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보]몽골·미국 막아낸 호국정신 서린 강화나들길 6코스

이춘희 2024. 3.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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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나들길 6코스는 강화버스터미널을 출발해 선원사지, 삼동암천, 화남생가 등을 거쳐 광성보에 이르는 코스다.

또한 고려의 강화천도 시기 외적을 물리치기 위한 의지를 담아 현재 '팔만대장경'으로 불리는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을 만들기 위한 대장도감이 설치됐던 선원사터,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 군대와 사투를 벌인 격전지인 광성보도 포함돼 있어 선조들의 호국정신을 느낄 수도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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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나들길 6코스는 강화버스터미널을 출발해 선원사지, 삼동암천, 화남생가 등을 거쳐 광성보에 이르는 코스다. 5코스의 별명은 고비고개길이다. 총 20.2㎞ 길이로 소요 시간은 6시간 40분이다. 1906년 강화도 일대를 순례하며 '심도기행'을 남긴 화남 고재형 선생의 생가가 있어 '화남생가 가는 길'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또한 고려의 강화천도 시기 외적을 물리치기 위한 의지를 담아 현재 '팔만대장경'으로 불리는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을 만들기 위한 대장도감이 설치됐던 선원사터,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 군대와 사투를 벌인 격전지인 광성보도 포함돼 있어 선조들의 호국정신을 느낄 수도 있는 길이다. 총 18.8㎞ 길이로 소요 시간은 6시간이다.

시작점인 강화버스터미널을 출발해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오면 고식이들판이라 불리는 너른 논을 지나 도감산 숲길로 들어서게 된다. 진달래가 지천으로 핀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선원사터에 다다른다. 선원사는 무신정권기 최고 권력자 중 한 명이었던 최우가 몽골의 침략으로 인한 강화 천도 시기인 1245년 호국사찰로 세운 절이다. 당시 대장경을 찍어내기 위해 만들어졌던 목판들을 보관하기 위한 대장도감이 설치됐었다. 다만 조선 초기 선원사가 사라졌고, 이후 현대에 들어와 발굴조사를 통해 이곳이 선원사터로 지정됐지만 여전히 인근의 충렬사 부근이 선원사터라는 주장도 여전히 제기되는 논란의 대상이기도 하다.

선원사터를 벗어나 다양한 풍경을 즐기며 남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삼동암천을 건너게 되고, 이윽고 화남생가에 다다른다. 화남생가는 조선 말~일제강점기 초의 인물인 화남 고재형 선생이 살았던 집이다. 현재 강화나들길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강화도 순례기 심도기행의 저자다.심도기행에는 화남 선생이 강화의 17개면 100여마을을 돌며 강화의 풍경과 사람들의 정경, 각 고장의 역사와 특징 등을 노래한 256수의 한시와 산문이 담긴 책이다. 화남생가 인근의 두두미마을 잔디밭에서는 형형색색의 꽃을 만나볼 수도 있다.

강화도 광성보에 자리한 대포[사진제공=문화재청].JPG

오두돈대가 위치한 오두리 일대를 지나 바다의 풍경을 만끽하며 해안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오늘의 종착지인 광성보에 다다른다. 강화해협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작은 요새다. 광성보가 유명해진 것은 1971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을 강제 개항시키기 위해 조선을 침략한 존 로저스 제독이 이끄는 미국군은 초지진과 덕진진을 점령하고 광성보까지 밀고 들어왔다. 광성보를 지키던 어재연 장군 휘하 500명이 분전을 벌였지만 결국 압도적인 화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참패했다. 비록 광성보는 함락됐지만 미군은 더는 전쟁을 이어나가기 힘들다는 판단 아래 퇴각했다. 이후 흥선대원군은 척화전쟁의 승리를 선포하고 척화비를 전국 곳곳에 세운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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