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임대차법의 빛과 그림자

2024. 3. 3.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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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2020년 7월 31일 주택임차인을 두텁게 보호하기 위해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여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로 구성되는 소위 ‘임대차 3법’을 시행했다. 이 법의 시행에 따라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1회에 한해 2년의 계약 기간 연장을 요구할 수 있고, 임대인은 실거주 등 예외 사유가 없는 한 이를 거부할 수 없게 되었으며, 계약갱신 시 임대인이 인상할 수 있는 보증금 증액의 한도를 5%로 제한했다.

이 법이 시행되자 임대인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일부 개인·법인 임대인들은 이 법이 자신들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헌재는 2024년 2월 28일 만장일치로 이 법이 모두 합헌이라는 결론을 냈다.

먼저, ‘계약갱신청구권’에 대하여는 ‘임대인의 사용·수익권을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임대인이 거절할 수 있는 사유를 규정해 기본권 제한을 완화하는 입법적 장치도 마련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과 횟수가 제한되고 갱신되는 계약의 존속 기간도 2년으로 규정돼 임대인의 재산권 침해 정도가 크지 않다’라고 판단했다.

또 임대인이 임차인의 갱신 요구를 거절한 뒤 정당한 사유 없이 제3자에게 주택을 임대할 경우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한 조항도 ‘임대인의 계약의 자유나 재산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볼 수 없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전월세상한제’에 대해서는 ‘차임 증액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은 계약갱신요구권 제도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규제’라고 보고, ‘인상률 한도인 5%가 지나치게 낮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편, 상가건물임대차의 경우는 주택임대차보다 더 두텁게 임차인을 보호하고 있다. 상가건물 임차인에게도 계약갱신요구권을 부여하고 있는데,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임차료를 3회 이상 연체하는 경우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최초 계약일로부터 10년간은 무조건 계약갱신을 요구할 수 있고, 임대인은 반드시 이에 응하여야 한다. 그리고 주택임대차와 마찬가지로 계약갱신 시 임대인이 올릴 수 있는 환산보증금도 5%를 초과할 수 없다. 여기에 임대인에게 임차인이 권리금을 회수할 기회를 방해해서는 안 되는 의무까지 부과하고 있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던 노부부가 있다.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로 많은 단골을 확보하여 제법 잘되던 식당이었다. 그런데 음식 조리를 담당하던 부인이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식당을 운영할 수 없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종업원에게 1년 동안 임대를 주게 되었다. 다만,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임대 기간 1년이 만료되면 이유를 불문하고 임대인에게 반환한다’라고 특약사항에 기재하였다.

보증금 1000만원 외에 아무런 시설비용도 들이지 않고 식당을 임차한 종업원은 노부부가 확보한 단골을 바탕으로 제법 돈을 벌었다.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부인이 건강을 회복하게 되자 노부부는 종업원에게 식당을 인도해달라고 요청했다. 노부부는 당연히 종업원이 특약사항대로 식당을 인도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종업원은 돈이 되는 식당을 인도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노부부에게 ‘법대로 하라’고 통보하였다. 노부부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식당을 1년만 운영하고 반환하기로 계약하였는데, 어찌 계약을 무시한단 말인가’라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종업원은 임대차계약서대로 노부부에게 식당을 인도하여야 할까. 아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이 법의 규정에 위반된 약정으로서 임차인에게 불리한 것은 효력이 없다’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특약사항을 아무리 임대인에게 유리하게 규정하였다고 하더라도 임차인에게 불리한 특약은 무효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계약갱신요구권을 부정하여 임대 기간을 1년으로만 약정한 특약은 무효가 되므로 종업원은 자신이 원하면 앞으로 9년 동안 식당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 법을 제대로 모르고 계약한 노부부가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법이 그런 것을.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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