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뽈터뷰] '나겔스만부터 클린스만까지' 김진수에게 독일 생활과 아시안컵을 묻다

윤효용 기자 2024. 3. 1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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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전북현대). 서형권 기자

[풋볼리스트=전주] 윤효용 기자= 국가대표 11년차 '베테랑' 김진수의 책임감은 이번 아시안컵을 계기로 더욱 커졌다. 실패로 돌아간 아시안컵 이후 첫 소집에 나서는 김진수는 그 어느 때보다 '승리'가 아닌 '방향'이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손흥민과 함께 '92라인'을 대표하는 김진수는 10년 넘게 대표팀 왼쪽 수비를 지키고 있다. 2013년 7월 호주를 상대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른 김진수는 부상일 때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대표팀에 발탁됐다. 2014 브라질 월드컵, 2018 러시아 월드컵은 부상으로 뛰지 못했지만, 2022년 카타르에서 마침내 가장 큰 무대를 누볐다.


소속팀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2017년 전북현대에 입단한 첫해부터 지금까지 국내 최고의 왼쪽 풀백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4번의 K리그 우승, FA컵 우승 등 총 5개의 트로피를 들며 우승 커리어도 쌓았다.


한국 최고인 지금은 상상이 안 되지만, 김진수가 처음부터 각광받은 건 아니었다. 국내에서 프로 데뷔를 원했음에도 드래프트에서 제안을 받지 못해 일본으로 떠나야 했다. 호펜하임에서는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으로부터 외면당하며 유럽 생활을 일찍 마쳤다.


이번 아시안컵도 김진수에게 아픔으로 남았다. 아시안컵 대비 전지훈련에서 부상을 당하며 초반 2경기에 빠졌고, 3차전부터 복귀했지만 토너먼트에서는 한 번도 뛰지 못했다. 고참으로서 대표팀 내 불화설에 대한 책임감도 컸다. 


'풋볼리스트'의 신규 인터뷰 시리즈 '뽈터뷰'의 첫 손님으로 초대된 김진수는 자신의 축구 인생 전반을 돌아보며 잊고 있던 옛 기억들을 꺼냈다. '인생 포지션' 풀백을 맡게 된 계기부터 독일 생활과 아시안컵, 전북 주장으로서 책임감까지 풍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풀백 변신과 일본행, 국가대표 김진수의 시작


김진수(전북현대). 서형권 기자

많은 선수들이 그렇듯, 김진수도 처음부터 수비수는 아니었다. 보통 윙어에서 풀백으로 내려오는 선수가 많은데 김진수는 크지 않은 키(177cm)에도 센터백까지 소화하며 더 다양한 역할을 모색했다. 그렇게 선택한 레프트백은 김진수의 인생 포지션이 됐다. 


"초등학교 때는 공격수를 봤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미드필더도 보다가 대학교 올라와서 사이드백을 시작했다. 대학은 성인 축구였고, 잘하는 선수들이 엄청 많았다. 공격수나 미드필더로는 프로를 못 가겠다고 생각했다. 왼발잡이기도 했고, 키도 엄청 크지도 않았다. 그래서 감독님한테 사이드백을 먼저 얘기했다. 감독님은 흔쾌히 얘기를 들어주셨다. 스로인을 던져보라고 하셨는데, 생각보다 멀리 나가기도 했다. 중간중간 연령별 대표팀에 가서도 사이드백을 봤다."


기회를 찾아 떠난 J리그도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 됐다. "원래 학교에서 K리그 드래프트를 넣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날 원하는 팀이 없었다. 처음으로  운동을 그만두고 싶었던 시기다. 연령별 대표도 했고, (김)영권이 형 등 1989년생 형들 틈에서 올림픽대표도 뽑혔으니까(2011년, 당시 19세) 프로는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실망해서 운동을 그만둔다고 아버지한테 말씀드리기도 했다. 그때 아버지가 '지금까지 했는데 아깝지 않겠냐, 그만해도 상관없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셔서 찾아간 팀이 (알비렉스)니가타였다."


일본은 김진수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김진수는 동계훈련 때부터 기회를 받기 시작했고 프로 레프트백으로 빠르게 자리잡았다. 니가타에서는 총 78경기를 뛰며 3골 6도움을 기록했다. 그렇게 2년을 뛴 뒤 독일 분데스리가 호펜하임으로 이적하며 단숨에 유럽파가 됐다. 


▲김진수가 호펜하임을 떠난 이유, 나겔스만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 게티이미지코리아

호펜하임은 김진수를 가장 원했던 팀이다. 아시아 풀백에게 들인 이적료치고 상당히 큰 이적료를 냈다. 이적료는 100만 유로(약 14억 원)로 알려졌는데, 김진수는 "그것보다는 많았다. 얼마인지 정확하게 안다. 기사에 나온 것과 다른 부분이 많다"고 귀띔했다.


부상에도 자신을 받아준 고마운 팀이기도 했다. "사실 독일을 생각하진 않았다. 2014 월드컵을 나가기 전이었었는데, 유럽에서 오퍼들이 있었다. 월드컵을 나가면 더 괜찮아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쳤다. 월드컵에 못 나갔는데도 호펜하임에서 여전히 오라고 했다. 심지어 부상을 달고 있어 이적하고 3개월 동안 쉬어야 했다. 동계 훈련을 아예 못 했고, 그래서 '재활만 하다가 복귀를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호펜하임이 '너를 원한다'라고 해서 갔다. 그리고 개막전 때 바로 경기를 뛰었다."


김진수의 독일 생활 마지막 감독은 현 독일 대표팀 감독인 율리안 나겔스만이었다. 현재는 유럽 축구의 중심에 있는 감독이지만 아쉽게도 김진수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진 않았다. 나겔스만 감독은 김진수를 철저히 외면했고, 이것이 김진수가 호펜하임을 떠난 결정적인 이유였다. 


"나겔스만 감독님이 처음 오셨을 때부터 저를 경기에서 제외시켰다. 이유는 모르겠다. 벤치도 아니고 관중석으로 바로 뺐다. 몇 경기가 지나고 감독님한테 갔다. 이유를 물었고, 내가 부족한 게 있으면 더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제가 뛰던 포지션에 새로운 선수를 영입을 한 것도 아니었다. 학교를 왔다 갔다 하면서 분데스리가 경기를 뛰던 호펜하임 유스 선수를 썼다. 국가대표였던 저로선 납득이 더 안 갔다.  나겔스만 감독님은 '좋은 선수인 거 알고 있으니까 여기서 지금처럼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 했다."


면담 후 김진수는 '그래도 구상에는 있다'는 느낌에 다시 경쟁을 시작했지만, 여름 이적시장 이후에도 경기를 못 뛰었다. 떠나겠다고 하자 다시 '쓰겠다'고 했지만 그후 또 6개월 동안 뛰지 못했다. "그래서 12월에 나왔다."


▲부상과 불화설, 눈물 적신 1월 아시안컵


김진수(남자 축구대표팀). 대한축구협회 제공

큰 대회를 앞두고 자주 부상이 있었던 김진수는 이번 아시안컵을 앞두고도 부상을 당했다. 아부다비 전지훈련 이틀차부터 종아리 파열로 훈련에서 빠졌다. 예상보다 빨리 회복했지만 1, 2차전은 뛸 수 없었다.


"아부다비에 도착해서 첫 날 운동하고, 그 다음날 다쳤다. 경기 하던 중 크로스를 올린 뒤 종아리의 느낌이 왔다. 그땐 잘 몰랐는데, 다시 한 번 스프린트 하자 종아리가 아팠다. 병원에서 종아리가 찢어졌다고 하더라. 회복까지 2~3주 정도 필요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빨리 복귀했다. 2차전을 앞두고 운동은 할 수 있었지만 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3차전부터 한 번 해보자고 했고, 3차전에서 15분 정도 뛰었다."


요르단과 4강전에서 패하자, 벤치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분함과 아쉬움이 섞여 있는 눈물이었다. "선수는 경기 못 뛰면 많이 실망한다. 저는 다음 아시안컵을 35살 넘은 상태로 나가게 된다.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김진수의 키워드는 '동기부여'와 '자유'였다. 


"동기부여를 많이 선수들에게 주시는 분이었다. 경기를 나가기 전에 항상 감독님이 '한국에 있는 우리 팬들, 그리고 가족들, 그다음에 이 아시안컵을 보고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여기서 경기를 이겨야 된다' 등 이런 동기부여들을 많이 하셨다. 제가 경험했던 감독님 중에서는 선수들한테 자유를 많이 주셨던 분이다."


김진수는 다른 인터뷰에서 클린스만 감독 이야기에 한숨을 쉬며 화제가 됐다. 무심결에 나온 본심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이 한숨을 비롯해 클린스만 감독 시절 아쉬운 점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그 타이밍에 한숨이 나왔다. 의도하고 한숨을 쉰 건 아니다."


이제 대표팀은 황선홍 임시 감독 체제로 새롭게 시작한다. 김진수도 태국을 상대하는 3월 A매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아시안컵 실패, 대표팀 불화설 이후 처음으로 모이는 소집이다. 대표팀 최고참 중 한 명인 김진수는 어느 때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많은 일이 있었다. 있으면 안 되는 일도 벌어졌고, 저도 그 구성원이었다. 고참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 이번 명단을 봤을 때, 이제 완전히 고참이다. 경기를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대표팀이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되는지가 중요하다.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지금 책임감을 느끼고 있을 거다. 나라를 대표한다는 게 쉬운 게 아니다. 그래서 이번 해가 중요한 소집이 될 거라 생각한다."


▲아시안컵 비하인드 : 사우디 팬들의 환호 받은 김진수


김진수(남자 축구대표팀). 대한축구협회 제공

워낙 극적인 경기가 많았던 아시안컵이었는데, 김진수는 그 중에서 사우디전을 꼽았다. "사우디를 이길 거라고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경기가 잘 안 됐다. 분명히 준비를 한다고 잘 하고 나갔었는데 뭔가 잘 안 풀렸다"고 말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사우디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이 한국을 어렵게 했지만, 김진수가 뛰었다면 심리적으로는 좀 편했을지도 모른다. 김진수는 유일하게 사우디 팬들의 환호를 받은 한국 선수였다. 2020년부터 잠시 사우디 알나스르에 뛰었는데, 당시 팬들이 김진수를 잊지 않고 있던 것이다. 


"제가 사우디에서 뛰어 봐서 그런 건지, 밖에서 몸을 풀고 있으면 사우디 관중들이 저한테는 잘해줬다. 보통 7, 8명이 같이 몸을 푸는데, 그때 슈트트가르트에서 뛰는 정우영 등 유럽에서 뛰는 선수도 다 있었다. 그런데 관중들이 자꾸 저만 부르더라. 자기가 나스르 팬이라면서 제가 경기하는 걸 봤다고 했다. 함성도 컸지만 관중들과 너무 가까우니까 다 들렸다. 그러자 같이 몸 풀던 선수들이 '오, 형 그래도 사우디에서 좀 잘 했나 봐요' 말하길래 '그건 잘 모르겠는데 왜 나 만 부르냐. 유럽에서 유명한 애들 많은데'라고 했다. 손만 흔들어주도 막 소리를 지르니까, 선수들이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난다."


▲국가대표 동료에서 팀 동료가 된 '태환이형'


김진수, 김태환, 김영권(왼쪽부터), 이상 남자 축구대표팀. 서형권 기자

전북은 울산HD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김태환을 최근 영입하며 국가대표 풀백 라인을 꾸렸다. 김태환은 곧바로 전북의 오른쪽 주전 자리를 꿰찼다. 김진수도 "여러 가지로 팀에 많이 도움이 되는 선수다. 올 시즌을 치르면서 중요한 선수라고 생각한다"라며 김태환을 환영했다. 


그러나 시즌 초반부터 울산과 연전이 찾아오면서 김태환이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울산 팬들은 차가웠다. 매끄럽지 않았던 이적 과정에 라이벌 팀 유니폼까지 입은 김태환에게 야유를 쏟아냈다. ACL 1차전 이후 김태환이 90도 인사로 사과했지만 무응답으로 반응했다. 


그럼에도 김진수는 걱정하지 않았다. "태환이 형이 저보다 경험도 나이도 많은 선배다. 태환이 형도 분명히 아쉬운 부분이 분명히 있을 거고, 울산 팬분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러나 선수라면 자신을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게 맞다고 저는 생각한다. 저도 전복을 너무 사랑하고 지금도 주장을 하고 하지만, 전북이 언젠가는 저를 필요로 하지 않은 순간이 있을 수도 있다. 사람 일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태환이 형이 여러 가지 많은 생각들이 들 순 있다. 그러나 경기장 안과 밖은 분리를 잘 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북 주장이지만 ACL 우승은 울산이


김진수(전북현대). 서형권 기자

ACL 우승은 누가 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김진수의 대답은 '울산'이었다. 전북은 울산 또는 알힐랄(사우디) 중 한 팀이 우승해 줘야 클럽월드컵에 함께 나갈 수 있다. 울산이 유일하게 남은 한국 팀이고, 전북이 클럽월드컵을 나갈 수 있다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대승적'인 이유였다.


"같은 한국 팀이 우승했으면 한다. 1차전에서 많은 득점을 할 수 있었고, 2차전에서도 분명 실점하기 전까지 저희 찬스가 많았다. 거기서 득점을 했으면 결과는 달라졌을 거다"


이번 시즌 주장 완장을 차면서 책임감은 더욱 커졌다. 시즌 초반에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어 더욱 어깨가 무겁다. 전북은 최근 5경기에서 4무 1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김진수는 조만간 원하는 결과가 나올 거라 자신했다. 좋아지는 경기력과 선수단 분위기가 이유였다. 


"분위기는 괜찮다. 그래서 잘 하고 있다 느끼고 있다. 주장을 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게 '경기에 많이 나가지 못하는 선수들을 어떻게 케어할까'였다. 싫은 소리도 해야 되고, 잘 이끌어서 가야 한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도 된다. 그러나 제가 먼저 다가가 이야기하고 경기를 나가지 못하는 선수들을 잘 챙기다 보면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김진수는 전북의 반등을 약속했다. "사실 엄청 나빴던 경기는 없었다. 다만 경기 때마다 찾아오는 찬스들을 저희가 다 못 넣다 보니 비기거나 지고 있다. 아마 공격수들도 부담을 많이 가지고 있을 것 같다. 당장 이제 내일 모레 있을 김천 경기부터 터져주면 좋겠다."


김진수 사인볼. 서형권 기자

사진= 풋볼리스트, 게티이미지코리아,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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