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독립 만세’ 105년 전 그날의 함성 속으로
충북 괴산에 괴강이 있다. 괴산을 지나는 달천(達川)의 다른 이름이다. 그 물줄기를 따라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슴 뜨겁게 살며 사랑하며 희망의 불꽃을 피운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인 인물이 일완(一阮) 홍범식(1871~1910)과 벽초(碧初) 홍명희(1888~1968) 부자다. 삼일절 105주년을 맞아 조국 독립과 호국의 충절이 서린 괴산으로 떠나보자.
괴산에서 주목해야 할 건물이 애국지사 홍범식 선생이 태어난 ‘홍범식 고택’이다. 동진천 옆 정남향으로 지어진 건물의 안채 구조는 전체적으로 정면 5칸·측면 6칸의 ‘ㄷ’자형으로, ‘一’자형 광채를 맞물리게 해 광채를 합한 안채는 ‘ㅁ’자형이다. 가옥은 1730년(영조 6년)쯤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후기 중부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보여주는 고택인 동시에 3·1만세운동과 관련된 유적이며, 문학사적 유산이자 항일지사의 고택인 귀중한 자료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금산군수로 있던 홍범식은 일제가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제합병한 것에 항거·자결했다. 국권 피탈 이후 최초의 순절로 알려져 있다. 1888년 진사시에 합격하면서 벼슬길에 들어 태인군수와 금산군수 등을 지냈다. 태인군수 시절엔 의병 부대를 진압하려고 출동한 일본군 수비대를 설득해 무고한 백성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했고, 금산군수를 지내면서는 국유화될 위기에 놓인 백성의 개간지를 사유지로 인정해 주는 위민 정책을 펼쳤다고 한다.
이 집에서 역사소설 ‘임꺽정(林巨正)’을 쓴 작가 홍명희도 홍범식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죽을지언정 친일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마라’는 유서를 남겼다. 홍명희는 아버지의 유훈에 따라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고택에서는 1919년 충북 최초의 3·1만세운동이 계획됐다. 고종의 인산(因山·장례)에 참여했던 홍명희는 손병희를 만나 괴산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부탁받고 고향의 인척과 지역 인사를 규합해 괴산 장날인 3월 19일 읍내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이 일로 홍명희는 투옥되고, 본격적으로 독립운동 지도자의 길을 걷는다. 이후 괴산읍에서는 다음 장날인 24일과 29일 그리고 4월 1일까지 전개돼 충북 전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계기가 됐다.
홍범식 고택 옆에는 괴산보훈공원이 자리한다. 괴산에 흩어진 6·25참전공적비, 무공수훈자공적비, 베트남참전탑 등이 이전하고 충혼탑과 충렬탑이 새롭게 건립됐다. 충렬탑은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는 여학생 동상을 품고 있다. 인근 수진교를 건너면 천변 느티나무 아래 만세운동유적비가 외롭게 서 있다. 유적비 앞부터 괴산전통시장(옛 산막이시장) 거리가 이어진다. 3·1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난 역사적인 장소다.
달천 변 제월대 절벽 위에 조선 선조 때인 1596년 충청관찰사를 지낸 유근이 지은 고산정(孤山亭·옛 만송정)이 자리한다. 경성(서울)에서 활동하던 홍명희는 1918년 증조모가 별세하자 괴산으로 돌아온다. 3·1만세운동 이후 가세가 기울어 가택을 처분하고 제월리로 이주한다.
주차장에 벽초홍명희문학비가 조성돼 있다. 길을 따라 오르면 고산정이 반긴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다시 지어졌다. 이곳에 오르면 발아래 달천이 유장하게 흐르고 그 너머로 풍요로운 들판이 펼쳐진다. 홍명희는 고산정에서 풍경을 감상하고, 제월대 아래 바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웠다고 한다.
제월리에서 심신을 추스른 홍명희는 다시 경성으로 올라가 1928년 11월 21일 신문에 소설 ‘임꺽정’ 연재를 시작한다. 소설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1937년 일제의 중일전쟁 도발 이후 전시 총동원 체제가 깊어짐에 따라 연재는 1939년 7월 영원히 중단됐다.
달천을 따라 내려가면 임진왜란 삼대첩에 드는 진주성대첩을 승리로 이끈 김시민 장군을 기리는 충민사가 있다. 충청도 천안 출신으로, 선산이 괴산에 자리해 이곳에 사당이 세워졌고 뒤에 묘소가 있다.
고산정에서 달천 상류 방향 괴산읍 검승리 정자마을 언덕에 애한정(愛閑亭)이 있다. 박지겸(1549~1623)이 1614년(광해군 6년)에 낙향해 지은 정면 6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정자다. ‘동몽선습(童蒙先習)’을 저술한 박세무(1487~1554)가 그의 할아버지다.
바로 옆 괴강관광지가 조성돼 있다. 화려한 야간경관과 쉼터로 조성된 ‘괴강불빛공원’이 지역주민은 물론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경관조명, 수국정원, 포토존, 미디어파사드 등을 갖췄다.
괴강불빛공원 야간조명 밤 10까지
올갱이국·민물매운탕… 대표 음식
홍범식 고택은 평택제천고속도로 음성나들목에서 가깝다. 국도 37호선을 타고 남쪽으로 20여 분 달리면 닿는다. 고택과 보훈공원, 고산정, 충민사, 애한정에는 무료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괴강불빛공원의 야간조명은 오후 10시에 꺼진다.
괴강유원지 인근 괴강교 주변에는 휴게소와 음식점들이 있다. 괴강의 대표음식인 올갱이국(다슬깃국)과 민물매운탕을 맛볼 수 있다. 물이 맑고 수질이 깨끗한 괴강에는 쏘가리, 메기, 동자개(빠가사리), 참마자, 모래무지, 수수미꾸리 등 다양한 어종이 자란다. 둔율 올갱이 마을에서 느티여울까지 물가에서는 올갱이들을 잡을 수 있다.
가까운 곳에 성불산산림휴양단지가 자리한다. 휴양림, 생태공원, 미선향테마파크, 생태숲학습관 등이 조성돼 있다. 봄에 미선향테마파크의 미선나무 군락지에 꽃이 만발하면 장관을 이룬다.
괴산의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려면 연하협구름다리를 찾아보자. 구름다리는 괴산댐 안에 형성된 괴산호를 가로지르며 길이 134m에 폭 2.1m다. 구름다리는 괴산의 명품 걷기 길인 산막이옛길과 충청도양반길을 이어준다.
괴산=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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