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엔 교회를 탈의실 삼으라”는 유진 피터슨, 이유는?

양민경 2024. 3. 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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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자녀와 같이 매주 교회에 가는 부모라면 한 번쯤 이 말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습관적으로 매일 반복하는 '옷 입기'에 부활주일을 연결지어 설명한 피터슨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설교 말미에 그는 "예배당 현관에 자신의 실체를 보여주는 '마법의 거울'이 있다고 가정해보자"고 한다.

일상에 대한 강조는 그가 주장하는 '가장 이상적인 교회 상(像)'에도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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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빛, 예수 그리스도/유진 피터슨 지음/홍종락 옮김/복있는사람
생전 유진 피터슨의 모습. 복있는사람 제공

10대 자녀와 같이 매주 교회에 가는 부모라면 한 번쯤 이 말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집에 더 좋은 것도 많은데 왜 하필 그 옷을 입었니?” ‘하나님은 뭘 입든 신경 쓰지 않는다’란 자녀의 볼멘소리에도 부모의 잔소리는 계속되기 마련이다.

예배에 적합한 복장을 두고 부모와 자녀 간 실랑이를 벌이는 건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싶다. ‘목회자의 목회자’란 수식어로 널리 알려진 영성신학자 유진 피터슨(1932~2018) 목사 역시 부활주일 설교 당시 이 예화를 인용했다.

습관적으로 매일 반복하는 ‘옷 입기’에 부활주일을 연결지어 설명한 피터슨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러니 적절한 옷을 입으십시오.… 우리가 입을 적절한 옷은 진실하고 자비로운 말, 하나님의 사랑을 밝게 선포하는 말입니다.”

저자는 성도가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골 3:12)으로 옷 입을 것을 권한다. 사진은 단정한 복장을 입고 예배당에 앉아 있는 남녀. 게티이미지뱅크

설교 말미에 그는 “예배당 현관에 자신의 실체를 보여주는 ‘마법의 거울’이 있다고 가정해보자”고 한다. 겉모습은 소박해도 이 거울에 서면 화려한 옷을 입은 모습이 비칠 수 있다. 반면 색색깔 옷을 입었어도 거울에선 칙칙한 차림으로 보일 수 있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골 3:12)으로 옷 입지 않은 성도는 인간의 죄 된 본성을 가릴 수 없다는 일종의 비유다. 설교는 피터슨 목사의 당부로 마무리된다. “우리의 말과 행동, 가치관과 목표가 그분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습니까.… 혹시 잘못된 옷을 입고 있다면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교회를 탈의실 삼으십시오. 그래서 올바른 부활절 의상을 갖추고 교회 문을 나서십시오.”

그의 미출간 설교를 엮은 책엔 이처럼 ‘생활밀착형’ 비유가 자주 등장한다. 책 속 설교 41편 중 30편은 저자가 약 30년간 몸담았던 미국 메릴랜드주 그리스도우리왕장로교회에서 전한 ‘절기 설교’다. 대림절 성탄절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 순으로 교회력에 맞춰 편집됐다. 저자가 평상시 전한 나머지 설교 11편은 ‘연중 시기’로 분류됐다. 이들 역시 복음적 내용이 주를 이뤄 절기 설교와 함께 읽어도 이질적이지 않다.

이번 책에서도 일상에 맞닿은 표현을 활용해 교회력의 주요 개념을 알기 쉽게 풀어내는 저자의 노련한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천지창조 이전 그리스도가 존재했다는 걸 전하기 위해 “기독교의 복음은 ‘비상 대책’이 아니라 ‘최초의 계획’”이라고 설명한다. 예수 탄생을 “길고 힘든 등반 끝에 마침내 산 정상에 도착한 일”로, 구약을 경시하는 일부 의견을 “40장으로 구성된 책의 39장을 건너뛰는 일”로 빗대기도 한다.

무엇보다 저자는 복음이 일상에 뿌리박혀야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복음은 우리의 삶과 일, 결혼과 독신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에 결코 무관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상에 대한 강조는 그가 주장하는 ‘가장 이상적인 교회 상(像)’에도 드러난다. 일주일 중 엿새 동안 교회 근처로 아무도 오지 않고 주일에만 모이는 곳. 위원회나 조직이 없으며 주일과 주일 사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 한국교회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곳이 저자가 생각하는 이상적 교회다. 주중에 직장 학교 가정 등에서 자신을 부인하고 이웃을 도우며 섬김과 고난의 길을 가는 그 자체가 신앙의 실천이라는 취지다.

익살맞으면서도 열정적인 저자의 설교를 예배당에서 직접 듣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읽다 보면 “좋은 설교자는 단어로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다.… 이 책에는 유진 피터슨의 예술품을 모았다”는 편집자의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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