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이 교장 사택에 사는 게 자연스러운 나라

박상민 2024. 3. 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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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꿈틀비행기 17호 탑승 후기... 평등과 협력의 가치를 깨닫다

'행복지수 1위' 덴마크의 비결을 찾아봅니다. 2024년 1월 22일부터 30일까지 오마이뉴스 '꿈틀비행기 17호'에 올라 쇠토프 숲유치원, 울러럽 체조 호이스콜레 및 음악 애프터스콜레, 장애인협회(DPOD), 코펜하겐 티에트겐 학생 기숙사 등을 직접 방문했습니다. 그 참가 후기를 적습니다. <기자말>

[박상민 기자]

덴마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는 '레고'이다. 창의적인 조립과 놀이가 가능한 이 컬러풀한 블록 장난감은 전세계 장난감 시장의 9%를 차지하며, 전세계 아이들의, 때로는 어른들의 장난감이기도 하다. 레고 회사가 추구하는 슬로건은 '내일을 건설하려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자'라고 한다. 그런데 덴마크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이 나라는 '행복한 나라가 무엇인지에 대한 영감을 주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지수 1위 국가에 자주 오르는 덴마크의 행복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피상적으로 보자면, 의료비 무료, 교육비 무료, 대학등록금 무료, 실업보조금 지급 등 복지 제도로 마련된 탄탄한 사회안전망이 그 바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외형적인 조건들만으로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24년 1월 22일부터 30일까지 덴마크로 7박 9일 동안 떠난 이번 여행은 덴마크 사회의 바탕을 이루는 철학과 가치관을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가정과 학교, 일터에서 실현된 크고 작은 삶의 철학들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행복한 학교에서 활짝 웃는 아이들 
- 사회성과 자존감을 키우는 교육

일찍이 시민 계몽을 이끌며 덴마크 교육의 정체성을 만든 그룬트비(1783~1872)는 철학자이자 정치가이자 시인이자 교육학자였다. 살아있는 언어로, 실제 삶에 기반하여 교육하는 것을 강조한 그는 덴마크의 모든 교육 기관에 여전히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여행 셋째날인 1월 24일 오전, 쇠토프 숲유치원에 가보니 추운 날씨에도 아이들이 자연에서 뛰놀며, 고사리같은 손으로 칼을 쥐고 나무를 깎고, 모닥불 앞에서 요리를 돕고 있었다.

아이들은 크고 작은 위험을 직접 겪으면서 안전하게 노는 법, 도구를 잘 다루는 법, 자기 주도적으로 노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이곳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언가를 스스로 하는 것과 맑은 공기를 쐬며 뛰노는 것뿐인 듯했다.

전날 방문했던 초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험도 숙제도 없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서로 협력하며 사회성을 익히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공동체에 참여하는 경험을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여 배우고 있었다.

안전한 공동체 속에서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고, 자신감을 갖게 하는 교육 원칙은 아이들의 밝고 쾌활한 표정으로 그대로 반영되고 있었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패배감을 느끼고 좌절하는 한국의 교육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심지어 코펜하겐 중심부에 위치한 명문 사립고인 류슨스틴 고등학교를 방문했을 때조차도 교사가 강조하는 건, 세계 여러나라를 통해 나와 우리를 배우고, 실제 세상 속에서 경험을 통해 배우면서 삶에 대한 준비를 하는 교육이었다.

그는 "행복하고 자신감 있는 학생이 더 잘 배운다"고 하면서 학생들이 팀을 이루어 협력하는 수업과 경청하고 소통하는 토론 교육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이렇게 학교에서 자존감을 키우고, 점수에 연연하지 않고 여유있게 진로를 선택하게 되면 사회에 나가서도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보람을 더 느끼지 않을까? 실제로 일상에서 마주친 덴마크의 가게 점원, 웨이터, 버스 기사들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더라도 더 밝고 친절한 모습이었다.

노동시간이 길지 않고, 법정 유급 휴가가 연 5주나 보장될 뿐 아니라, 노조 조직률과 협동조합 가입률이 높은 것도 국민들의 행복도와 직업 만족도에 기여하고 있을 것이다. 든든한 복지제도와 국민들이 서로 연대하는 문화가 이 나라를 "누구도 굶어 죽지 않는 나라", "내가 넘어지면 누군가가 도와줄 거라는 신뢰의 나라"로 만든 것이 아닐까.

교사 대학에서 얻은 깊은 깨달음 
- 뼛속까지 스며든 평등과 협력

 
 울러럽 자유 교원 대학의 교정에 있는 교장 사택
ⓒ 박상민
 
여행 나흘째인 25일, 덴마크 울러럽에 있는 자유 교원 대학에 방문했을 때, 대학 캠퍼스를 소개해주던 한 대학생이 초록빛 잔디밭 위에 있는 그림같이 예쁜 집을 보며 말했다.

"저 건물은 원래 교장선생님 사택인데 지금은 저곳에 경비원 아저씨가 살고 있어요. 학교 학생들을 전부 다 알고 계신 분이죠."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나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에서 해방된 진정한 평등 사회가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입학시험도, 졸업시험도 없는 이곳의 학사 시스템에 대한 질문을 하던 중, 시험 점수에 의한 평가의 필요성에 대해 묻자 이런 대답을 받았다.

"점수 위주의 평가만을 하게 되면, 시험 성적은 잘 받지만 협력을 하지 않는 사람을 가려낼 수가 없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비교와 경쟁만을 강요받는 문화에서 자란 나에게 커다란 깨달음을 주는 말이었다.

"시험 점수는 잘 받지만 남들을 배려하거나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소위 특권층이 되어서 사회 시스템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이 떠오르면서, 우리의 교육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경쟁에서 이겨야 행복해진다고 세뇌하는 한국 교육과 어릴 때부터 서로 협력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가르치는 덴마크 교육의 간극은 두 나라의 거리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졌다.

장애인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 세심한 배려와 존중

여행 닷새째인 26일에 방문한, '세상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사무실'로 알려진 덴마크 장애인협회(DPOD)는 30만명의 장애인 회원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건물 곳곳에는 휠체어 사용자를 비롯하여 여러 다양한 장애인들을 배려한 크고 작은 장치들이 가득했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 호출 버튼은 발로 누를 수 있는 낮은 위치에도 설치되어 있었으며, 휠체어 사용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방향을 돌릴 필요가 없도록 엘리베이터 문은 항상 전면과 후면의 양쪽 방향으로 동시에 열리게 되어 있었다.
 
 덴마크장애인협회(DPOD) 건물의 양문개방형 엘리베이터(좌)와 방문객을 위한 서로 다른 높낮이의 옷걸이(우)
ⓒ 박상민
 
안내 데스크와 방문자용 옷걸이는 일반적인 높이와, 휠체어 사용자에게 편리한 낮은 높이, 두 종류로 되어 있었다. 건물 안에서 길을 찾기 쉽도록 각기 다른 방향의 복도는 다른 색깔로 구분되어 있었고, 사무실 문이나 플러그 색깔은 하얀색 벽에서 눈에 잘 띄는 짙은 색으로 칠해서 시력이 약한 사람들을 배려하였으며, 곳곳에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휴게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배려들이 단지 장애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들도 함께 혜택을 누리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배려가 되도록 세심하게 고려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접근성이 좋은 건물을 짓는 것이 결코 비용이 많이 들지 않도록 설계한 것도 놀라웠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처럼 모든 건물에 쉽게 접근하고, 그곳에서 배우고, 일하고, 봉사하면서 지역 사회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며, 그 과정에서 장애인들이 원하는 것을 경청하고 그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 주요 업무라고 했다.

설명을 듣던 중에 장애인으로 포함시키는 범위가 다소 넓은 듯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덴마크에서는 당뇨, 관절염 등 한국에서는 장애로 여겨지지 않는 질병들도 장애에 포함시키는 것 같은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은 어떻게 하나요?" 이에 돌아온 대답은, "장애든 질병이든, 혹은 고령의 나이이든 간에 그것이 사회에 진입하는데 있어서 걸림돌이나 장벽으로 작용하여 사회로부터 배제될 가능성이 있다면 장애로 판단한다"는 것이었다.

건물 시설을 설명해주는 직원의 발음이 너무 또박또박 정확해서 혹시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말소리를 알아듣거나 입모양을 읽는 것이 쉽도록) 일부러 정확하게 발음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이 아닌가 하고 물어봤더니, 아마 맞을 거라고, 웃으면서 답하는 모습이 정말로 자신의 직무에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이 진정으로 비판하는 것 
- 불평등과 경쟁

경쟁해서 남을 이겨야 잘 살 수 있다는 교육을 주입받고, 자라면서 실제로 그런 사회를 목격해온 내게, 덴마크는 정말 신기한 나라였다. 유치원 때부터 협력해야 잘 살 수 있다고 교육을 하고, 서로 협력하는 방법을 계속 가르치는데도, 우리나라보다 행복도가 높고, 심지어 국민들은 더 부유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나의 고정관념과 가치관에 커다란 혼란이 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한 나라의 경제적 수준을 만드는 데에는 그 사회의 교육 철학이나 가치관만이 작용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지정학적, 역사적, 정치적 상황 등 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어쨌든 덴마크 역시 우리나라처럼 국토가 넓지도, 인구가 많지도, 자원이 많지도 않은 나라라는 점은 확실하다.

복지 제도를 일찌감치 확립하고, 계속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민의 공감대를 이끌어온 덴마크 사회는 현재 세금에 대한 높은 투명성, 가장 낮은 부패 지수, 가장 낮은 불평등 지수, 서열이 없이 평등한 대학 체계 등 여러 방면에서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이루어내고 있다.

물론 이 모든 복지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높은 세율이 필요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국민 대다수가 높은 세금 부과에 대해 공감하고 지지를 하며, 세금의 혜택에 대해 만족해하고 있다는 것이 부러울 뿐이었다.

평일 오후 3시 반이 넘어가면 이미 러시아워가 되어서, 자전거와 자동차로 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덴마크의 도로를 보면서, 긴 노동시간과 야근에 시달리는 한국의 모습이 대비되었다.

최근 국제적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에는 K-팝과 영화, 드라마 등의 콘텐츠가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영화와 드라마로 꼽히는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은 공교롭게도 빈부 격차에 따른 불평등과 극심한 경쟁을 비판한 작품들이다.

한국의 예술가들이 불평등과 경쟁 사회를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그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보다는 단지 그 문화 상품을 수출하고, 한국 콘텐츠가 인기를 얻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불평등과 경쟁의 극단을 달리는 한국에서 온 내가, 평등과 협력의 가치가 최우선인 덴마크에서 느낀 깨달음은, 협력을 통해 함께 행복해지는 사회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시험을 잘 보는 사람이 특권을 얻는 사회가 과연 공정한 사회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더구나 요즘처럼 경제적 수준에 따라 사교육의 양과 질이 달라지는 현실에서라면 시험 제도가 공정함을 갖기란 더더욱 어렵지 않을까.

혼자만 행복하기보다 함께 행복한 사회

물론 덴마크도 완벽한 사회는 아닐 것이고 어딘가 문제점들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나만 성공하고 나만 잘 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복하려면, 우리가 행복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면, 시험 점수보다 협력하는 문화가 더 중요하다고 배운다면, 장애인이라고 해서 불편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살아간다면, 분명히 좀 더 행복에 가까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평등과 협력의 가치를 알려준, 꿈틀비행기를 타고 떠난 덴마크 여행은 나에게 '행복'에 대한 아이디어와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꿔주었다. 꿈틀비행기를 기획하고 진행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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