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질로 악행 끊어내고… 망치질로 재활의지 다지고…

나경연 2024. 3. 16.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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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교도소 목공작업소 르포
충남 공주시 공주교도소 목공작업장 내에서 지난 6일 수형자들이 엔드그레인 도마를 제작하고 있다. 몇몇 수형자들은 도마 모서리 부분을 둥글게 다듬는 작업을 하고 있고, 나머지 수형자는 엔드그레인 도마 표면을 매끄럽게 만드는 ‘샌딩질’을 하고 있다. 공주교도소 제공


지난 6일 오전 10시쯤 충남 공주시 공주교도소 목공작업장. 푸른색 수의를 입은 수형자 5명이 저마다 작업대 앞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10평 남짓한 공간에 놓인 목공 기계들도 쉼 없이 돌아갔다. 한 수형자가 원목 재단기로 기다란 원목 상판을 자르기 시작하자 운동장에서 들려오던 수형자들의 함성이 순식간에 재단기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작업장 내부는 금세 뿌연 나무 먼지로 가득 찼다.

수형자들은 교도소에서 복역하며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죗값을 치른다. 그러다 형기를 마치면 다시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효과적인 교정·교화 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다. 올바른 교정이 이뤄져야 향후 수형자가 사회에 나가도 큰 문제 없이 적응하고, 시민 안전도 보장할 수 있다.

목공은 이 교도소가 마련한 교화 프로그램 중 하나다. 수형자들은 목공품을 만들며 단절된 사회로 복귀해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공주교도소 내부 목공작업장이 언론에 공개된 건 처음이다.

목공작업장… “본인 작품이 목표”

작업장 책상 곳곳에는 ‘엔드그레인 도마’가 쌓여 있었다. 엔드그레인 도마는 나무의 나이테 무늬를 그대로 살린 도마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17년차 교도관인 주창일 교위가 2년 전부터 작업장 수형자들과 준비해 시제품 출시까지 마친 공주교도소의 대표 작품이다.

목공작업장의 총관리자는 주 교위지만 디자인을 고르고 제품을 완성하는 과정만큼은 수형자 의견이 가장 많이 반영된다. 주 교위는 “제작할 제품의 사진을 보고 도면을 그리는 것 또한 수형자들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작업장 곳곳에는 수형자가 도면을 그리면서 고민한 흔적이 담긴 A4용지 수십장이 흩어져 있었다.

작업장 내에는 원목재단기, 자동대패작업기, 벨트샌더기, 레이저 조각기 등 웬만한 목공소처럼 전문 기계들이 모두 갖춰져 있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우든펜 작업이다. 검은색 토시를 양팔에 낀 수형자는 손가락 한 뼘 정도 되는 길이의 목재를 목재터닝선반에 고정한 뒤 빠르게 회전하는 목재의 끌작업을 진행했다. 목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지만 수형자의 끌작업 10분 만에 멀끔한 우든펜이 완성됐다.

이곳 작업장에는 대부분 장기수가 많다. 다른 교도 작업보다 숙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처음 들어온 수형자들은 사포 같은 보조작업부터 시작해 목공 기계 다루는 법을 배운다. 기술 전수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다 보니 중간에 포기하는 수형자도 있지만 이 과정을 모두 이겨낸 뒤에야 본인의 작품을 출품할 수준에 도달한다.

수형자 작품 판매 ‘보라미몰’ 인기

2019년 8월 법무부가 개설한 ‘보라미몰’은 수형자와 사회를 잇는 하나의 통로가 됐다. 보라미몰은 교정시설 내 목공작업장 등에서 생산된 작품을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이다. 누구든 이곳에서 원하는 작품을 구매할 수 있다. 시중 제품보다 절반가량 저렴한 제품이 많아 일부 마니아층도 형성됐다. 판매금 전액은 법무부로 귀속된다.

입소문을 타며 알려지기 시작하던 보라미몰은 지난달 인기가 절정에 달했다. 소셜미디어 엑스(옛 트위터)에 올라온 보라미몰 관련 글이 빠르게 리트윗되면서 사이트 방문객 수가 급증했다. 개설 후 지난해 말까지 월평균 방문객 수는 1만812명이었으나 지난달에는 13만4977명으로 12배가량 폭증했다. 판매 건수도 덩달아 늘었다. 공주교도소 기준으로 지난 1월 주문 건수는 5건이었으나 지난달에는 70건으로 껑충 뛰었다.

올해 53회차를 앞둔 ‘교정 작품 전시회’도 보라미몰의 인기 배경이다. 교정 작품 전시회는 1962년 덕수궁 전시실에서 처음 시작됐다. 수형자의 작업 결과물을 공개해 교정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이해를 도모하려는 목적으로 열린다. 이전까지는 전시회에 직접 방문해야 작품을 볼 수 있었으나 보라미몰 개설 이후 인터넷으로 작품을 구경하고 구매할 수도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목공작업장 수형자들이 본인 이름을 걸고 작품을 출품하는 것이 한 해의 목표가 될 정도로 작업에 열정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딸 출산 소식에 손주 침대 만들어

주 교위와 정이 든 수형자도 많다. 목공에 유독 열의를 보였던 한 수형자는 딸의 출산 소식을 듣고 손주 침대와 가구를 손수 제작했다. 본인 처지가 부끄러워 딸에게 알리지 않았던 수형자였기에 그의 결심은 용기가 필요했다.

주 교위는 이 수형자를 위해 트럭을 몰고 부산까지 가 직접 딸에게 가구를 전달해줬다. 주 교위는 “이 일을 계기로 수형자는 재활 의지를 다지고, 모범적인 수용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며 “교도소 작업장의 최우선 목표는 다름 아닌 교정과 교화”라고 강조했다.

이날 작업장에선 한 수형자가 목공 작업 전반을 이끌었다. 그는 “평소 결과만 중시했었는데 목공 작업을 하다 보니 ‘과정’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깨닫게 됐다”며 “내 변화한 모습에 기뻐하는 가족을 보며 자부심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공주교도소 수형자 10여명은 범죄피해자지원센터 등에 매달 작업장려금 일부를 기부하고 있다. 목공 작업을 하는 수형자에게 매달 지급되는 10만원가량을 속죄 차원에서 내는 것이다. 주 교위는 “목공 작업이 수형자들의 교도소 생활뿐 아니라 미래 설계도 돕고 있다”고 말했다. 범죄를 저질렀던 이들이 목공을 통해 평범한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출소 이후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다.

공주=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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