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엄마·아빠 어릴 적 썼던 전화기, 지금 내 전화기와 뭐가 다를까

2024. 3. 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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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통신 수단에서 손바닥만 한 컴퓨터로…흥미진진 전화기의 발달 한눈에

전화기(Phone)는 말소리를 전파나 전류로 바꿨다가 다시 말소리로 환원시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게 만든 기계입니다. 오늘날 대표적인 전화기는 스마트폰(Smart Phone)으로, 우리는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죠. 영상도 보고 노래도 듣고 사진도 찍고 독서도 하고 주문도 하고 말이죠. 오늘날 스마트폰은 과거 전화기와 외형·기능 등에서 차이가 크게 나는데요. 전화기가 어떻게 탄생했고 발전해왔는지 한번 알아볼까요.

여주시립 폰박물관을 찾은 유정현·박재인·조유나(왼쪽부터) 학생기자가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보고, 전화교환기에 회선을 연결하며 전화교환원이 돼 봤다.


남녀노소 누구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세상입니다. 한국갤럽이 2023년 7월 11~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에게 현재 스마트폰 사용 여부를 물은 결과 97%가 '사용한다'고 답했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2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전국 1만 개 가구 내 2만463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만 3~19세 학부모가 ‘자녀의 스마트폰 사용 여부’를 묻는 질문에 ‘사용하고 있다’는 응답률이 90.2%였어요.

스마트폰 등 우리가 사용한 전화기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소중 학생기자단이 경기도 여주시 연양동에 있는 여주시립 폰박물관을 방문했습니다. 2016년 개관한 여주시립 폰박물관은 4600점 이상의 다양한 국내외 전화기를 전시·소장하고 있어요. 우은경 주무관이 박재인·유정현·조유나 학생기자를 전화기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으로 안내했죠. “전화기를 ‘통신 수단’이라고 하는데요. 통신은 사람 사이에 의사소통을 위해 신호나 언어를 통해 의미를 주고받는 것을 말해요.” 정현 학생기자가 “전화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어떤 통신 수단이 있었나요?”라고 물었어요. “과거에는 시각신호로 봉화(봉수)·신호연·깃발 등, 청각신호로 북·나팔 등을 사용했어요. 원거리 통신으로 쓰는 봉화는 고려 중기에 확립돼 조선시대까지 사용됐죠. 높은 산꼭대기에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을 피워 지역 상황을 보고했어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해상에서 멀리 있는 군사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군사 명령과 신호를 나타내는 신호연을 만들어 하늘 높이 띄워 깃발·북·나팔 등 소리와 함께 통신했죠.”

1930년 미국의 시그널 일렉트릭(Signal Electric Mfg)에서 만든 모스 전신기. 누름단추(오른쪽)로 신호를 보내고, 수신기(왼쪽)에 긴 종이 띠를 연결해 신호를 받는다.


전화기의 탄생

통신 수단은 전기적 현상을 매개로 하거나 전기적 기기를 사용하는 전기통신이 시작되면서 크게 발달했어요. 전기통신은 전달 수단에 따라 유선·무선으로 나뉘죠. 유선 전기통신은 통신을 보내는 송신 지점과 통신을 받는 수신 지점 사이를 전선으로 연결해 소통합니다. 1837년 새뮤얼 모스가 모스 전신기와 독자적인 알파벳 기호인 모스 부호를 만들면서 유선 전기통신이 시작됐죠. 모스 전신기는 누름단추를 통해 전류를 끊고 이을 수 있으며, 발생하는 파형 신호를 얇고 긴 종이 띠에 그려내는 방식입니다. 짧은 신호는 점(·)으로, 긴 신호는 줄(-)로 표시되죠. “가장 널리 알려진 모스 부호는 재난구조신호 ‘SOS’예요. 영화 ‘엑시트’를 보면 사람들이 건물 옥상에서 구조를 요청하면서 ‘따따따 따아따아따아 따따따’라고 크게 말하잖아요. 이는 모스 전신기로 SOS(··· --- ···) 모스 부호를 칠 때 나는 소리를 따라 한 것이죠.”

1907년 미국의 오토매틱 일렉트릭(Automatic Electric Co.)에서 만든 벽걸이형 다이얼 전화기. 왼쪽에 걸려 있는 수신기에 말하고, 위에 달린 송화기로 상대의 말을 듣는다.

모스 전신기 등장 이후 사람들은 신호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전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1876년 영국 출신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미국에서 전화기를 발명했죠. “벨의 전화기는 어떤 원리로 목소리를 전달하나요?” 재인 학생기자가 질문했어요. “벨이 만든 전화기는 ‘액체 송화기’와 ‘교수대 수신기’로 나뉘어요. 액체 송화기를 보면 소리를 내는 원형 통, 그 아래 진동판 역할을 하는 양피지가 붙어있으며, 양피지 아래에는 코르크에 고정한 백금 바늘이 있고, 백금 바늘 아래에 황산 용액이 들어 있는 작은 컵이 있죠. 송신자가 원형 통 입구에 목소리를 내면 그 진동에 의해 양피지가 떨리고 용액 속에서 배터리에 연결된 바늘이 위아래로 움직이죠. 바늘이 용액 사이를 위아래로 이동하면서 전류가 흐르게 되고 전기 신호로 바뀐 목소리는 전선으로 전달돼요. 배터리로 움직이는 이 송화기의 전선은 진동 금속판이 붙은 수신기에 연결됐어요. 전류에서 발생하는 파동에 따라 진동하게끔 만들어 송화기에서 전달된 목소리를 듣게 되죠.”

“우리나라에는 언제 처음 전화기가 들어왔는지 궁금해요.” 유나 학생기자가 말했어요. “1882년 청나라에서 전기 기술을 배워 온 유학생 상운이 전화기를 들고 왔는데요. 그해 임오군란으로 인해 파괴됐다고 해요. ‘텔레폰(Telephone)’ 영어 발음을 한자로 표기해 ‘덕률풍(德律風)’이라고 불렀죠.” 전화기는 텔레폰의 뜻을 번역해 만든 단어예요. 이후 청일전쟁·갑오개혁·을미사변 등이 이어지며 전화기 사업이 진행되지 못하다가 1896년이 돼서야 경운궁(덕수궁)에 전화기를 설치했죠. “『전화』는 1898년(광무 2년) 11월 20일부터 1899년(광무 3년) 1월 25일까지 외부와 각 부서 간 전화 통화를 기록한 책이에요. 궁내부에서 고종 황제의 집무실인 대청, 의정부, 그리고 인천의 감리서 사이 통화한 내용으로, 주로 인천의 이양선 출몰과 독립협회의 활동에 대한 보고가 있었답니다.”

유정현 학생기자가 숫자마다 있는 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돌려 전화를 거는 다이얼 전화기를 체험하고 있다.

일반인이 전화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건 1902년부터예요. 하지만 요금이 비싸 보통 사람은 거의 이용하지 못했죠. 1920년대 쌀 한 가마니가 13원이었는데 전화기는 1대에 1000원 이상이었어요. “1925년 발표된 엄상섭의 소설 『전화』에는 전화기를 설치하고 유지하기 위해 많은 돈을 쓰며, 가족구성원이 전화기를 통해 서로의 사생활을 알게 돼 불편함을 느끼지만 전화기를 좋아하는 내용이 담겼죠. 전화기는 연애의 수단이 되기도 했어요. 1926년 개벽사에서 출간한 잡지 『별건곤』에서는 서로 얼굴을 보지 않은 채 3년간 전화로 사랑을 나누던 남녀가 우연히 만나게 되지만 집안 반대로 헤어졌다는 이야기가 실리기도 했죠.”

전화교환원은 전화교환기로 발신자가 통화를 원하는 장소나 사람의 해당 회선을 연결해줬다.

이 무렵 전화기로 통화하기 위해선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사람, ‘전화교환원’이 필요했어요. 초기에는 남성이 맡았는데, 1920년 이후 여성도 전화교환원으로 일하기 시작했죠. “전화교환소에서 일하는 전화교환원은 발신자가 통화를 원하는 장소나 사람을 이야기하면 전화교환기로 해당 회선을 연결해줬습니다. 전화교환원이 되려면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구분해야 해서 청각이 예민하고, 목소리가 명랑하며, 전화교환기 높이 때문에 키가 4척 7촌(약 141cm) 이상이어야 했어요. 전화교환원은 1970년대 초 자석식 전화기 대신 다이얼 전화기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차츰 사라졌어요.”
전화기는 자석식·다이얼(자동식)·전자식(버튼식) 등 크게 3개로 나눌 수 있어요. “1871년 무치가 최초의 자석식 전화기를 만들었죠. 전화기 몸통 왼쪽에 설치된 고리에 수화기를 걸고, 몸통 오른쪽에 있는 손잡이를 돌리면 전화기 내부에서 전기가 발생해 전화교환기에 신호를 보내며 전화교환원을 호출하고, 전화교환원에게 수신자 이름을 말하면 그와 연결해줘서 통화했어요. ‘전화를 걸다’라는 말이 고리에 수화기를 걸고 손잡이를 돌리는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랍니다.”

1970~80년대 가게에서 주로 사용한 녹색 간이공중전화. 송수신기를 들고 10원짜리 동전 2개를 넣으면 전화를 걸 수 있었다.

1891년 장의사 알몬 스트로저는 전화교환원 없이 발신자와 수신자를 연결하는 자동 교환 방식 교환기와 발신자가 직접 다이얼을 돌려 전화번호를 입력하는 다이얼 전화기의 특허를 출원했어요. 다이얼 전화기에는 숫자마다 구멍이 있는데, 손가락을 구멍에 넣고 돌려 발생시킨 전류를 자동 교환 방식 교환기로 보내죠. “알몬 스트로저는 경쟁사 사장의 아내가 전화교환원이라 전화로 문의하는 고객들을 빼앗겨 장사가 잘 안되자 다이얼 전화기를 만들게 됐답니다.” 1919년 전화기 제조회사 벨 텔레폰(Bell Telephone Company)이 개발한 전자식 전화기는 전화기의 번호 버튼을 눌렀을 때 신호가 발생해 전화국으로 보내져요. 전화기 버튼에 표시된 10개 숫자와 2개 문자(*, #)는 해당 버튼을 눌렀을 때 각각 다른 신호를 발생하죠.

1944년 발행된 캐나다 잡지 ‘라디오 뉴스’(Radio News). 표지 모델인 군인이 1941년 모토로라가 개발한 최초의 휴대용 무전기 SCR-536을 들고 있다.


전화기의 발전

무선통신은 전선을 이용하지 않고 전자기파를 통해 소통하는 것을 말해요. 이탈리아의 굴리엘모 마르코니는 발진기(發振器·어떤 주파수의 전압 또는 전류를 발생시키는 장치)의 한쪽 끝에 구리선으로 땅에 연결하면 전자기파가 복사된다는 것을 발견하고 통신에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 1896년 무선전신에 대한 특허를 받았죠. 1900년대에는 바다 위 군함에 무선전신 시설을 설치해 육지와 소식을 교환할 수 있게 됐어요.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은 무선통신을 활용해 군함·항공·자동차 등에서 사용할 무선전화기(무전기)를 본격적으로 개발합니다.

1957년 모토토라가 출시한 핸디토키 ‘Portable Radio Phone’은 크로스백처럼 한쪽 어깨에 멜 수 있다.

“1937년 캐나다 출신 발명가 돈 힝스가 개발한 ‘워키토키’(Walkie-Talkie)는 걸어 다니며(Walk) 통화(Talk)할 수 있는 무전기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 많이 사용했죠.” 우 주무관이 6·25 전쟁 때 미군과 한국군이 사용한 P-10 무전기를 가리켰어요. “무게 12kg 정도로 백팩처럼 멜 수 있으며 산속에 숨어서도 주파수를 잡아야 하므로 안테나 길이가 10피트(약 3m) 이상이죠. 안테나를 중간중간 접을 수 있어 길이 조절이 가능했고, 다 접으면 워키토키 몸통 옆에 보관할 수 있었죠. 통신병은 빠르게 안테나를 펴고 접는 연습을 많이 했다고 해요.”

모토로라가 1955년 개발한 최초의 무선호출기 ‘Handie-Talkie Radio Pager’. 짧은 음성 신호(호출음)를 전달하며, 미국 뉴욕 마운틴 시나이 병원에서 처음 사용됐다.


워키토키는 무겁고 큰 백팩 형태도 있지만, 작은 크로스백 형태나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크기의 ‘핸디토키’(Handie-Talkie)도 있습니다. 1941년 미국의 모토로라(Motorola)가 개발한 핸디토키 SCR-536은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최초의 휴대용 무전기로 6·25 전쟁에서도 사용됐어요. 무전기는 위급환자가 병원에 오거나 병실에 있던 환자가 갑자기 위중한 상태가 될 때 등 병원에서도 썼죠. “의사와 간호사들이 무전기로 상황을 이야기하곤 했는데요. 1950년대 뉴욕 마운틴 시나이 병원에서는 무전기에서 나오는 말소리 때문에 시끄럽다는 환자들의 민원이 들어왔죠. 병원 측은 모토로라에 해결책을 부탁했고, 모토로라는 1955년 짧은 음성 신호(호출음)를 전달하는 최초의 무선호출기 ‘Handie-Talkie Radio Pager’를 개발했어요.”

1996년 길거리 가판대에서 판매하는 무선호출기(삐삐)를 구매하려는 한 시민의 모습.

유나 학생기자가 “그게 어른들이 예전에 사용했다던 ‘삐삐’인가요?”라고 했죠. “맞아요. 무선호출기에서 ‘삐삐’ 소리가 나서 삐삐라고 불렀죠. 1982년 국내 최초로 한국전기통신공사(한국통신·현 KT)에서 서울 지역 한정으로 무선호출 서비스를 시작했어요. 무선호출기는 초창기에 음성 신호로만 수신됐다가 1986년 전화번호가 표시되는 디스플레이가 포함된 제품이 나왔고, 1991년부터는 서비스 가능 지역이 전국으로 확대됐죠. 디스플레이가 작고 숫자 표시 개수도 한정돼 사람들은 숫자에 뜻을 담았어요. 예를 들어 486은 ‘사랑해’, 981은 ‘급한 일’, 8282는 ‘빨리빨리’ 등이죠. 지금 여러분이 음식점에서 쓰는 진동벨이 일종의 무선호출기예요.”

1999년 와이드 텔레콤이 개발한 무선호출기 ‘WP-3234XN’. 일명 ‘헬로키티 무선호출기’로, 헬로키티 등 부분에 디스플레이가 설치됐다.

사람들은 무선호출기에 뜬 전화번호를 보고 공중전화로 전화하거나 음성 메시지를 확인했죠. 동전을 넣어 작동하는 공중전화는 1889년 미국 발명가 윌리엄 그레이가 만들었어요. 우리나라에는 1902년부터 경성·인천·개성 등에 공중전화가 설치됐죠. 옆에서 지키는 관리인에게 요금을 내고 상대방과 통화할 수 있었어요. “1954년 체신부 고시 ‘공중전화 이용시간 제정’을 살펴보면 ‘전화의 이용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에 종료되며, 공중전화 관리인은 설정한 시간 외에 임의로 이용시간을 연장할 수 있으며 한 달에 두 번 휴일을 지정할 수 있다’고 나오죠. 1962년 서울시청 앞 등 10개소에 최초의 무인공중전화가 설치되면서 관리인이 자리를 지키는 일은 없어졌어요.”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밖에서 전화가 급했던 사람들은 공중전화에 몰렸다.

1960년대만 해도 가정용 전화기가 귀하고 비싸서 마을에 잘 사는 사람이나 이장님 댁을 가야만 전화를 할 수 있었죠. 마이크로웨이브(microwave·진동수가 1~300GHz, 파장이 1mm~1m인 전자기파) 도입으로 회선이 증설되면서 1971년 서울-부산 간 전화 가입자가 직접 다이얼을 돌려 전화를 걸 수 있는 장거리 자동 전화(DDD·Direct Distance Dialling)가 처음 개통됐어요. “1981년 ‘전화기 자급제’가 실행되면서 삼성전자·금성사(현 LG전자) 등 많은 회사가 전화기를 생산·판매하고 전화 가입자는 원하는 전화기를 구입할 수 있게 됐죠. 통계청의 ‘1986년 한국통계연감’에 따르면 자급제 실시 전인 1980년 전국의 가정·회사에 보급된 전화기 수는 338만6800대였지만, 1985년엔 2배 이상 뛰어올라 791만7200대가 보급됐죠. 1987년에는 1000만 회선을 돌파하며 1가구 1전화 시대를 엽니다. 무선호출기가 대중화된 1990년대에는 밖에서 확인하고 연락하기 위해 공중전화 줄이 길게 늘어서곤 했는데, 그런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1997년 발신전용 이동통신 전화기 ‘시티폰’이 나왔죠. 시티폰은 공중전화 반경 200m 내에서만 통화가 가능했지만 무선호출기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편리한 기술이었죠. 하지만 어디서나 통화가 가능한 휴대전화가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시티폰은 출시 3년 만에 사라졌어요.”

세계 최초 상용 휴대전화 ‘DynaTAC 8000X’. 1983년 모토로라가 출시했으며 벽돌과 비슷하게 생겨 ‘벽돌폰’으로도 불린다.


휴대전화와 스마트폰 세상

재인 학생기자가 “전화기를 어떻게 손에 들고 밖에 가지고 다닐 수 있었을까요?”라고 질문했어요. “처음에 이동통신(이동 중에 무선으로 통신하는 방법)은 기지국의 한정된 주파수 범위 내에서만 통화가 가능했어요.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지국 수가 늘고 주파수 범위가 점점 넓어지면서 무선으로 먼 거리까지 통화가 가능하게 됐죠.” 세계 최초 상용 휴대전화는 1983년 출시된 모토로라의 ‘DynaTAC 8000X’예요. 길이 33cm·무게 790g으로, 벽돌을 닮아 ‘벽돌폰’이라고 알려졌죠. “원래 모토로라는 1973년 휴대전화를 발명했는데 10년 동안 출시하지 못했어요.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이동통신망을 미국 전역에 설치하고, 상용화를 위해 추가 연구를 해야 했기 때문이에요.”

1992년 영국의 오비텔(Orbitel)에서 출시한 ‘TPU-901’은 문자 메시지를 최초로 송수신한 휴대전화다.


우 주무관이 “가장 보여주고 싶은 전화기”라면서 삼성전자 ‘SH-100’을 소개했죠. “SH-100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 맞춰 출시한 국내 최초 휴대전화예요.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에게 이 전화기를 선물했죠. 삼성전자는 DynaTAC 8000X를 10대 정도 수입해 해체·조립을 반복하면서 터득한 지식·기술로 우리나라만의 휴대전화를 만들게 됐다고 해요. 상대방 이름을 누르면 전화번호를 호출할 수 있는 새로운 기능을 탑재했죠.” 1992년 영국의 오비텔(Orbitel)에서 출시한 TPU-901은 문자 메시지를 최초로 송수신한 휴대전화예요. 엔지니어 닐 팹워스가 TPU-901 문자 메시지 시스템 개발 실험을 위해 책임자에게 ‘Merry Christmas'라고 보낸 것이 세계 최초 문자 메시지가 됐죠. 이 메시지는 2021년 파리 옥션에서 대체 불가능 토큰(NFT)으로 12만2690유로(약 1억78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어요.

디스플레이 부분을 가로로 돌릴 수 있는 삼성전자 SCH-V500(가로본능) 전시물을 살펴본 소중 학생기자단.


개인이 소지하는 휴대전화가 보편화하면서 형태와 디자인도 개성 있게 바뀌었습니다. “휴대전화가 처음 나왔을 땐 바 형태 디자인이 일반적이었어요. 초기 휴대전화는 안테나가 노출된 직사각형 형태 디스플레이와 하단에 10개 이상의 물리 버튼이 있었죠. 1990년대 후반부터 키패드를 가릴 수 있도록 뚜껑을 여닫는 플립(Flip)·폴더(Folder)형 디자인을 적용해 더욱 작고 깔끔해졌죠. 이는 키 버튼 등에 먼지·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도 했어요. 위로 화면을 밀어 올리는 슬라이드폰, 화면을 여러 각도로 밀거나 들어 올리고 360도로 돌릴 수 있는 휴대전화도 등장했죠. 디스플레이 부분을 가로로 돌릴 수 있어 일명 ‘가로본능’이라 불린 삼성전자 SCH-V500은 2004년 출시돼 사랑받았어요. 휴대전화 외관에 다양한 색상이나 캐릭터와 같은 디자인적 특성이 더해지기도 했죠. 2000년대 중후반엔 휴대전화 두께를 많이 줄인 슬림폰이 인기였어요.”

스마트폰은 통신 수단일 뿐만 아니라 영상·음악·게임 등을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매체이자 인터넷 검색과 문서 열람 및 제작, 전자우편 송수신 기능도 갖춘 소형 컴퓨터예요.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은 미국의 컴퓨터·정보기기 제조업체 IBM과 국제 통신업체인 벨사우스(Bellsouth)가 공동 개발해 1993년 출시한 무게 510g에 검고 기다란 벽돌 모양 전화기 ‘사이먼’(Simon)이에요. 전화는 물론, e메일·팩스·호출 기능이 있었으며 주소록·계산기·달력·시계·게임과 같은 자체 응용프로그램을 갖추고 키패드 대신 아이콘이 가득한 흑백 LCD 터치스크린이 달렸죠.” 유나 학생기자가 “사이먼이 엄청 인기를 얻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어요. “혁신적인 전화기였지만 당시엔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에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어요. 스마트폰을 사용하려면 빠른 네트워크, 다양한 앱을 제공하는 앱스토어 등이 있어야 했지만 1990년대 초중반에는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죠.”

박재인·조유나·유정현(왼쪽부터) 학생기자가 경기도 여주시 여주시립 폰박물관에서 전화기에 대해 알아봤다. 왼쪽부터 스마트폰 ‘아이폰’, 세계 최초 무전기 ‘SCR-536’, MP3 뮤직폰 ‘SPM100 Uprore’.


우 주무관이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퀴즈를 냈어요. “아이폰(iPhone)을 개발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스티브 잡스요!”라고 크게 말했어요. “2007년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공개했어요. 전면부는 유리로 덮인 터치스크린으로 키패드 없이 홈 버튼만 하단에 있었고, 그 외 버튼들은 측면으로 옮긴 형태였죠. 아이폰은 애플의 음악 소프트웨어 '아이튠즈'(iTunes)와 휴대전화, 이동형 컴퓨터 단말기(PDA)를 합친 것으로 다양한 앱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앱스토어가 함께 등장했어요.”

스마트폰도 컴퓨터처럼 작동 시 운영체제(OS)가 필요합니다. 아이폰은 애플 자체 OS인 ‘iOS’를 쓰죠. 그밖에 2008년 등장한 구글의 ‘안드로이드’(Android), 캐나다 스마트폰 제조회사 블랙베리의 ‘블랙베리’(Blackberry) OS 등이 있죠. 블랙베리의 경우 지금은 안드로이드로 바꿨어요. “2008년 대만의 HTC사가 출시한 ‘HCT드림’은 최초로 안드로이드를 사용한 폰으로 멀티태스킹 기능을 지원했죠. 안드로이드는 iOS와 함께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스마트폰 운영체제인데요. 안드로이드의 핵심은 앱스토어(구글 플레이)에서 누구나 앱을 개발하고 올릴 수 있다는 겁니다.”

각양각색 휴대전화 컬렉션

정현 학생기자가 “스마트폰 이후 미래의 전화기는 어떤 모습일까요?”라고 물었어요. “올해 2월 2일 애플이 출시한 ‘비전 프로’(Vision Pro)가 답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비전 프로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아우르는 확장현실(XR) 폼팩터(하드웨어 기기)인데요. 스키 고글 형태인 헤드셋을 착용하면 손을 사용하지 않아도 눈과 음성만으로 전화를 걸 수 있고, 다양한 앱을 실행할 수 있죠. 앞으로 전화기는 손으로 들지 않아도, 무언가를 누르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할 것 같아요.”

■ ‘내폰소’, 내 스마트폰을 소개합니다

박재인 학생기자의 ‘아이폰 X’- 애플의 아이폰 X의 장점은 디자인이 예쁘고 사진이 흔들리지 않고 선명하게 잘 찍힌다는 거예요. 다만 카메라가 700만 화소라 조금 더 높았으면 좋겠어요.

유정현 학생기자의 ‘갤럭시 점프 2′- 삼성전자에서 나온 저가형 스마트폰으로 가격이 저렴해요. 화면이 6.6인치(167.2mm)로 커서 동영상을 보기에 정말 좋지만 주머니에 넣고 다니긴 어렵답니다.

조유나 학생기자의 ‘갤럭시 A51 5G’- 아빠가 사용하신 걸 저한테 물려주셔서 제 취향에 딱 맞는 폰케이스와 그립톡으로 꾸미고, 새 배터리로 교체해서 새롭게 태어났답니다. 용량이 128GB인데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저에겐 조금 부족해요.

■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 여주시립 폰박물관에서 벨이 발명한 전화기, 워키토키, 다이얼 전화기 등 많은 전시물을 봤어요.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전화교환기였는데요. 영화에서만 보던 전화교환원이 돼서 전화교환기를 만져볼 수 있었죠. 그리고 부모님 세대에 썼던 공중전화, 삐삐, 크기가 큰 휴대전화를 볼 수 있어서 신기했어요. 항상 우리 곁에 있는 전화기인데, 여주시립 폰박물관에서 다양한 전화기가 있다는 걸 알게 돼 신기하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박재인(서울 가원초 5) 학생기자

통신 수단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정말 유익한 취재였어요. 박물관에는 전 세계 통신 수단이 모두 모여 있는 듯했죠. 그중 가장 신기했던 것은 벨이 세계 최초로 발명한 전화기인데, 원리가 복잡하면서도 정교해 굉장히 신기했어요. 부모님이 어렸을 때 사용했다고 말씀하셨던 삐삐를 사진으로만 보다가 직접 봤는데, 숫자에 뜻을 담았다는 게 정말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벨의 전화기부터 현재 최고 성능의 전화기인 스마트폰이 나오기까지 150년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새로운 전화기가 나올지 기대가 돼요.

유정현(서울 목동초 6) 학생기자

여주시립 폰박물관에서 전화기에 대한 재미있는 정보를 많이 얻게 됐습니다. 특히 휴대전화의 역사에 대해 배우고 옛날 휴대전화를 볼 때가 정말 재미있었는데요. 가장 기억나는 건 전화교환원이었어요. 전화교환원은 통화하는 사람의 대화 내용을 다 들을 수 있고, 통화가 격해지거나 길어질 때 전화를 중단했다고 해요. 전화교환기가 높이에 맞춰 전화교환원 키가 141cm 이상이어야 하며 목소리가 청아해야 한다는 점도 신기했죠. 또한 제가 쓰는 스마트폰이 언제 처음 개발됐는지도 알 수 있어서 좋았답니다.

조유나(서울사대부초 6) 학생기자

글=박경희 기자 park.kyunghee@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여주시립 폰박물관, 동행취재=박재인(서울 가원초 5)·유정현(서울 목동초 6)·조유나(서울사대부초 6) 학생기자, 참고도서=『수집가의 철학』(천년의 상상)·『핸드폰 연대기』(e비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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