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저도 아니다" 막막한 생계형 전공의…주 80시간 경험 단기알바도

방제일 2024. 3. 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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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전공의, 병·의원 취업길 물색
서울시의사회 '구직 게시판' 신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해 의료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병·의원 아르바이트를 물색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전공의의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은 탓에 이들이 다른 병원에 취업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6일 서울시의사회는 전공의들을 돕겠다며 구인·구직 게시판을 열었다. 이 게시판에는 '단순 참관 의사를 구한다', '의대생과 인턴, 전공의를 우대한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있다. 일부 개원의도 '전공의 우대' 구인 공고를 냈다. 정부와의 대치가 장기화하자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전공의 또한 일자리를 물색하고 나섰다. 특히, 이들은 일반의 자격으로 병·의원에서 아르바이트 등 취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앞서 서울시의사회와 같이 개원의와 의사단체 등에서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하겠다며 지원 의사를 내비친 상황이다.

부가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대해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 7천여명에 대해 면허 정지 등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발송한 5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 의료진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그러나 전공의들의 취업 길을 막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은 아직 수리되지 않은 사직서다. 보건복지부는 전공의들의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았고, 사직 자체에도 효력이 없는 만큼 이들을 여전히 전공의 신분으로 보고 있다. 현행법상 전공의 신분을 가진 자는 다른 병·의원에 취직할 수 없다.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 제14조를 보면 전공의는 의료기관을 개설해서는 안 되며,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련병원 외 다른 의료기관에 근무할 수 없다.

6일 서울시의사회는 전공의들을 돕겠다며 구인·구직 게시판을 열었다. 이 게시판에는 '단순 참관 의사를 구한다', '의대생과 인턴, 전공의를 우대한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있다. [사진출처=서울시의사회 홈페이지]

해당 규정에 정부 또한 관련법에 따라 전공의를 채용하는 것이 불법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집단 사직서 제출로 계약이 종료되기 전에 전공의를 대상으로 진료 유지명령을 발령했으므로 사직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며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았으므로 전공의 신분이 유지된다"고 밝혔다. 이어 "전공의 겸직을 제한하는 것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피교육자의 지위에 있는 전공의가 본래의 수련 과정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므로 다른 의료기관에서 겸직 근무를 하는 것은 불법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생계형 전공의들, 알바로 생활비 마련…복귀율은 '미미함'

규정으로 인해 사정이 급한 일부 전공의들은 병·의원이 아닌 물류센터, 식당, 편의점 등에서 일자리를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공의의 경우 혹독한 환경에서 주 80시간을 일해본 경험이 있다. 이 가운데, 지난 4일 한 의사 A씨가 일부 전공의들이 쿠팡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이 글에서 그는 "운동도 하고 생활비도 벌 겸 알바를 함. 쿠팡맨에서 일당 20만~30만원 벌었고, 잠잘 시간도 많고 밥 먹는 것도 편하다. 하는 일에 비해 버는 게 괜찮다고 전함"이라고 했다.

A씨는 "쿠팡 물류센터 관리자로 있는 친구가 얼마 전에 온 알바생 이야기를 해주는데 뭔가 묘하고, 일도 빠릿빠릿 잘했다 한다"고 밝혔다. 이어 "첫날 근무하고 말씀드릴 게 있다더니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지적하는 데다가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냐 건의하는데 그 내용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참신한 내용이라 본사 파견직원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물류센터에서 일했었냐니까 전 직장에서 좀 비슷한 일을 했다고 한다. 기존 알바들이랑 뭔가 다른 녀석이라 알바인데도 팀장으로 뽑고 싶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PS(추신)라며 "정부 정책의 효과가 엄청난 듯. 의사 낙수 효과가 쿠팡까지 내려간 듯. 무슨 과 후배였을까 갑자기 궁금해짐"이라고 했다.

그러나 해당 글은 다수의 온라인 커뮤니티로 확산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이유로 누리꾼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쿠팡 아르바이트가 삼일절 연휴 이틀(3월 1일, 2일) 동안 일하고 받은 급여는 총 25만원 수준이었다. 연장근로수당, 공휴일 인센티브, 주휴수당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다. 하루 약 12만원 정도를 받은 셈이다. 쿠팡 알바는 보통 시급 9860원이 적용된다. 허브에서 일할 경우는 1만원이 조금 넘는다.

근무 시간에 따라 급여가 달라지는데 세전 기준으로 주간 조(오전 8시~오후 6시)는 일급 9만3670원, 오후 조(오후 6시~익일 오전 4시)는 11만8320원, 심야(오후 10시~익일 오전 6시)는 11만4863원을 번다. 공휴일에는 주간 조 13만8040원, 오후 조 16만8960원, 심야 조 15만3150원 수준이다.

9천명에 달하는 전공의가 근무지를 이탈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5일부터 이들에게 면허 정지 등 행정처분을 위한 사전통지서를 발송할 예정이다. [사진출처=연합뉴스]

하루 20만~30만원을 벌기 위해서는 주간 조, 오후 조를 연달아서 하면 되지만 쿠팡에서는 시스템으로 이러한 근무 방법을 제한하고 있다. 사실상 쿠팡 알바를 처음 하는 사람이 하루 30만원을 벌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아르바이트가 팀장에게 시스템을 지적했다', '알바를 팀장으로 쓰고 싶었다'는 등의 표현을 두고도 누리꾼들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일부 누리꾼은 "의사 문학 쿠팡 알바편인가요?", "아르바이트 안 해본 티가 난다", "현실감각이 없다"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앞서 정부는 5일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들에게 행정처분 사전 통지서를 발송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을 열고 100개 수련병원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4일 밤 8시 기준 신규 인턴을 제외하고 레지던트 1~4년 차 9970명을 점검한 결과 근무지를 이탈한 이들은 8983명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추가 현장 점검을 실시해 업무개시명령 위반이 확인되면 면허정지 절차를 집행할 예정이다.

방제일 기자 zeilis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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