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파업 이후 암환자가 병원에서 마주하는 풍경

이혁진 2024. 3. 1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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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보다 병원을 더 걱정하는 환자들... 검사 미뤄질까 불안, 항암 일정에도 차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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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진 기자]

 항암주사 장면
ⓒ 이혁진
2월 중순부터 시작된 전공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서울 송파구의 한 대학병원도 뒤숭숭한 모습이다. 와중에도 암환우인 나는 매주 한 번 항암 관련 검사와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런 생활을 2년째 계속하고 있다.
원래 대형병원은 어디를 가든 발 디딜 틈조차 없이 환자와 보호자들로 '인산인해'였다. 외래로 방문하는 이비인후과, 종양내과, 비뇨의학과 등도 언제나 환자들로 붐볐다. 특히 암환자 병동은 언제나 바삐 움직이고 있다.
    
암환우들의 초조한 심정
    
항암치료를 받다 보면 암환우들과 만나 이야기하게 되고 동병상련하는 입장에서 공감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때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병원 찾아 삼만리'다. 지방에서 온 환자들이 절실한 심정으로 이곳까지 묻고 물어 찾아왔다는 것이다.
     
포항에서 매달 한 번 항암치료차 올라온다는 한 환자는 "병원 근처 원룸에서 하루 묵으면서 의사 선생님 조언에 따라 치료하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라고 말했다.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는 원하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병원(서울아산병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47만 명 내원환자 중 60%가 지방에서 온 환자라고 한다. 이는 지방의료의 낙후된 실태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암환우 대부분은 "잠깐의 진료라도 의사가 차도가 있을 거라는 희망을 접할 때는 역시 먼 길을 마다하고 찾아온 보람을 느낀다"고들 말한다. 환자의 강한 회복 의지와 의사의 정확한 진단이 환자의 예후는 물론 병 극복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 또한 수술과 외래진료로 바쁜 담당 주치의 교수들의 처방과 조언을 '하늘처럼' 따르고 있다. 그러나 전공의 파업 이후 병동에서는 지금 무거운 침묵과 긴장이 흐르고 있다. 의료진을 포함해 환자와 보호자들이 이러한 난관을 애써 견디는 듯 보여도 마치 폭풍전야 같은 분위기다.
    
환우들은 이제 자신들 질병보다 병원 파업을 걱정하고 있다. 한 동료 암환우는 "그나마 항암주사를 계속 맞고 있는 게 천만다행이지만, 긴 파업사태에 점점 초조해지는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나도 내심 치료 일정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하다. 실제 항암치료 예후를 살피기 위한 정기적인 CT검사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다. 병원에선 나중에 알려주겠다지만, 예전과 달리 일정이 바로 공지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런 차질은 전공의 파업과 무관치 않다.
      
엊그제 동네 상급병원 이비인후과에서 청력검사 등 외래진료를 받는데도 예약시간보다 한 시간 이상을 더 기다렸다. 담당 주치의를 보좌하는 예진 전공의 두 명이 사직으로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다.
     
전과는 달라진 병원 분위기
 
 지난 2월 2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 의료진들이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자료사진).
ⓒ 이정민
 
전공의들이 빠진 의료현장에선 일손이 달려 대기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짜증도 늘어났다. 종양내과 외래환자들의 접수를 돕는 창구에서 예전에 볼 수 없던 고성과 불평불만이 자주 들리기도 한다(관련 기사: 간호사에 '아줌마' 부른 환자, 긴장된 분위기에 돌아온 답변 https://omn.kr/27lyf).
     
그러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연일 수고하는 의사교수와 간호사들에 대한 계속되는 위로와 응원도 감지되고 있다. 내색 없이 환자 치료에 전념하는 의료진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리라.
     
의사의 처방을 정확히 확인하고 이를 환자가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종양내과 간호사들은 파업 이후 특히 더 바쁜 모습이다. 간호사는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의 질병 외에 정서적인 부분도 살피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주치의의 부족한 설명을 간호사로부터 자세히 들을 때가 많아, 암환자를 매일 상대하는 간호사들의 존재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한편 암병원과 달리, 파업 이후 외래환자와 보호자 등 내원객은 외견상 확실히 줄은 모습이다. 신규 수술과 입원 등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응급실도 실제 응급환자 위주로 통제하는 건지 이전과 같은 '북새통' 풍경을 더는 볼 수 없다. 앰뷸런스 이동도 전보다 적은 편이다.
     
병원 내 매점이나 식당들도 파업 전에 비해 손님이 적어 보인다. 오가는 환자를 상대로 장사하는 병원 인근 지하철 포장마차와 상인들도 매출이 줄어 울상이다. 지난 번 만난 병원 인근 포장마차 주인은 "최근 손님이 3분의 1은 줄었다"라고 했었다. 
병원에 올 때마다 들르는 구내 한식 식당은 항상 줄 서서 대기해야 했는데, 이제는 한가한 모습이다. 옆에서 식사를 하던 환자 보호자도 비슷한 느낌이라고 전했다.
   
환자로서 불안한 건 사실 
   
 항암주사 조절기
ⓒ 이혁진
통증이나 질병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임에도, 환자들 사이에선 "내가 아프지를 말아야지" 하는 볼멘소리가 예전보다 많이 들린다. 여기에는 병원 파업에 대한 걱정과 함께 파업 상황이 해결되길 바라는 간절한 희망이 담겨있다.
      
암환자들은 항암치료와 재발과 전이 걱정 등으로 하루하루가 고통이다. 수술과 검사를 도울 전공의가 없어 암환자와 중증환자들의 입원과 수술이 지연되고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소식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병원에 늘 줄 서 있는 대기환자와 지방에서 올라오는 환자가 많은 걸 보면, 의사 증원이든 지역의료의 확충이든 해결이 필요한 문제는 맞아 보인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두고 정부와 의사들의 길어지는 갈등 대치가 안타깝다.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11일) 총회를 열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이번 의대 정원 사태 해결을 위한) 합리적 방안 도출에 나서지 않을 경우 18일을 기점으로 사직서를 제출할 것"이라 밝혔고, 보건복지부는 12일 회의에서 이런 결정에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하면서도 '책임을 묻겠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고 알렸단다.  

전공의들이 파업을 통해 자신의 입장과 주장을 어필한다고 해서 평가절하할 수 없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단순하지 않다. 세간에 말도 많지만 내가 두려움 속에 여태껏 투병 생활을 지탱하고 살아있는 건 의료진 덕이다. 묵묵히 환자를 따뜻하게 위로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존경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암 치료는 환자 혼자가 아니라 보호자, 여러 의료진이 함께 동행하는 기나긴 여정이다. 특히 환자는 병원의 모든 치료와 회복과정에서 한 인격체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병원을 나서며 오늘따라 '환자를 고객으로 여기며 존중한다'는 의료진들의 선언문이 무겁게 들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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