 저출산 등 사회적 문제 해결까지 가능하다는 이 원장의 논리는 도시의 정비 등 크고 작은 개발계획을 수립하는 정부와 지자체들이 주목해야 할 대목으로 꼽힌다.

이 원장이 꺼낸 이론은 도시공간을 새롭게 구성하면서 다양한 복지 요소를 감안한 이른바 '공간복지'. 이 원장은 "지역이 갖는 고유의 장소적 가치나 매력을 재발견해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로컬 콘텐츠로 재창조해 대도시의 주민들과의 교류를 통해 관계 인구를 늘려나가는 게 (저출산·고령화의) 보편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공간복지'의 경우, 건축공간연구원의 중장기 핵심 연구과제로도 꼽힌다. 국책연구원으로서 국민 삶의 불편한 부분을 공간으로 접근해 해소, 국가 정책 어젠다 설정에 반영하겠다는 게 이 원장의 목표다. 다음은 건축공간연구원 연구 분야에 대한 이 원장과의 일문일답.

-일반적인 도시계획이나 주택정책과 달리 경제, 사회적 문제들을 '도시 공간'에 초점을 맞춰 접근한다는 방식 자체가 새롭다. 특히 빈집, 지방 이주 청년, 인구 감소와 같은 사회적 문제들도 연구가 진행 중인데 기존 연구들과의 차별점이 있다면?

▲공간복지라는 것은 생소한 개념이지만 지금의 위에서 아래로 전달되는 식의 시대적 복지와는 다르다. 예컨대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주어지는 수급비는 최소한의 복지로 이들이 살고 있는 거주 환경을 보면 열악한 경우가 많다. 물리적 문제를 넘어 질병, 건강의 문제 등 취약점에 노출되는 셈으로 이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공간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는 국가가 부담하는 의료비가 줄어들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시설물 자체가 공간복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살아가는 경제적 환경에 따라 그 사람들에게 맞춤형으로 공간을 대응해주면 좋은 것들이 있다. 이런 부분들을 섬세하게 다루지 못하면 그 사람들의 삶은 더 피폐하게 되고 질병, 장애에 노출돼 사후에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비용이 커진다. 연령대나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조건 등에 맞춰 공간을 맞춤형으로 바꿔주는 것도 공간복지의 개념이다.

-올해 연구원의 주요 연구 분야 중에서도 공간복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간단히 소개를 해준다면.

▲현재 연구원은 어촌, 농촌 등에 빈집이 많고 노인들이 많은 상황에서 유휴 공간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이분들이 본인이 살았던 정주 환경에서 마지막까지 생을 마칠 수 있도록 하고, 이 공간들을 마을 활력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다. 빈집들을 묶어 재구조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융합 차원에서 말씀하시는 도시공간이나 공간복지의 경우, 비용 문제도 떼어놓고 고민할 수는 없다. 이런 문제들은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나.

▲어려운 문제다. 용산을 예로 들면 용산공원이 생기고 광역교통망이 생겨 기회의 땅이 된다면 땅값은 오르고 집값에 반영된다. 하지만 규제보다는 개발 행위를 풀어주되 개발이익 환수, 공공기여 등 사회에 다시 환원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는 것도 방법이다. 런던의 '더 샤드' 개발이 다양한 공공기여가 이뤄진 경우다. 도시가 필요로 하는 개발 행위를 허가한 대신 런던 시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요구했다. 인근 브릿지역과의 연계는 물론 저층부를 모두 시민에게 개방하고 도로망 체계도 개선했다. 민간 자본의 개발이익과 지역사회의 사회적이익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배경환 기자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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