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서영빌딩 화재 책임 이지스운용·국민은행 공동 부담"

최석진 2024. 3. 1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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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제758조 공작물책임 직접점유자가 져야
부동산 관리회사는 점유보조자에 불과

부동산펀드가 투자해 신탁회사가 소유한 건물에 화재가 발생해 임차인이 손해를 입은 경우 민법상 공작물 점유자·소유자 책임 규정에 따라 손해를 배상해야 할 주체는 건물의 직접점유자로 볼 수 있는 투자회사와 신탁회사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부동산 관리회사의 경우 점유보조자에 불과해 공작물책임을 부담하는 주체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서영엔지니어링이 이지스자산운용과 국민은행, 에스원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이지스자산운용과 국민은행이 공동으로 46억453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2015년 12월 11일 성남시 분당구 서영빌딩 1층 주차장 천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건물 내부 일부와 외벽이 전소됐고, 6층부터 12층까지 입주해있던 서영엔지니어링은 각종 전산 장비와 집기, 부품 등이 훼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해당 건물은 이지스자산운용(집합투자업자)이 투자신탁 형식의 사모부동산집합투자기구(펀드)를 설정하고 국민은행(신탁업자)과 신탁계약을 체결, 2013년부터 국민은행이 소유하고 있던 건물이었다. 에스원은 부동산 관리회사로서 건물을 관리하고 있었다.

건물 화제로 피해를 입은 서영엔지니어링은 집합투자업자인 이지스자산운용과 신탁업자이자 건물 소유권자인 국민은행, 건물 관리회사인 에스원 등을 상대로 2016년 4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이지스자산운용과 국민은행이 공동으로 A사에 46억4530만원만원을, 임직원에게는 1인당 16만∼61만원가량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건물 관리회사 에스원을 상대로 한 청구는 인용하지 않았다.

서영엔지니어링은 임대차 계약 당사자인 국민은행과 이지스자산운용을 상대로는 ▲임대차계약상 채무불이행 책임(민법 제623조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임대인의 의무 위반) ▲공작물의 설치·보존상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책임(민법 제758조 1항) ▲불법행위책임(민법 제750조)을 물었다. 에스원을 상대로는 공작물책임과 불법행위책임을 물었다.

민법 제758조(공작물등의 점유자, 소유자의 책임) 1항은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공작물점유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점유자가 손해의 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해태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소유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규정이다.

재판부는 이지스자산운용이나 국민은행에 임대인으로서의 채무불이행 책임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사건과 같이 임대차 목적물이 아닌 부분(이 사건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임대차 목적물의 사용, 수익이 불가능하게 된 경우에 있어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대인에게 임차인으로 하여금 임대차 목적물을 사용, 수익하게 하기 위해 임대차 목적물이 아닌 부분까지 유지, 보수, 관리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임차 목적물인 서영엔지니어링의 사용 부분 외에 주차장에 대한 유지, 관리 의무 위반을 이유로 화재로 인한 책임까지 부담지우긴 어렵다는 판단이다.

대신 재판부는 이지스자산운용과 국민은행에게 민법 제758조에 따른 공작물 점유자·소유자 책임을 인정했다.

화재 발생 당시 주차장을 사실상 지배했던 회사는 부동산 자산관리 위탁업체인 에스원이었지만, 에스원은 건물 관리를 위탁한 이지스자산운용의 관리권을 바탕으로 이지스자산운용의 점유를 돕기 위해 사실상 지배한 것일 뿐, 주차장의 직접점유자는 실질적 소유자인 이지스자산운용과 법률적 소유자인 국민은행이며, 에스원은 점유보조자에 불과하다는 게 1심 재판부의 결론이었다.

민법 제758조의 공작물책임은 특수한 불법행위 유형으로 가해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가해행위와 손해 발생과의 인과관계 등을 요건으로 하는 민법 제750의 일반 불법행위책임과 달리 가해행위를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 소유자의 경우 손해 발생에 과실이 없었더라도 무과실책임을 부담한다.

재판부는 에스원의 경우 점유보조자에 불과해 민법 제758조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봤다. 일반 불법행위 책임에 대해 재판부는 "주차장 천장의 전기배선에서 발생한 화재 발화의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이상 이 사건 화재가 이 사건 건물에 대한 유지·관리 업무 소홀에 기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피고가 이 사건 건물 1층 부분에 대해 전기 및 시설 안전을 위한 어떠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는 점에 대한 주장, 증명도 없다"라며 "따라서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원고와 피고 양측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 법원과 대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대법원은 자산운용사가 부동산 관리회사에 업무를 지시하고 예산 범위를 정하는 등 실질적 권한을 행사한 점, 신탁회사는 소유자 지위에 있으면서 대외적으로 건물에 대한 관리·처분권을 행사한 점 등을 책임의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원심의 이유 설시에 미흡한 부분이 있기는 하나 공작물 점유자의 책임을 부담하는 자에 관해 판단한 원심의 결론은 수긍할 수 있고, 거기에 민법 제758조 1항에 따른 공작물 점유자에 관한 법리오해, 판례위반, 판단누락 및 심리미진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한편 이번 사건에서는 책임의 범위도 문제가 됐다. 자산운용사와 은행은 건물의 가액을 한도로 손해배상 책임이 제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자신탁재산의 취득·처분 등과 관련한 이행 책임은 투자신탁재산의 한도 내에서만 책임을 부담한다고 정한 자본시장법 제80조 2항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근거는 두 가지였다. 먼저 재판부는 "자본시장법 제80조 2항에 의하면 집합투자업자, 신탁업자는 투자대상자산의 취득·처분 등과 관련한 이행책임에 대해서는 투자신탁재산을 한도로 해서 그 책임을 부담하지만, 자본시장법 제64조 1항에 따라 법령 등을 위반하는 행위를 하거나 업무를 소홀히 해 투자자에게 손해를 발생시켜서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경우에는 고유재산으로도 책임을 부담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집합투자업자와 신탁업자가 점유자로서 부담하는 공작물 책임은 투자신탁재산의 취득·처분 등과 관련한 이행책임이 아니므로, 투자신탁재산을 한도로만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신탁법 제114조 1항에 의하면, 수탁자가 신탁재산에 속하는 채무에 대해 신탁재산만으로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는 유한책임신탁은 유한책임신탁의 등기를 해야 효력이 발생한다"라며 "이 사건 펀드에 대해 유한책임신탁의 등기가 없는 이상 유한책임신탁으로서의 효력도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구 자본시장법 제80조 2항 및 신탁법상 유한책임신탁제도 등에 의한 책임 부담 한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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