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기사의 고된 하루, 고객의 요청사항 하나로 시작되다

조영준 2024. 3. 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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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4] 큐레이션 02 여기 한국입니다, < 문 앞에 두고 벨 X >

[조영준 기자]

 영화 <문 앞에 두고 벨 X>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배달비의 개념은 꽤 어색한 구석이 있었다. 6000원짜리 짜장면 한 그릇을 먹자고 3000원이 넘는 배달비를 내는 것도 이상하고, 심지어는 지정된 금액 이상이 아니면 배달을 주문할 수도 없다니. 식당에 직접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하던 때에는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이다. 물론 그때는 배달비도 없었다. 지금 배달비를 받는 여러 어플과 그 회사들은 집에서 더 편하게 주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당시에도 전화기만 있으면 주문은 언제나 편했다.

개개인의 감상이나 의견과는 관계없이 새로운 배달 문화는 지난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이제 온전히 우리 삶 속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 삶이 된 것은 종종 문화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되곤 한다. 이제 남는 것은 이 이야기의 어떤 지점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 것인가 하는 문제다. 배달비에 대한 다소 부정적인 어투로 이 글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여기에는 사람도 있고, 관계도 있고, 또 무엇보다 음식이 있다.

영화 < 문 앞에 두고 벨 X >는 주인공 지호(지우 분)가 중고 자전거를 37만 원에 구입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배달 어플 기사로 일했다. 그동안은 걸어서 배달을 했지만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이며 수익을 높여 보자는 생각으로 자전거를 떠올린 것이다. 흠집도 조금 있고 생각보다 더 비싼 값을 치르기는 했지만 장기적인 투자라 생각하기로 한다. 그렇게 자전거로 첫 배달을 하던 날, 지호는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 하면 할수록 손해만 되는 상황에서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02.
이주영 감독의 단편 데뷔 작품 < 문 앞에 두고 벨 X >는 배달 기사로 수입을 얻고자 하는 주인공 지호가 겪게 되는 하루 동안의 에피소드를 담은 작품이다. <야구소녀>(2020), <브로커>(2022) 등 여러 작품에서 배우로 인정을 받은 이주영 감독은 자신의 첫 연출작을 통해 실제 배달 기사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와 어려움을 극 중에 반영하며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며 급격히 성장한 배달 서비스 산업과 아직 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사회적 제도와 인식 사이의 간극을 시의적절하게 녹여낸 인상 깊은 작품이다.

처음 이 작품을 만났던 건 2022년 10월에 열렸던 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였다. 당시 동명의 제목으로 '와이드 앵글-한국단편 경쟁'에 출품되었던 이 영화는 이주영 배우의 첫 연출작이라는 것만으로도 많은 화제를 모았다. 특히 2022년의 부산 영화제는 길었던 코로나 시기의 제한 상영 및 축소 운영을 딛고 다시 정상 개최를 하던 때였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되는 배달은 꽤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주영 감독은 이듬해인 2023년 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시 배우의 자리로 돌아가, 중국의 판빙빙 배우와 함께 영화 <녹야>(2023)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되었다.
 
 영화 <문 앞에 두고 벨 X>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3.
지호가 겪게 되는 문제는 첫 배달을 주문한 고객의 요청 사항에 적혀있던 한 문장, '문 앞에 두고 벨 X'로 인해 시작된다. 쌀국수를 픽업해 배달해 달라는 고객의 주문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빠른 시간 안에 목적지까지 도착하게 되지만, 굳게 닫힌 공동 현관문으로 인해 배달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서부터다. 어렵사리 누군가의 집 앞까지 배달에 성공하지만 이번에는 컴플레인이 들어온다. 그 쌀국수 고객이 음식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다시 돌아가 음식을 회수해 보지만 이미 국수는 다 불어 있고 국물도 식은 후다.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부른다. 컴플레인을 받은 고객센터에서는 계속해서 전화가 오고, 쌀국수를 만들어 제공한 가게에서는 피해 보상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채근하고, 이 문제에 묶이면서 다음 배달은 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때마침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되던 자물쇠는 잠기지가 않고, 길가에 세워둔 자전거를 얼른 치우라며 볼멘소리만 듣는다. 얼마 받지도 못하는 한 건의 배달을 컴플레인 받고 택시까지 타서 겨우 해결하고 났더니 남는 건 하나도 없이 불만족 평점만 올라간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영화는 많은 사례를 복잡하게 설명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그저 한 건의 컴플레인 사건을 중심으로 현실 속 배달 기사가 실제로 겪을 법한 거의 모든 부정적인 케이스를 펼쳐낸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 생활에 보태고자 하는 생계형 기사들에게는 정말 쉽지 않은 순간들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이주영 감독의 시선이 어디에 놓이는 하는 것이다. 단순히 오락성 짙게 그려지는 사건 자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모든 책임을 개인이 져야 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는 시스템의 문제다. 자신의 실수나 잘못된 행동으로 시작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서. 그래서일까? 허기라도 달랠 겸 꺼낸 주전부리에 쓰여 있던 문구, '배달 기사님들 오늘도 수고하십니다. 하나씩 가져다 드세요'라는 짧은 문구에 지호는 그만 울컥하고 만다. 이 영화에서 가장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장면이다.

04.
"근데 저 지금 빨리 가봐야 해서요. 고객님이 화가 많이 나셔가지고..."

배달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동생이 시켜놓은 듯한 치킨 배달이 이제 막 도착한다. 배달을 대신 건네받고 영수증을 확인하는데 동생의 배달 고객 요청 사항에 '문 앞에 두고 벨 X'라는, 오늘 자신을 무력하게 했던 문장이 똑같이 그대로 쓰여있다. 첫 주문에 쓰여 있던 문장과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같은 문장. 어쩌면 오늘 벌어진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저 문장이 전송되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이 이 난리의 원흉은 아니었을까. 영화 < 문 앞에 두고 벨 X >는 너무도 익숙한 상황을 통해 날카롭게 지적한다.

당장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문 앞에 두고 벨은 누르지 마세요.' 이렇게만 요청해도 누군가의 하루는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의 상냥한 말 한마디에 잠시나마 온기를 느낄 수 있었던 지호의 모습처럼.

덧붙이는 글 |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하고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운영 중인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는 2024년 2월 15일(목)부터 총 18개의 큐레이션을 통해 ‘2023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선정작 92편(장편 22편, 단편 70편)을 소개/상영할 예정입니다. 두 번째 큐레이션인 '여기, 한국입니다'는 3월 1일부터 3월 15일까지 보름간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 가입 후 무료로 시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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