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임초리에서 2

전병선 2024. 3. 14.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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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가을 어느날 그는 내게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얘기해달라고 했다.

나는 내 느낌대로 그에 장점을 말해 주었다.

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대면서 "우리가 지금은 어렵고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때때로 아버지 같고 가끔은 친구나 오빠 같은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 표정을 읽고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나는 워낙 많은 형제들 틈에서 자란 탓에 일거리 많은 것은 내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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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임초리라는 아름다운 동네에 도착하자마자 목사님은 우리 두 사람을 불러서 기도를 해주셨다. 기도 내용은 오늘부터 두 사람이 주 안에서 교제를 시작하기로 합의되어 하나님 앞에 아뢰오니 아름다운 만남이 되게 해주시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결혼 대상자를 찾고 있었기에 본격적으로 교제를 하려는 눈치였다. 첫눈에 보기에도 성실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교회 어른들에게 인정을 받았지만, 교회 후배 학생들이 쉴 틈이 없이 따라다녔다. 교회에서 ‘주 우리 클럽’을 만들어 클럽 활동도 하고 있었다.

인기투표를 한다면 아마도 단연 첫 번째로 뽑힐 사람이었다. 목사님의 배려로 틈틈이 시간을 내서 서로 몇 차례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 중에 그는 나에게 처음 보았을 때 너무 어려서 걱정스러웠는데 염려했던 것보다 훨씬 성숙하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함께 걷는 것만 봐도 후다닥 쫓아와 가운데를 비집고 들어와 대화를 방해하는 박기호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우리의 교제를 질투하는 줄 알았는데 수양회를 마치고 돌아와서 그는 말했다. 두 사람을 너무 아껴서 혹여 서로 상처받는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두 사람의 대화 중에 자주 끼어들었다고 고백했다.

지금도 그때 일이 문득문득 생각난다. 무엇 때문에 주변에서 그토록 나를 사랑해 주었는지, 내가 시골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동정심으로 살펴주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 주변에는 심성이 아름다운 따뜻한 가족 같은 사람들이 바람막이 울타리처럼 나를 빙 둘러주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보살펴주는 주변의 사랑에 고마움을 나는 늘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임초리라는 동네를 기억하면 어렴풋이 생각나는 그림 같은 개천과 포도밭, 울창한 수목 속에 자리 잡은 아담한 교회가 떠오른다. 나는 주변에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이런 동요를 가르쳐 주곤 했다.

“오이밭에 오이가 길쭉길쭉 보기 좋게 열렸다. 잘도 열렸다. 저 혼자서 컸을까? 잘도 컸구나! 아니 아니 하나님이 키워 주셨대.” “나무 위에 매미가 맴맴 맴맴 듣기 좋게 노래를 잘도 부른다. 저 혼자서 배웠나. 잘도 부른다. 아니 아니 하나님이 배워주셨대.”

나는 내놓을 것도 가진 것도 전혀 없는 가난한 섬 아이였으며 서울에 상경해서는 소녀 가장이었다. 그러나 미래를 향한 내 꿈은 어두운 현실 속으로 움츠러들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 되어 나를 인도해주시고 계셨다. 나는 한 편의 영화 속에서도 그 주인공의 신념, 중심에 나를 앉혀 놓는 당돌함과 의기충천한 용기가 가슴을 꽉 채우고 있었다.

#4
때론 ‘포세이돈 어드벤쳐’의 주인공 스콧 목사의 심정이 되기도 하고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 마리아(줄리 앤드류스) 같이 고난이 뭐 별것이냐 싶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일찍 철이 들어서였을까. 고난 앞에서도 별로 두려워할 줄을 몰랐다. 때마다 내게 닥쳐온 고난을 늘 승자를 골라내기 위한 장애물 경기 정도로만 가볍게 생각하곤 했다.

그와 나는 하늘에 깔린 수많은 별을 세며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함께 오솔길을 걸으며 그는 아이들과 내가 불렀던 동요를 어깨 너머로 들었는지, 아이들 맘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담은 노래라고 나를 격려하고 칭찬해 주었다.

임초리에서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우리는 약 2개월 동안 교제를 하기로 약속했다. 바로 다음 날부터 두 달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만났다. 데이트 장소는 대부분 파고다 공원과 남산타워, 덕수궁 돌담길이었다.

만날 때마다 그와 나는 늘 흑인영가 등 찬송을 불렀다. 또 그는 책을 좋아했으며 모든 운동을 공부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틈만 나면 그는 나에게 세계의 역사에 대해서 풀어가면서 쉽게 얘기를 해주었다.

결혼하기까지 최종 학력과 가족 관계, 고향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다만 결혼을 하게 되면 자녀를 낳아야 하므로 치명적인 병이 있으면 안 된다며 삶에 고뇌를 방지하기 위해 서로 건강진단서를 교환하자고 했다.

그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도청 공무원이었으며 어머니는 인쇄업을 경영했다. 갑자기 몰아닥친 6·25로 아버지는 전쟁터로 끌려가시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6형제가 전쟁 후유증의 피폐한 환경으로 인해 세 명의 아우들이 모두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남아있는 삼 형제가 그 아우들의 시신을 차례로 땅에 묻는 처절한 운명을 딛고 살았다.

그리고 목사님이 그에게 간단명료한 부탁을 했다고 했다. 김국애 그 아가씨와 결혼을 결정하려면 세 가지를 묻지 말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첫째 가족관계, 둘째 학력, 셋째 고향이었다. 참으로 놀랍고 말이 안 되는 주문이었다. 나는 담대하게 목사님께 말씀드렸다. “목사님 염려 마세요. 묻는 대로 솔직하게 다 얘기하겠습니다.”

목사님은 말했다. “아니다. 그 친구의 여자 친구들이 다 명문대 출신들이라 이 군의 결혼에 대한 철학을 알고 싶었던 거란다. 그저 우리 국애는 신랑감이 언제까지 내 부탁을 잊지 않고 지켜내는지 보면 된다네.” 나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목사님은 우리 두 사람의 결혼을 두고 이미 기도 응답을 받으신 듯 느껴졌다.

결혼은 하나님이 계획하고 지명해주는 만남이어야 한다고 했다. 당사자인 우리보다 더 돈독한 의지를 보이셨으며 아울러 우리의 미래를 관통하고 계신 듯, 만날 때마다 축복기도를 해 주셨다. 주님의 축복 속에서 탄생한 가정, 가난했지만 미래의 꿈으로 벅차던 신혼의 눈물 어린 숱한 얘기들은 족히 대하드라마 한 편은 될 것이다. 사랑하는 동반자인 그는 자주 말했었다. 우리의 삶을 세기의 귀감이 될 드라마처럼 꾸려 나가자고 했다.

첫아이를 임신하고 부모님을 뵈러 갔다. 기차를 타고 배를 타고 내가 태어난 섬을 향해 통통거리는 나룻배를 타고 갔다. 그는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목사님과의 약속을 지켰노라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심지가 굳은 사람을 남편으로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렸다.

결혼을 결심한 후 담임이신 김의환 목사님과 강승재 목사님을 찾아뵈었다. 그는 정말 단 한 번도 내 고향과 가족관계, 학벌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떤 질문도 한 적이 없었다. 목사님은 “이제 됐다. 세상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귀한 신랑감이다”라고 하시면서 내게 기도해주셨다.

돌아오는 길에 벅차오르는 감사를 가누기 힘들었다. 오직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는 재정적 능력이 있는 집안에 대리 사위의 제안도 거절하고 본인은 최고의 학벌을 가졌으면서도 겸손했던 그에 대한 기억이 엊그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캥거루의 미소>
- 김국애

캥거루 목장이다
저들도 다스림 받는 줄 아는가보다
까탈스럽거나 사납지 않다
누구에게나 같은 자세로
드러누워 허물없이 금방 친해진다
낯선 이들의 손바닥에 먹이를
두려움 없이 콕콕 찍어 먹는다
먹이 주는 사람 싫어하는 동물은 없다
낯선 이국 어느 곳이나
교감의 수단은 주고받는 것
미소를 보내면 미소가 오고
먹이를 내밀면 동물도 마음을 연다
까무잡잡한 내 피부 때문에
더 쉽게 친해지는 것일까
더 다정하게 미소 짓는 것일까

◇김국애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계간 현대수필 운영이사, 수필집 ‘길을 묻는 사람’ 저자. 이메일 gukae8589@daum.net
정리=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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