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이름에 마약 김밥도 못 쓰는데… ‘대마 맛·향’ 액상담배 버젓이 광고

민태원 2024. 3. 19.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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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없는 세상] 무분별한 신종담배 온라인 판촉
온라인 공간에서 판촉되고 있는 대마향 표방 액상 전자담배. 오른쪽은 무료 나눔 이벤트를 한다고 광고하고 있다.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 제공


온라인을 중심으로 신종담배의 판촉이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가운데, 마약인 대마의 ‘맛과 향’을 표방한 액상 전자담배가 등장했다. 업체 측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대마 성분은 포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정확한 담배 성분이 공개되지 않는 국내 현실에서 이를 객관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마약 범죄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규제가 허술한 액상 전자담배의 판촉에 마약 관련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청소년과 젊은 층에 마약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자칫 긍정적·친화적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18일 한국건강증진개발원과 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 모니터링에 따르면 지난해 말 다수의 블로그와 온라인 쇼핑몰 등에 대마초 향 액상 전자담배의 판매·광고 게시글과 이미지, 체험 후기들이 올라왔다. ‘대마 OOOO 품종의 향과 맛을 풍부하게 살린 액상 담배’ ‘향정신 성분을 배제하고 향을 완벽히 구현’과 같은 광고문구들이 등장했다. 니코틴 0.99%, 환각 물질 THC와 CBD 성분은 ‘제로 0%’라고 표시된 경우도 있었다.

이 제품의 제조 업체는 안동 대마규제자유특구 기업 중 한 곳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경북도 관계자는 19일 국민일보에 “확인 결과 해당 업체는 특구 사업을 하도록 지정받지 않았다. 특구 업체라고 사칭해 온라인 판매 광고를 한 것 같다.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경찰 고발 등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알려왔다.

안동 대마규제자유특구는 정확히는 경북산업용헴프 규제자유특구로, 저환각성 대마(헴프) 재배를 통해 의료용·바이오 제품을 개발해 사업화할 수 있도록 중소벤처기업부가 2020년 처음 지정한 뒤 지난해 재연장됐다.

이성규 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대마 식물에는 최소 113가지 성분이 들어있다. THC 같은 대표적 환각 성분이 안 들어갔다 하더라도 국내에서 취급이 불법인 대마초를 내세워 전자담배 액상을 만들어 파는 것은 사회 정서상 맞지 않는다”며 “대마의 맛과 향을 내는 담배를 피우면 진짜 대마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겠나. 흡연자에게 실제 대마 맛을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다른 블로그에는 대마향 향료를 썼다는 또 다른 액상 담배 제품의 사진과 함께 “베이핑 할수록 오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는 체험 글이 덧붙여 있다. ‘베이핑’은 전자담배 피우는 행위를 뜻한다.

대마를 내세운 액상 전자담배 판촉을 방치하는 것은 마약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정부 정책과도 배치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월 마약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해 식품 등에 대마, 마약 등의 문구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표시·광고 행위를 하지 말도록 영업자에 권고했다. 관련 식품 표시·광고법 개정안은 오는 7월 시행된다. 제품에 대마잎을 표시하거나 사용 후기 등 환각을 연상시키는 내용의 광고도 금지된다. 하지만 식품보다 더 해로울 것으로 추정되는 액상 전자담배는 담배사업법상 담배 정의에 해당하지 않아 온라인 판매·광고 행위 등 규제를 적용하기 힘들다.

이 센터장은 “식약처에서 ‘마약 김밥’ ‘마약 떡볶이’ 같은 식품 표시 단속에 나선 것은 해당 표현들이 마약을 계속 하고 싶고 끊을 수 없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때문이다. 대마향 액상 담배 역시 마약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허물어지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액상 전자담배는 실제 신종 마약의 유통 수단이 되기도 한다. 전자담배 기기에 액상 합성 대마나 펜타닐 등을 몰래 넣어 피우게 하는 범죄가 종종 벌어지고 있으며 10대가 직접 관여하거나 피해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이 센터장은 “얼마 전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처럼 청소년이 쉽게 접하는 전자담배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마약에 중독되거나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일선 학교 단위 흡연 교육에 전자담배와 마약의 위험성을 부각하는 내용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는 올 초 플랫폼 업체 2곳과 손잡고 학교 안전교육 애플리케이션 ‘세이프틴(safeteen)’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다음 달부터 전국 초중고생 대상으로 신종담배와 마약 예방 교육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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