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시정장치 없는 다세대주택 공동현관 들어가도 주거침입"

최석진 2024. 3. 7.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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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입구에 도어락 등 시정장치가 없는 다세대주택이라도 공동현관이나 계단, 각 전용 세대의 현관문 앞에 들어간 경우 침입 목적에 따라 주거침입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A씨는 2021년 6월부터 7월 사이 전 여자친구인 B씨가 사는 다세대주택에 3차례 침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오후 9시나 10시경 특별한 잠금장치가 없는 건물 입구를 통해 공동현관에 들어간 뒤 B씨의 집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 문 밖에서 집안 내부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B씨의 집 현관문에 '게임은 시작되었다'라는 문구가 적힌 마스크 또는 B씨의 사진을 올려놓았다. 하지만 문을 두드리거나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 시도는 하지 않아 범행 당시 B씨는 A씨가 집 앞에 온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1심 법원은 A씨에게 주거침입죄 유죄를 인정,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A씨 측은 B씨가 거주하는 다세대주택 입구에 시정장치나 보안장치가 없었고, A씨가 B씨의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채 계단이나 복도에 있다가 조용히 나왔기 때문에 B씨의 사실상 평온이 침해됐다고 볼 수 없어 주거침입죄가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이 사건 범죄사실 기재와 같이 피해자의 주거에 침입해 사실상 주거의 평온을 침해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먼저 다세대주택 내부의 공용 계단이나 복도도 주거침입죄의 객체가 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을 원용했다.

앞서 대법원은 "주거침입죄에 있어서 주거라 함은 단순히 가옥 자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원 등 위요지(가옥의 정원 등 주변을 둘러싼 땅)를 포함하는 것인바, 다가구용 단독주택이나 다세대주택·연립주택·아파트 등 공동주택 안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계단과 복도는 주거로 사용하는 각 가구 또는 세대의 전용 부분에 필수적으로 부속하는 부분으로서 그 거주자들에 의해 일상생활에서 감시·관리가 예정돼 있고 사실상의 주거의 평온을 보호할 필요성이 있는 부분이므로, 다가구용 단독주택이나 공동주택의 내부에 있는 공용 계단과 복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주거침입죄의 객체인 '사람의 주거'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재판부는 B씨가 인지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A씨의 행위는 그 자체로 주거침입죄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각 행위, 즉 피해자의 대화를 무단으로 녹음하거나, 현관문 앞에 피해자에 대한 메시지가 적힌 마스크 또는 피해자의 사적인 사진을 놔두는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마땅히 자신의 주거 내에서 누려야 할 사생활의 자유는 이미 침해됐다고 봄이 타당하고, 그 당시 피해자가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사정만으로 이를 달리 볼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가 B씨에게 카카오톡으로 B씨의 남자관계 등을 비난하는 메시지들을 계속 보냈고, 자신이 현관 문 앞에서 녹음한 대화(B씨가 성관계 중 낸 소리가 포함돼 있는)를 유포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점 등에 비춰 A씨가 계단이나 복도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 B씨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허락을 기대할 수 있었던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B씨가 A씨에게 자신이 선물로 받은 옷들을 돌려줄 테니 와서 가져가라고 한 사실은 있지만, 당시 두 사람의 관계에 비춰 시간, 장소 등에 대해 사전에 B씨와 정하지 않고 밤중에 무작정 찾아간 것은 경험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런데 2심에서 결과가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피해자의 주거에 침입했음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1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거주지가 있는 빌라 건물의 공동현관에는 도어락이 설치돼 있지 않고, 경비원도 없었다. 빌라 건물 1층에는 공동현관과 함께 주차장이 있는데, 주차장 천장에 CCTV가 설치돼 있으나 작동되지 않았다"라며 "피해자의 거주지가 있는 빌라 건물에서 외형적으로 외부인의 무단출입을 통제·관리하고 있는 사정을 알 수 있는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피고인은 경찰에서 공동현관이 항상 열려 있어 이 사건 당시 그냥 들어갔다고 진술했다. 피해자는 원심에서 피고인이 거주지 출입문 앞까지 왔던 것을 전혀 몰랐고, 거주지 출입문을 열려고 하거나 두드리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라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의 이 사건 행위가 공동주택 거주자의 사실상 주거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행위태양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다시 유무죄 판단이 뒤집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이 사건 행위가 '침입'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원심의 판단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같은 판단의 근거로 ▲다세대주택 공동현관, 공용 계단, 현관문 앞부분은 각 세대 전용 부분에 필수적으로 부속하는 공간으로 외부인 출입이 일반적으로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CCTV가 작동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외부에 'CCTV 작동 중', '외부차량 주차금지'라는 문구를 기재한 것은 이 사건 건물 일체에 대한 외부인의 무단출입을 통제·관리한다는 취지로 평가할 수 있는 점 ▲피고인은 피해자와 사귀었다가 헤어진 관계로 피해자에게 불안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마스크를 걸어놓거나 사진을 올려놓으려는 의도로 현관문까지 들어간 점 ▲피해자는 이를 알게 된 뒤 경찰에 신고, 피고인의 행위로 공포감을 느꼈다고 일관되게 진술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건물은 피해자를 포함해 약 10세대의 입주민들이 거주하는 전형적인 다세대주택이다"라며 "피고인이 들어간 이 사건 건물의 공동현관, 공용 계단, 세대별 현관문 앞부분은 공동주택 거주자들이 일상적인 주거 생활을 영위하는 각 세대의 전용 부분에 필수적으로 부속하는 공간이다"라고 전제했다.

이어 "이 공간은 그 형태와 용도·성질에 비춰 볼 때 거주자들의 확장된 주거 공간으로서의 성격이 강해 일반 공중에게 개방된 상가나 공공기관 등과 비교할 때 사생활 및 주거 평온 보호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큰 곳이므로 외부인의 출입이 일반적으로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2심 재판부와 달리 CCTV의 실제 작동 여부와는 관계없이 CCTV를 설치한 것 자체로 해당 건물에의 무단 출입을 금지하려는 거주자들의 의사가 외부에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1층 주차장의 천장에는 CCTV가 2대 이상 설치돼 있고, 그 아래 기둥 벽면에 'CCTV 작동 중', '외부차량 주차금지'라는 문구가 기재돼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출입 당시 이 사건 건물의 CCTV가 실제로 작동하지는 않았다. 또한 이 사건 건물에는 경비원이 배치돼 있지 않았고, 공동현관에는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리는 도어락 등 별도의 시정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라며 "그러나 이 사건 건물의 거주자들이나 관리자는 위와 같은 CCTV의 설치나 기둥 벽면의 문구를 통해 외부차량의 무단주차금지 외에도 주차장 및 이와 연결된 주거공간인 이 사건 건물 일체에 대한 외부인의 무단출입을 통제·관리한다는 취지를 대외적으로 표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이 사건 건물에 출입하는 사람은 주차장을 지나는 과정에서 이러한 표시를 쉽게 인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피고인의 출입을 승낙한 사실이 없다. 피해자는 피고인이 현관문 앞까지 들어온 행위를 그 당시 인식하지는 못했지만 이를 알게 되면서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이러한 피고인의 행위로 공포감을 느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라며 "이러한 이 사건 건물 공용 부분의 성격, 외부인의 무단출입에 대한 통제·관리 방식과 상태,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피고인의 출입 목적 및 경위와 출입 시간, 이 사건 행위를 전후한 피고인의 행동, 피해자의 의사와 행동, 주거 공간의 무단출입에 관한 사회통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피고인은 피해자 주거의 사실상 평온상태를 해치는 행위태양으로 이 사건 건물에 출입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결론 내렸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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