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달고 사는 골프 [정현권의 감성골프]

2024. 3. 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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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녁 약속이 있는데 혹시 술을 마셔도 됩니까?”

치과의사인 친구가 치료를 마친 고객에게서 자주 받는 질문이라고 말했다. 중대한 치료를 하고 나면 단호하게 금주를 당부하지만 애매한 경우가 많아 어정쩡한 답변을 한단다.

“선생님, 그래도 골프는 할 수 있겠지요?” 이는 정형외과 의사가 환자에게서 많이 받는 질문이다. 주로 50대 이상, 특히 퇴직한 골퍼들에게서 진료를 끝내자마자 튀어나오는 애원성 질문이다.

골프만큼 아픔을 무릅쓰고 감행하는 스포츠도 없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쓰러지거나 혼줄을 놓지 않을 정도라면 일단 필드로 직행이다.

아내의 퇴직 정모(정기모임) 멤버 3명은 지독한 골프광이다. 늦게 골프를 배웠지만 전국 웬만한 골프장을 섭렵하고 요즘은 일본과 동남아 골프장을 도장깨기 중이다. 아내에 따르면 3명 모두 부상을 몸에 달고 산다.

이 중 한 멤버는 다음주 4박 5일 일정으로 사이판 골프투어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본인은 왼쪽 팔 엘보로 퉁퉁 부어올라 조그만 충격이 가해져도 진통을 느끼는 환자이다.

남편은 더하다. 최근 한겨울 골프에 나갔다가 뒤땅으로 인한 엄청난 충격으로 갈비뼈에 실금이 갔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런 아픔마저 한껏 부풀은 이들 부부의 해외골프 꿈을 꺾지 못한다. 한마디로 부부는 용감하다.

현역 시절 체육교사였던 또다른 아내 모임 멤버는 왼쪽 다리 저림으로 고생 중이다. 퇴직 후 일주일에 2~3번 정도 골프를 해왔는데 피니시 과정에서 지지대 역할을 해온 왼 다리에 피로가 누적된 결과이다.

평생 싱글로 살아온 자신에게 남편 역할을 해준 골프를 포기할 수 없다며 수절하는 마음으로 골프에 빠져 있다. 소피아CC나 천안상록CC 등에 수시로 부킹을 건다.

또 다른 멤버는 오른쪽 무릎 통증과 족저근막염과 씨름 중이다. 평소 통증이 오다가도 희한하게 골프장에만 가면 사라진다며 최근 제주도 골프를 다녀왔다. 골프장에만 가면 사라진다는 골프병이다.

골프를 하다 보면 나이든 남자 골퍼들은 어깨 결림과 부상을 가장 많이 호소한다. 어느 날 필자가 사정을 접하고 걱정스런 마음으로 필드에 나갔는데 정작 본인의 샷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오히려 평소보다 성적이 더 좋아 당황스럽다. 나에게 기만 전술을 썼나 하는 생각도 든다. 방심한 내가 후회스럽다.

허리 아프다는 골퍼도 흔하다. 척추협착증, 추간판 탈출 등 전문 용어를 입에 달고 골프장에 나온다. 아파서 드러눕거나 수술대에 올라가지 않는 한 골프 약속을 지킨다고 말한다. 정말 본인 사망 아니면 감행하는 게 골프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의료계에 따르면 골프 부상은 엘보를 비롯해 △갈비뼈 △손목, 손가락 △경추 △어깨 △무릎 부위에서 가장 흔하게 발생한다. 엘보는 신체 경첩으로 불리는 팔꿈치 근육통이다.

의학 용어로 상과염이라고 하는데 뒤땅이나 찍어치기(다운 블로)를 계속 하다 보면 생긴다. 수건을 비틀거나 문고리만 돌려도 통증이 오는데 만성질환으로 치닫기 전에 병원을 찾는 게 낫다.

갈비뼈 골절은 스윙 테크닉이 부족한 초보에게 흔하며 무리하게 힘만 가한 결과 신체 전체로 강한 자극을 받아 발생한다. 연습량을 줄이거나 가벼운 스윙으로 임팩트를 줄인다.

지속적으로 그립을 세게 쥐면 평소 운동 부족인 중년 골퍼들에게 손목터널증후군, 방아쇠수지증후군 같은 손목과 손가락 부상이 찾아온다. 관련된 힘줄이 긴장 상태에 놓여 부상을 입는다.

목 뒷면이나 옆에서 시작해 어깨로 이어지는 경추 부상을 호소하는 골퍼도 있다. 근육통이나 담이 걸린 듯한 통증이다. 만성으로 진행되면 목 회전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골프 특성상 한쪽 방향으로만 연습하거나 스윙하다 보면 결국 어깨에 무리가 간다. 어깨 회전근개 힘줄에 피로가 누적돼 미세한 균열이 생기면서 결국 파열되는 회전근개파열로 가기 전에 병원을 찾아야 한다.

무릎 부상은 아마추어 고수나 프로선수에게 주로 찾아온다. 백 스윙 과정에서 오른쪽 무릎을 지나치게 안쪽으로 기울이거나 피니시 때 왼 무릎을 과도하게 펴면 하중이 가중돼 나오는 부상이다.

“신체 부위에 무리가 가해져 불편하다 싶으면 일단 연습량과 실전을 줄이되 정도가 심해지면 전문의를 찾는 게 더 오래 건강하게 골프를 즐기는 비결입니다.”(오재근 한국체대 운동건강관리학과 교수)

퇴직 후에 일취월장한 선배가 어느 날 로보캅 모습으로 골프장에 나타났다. 팔과 다리에 보호대를 차고 각종 부위에 테이퍼링으로 무장했다. 그 날 필드에서 종횡무진하는 그를 당할 자가 아무도 없었다.

골퍼광들(Golf nuts)은 허리가 아프면 팔로, 팔이 아프면 몸통으로 어떻게든 해내고 만다. 중단하면 마치 인생 여정에서 탈락하는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치료 후에 술을 마셔도 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는 치과의사 친구도 정작 허리가 예전 같지 않다면서 달래가며 골프를 이어간다. 골프는 아픔을 달고 산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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