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혼하면 유전병 생긴다? 근거 따져보니[뉴스설참]

박현주 2024. 3.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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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결혼, 어디까지 가까워도 될까
사촌간 부부子, 유전병 발병률 최대 7.35%
"유전병 탓 결혼·출산 안 된다? 인간 차별"
법률상 결혼 상대 제한은 과잉금지원칙 위배도

편집자주 - '설참'. 자세한 내용은 설명을 참고해달라는 의미를 가진 신조어다. [뉴스설참]에서는 뉴스 속 팩트 체크가 필요한 부분, 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콕 짚어 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근친 간 자손은 유전병 위험이 크다는 말이 있다. 이는 근친혼 범위 축소 논의에서 반대 근거로 자주 사용되곤 한다.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병이라 하면 흔히 유럽 합스부르크가의 주걱턱을 떠올리곤 하지만, 최근 연구는 5촌 이상의 혼인에선 유전병 발병 위험이 크지 않다고 말한다. 촌수가 가까운 일가를 의미하는 근친(近親). 결혼은 어디까지 가까워도 될까.

사회의 금기(禁忌) 근친혼의 범위 축소에 반대하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전통적인 가족 개념 파괴다. 근친 간 혼인이 무제한 허용되면 가족 간 성적 경쟁이나 갈등이 생기면서 가족 공동체의 안정이 깨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연·심리적 본성이 반영된 것으로도 본다. 실제로 근친상간 금지는 전세계에서 공통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법치국가는 가족 질서를 유지하고 가족제도의 기능을 보호하기 위해 금혼조항을 만들었다.

두 번째는 유전병 위험 증가다. 가까운 친족은 유전 정보가 유사하기 때문에 유전병을 일으키는 열성 유전자가 중첩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13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몇백년간 막강한 권력을 누렸던 유럽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전병이 대표적이다. 고귀한 혈통을 보호하기 위해 배우자를 가문 안에서 고르면서 유전적 결함이 대를 이어 내려온 것이다. 합스부르크 가문 사람들은 2차 성징이 나타날 무렵 턱 골격이 발달해 하악전돌증(주걱턱)을 앓게 되면서 음식을 씹거나 입을 다물기도 어려울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미국 휘태커 가문의 근친혼도 유명하다. 2020년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려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의 휘태커 가족은 100년간 근친을 통해 가문을 이어왔다. 미국은 4촌 이내 결혼을 금하고 있지만, 이 가족은 4촌은 물론 일란성 쌍둥이 혹은 1촌인 형제간에도 혼인 관계를 맺고 자녀를 낳았다. 가족 구성원의 대부분이 각종 유전병과 장애를 앓고 있었다.

근친혼의 유전병 위험 증가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어떨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연구는 유전학 분야 전문가들이 모인 미국 국립유전상담학회(NSGC)의 '혈연 부부와 그 자손에 대한 유전 상담 및 검사'(2001)다. 최근 법무부가 근친혼 범위 축소를 위해 실시한 연구 용역 보고서 '친족 간 혼인의 금지 범위 및 그 효력에 관한 연구'(현소혜, 2023) 역시 이 연구를 인용한다. 2021년 NSGC는 관련 가이드라인을 통해 일반적으로 아이가 선천적 기형·유전병을 앓고 태어날 평균 확률은 3.45~4.55%인데, 유전질환이 없는 사촌 간 부부의 아이에게서 선천적 기형·유전병이 나타날 확률은 평균보다 1.7~2.8%가량 높다고 설명한다. 유전병 발병 위험이 최대 7.35%에 달하는 셈이다. 다만 5촌 이상끼리 혼인한 부부 후손의 유전적 질환 발병률 상승 간에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유전병 발병 위험 때문에 결혼을 막는다는 주장은 윤리적인 비판을 받는다. 열악한 유전자를 가진 인구 재생산을 막는 우생학의 논리와 같아서다. 법무부의 근친혼 범위 축소 논의는 2022년 10월 헌법재판소가 8촌 이내의 혈족 간 혼인을 일률적으로 무효로 보는 민법 조항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시작됐는데, 유남성·이석태·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의견문을 통해 "열성 유전자의 발현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만으로 혼인 그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불명확한 가설에 근거한 것이어서 혼인의 상대방을 선택할 자유를 제한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들 재판관은 "유전학적 관점은 우성유전인자를 가진 자들만이 자녀를 출산하고 가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관념과 결부된 것으로 인간을 차별화·도구화하는 것이어서, 혼인제도와 가족제도가 인간의 존엄성 존중이라는 근본이념에 따라 규율돼야 한다는 헌법적 요구에 반한다"라고도 말한다. 이밖에 혼인의 상대방을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도 짚는다.

[이미지출처=픽사베이]

근친혼을 바라보는 시선은 시대 변화에 따라 변화해왔다. 과거엔 같은 신분을 가진 친족 간 결혼은 계급의 순혈성을 지키고 가문 내 결속을 강화하는 효과적인 부·권력 유지 수단으로 쓰였다. 오늘날 근친혼 관련 규정은 1960년 1월1일부터 시행된 민법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당시에는 직계 혈족 및 8촌 이내 방계 혈족, 동성동본인 혈족의 혼인은 무효라고 봤다. 1991년 개정 민법도 동성동본 간 혼인 금지를 유지했으나, 이는 1999년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효력을 상실했다.

오늘날 근친혼 관련 규정은 헌재의 결정에 따라 또다시 개정을 앞두고 있다. 법무부의 연구 용역을 맡은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혼인 금지 범위를 4촌 이내 혈족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제안했는데, 성균관 등의 반발이 큰 상황이다. 법무부는 각계의 의견을 경청하고 반영해 개정안을 만들기로 했다. 근친혼과 관련한 민법 개정 시한은 올해 말까지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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