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삭스팬이 만든 옥수수밭 야구장서 일어난 신비한 일

양형석 2024. 3. 9.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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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케빈 코스트너의 판타지 가족영화 <꿈의 구장>

[양형석 기자]

지금은 70대를 바라보는 노년을 향해가고 있는 배우 케빈 코스트너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히든 피겨스>와 <저스티스 리그> <하이웨이맨>, 드라마 <옐로우스톤> 등에 출연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의 케빈 코스트너는 대적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할리우드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최고의 스타배우였다(1995년 <워터월드>의 '비극'만 없었다면 전성기가 더 길었을 것이다).

코스트너는 1990년 본인이 직접 감독과 제작, 주연까지 1인 3역을 소화한 영화 <늑대와 춤을>을 통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7개 부문을 석권하며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1991년에는 <의적 로빈후드>에서 로빈후드를, < JFK >에서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을 수사하는 검사를 연기했다. 고 휘트니 휴스턴과 호흡을 맞췄던 <보디가드>역시 케빈 코스트너의 전성기에 빠질 수 없는 대표작 중 하나다.

그렇게 영화와 연기에 진심인 배우 케빈 코스트너가 지난 2021년 8월 12일(현지시간)에는 할리우드 촬영 현장이 아닌 아이오와주의 옥수수밭에 지어진 야구장 그라운드에 섰다. 1989년 자신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를 기념하기 위한 메이저리그의 스페셜 매치에서 대회선언을 맡았기 때문이다. 케빈 코스트너의 젊은 미남자 시절을 볼 수 있는 필 얼든 라빈슨 감독의 판타지 가족드라마 <꿈의 구장>이다.
 
 1500만 달러로 만든 <꿈의 구장>은 제작비의 5배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씨네토피아
 
유쾌하게 볼 수 있는 판타지 스포츠 영화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선수들이 같은 조건과 같은 규칙 속에서 자웅을 겨뤄 최고를 가려내기 때문이다. 스포츠가 승부조작이나 도핑 같은 각종 반칙들에 대해 매우 엄격한 잣대를 내밀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재미를 위해 각종 비현실적인 설정들이 허용되기도 한다. 판타지 스포츠 영화에서는 초능력이 나오기도 하고 동물이 경기에 참여할 때도 있으며 심지어 하늘에 있어야 할 천사가 경기에 개입하기도 한다.

1994년에 개봉한 <외야의 천사들>은 아빠와 함께 살고 싶어하는 소년이 캘리포니아의 야구팀 엔젤스가 우승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천사들이 그 기도를 들어준다는 내용의 가족 코미디 영화다. 멜 깁슨과 함께 <리썰 웨폰> 시리즈에 출연했던 데니 글로버가 만년 하위팀 엔젤스의 감독 역을 맡았다. 그리고 하늘에 기도하는 소년 로저는 < 500일의 썸머 >와 <인셉션> 등을 통해 성인배우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조셉 고든 레빗의 아역시절이었다.

1996년 2D 만화와 실사를 혼합해 만들었던 <스페이스 잼>은 무려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다. 물론 조던에게서 능숙한 연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한 <스페이스 잼>은 8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2억 3000만 달러의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2021년에는 르브론 제임스(LA레이커스)를 주인공으로 한 속편 <스페이스 잼: 새로운 시대>가 개봉하기도 했다.

홍콩의 대표적인 판타지 스포츠 영화는 역시 2001년 주성치 감독의 <소림축구>를 들 수 있다. <소림축구>는 강철다리를 가진 아성(주성치 분)이 쿵푸의 위대함을 알리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던 동료들을 모아 축구대회에 출전해 우승한다는 내용의 코믹 판타지 스포츠영화다. 현실의 축구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쿵푸를 접목한 황당한 기술들이 대거 나오지만 애초에 주성치 영화에서 리얼리티를 찾으려 하는 건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한국에서는 스포츠 영화 자체가 흔하지 않지만 지난 2013년 훗날 <신과 함께> 시리즈로 '쌍천만 감독'이 되는 김용화 감독에 의해 판타지 스포츠 영화 <미스터 고>가 재작된 바 있다. 고릴라가 야구를 한다는 설정의 <미스터 고>는 국내에서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중국시장을 통해 어느 정도 손해를 메웠다. 2008년 주성치 감독의 <장강7호>에서 남자로 출연했던 쉬자오는 <미스터 고>에서 귀여운 중국인 소녀 웨이웨이를 연기했다.

케빈 코스트너의 미남자 시절 볼 수 있는 영화
 
 레이(왼)는 자신이 지은 야구장에서 젊은 시절의 아버지를 만나 꿈에 그리던 캐치볼을 한다.
ⓒ 씨네토피아
 
국내에서도 야구는 축구와 함께 둘째 가라면 서러운 인기스포츠지만 미국에서 야구는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부터 지역에 있는 야구팀을 응원하고 평생 한 팀만 응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화 <꿈의 구장> 역시 아이오와주에 살면서 평범한 시카고 화이트삭스팬으로 자란 30대 중반의 평범한 농부 레이(케빈 코스트너 분)가 자신의 옥수수 밭에 야구장을 만들면서 벌어지는 신비한 일을 다룬 영화다.

사실 <꿈의 구장>은 스케일이 큰 경기장면이나 박진감 넘치는 화면구성, 현란한 CG나 특수효과가 크게 필요하지 않은 잔잔한 가족 드라마다. 따라서 <꿈의 구장>은 1500만 달러의 많지 않은 제작비로 만들어 졌는데 세계적으로 8400만 달러의 쏠쏠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국내에서는 케빈 코스트너가 슈퍼스타가 된 후 1991년 7월에 개봉해 서울에서 8만 7000명의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사실 <꿈의 구장>을 더욱 재미 있게 보려면 1919년 월드시리즈에서 있었던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블랙삭스 스캔들'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블랙삭스 스캔들'은 1919년 월드시리즈에서 있었던 메이저리그 최초의 승부조작 사태로 이에 연루된 8명의 선수 모두가 영구제명을 당했다. 그 중 당시 "돈은 받았지만 조작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던 고 슈리스 조 잭슨(레이 리오타 분)은 영화에서 가장 먼저 '꿈의 구장'에 나타나 레이를 만났다.

<꿈의 구장> 역시 여느 영화들처럼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마지막에 나온다. 한편으론 원망스러웠고 한편으론 그리워했던 아버지와 레이의 재회 장면이다. 포수 마스크를 쓰고 야구를 하던 청년 시절의 아버지는 레이와 인사를 나눈 후 "이곳은 천국인가요?"라고 묻는다. 그리고 레이는 감격스런 얼굴로 "이곳은 아이오와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이 명대사는 2021년 <꿈의 구장 시리즈> 경기에서 케빈 코스트너와 관중들이 주고 받기도 했다.

영화 촬영 후 유명 관광지가 된 <꿈의 구장> 촬영지에는 지난 2020년 8000석 규모로 '꿈의 구장'이라는 이름의 야구장이 지어졌다. 당초 2020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꿈의 구장 시리즈'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취소됐고 대신 2021년 화이트삭스와 뉴욕 양키스의 경기로 대체됐다. 정규리그 공식경기로 치러진 이 경기는 평균 시청자 500만 명을 넘었고 2021년 최고의 명경기로 선정됐다.

남편이 갈 곳의 예지몽 꾸는 아내
 
 에이미 메디건(왼쪽)은 <꿈의 구장>에서 남편의 꿈을 끝까지 응원하는 현모양처 애니를 연기했다.
ⓒ 씨네토피아
레이가 지은 야구장에 가장 먼저 나타난 슈리스 조 잭슨은 미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베이브 루스가 타격자세를 본 받았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다. 레이의 야구장에서 타격을 하면서 감동한 잭슨은 옥수수 밭에서 친구들을 데려와 함께 야구를 즐긴다. 조 잭슨 역의 고 레이 리오타는 <좋은 친구들>과 <한니발> <아이덴티티>등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지만 2022년 동맥경화로 인한 호흡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꿈의 구장>에서 레이의 아내 애니는 대책 없이 가족들의 생계수단인 옥수수 밭에 야구장을 만들고 전설적인 은둔작가 테렌스 맨(제임스 얼 존스 분)을 만나러 보스턴에 가겠다는 남편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이 보스턴의 야구장에서 테렌스 맨과 나란히 앉아 야구를 관람하는 예지몽을 꿨다는 사실을 기억한 애니는 남편의 짐을 싸며 보스턴으로 가서 테렌스 맨을 찾으라고 남편을 재촉한다.

<꿈의 구장>에서 남편의 꿈을 응원하는 현모양처 애니를 연기한 에이미 매디건은 1985년 <인생이여 다시 한 번>에 출연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배우다. 지난 1983년 배우 에드 해리스와 결혼해 1993년 딸을 출산한 매디건은 2007년 벤 애플렉이 연출한 영화 <가라, 아이야, 가라>에 남편과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매디건의 남편 에드 해리스는 <꿈의 구장>에서 레이에게만 들리는 계시를 내리는 목소리 연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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