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감독의 일탈, 이후 10년의 공백기

양형석 2024. 3. 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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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이나영-장혁 주연의 <영어완전정복>

[양형석 기자]

2002 한·일월드컵 4강신화의 감동과 여운이 그대로 남아있던 2002년 7월 MBC에서 새 수목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가 방영을 시작했다. <햇빛 속으로>와 <맛있는 청혼>을 연출했던 박성수 PD와 <해바라기>의 각본을 썼던 인정옥 작가가 의기투합해 만든 <네 멋대로 해라>는 양동근과 이나영, 공효진 등 20대의 젊은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였다. 물론 신구 배우와 윤여정 배우 등 조연 캐릭터들의 열연도 대단히 돋보였다.

<네 멋대로 해라>는 3~40%의 시청률을 기록한 소위 '국민 드라마'는 아니었다. 하지만 <네 멋대로 해라>는 당시 2~30대 시청자들 사이에서 탄탄한 마니아층이 형성됐고 활발한 팬활동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스스로를 '네멋폐인'으로 부르며 <네 멋대로 해라> 상영회를 주최했고 대본집과 감독판 DVD 출시를 주도했다. '네멋폐인'으로 시작된 특정 드라마의 열혈팬은 '다모폐인'과 '미사폐인'으로 이어지며 2000년대 초·중반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 뇌종양에 걸린 스턴트맨 고복수(양동근 분)와 사랑에 빠지는 인디밴드 키보디스트 전경 역의 이나영은 이 작품을 통해 그저 예쁘기만 한 스타를 넘어 좋은 배우로 성장했다. 따라서 대중들은 이나영의 다음 작품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이나영은 의외로 가벼운 코미디 영화를 차기작으로 선택했다. 이나영이 영어학원을 다니는 동사무소 공무원을 연기했던 김성수 감독의 코미디 영화 <영어완전정복>이었다.
 
 <비트>로 유명했던 김성수 감독의 코미디영화 <영어완전정복>은 전국 91만 관객으로 흥행에 성공하진 못했다.
ⓒ (주)시네마 서비스
 
진지한 영화 만드는 감독들의 코미디 외도

한국영화 최초의 천만 영화를 만들었던 강우석 감독은 2000년대 초반까지 <투캅스1,2>와 <마누라 죽이기>,<공공의 적> 등 코미디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하지만 <실미도>를 계기로 <한반도>,<이끼>,<고산자, 대동여지도> 등 진지한 영화들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반대로 진지한 영화를 주로 만드는 감독들이 가끔씩 코미디 장르에 도전할 때도 있는데 관객들은 낯설어 하면서도 의외의 개그코드에 좋은 반응을 보내기도 한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와 <클래식> 등 애틋한 멜로 영화로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곽재용 감독은 2001년 차태현, 전지현 주연의 <엽기적인 그녀>를 선보였다. PC 통신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동명의 인터넷 소설을 영화화한 <엽기적인 그녀>는 소설의 재미를 실사로 풀어낼 수 있을지 우려하는 관객들이 많았다. 하지만 <엽기적인 그녀>는 전지현이라는 스타배우를 발굴하며 서울에서만 173만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라디오 스타>와 <동주>,<박열> 같은 명작들을 연출했던 이준익 감독은 지난 2003년 데뷔작 <키드캅> 이후 10년의 공백을 깨고 코미디 영화 <황산벌>을 통해 복귀했다. 신라군과 백제군이 각 지역의 사투리를 사용한다는 재미 있는 설정의 코미디영화 <황산벌>은 277만 관객을 동원하며 이준익 감독을 부활시켰다. <황산벌>의 성공으로 탄력을 받은 이준익 감독은 2005년 연말 한국영화 세 번째 천만 영화 <왕의 남자>를 선보였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친절한 금자씨>로 이어지는 '복수 3부작'을 끝낸 박찬욱 감독은 2006년 연말 다소 뜬금없이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로맨틱코미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만들었다. 정신병원 배경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전국 73만 관객에 그치며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2007년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일프레드 바우어상'(현 은곰상-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올해 크리스마스에 공개 예정인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2>를 만들고 있는 황동혁 감독은 데뷔작 <마이 파더>부터 <도가니>, <남한산성> 등 주로 진지하고 무거운 장르의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황동혁 감독의 필모그라피에도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판타지 코미디영화가 있으니 바로 2014년에 개봉했던 <수상한 그녀>다. <수상한 그녀>는 심은경과 나문희 배우 등 연기구명이 없는 출연진들의 호연으로 전국 865만 관객을 동원했다.

동생과의 대화 위해 영어 배우는 주인공
 
 이나영은 <네 멋대로 해라> 이후 차기작으로 <영어완전정복>의 평범한(?) 공무원 역할에 도전했다.
ⓒ (주)시네마 서비스
 
작년 11월에 개봉한 <서울의 봄>을 통해 천만 감독이 된 김성수 감독은 1995년 이병헌 주연의 <런어웨이>로 데뷔한 후 1997년 <비트>와 1999년 <태양은 없다>를 연이어 히트시키며 일약 스타 감독으로 도약했다. 2001년 사극액션 <무사>를 통해 뛰어난 영상미와 남성적인 연출로 이름을 날리던 김성수 감독이었기에 2003년 코미디 영화 <영어완전정복>으로의 파격 변신은 관객들이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영어완전정복>은 동사무소 9급 공무원 영주(이나영 분)가 부족한 영어실력 때문에 외국인의 민원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이 때문에 영어학원에 다니면서 이상형인 문수(장혁 분)를 만나게 된다는 내용의 코미디 영화다. <영어완전정복>은 수수한 차림을 하고 촌스런 안경을 썼다는 이유로 장혁을 비롯한 영화 속 모든 출연자들이 연예계의 대표 소두미녀 이나영을 '평범하다'고 이야기하는 매우 독특한(?) 설정의 영화다.

데뷔 후 처음으로 코미디 영화 연출에 도전한 김성수 감독은 <영어완전정복>에서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결합한 연출로 웃음을 전달했다. 특히 학원에 모인 학생들이 레벨테스트를 받을 때는 격투게임 속에 인물이 들어가 게임 속 캐릭터와 영어로 싸우는 연출을 선보였다. 문수가 클럽에서 원어민 교사 캐시(안젤라 켈리 분)와 춤을 출 때도 캐시로부터 문수를 구해내는 영주의 상상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다.

영주는 소주병 돌리기를 통해 동사무소 대표로 어쩔 수 없이 영어학원에 오게 됐지만 문수에게는 영어를 배워야 할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어린 시절 미국으로 입양된 동생 문영(이소은 분)과 원활한 대화를 하기 위함이었다. 영주가 문영을 문수의 애인이라고 오해하면서 문수가족의 상봉이 무산될 뻔 했지만 영주의 노력으로 가족상봉은 극적으로 성사됐다. 그리고 런닝 타임 내내 코미디로 진행됐던 영화는 잠시 애틋한 가족드라마로 장르가 바뀐다.

<영어완전정복>은 코미디에 도전한 김성수 감독의 유쾌한 연출과 주연을 맡은 이나영, 장혁의 코믹한 연기가 만난 흥미로운 영화였다. 하지만 2주 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개봉하면서 전국 91만 관객으로 만족스런 흥행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이후 김성수 감독은 2013년 <감기> 개봉 전까지 무려 10년의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이나영은 2004년 인정옥 작가의 신작 <아일랜드>에서 신비한 한국계 아일랜드 여성 이중아를 연기했다. 

유해진-이범수 등 화려한 카메오 라인업
 
 김성수 감독의 작품에 출연했던 유해진(왼쪽)과 이범수는 <영어완전정복>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 (주)시네마 서비스
 
지난 2월 7일 개봉 후 한 달 가까이 독립·예술영화 부문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는 김용균 감독의 <소풍>에 출연한 나문희 배우는 <영어완전정복>에서 문수의 어머니 조여사 역을 맡았다. 아버지를 닮아 바람둥이 기질을 가진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만나는 여자 중 공무원(영주)이 있다는 문수의 이야기에는 큰 관심을 보인다. 물론 나문희 배우의 진가가 드러난 장면은 딸 문영과 나눈 눈물의 재회 장면이었다.

'쌍천만 영화' <신과 함께>의 원작자 주호민 작가로부터 김자홍 캐릭터(차태현 분)와 가장 닮은 배우라고 평가 받았던 정석용은 <영어완전정복>에서 타이슨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학원 수강생을 연기했다. 초반에는 여러 수강생 중 한 명으로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던 타이슨은 영화 중반 강사인 캐시에게 '고향의 맛'을 느껴보라며 피자를 선물했다. 그리고 각 인물의 뒷 이야기가 나오는 엔딩 크레디트에서 캐시와 결혼했다.

많은 코미디 영화들이 그렇듯 <영어완전정복> 역시 카메오 라인업이 꽤 화려한 편이다. 김성수 감독의 <무사>에 출연했던 유해진과 <태양은 없다>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였던 이범수는 맨발로 지하철을 탄 영주에게 문수의 탑승을 알려주는 만담콤비로 등장했다. 그리고 영주 옆에서 스포츠신문을 보던 남자는 원로 코미디언 한무였고 정두홍 무술감독은 영주의 상상장면에서 강의실을 습격하는 테러리스트 역할로 특별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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