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생각 절로 들 정도"…남의 손 안빌리고 애 키울 수 있는 회사들[K인구전략]

정현진 2024. 2. 2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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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본지 기자들의 기업 현장 취재기
"회사가 제도 갖추고 환경 마련…일도 육아도 모두 가능"
워킹맘·대디 실현 가능 목격…저출산 이슈, 기업이 핵심
CEO 경영 의지 중요…기업은 우수사례 벤치마킹
정부는 세제 감면 혜택 등 눈에 띄는 제도 지원 필수

편집자주 - 대한민국 인구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기업에 있다. 남녀 구분 없이 일로 평가하는 기업 내 분위기와 가정 친화적인 문화가 곧 K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이기 때문이다. 저출산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지만, 적어도 일터에서의 부담감이 걸림돌이 돼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 일은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시아경제는 가족친화 정책을 선도하는 기업을 찾아가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지점을 짚고, 현실적인 여건이 따라주지 못하는 기업과는 다각도에서 함께 방법을 찾아볼 예정이다. 이를 통해 기업부터 변하도록 독려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도 분석한다. 금전적 지원보다 심리적 부채감을 줄여주는 회사의 문화와 분위기가 핵심이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다양한 측면에서의 대안을 제시한다.

"그 회사에 내가 이직할 자리가 없나 궁금해질 정도였다."

아시아경제 연중기획 ‘K인구전략-양성평등이 답이다’ 취재차 지난 두 달간 20여개 기업 현장을 다녀온 본지 기자들이 공통으로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미혼의 남기자부터 워킹맘 여기자까지 성별도, 결혼 여부도, 자녀 유무도 상관없었습니다. 취재원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행복해하는 동시에 자기 일과 직장에 대해서도 자부심 넘치게 설명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한 결과였습니다. 워킹맘·대디가 일에도 육아에도 모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회사가 제도를 갖추고 이를 사용할 환경을 마련한다면 커리어를 유지하면서 부모로 살아갈 미래가 행복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아시아경제 연중기획 ‘K인구전략-양성평등이 답이다’ 취재에 동참해준 워킹맘·워킹대디가 자녀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
저출산 이슈에 기업이 핵심인 이유… 일·가정 양립의 중요성

"결국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업이 달라져야 한다." 지난해 12월 한자리에 모인 본지 기자 7명이 수십일간 머리를 맞대고 회의한 끝에 도달한 결론이었습니다.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라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질문에 핵심을 찌르는 접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정부가 수백조 원을 들여 사태를 해결해보려 하지만 저출산 문제는 날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으로 주거·금전·교육 등 다양한 요인을 지목해 각종 지원책이 쏟아지지만 출산 당사자인 20~40대를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과 맞벌이 부부가 확대된 현실 속에서 부모가 일하면서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삶을 꿈꿀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임신-출산-육아의 과정이 결국은 내 삶을 포기해야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꿈꿀 수 없는 미래가 되니까요.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직접 일하면서 육아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습니다. 근무 시간과 장소를 조정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 엄마에게 쏠린 육아 부담을 아빠가 함께하도록 기반이 될 남성 육아휴직, 임신과 출산을 겪는 여성의 성공적인 커리어 복귀에 집중한 이유입니다.

‘좋은 회사’는 어디… 반면교사보다 롤모델에 집중

"좋은 회사 다니는 사람만 애를 낳아야 한다." 아시아경제 연중 기획 기사가 보도된 뒤 이런 댓글이 달렸습니다.

일·가정 양립 문제에 있어 국내 기업의 현실은 대다수가 여전히 미흡합니다. 육아에 꼭 필요한 시간과 장소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유연근무를 사용할 수 있는 임금 근로자는 10명 중 2명도 채 안 됩니다. 남성 육아휴직 사용자도 빠르게 늘고 있지만, 여전히 기업 현장에서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죠. 육아휴직을 신청했다가 퇴사하라는 답이 돌아오기도 합니다. 여성에 쏠린 가사·육아 부담에 더해 유리천장이 아직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기사에 소개된 ‘좋은 회사’는 결국 예외적인 회사라는 시선이 존재합니다. 우리의 일상에 등장하긴 어렵다며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회사’가 태생부터 좋은 회사가 아니었다는 점, 수년간의 부침 끝에 결국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점, 이들의 고민과 경험을 각각의 회사 실정에 맞게 벤치마킹할 의지만 있다면 현재 좋은 회사가 아닌 곳도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취재를 통해 체감했습니다. 일·가정 양립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기업을 통해 반면교사 삼을 현실을 보여주기보다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했고, 정책 입안자를 만나 변화를 촉구했습니다. 롤모델을 찾아 이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과 일하는 부모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집중 조명했습니다.

남이섬 어린이집에서 한 아이가 놀던 중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중소기업 모션의 직원들은 출·퇴근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하면서 가족의 삶이 변화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지속가능한 행복한 삶을 사는 선배 워킹맘·대디를 본 후배 딩크족 부부는 아이를 갖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대기업 롯데부터 외국계 기업 레고코리아, 한국페링제약뿐 아니라 중소기업에서도 육아휴직을 다녀온 아빠들의 삶은 아이들과 함께 한층 더 풍부해졌죠.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직장 어린이집을 만들어 지역민과 상생하는 중소기업 남이섬의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업에서 만난 취재원들은 본인의 경험을 나누는 데 적극적으로 동참했습니다. 다 함께 건강하게 육아를 해나가자는 뜻이 담긴 ‘동지애’였다고 할까요. 취재원들은 입을 모아 "선배들이 이런 제도를 사용하면, 후배들도 ‘나도 필요하면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냐. 좋은 제도가 마련되고 그 제도를 사용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 이 과정을 통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자리 잡는 것이 큰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회사라면 애 낳고도 다닌다"… CEO의 의지가 세상을 바꾼다

취재 과정에서 기업이 일·가정 양립 정책을 만드는 데는 최고경영자(CEO)의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없던 제도를 만들거나 기존 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CEO가 의지를 갖고 앞장선 기업은 결국 그 과정을 거쳐 제도를 온전히 체화해내고야 마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의지를 갖고 일종의 투자를 한 CEO는 직원들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돕는 것이 인재를 확보하는 데 유리할 뿐 아니라 생산성을 높이고, 한발 더 나아가 실적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밝혔습니다.

기업에서 이렇듯 일·가정 양립을 위해 노력하는 건 저출산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겁니다. 중소기업 고운세상코스메틱은 2022년 2.70명의 합계출산율을 기록했습니다. 지난 10년간 가족친화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였죠. "이런 회사라면 애 낳고도 다닐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는 취재원의 말이 이러한 성과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CEO의 의지에 직원들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회사 내에서 신뢰가 구축되고 출산율이 올라가는 결과로 이어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CEO의 의지에만 기댈 수는 없습니다. 당장 눈앞의 생존이 목표인 기업에 직원의 일·가정 양립을 위한 투자는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들은 인력이나 비용 등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정부와 국회의 제도적 지원이 필수적이죠. 가족친화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활용하려는 기업에 세제감면 등 눈에 띄는 혜택을 줘야 합니다. 실질적으로 활용 가능한 대체인력 확보를 지원해 의지가 있어도 현실적인 고민이 큰 기업을 도와줘야 합니다. 단기간 내에 성과를 내기 위해 근시안적인 관점에서 제도를 만들어선 안 됩니다. 현실성 높은 실질적인 지원책에 유연근무, 남성 육아휴직 등 기존 제도를 활용하면서 이를 시작으로 기업의 분위기를 뒤바꾸는 선순환이 일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본지의 취재가 변화의 작은 실마리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가족친화제도를 잘 갖춰 ‘취재하다가 이직할 뻔한’ 좋은 회사들이 더 이상 일부의 이야기가 아니라, 특이한 것 없는 모두의 이야기가 될 날을 고대합니다.

특별취재팀 'K인구전략-양성평등이 답이다' 김유리·이현주·정현진·부애리·공병선·박준이·송승섭 기자

김필수 경제금융에디터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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