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고용이 평범한 문화로 자리잡는 사회 꿈꿔요”

신은정 2024. 3. 2.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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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쎄오 열전] <33> 정신장애인 고용 카페 ‘히즈빈스’ 임정택 향기내는사람들 대표
임정택 향기내는사람들 대표가 지난 26일 서울 성동구의 카페 ‘히즈빈스’에서 정신 장애인을 바리스타로 고용하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대학 3학년 이 남성은 조현병 등 정신 장애인이 세상 밖으로 나와 행복하게 일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들이 직접 바리스타로 커피를 내리는 카페를 시작했다. 장애인 직원을 절대 해고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다가 사업이 접힐 뻔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길로 현재 수십 개 기업체의 장애인 고용 컨설팅을 돕는 위치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정신 장애인이 주로 일하는 카페 ‘히즈빈스’를 15년째 이끄는 임정택(40) ㈜향기내는사람들 대표를 지난 26일 서울 히즈빈스 성수점에서 만났다. 그는 “장애인 고용이 새롭거나 혁신적인 일이 아닌 평범한 문화로 자리 잡길 여전히 꿈꾼다”고 말했다.

장애인 직원이 두 배나 많은 회사
히즈빈스 성수점 한쪽에는 고민을 담아 넣으면 손편지로 답장을 받을 수 있는 온기우편함이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히즈빈스는 임 대표가 대학생이던 2009년 당시 이민복 공동대표 등 당시 한동대 동문 3명과 함께 학교에서 문을 연 카페로 시작됐다. 현재 국내 운영 매장은 직영 7곳을 포함해 모두 35곳이다. 이 중 28곳은 장애인 의무 고용을 어려워하는 기업이 의뢰해 위탁 운영하는 카페 매장이다. 밀알복지재단과 한국국제협력재단(코이카)과 함께 필리핀에 문을 연 해외 매장은 올해 중순 필리핀 2호점 개점을 앞두고 있다.

올해 2월 기준으로 본사와 직영 매장에는 비장애인 80여명과 두 배 가까운 150여명의 장애인 직원이 일한다. 특히 매장에서 일하는 바리스타 대다수는 조현병 조울증 등 진단을 받은 정신 장애인이다. 임 대표는 “히즈빈스는 장애인 직원이 보조 역할에 머무는 것이 아닌, 각자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 매니저급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교육한다”며 “정신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바꿔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회사는 장애인 직원 1명을 위해 1~2년 정도 교육에 투자하고 있다. 창업 초기엔 장애인 직원과 비장애인 직원이 일대일로 매일 밥을 먹는 ‘짝꿍’을 만들기도 했다. 히즈빈스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약 복용이나 상태를 점검하는 매니저, 정신과 의사, 사회복지사, 선후배 직원 등을 연결해 직무뿐 아니라 정신적 고민까지 함께 해결하는 ‘다각적 지지 시스템’을 구축했다. 덕분에 2020년 특허청으로부터 장애인 고용관리 관련 특허를 받기도 했다. 임 대표는 “모두가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모습”이라며 “국내 정신 장애인의 직업 유지율은 20%가 채 되지 않지만 히즈빈스는 95%에 달한다”고 했다.

‘지극히 작은 자’를 위해
정신 장애인 인식 개선 캠페인에 참석한 히즈빈스 직원들 모습. 히즈빈스 제공

임 대표가 장애인 고용 기업을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받아들인 건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러 국가의 대학생이 참석한 회의에서 신앙이 없는 한 중국 학생이 사회공헌 사업을 하겠다는 꿈을 밝힌 것이 계기가 됐다. 임 대표는 기도했고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마 25:40)이라는 말씀에 대한 감동으로 장애인과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품는다.

투철한 사명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어려움도 많았다. 2013년 1월 매장 재계약을 하면서 금전적 문제로 사업을 접어야 하는 난관에 빠지기도 했다. 임 대표는 “함께 일하면서 삶이 변하는 직원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이어서 포기할 수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사명으로 똘똘 뭉친 본사 직원들이 급여를 반납하면서 1년여를 버텼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장애인 직원 월급은 줄이지 않았다. 히즈빈스는 직원들이 아침마다 30분씩 온·오프라인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일의 시작과 마무리를 기도와 함께 할 정도로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다.

히즈빈스는 우연한 기회에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국내 정신 장애인 일자리 문제를 다루는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 덕분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정신 장애인 직업 유지율(50%)의 두 배에 달하는 히즈빈스의 수치는 장애인 고용 관련 컨설팅 분야에서 이름을 알리는 데 충분한 동력이 됐다.

임 대표는 “하나님께서 어려움 속에서 연단하셨고 그분의 타이밍에 맞춰 세상에 장애인 고용이라는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게 했다”고 했다. 기업의 사회책임투자 관련 지표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보공시 의무화 논의도 히즈빈스 장애인 고용 컨설팅에 날개를 달아줬다.

‘10억 장애인 행복한 그날까지’

임 대표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을 삶이 변화된 장애인 직원을 볼 때로 꼽았다. 조현병과 조울증으로 고통받던 한 직원이 전국 바리스타대회에서 1등을 한 경우가 가장 대표적이라고 했다. 임 대표는 “인생에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좌절한 이가 한 분야의 최고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라며 “히즈빈스의 유일한 목표는 장애인들과 함께 행복하게 일하며 각자에게 주신 강점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히즈빈스는 장애인이 카페와 관련된 일이 아닌 다양한 영역에서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직무 형태의 다변화 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와 관련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관련 직무 훈련 학교도 준비 중이다. 최근에는 시각장애인 직원 4명을 채용해 서비스 약자 관점에서 카페나 식당 등 일상 서비스를 점검하고, 매뉴얼을 설계해 주는 ‘유니버설 디자인 서비스 컨설팅 사업’을 신설했다. 임 대표는 “장애인을 고용하면 불미스러운 문제가 생기거나 의무 고용을 회피하면 내야 하는 부담금보다 더 큰 비용이 들어간다고 오해하는 기업들이 카페 매장을 개장한 뒤 오히려 수익이 났다거나 기업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한결같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이어 “장애인 고용에 대한 기업의 생각이 2~3년 전과 많이 달라진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여전히 많은 장애인이 취업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 10억 장애인이 각자의 강점을 가지고 행복하게 일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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