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놀리는 이 맥주...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윤한샘의 맥주실록]

윤한샘 2024. 3. 1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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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샘의 맥주실록] 크래프트 맥주, 정치를 말하다

총선 시즌입니다. 정치에 항상 등장하는 술은 맥주입니다. 맥주와 정치에 대해 2부로 나눠 전해보려고 합니다. 1부는 정치를 품은 맥주, 2부는 크래프트 맥주와 정치에 대해 이야기해봅니다. 이 어지러운 시기, 맥주 이야기로 머리를 식혀보는 건 어떨까요? <기자말>

[윤한샘 기자]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 딜런 멀바니가 버드라이트를 마시는 모습.
ⓒ 딜런 멀바니 인스타그램
 
2023년 미국 1등 맥주 버드라이트(Bud Light)가 졸지에 좌파 맥주가 됐다. 미국 내 유력 보수 정치인과 인플루언서들은 버드라이트에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며 보이콧에 들어갔고 미국 최대 보수 언론 폭스는 제조사 에이브이인베브(AB InBev)를 연일 질타했다. 

이들이 발끈한 이유는 에이브이인베브가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 딜런 멀바니(Dylan Mulvaney)에게 버드라이트를 협찬했기 때문이다. 남성 코미디언이었던 멀바니는 소셜 미디어 틱톡을 통해 자신이 여성이 되는 모습을 올려 화제가 된 인물이다. 무려 1000만 명이 넘는 팔로워와 10억 뷰에 달하는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여성이 된 1주년을 기념하며 올린 포스팅이 발단이었다. 사진 속 그녀는 에이브이인베브가 특별히 제작한 버드라이트를 들고 있었다. 맥주 라벨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멀바니가 보였다. 성소수자에 반감을 갖고 있는 미국 보수층은 자신들이 즐겨 마시던 버드라이트에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 곧 보수 인플루언서들이 불매운동을 시작했고 버드라이트 매출은 25%, 주가도 6조 6천억 원이 폭락했다. 

에이브이인베브 최고경영자 마이클 두커리스는 수만 명의 인플루언서 중 1명에게 1캔의 맥주만 보냈을 뿐, 공식 광고는 아니었다고 해명하며 논란을 진화시키려 했다. 그러자 반대 진영에 있는 성소수자들과 인권 운동가들이 들고일어났다. 소수자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짓밟았다는 주장이었다. 

버드라이트(Bud Light) vs. 울트라 라이트(Ultra Right)  

에이브이인베브가 진영을 염두에 두며 정치적 마케팅을 기획한 것 같지는 않다. 요즘 미국 기업들은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이라 불리는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이란 인종, 민족, 젠더, 종교에 들어있는 편향성과 선입견을 극복하자는 운동이다. 디즈니, 스타벅스, 나이키 등 유수의 기업들이 이 흐름을 따르는 작품이나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이익이 중요한 기업들이 정치적 사상을 고심하며 이런 움직임을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넓어지는 고객 스펙트럼과 시대 정서에 맞춘 메시지와 상품을 선보일 뿐이다. PC를 고민하는 기업이라는 힙한 이미지도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아마 버드라이트의 기획 또한 다분히 상업적 목적을 위한 작은 마케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에이브이인베브는 조속히 이 논란을 덮고자 했지만, 미국 보수 세력의 반대 운동은 더욱 거세졌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조지아 주 캠페인을 진행했던 세스 웨더스는 버드라이트에 맞서 울트라 라이트 비어(Ultra Right beer)의 출시를 발표했다. 그는 미국이 어느 화장실을 써야 하는지도 모르는 회사의 맥주를 마시고 있다고 조롱하며, 진짜 보수 맥주를 마시라고 홍보했다. 어처구니없지만 울트라 라이트 맥주로 인해 버드라이트는 의도와 무관하게 진보 맥주가 됐다.

에이브이인베브는 담당 이사 2명을 휴직시키고 새로운 마케팅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여전히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비즈니스에서 정치적 제스처는 늘 위험을 동반한다. 옳고 그름을 토론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모습은 비즈니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버드라이트 같은 대중맥주는 정치를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더구나 버드는 그동안 전형적인 미국 노동자를 광고에서 그려왔다. 모든 미국인을 위한 '미국' 맥주가 버드라이트였다. 모든 고객을 품어야 하는 숙명을 가진 맥주가 본분을 망각한 패착이었다. 

크래프트 맥주, 정치를 담다
 
 투표하면 맥주 나눠드립니다. Vote Punk
ⓒ BrewDog 홈페이지
 
맥주가 정치를 말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대중맥주와 달리 크래프트 맥주는 과감히 정치를 다룬다. 울트라 라이트 비어가 보수 성향 소비자를 대상으로 했다면 블랙 이즈 뷰티풀(Black Is Beautiful)은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진보적 메시지를 외치고 있다. 

이 맥주는 2018년 미네소타 경찰의 과도한 진압으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웨더스 소울스 브루잉은 '검은 것은 아름답다'라는 글귀가 있는 라벨을 통해 전 세계 크래프트 양조장과 연대를 시도했다. 인종차별 반대에 뜻을 같이하는 맥주를 공동으로 기획하고 판매 수익은 모두 지역 인권 센터에 기부하는 조건이었다. 

맥주 스타일은 짙은 흑색과 진한 쓴맛을 품고 있는 임페리얼 스타우트였다. 스타일은 바꿀 수 없지만 그밖에 다른 부분은 양조장의 개성을 표출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미국은 물론 유럽, 남미, 아시아, 전 세계 1000개가 넘는 크래프트 양조장이 동참했다. 한국에서는 제주도에 있는 맥파이를 통해 차별에 반대하는 메시지가 전달됐다. 

투표 독려 캠페인을 전개한 크래프트 맥주도 있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영연방을 대표하는 크래프트 맥주 브루독은 2017년과 2019년 보트 펑크(Vote Punk)라고 인쇄된 대형버스를 운행하며 투표를 한 모든 사람에게 펑크 IPA를 공짜로 나눠줬다. 당시는 브렉시트로 영연방이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브루독 대표 제임스 와트는 "우리는 어느 진영에 속해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누구에게 투표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단지 투표하는 모든 이에게 맥주를 사주고 싶을 뿐입니다. 우리 조국의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좋은 크래프트 맥주를 마시면서 이를 극복하기 원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브루독은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맥주로도 유명하다. 2014년 러시아 소치 올림픽에서 동성애에 반대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항의하는 '안녕, 내 이름은 블라디미르야'(Hello My Name Is Vladimir)를 출시했고 2019년에는 파리 기후 조약 탈퇴를 선언한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꼬는 '지구를 다시 위대하게'(Make Earth Great Again)도 선보였다. 

현실 정치인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브렉시트 강력 옹호자인 보리스 존슨이 영국 총리로 임명되자 '안녕, 내 이름은 (선출되지 않은) 보리스야'(Hello My Name Is (Unelected) Boris)를 내놓으며 조롱했고 2022년 브렉시트와 코로나 팬데믹에 무력하게 대응한 존슨 총리가 사임할 때는 '거짓말쟁이 보리스'(Boris-Lie Pale ale)를 출시하며 현실 정치를 비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보리스 영국 총리를 비판하기 위해 출시한 브루독 맥주
ⓒ BrewDog 홈페이지
 
크래프트 맥주, 저항운동을 이끌다

2023년 5월 총선에서 진보적 성격을 지닌 전진당(MFP, Move Forward Party)이 압승을 거두는 일이 일어났다. 오랫동안 독재 정권하에 있던 태국에서 혁명 같은 사건이었다. 놀랍게도 전진당 승리 뒤에는 맥주 양조 자유화를 주장하는 크래프트 맥주들이 있었다. 

태국은 거대한 두 맥주 브랜드, 싱하와 창이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배경에는 독점 카르텔을 떠받치고 있는 알코올음료 관리법이 있었다. 태국에서 맥주 양조장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10만 리터의 맥주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과 1000만 밧(약 3억 원)의 자본금이 필요했다. 소규모 양조장은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에 맥주 광고를 올리는 것도 허용되지 않으며 홈브루잉 또한 불법이다. 

태국 소규모 맥주 양조자들은 규제를 피하기 위해 싱가포르나 베트남에서 맥주를 만든 후 수입하는 방법으로 크래프트 맥주 문화를 전파했다. 이런 노력은 태국인들이 크래프트 맥주에  관심을 갖는 토대를 만들었다. 게다가 자국에서 맥주를 자유롭게 양조할 수 없는 현실을 자각하고 이들을 응원하는 계기도 됐다.

소규모 양조장 이슈가 조금씩 부각될 무렵, 결정적인 일이 터졌다. 맥주 양조 자유화를 위한 네트워크 프라차촌 비어(Prachachon Beer) 창립자 타나콘(Thanakorn Tuamsa-ngiam)이 기소된 것이다. 그는 소셜 미디어에 맥주 교육 관련 내용을 지속적으로 게재했고 결국 벌금형을 받았다.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는 이상, 벌금은 계속 올라갔지만 타나콘은 포스팅을 내리지 않고 부당함에 저항했다. 이 흐름은 점차 양조 자유화 운동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진보 성향의 전진당은 양조 자유화 운동이 기득권 세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 기폭제가 되리라 직감했다. 그리고 이 분야에 상징적 인물인 타오피홉 림지트라콘(Taopiphop Limjitrikorn)을 영입했다. 그는 2017년 불법 홈브루잉 혐의로 체포되어 벌금형을 받았다. 타오피홉은 전진당에 입당한 후, 맥주 관련 법들이 중소기업의 기회를 박탈하고 거대 기업의 독점을 비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타호피홉과 타나콘을 비롯한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들의 저항은 1% 소수가 65% 이상 부를 소유하고 있는 태국 현실에서 울림이 되어갔다. 크래프트 맥주는 억압에 맞서 싸우는 자유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전진당은 수권 정당이 되면 양조 자유화 법을 통과시키겠다고 약속하며 불을 지폈다.  

타나콘은 여러 매체를 통해 크래프트 맥주가 태국 크래프트 맥주 산업이 관광 산업의 글로벌 허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양조 기술이 혁신되며 수출 산업도 증진될 것이라 말했다. 타오피홉은 맥주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도 전진당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리고 양조 자유화 법이 사회를 공정하게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라 설파했다.  
 
 태국의 양조 자유화 운동을 주도 하고 있는 타오피홉 림지트라콘
ⓒ 타오피홉 림지트라콘 페이스북
 
2023년 치러진 총선에서 전진당은 38.5%를 득표하며 12.7%를 얻은 태국 연합 정당(United Thai Nation Party)을 제치고 수권 정당으로 올라섰다. 진보 정당이 제1당이 된 것은 태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방콕 22구역 국회의원이 된 타오피홉은 법 개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고무적인 일은 싱하를 이끌고 있는 맥주 재벌 피티 브롬바크티 또한 전진당의 양조 자유법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방콕 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시장에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변화에 맞춰 발전하고 적응해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다양성 증가가 시장의 혁신과 발전을 불러올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크래프트 맥주가 항상 진보적인 위치에 있거나 진보 성향의 정치인만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비즈니스는 커질수록 이해관계가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그 속에서 진보와 보수 구분은 사라지곤 한다. 

예를 들어, 미국 크래프트 양조사 협회(BA, Brewers Association)는 2019년 협회 내에 정치 활동 위원회(PAC, Political Action Committee)를 두고 협회원의 이익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BA에 따르면 PAC는 정치 성향과 관계없이 소규모 독립 맥주 양조장을 이해하고 옹호하는 연방 공직자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자유 그리고 크래프트가 흐르는 사회

대중맥주에 비해 크래프트 맥주가 정치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비주류이기 때문이다. 크래프트 맥주는 애초에 생존을 위해 대기업 맥주와 전선을 긋고 언더독으로서 색을 분명히 해왔다. 시장은 작고 호불호도 있지만 다양성과 진정성이라는 가치를 명확히 표현하며 정체성을 다듬어 온 것이다. 

크래프트 맥주가 늘어갈수록 개성과 가치도 분화됐다. 개개의 가치에 호응하는 다양한 계층의 소비자도 생겼다. 자연스럽게 크래프트는 사전적 정의였던 '소규모'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 도시, 역사, 스포츠, 인권, 정치, 자연 등 다채로운 가치를 포용할 수 있게 됐다. 

크래프트 맥주는 사람과 사회를 이야기할 수 있는 술로 자리매김했다. 넓은 시장과 대중을 상대하는 대기업 맥주들은 할 수 없는 세계다. 옳고 그름의 영역은 아니다. 태생과 환경, 성장 과정이 다른 형제와 같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맥주도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는 환경이다. 맥주가 대통령을 비판해도 탄압받지 않는 사회, 소수자를 대변하고 환경문제를 떠들어도 비난받지 않는 사회, 어쩌면 크래프트 맥주냐, 대중 맥주냐보다 자유 의지가 구속되는 사회인지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권력이 풍자화와 영화에 발끈하는 사회에서 크래프트를 논하는 것은 아이러니일 수 있다.

크래프트 맥주는 자유로운 사회 안에서 발전한다. 다양성이 존중되고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 진정한 자유가 흐르고 의지가 속박되지 않는 사회, 국민이 진정한 국가의 주인인 사회에서 숨 쉴 수 있다. 다가오는 선거는 대한민국에서 크래프트가 '수제'를 넘어 다른 의미를 담을 수 있는지 결정되는 시간이다. 진정한 크래프트가 대한민국에 흐르기를 바라며. Vote Craft.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중복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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