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흡연부스에서 자던 가정밖 청소년, 결국 '헬퍼' 찾다

공병선 2024. 2. 2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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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청소년' 후 1년, 여전히 떠도는 아이들
헬퍼, 도움 준다며 인증에 성매매까지
구직 못해 어쩔 수 없이 헬퍼 손 잡아

"저기 찜질방에서 자는 친구 깨워야 해요."

지난해 12월 1일 경기도 수원에서 만난 A양(16)은 오직 후드티 하나로 추위를 뚫으면서 찜질방으로 향했다. 남들은 두툼한 롱패딩을 입고 목도리를 걸쳐도 모자라 몸을 덜덜 떨 정도로 추운 영하권의 날씨였다. 그럼에도 A양 표정은 밝았다. 오늘은 따뜻한 곳에서 잘 수 있어서다. 전날까지만 해도 경북 영주시에 있는 도서관에 있는 흡연부스에서 잠을 잤다. 수원으로 올라온 이유도 가출한 친구가 구한 자취방에서 찬 바람을 피하기 위해서다. 고향이 광주인 A양은 말 그대로 전국구다.

A양의 친구 역시 집에서 뛰쳐나온 미성년자로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자기 재주로 구한 자취방은 아니다. 한 남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기 자취방에 방이 빈다"고 은밀한 제안을 했다. 갈 곳 없던 A양의 친구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A양 역시 추위를 피하려 그 자취방으로 향했다. A양도, 친구도 그 남성의 이름이나 나이를 모른다. 대충 30살 정도 되겠거니 추정만 할 뿐이다.

지난해 12월1일 영하권의 날씨에도 A양(16)은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쓴 채 거리를 걷고 있다. [사진=공병선 기자]

이 남성의 정체는 성인이면서 가정 밖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일명 '헬퍼'다.(▶관련기사 : [길잃은 청소년④]"조건 할래요?" 가정 밖 청소년, 나쁜 어른들을 만나다)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돕는다는 미명하에 잘 곳을 제공하거나 용돈을 준다. 대가 없는 도움은 아니다. 이들은 미성년자와 연인처럼 지내길 원하거나 심하면 성적인 관계도 요구한다. 국가에서 실종아동법을 통해 가정 밖 또는 실종 청소년에게 신고 없이 숙박 등을 제공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정한 것도 이같은 해악을 막기 위해서다.

A양은 심부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벌레를 잡아주는 방식으로 1주일 기준 10만원 정도 번다. 10만원으로는 찜질방에서 씻거나 밥을 사 먹기 턱없이 부족하다. A양도 성인 헬퍼를 찾는 이유다. 꾸준히 용돈을 주는 헬퍼를 만나면 인당 2만원을 받을 수 있다. 지금 A양에게 용돈을 주는 어른만 13명이다. 13명은 모두 남자다. 하지만 이 역시 공짜는 아니다. "용돈을 받을 때마다 돈을 어디에다가 썼는지 인증해야 해요. 그뿐만 아니라 누구와 만났는지도 묻고 집착하고요. 만약 말을 듣지 않는다, 이상한 헛소문을 퍼뜨리는 식으로 사람을 매장하려 해요." A양은 찡그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알몸 사진을 달라는 사람도 있었어요."

A양은 자신이 사람 보는 안목이 있다고 스스로 자랑했다. 그냥 생긴 안목은 아니다. 감옥에 간 아빠와 닮았다며 주먹을 휘두르는 엄마를 피하기 위해 14살에 집에서 나오고 나서부터 생긴 안목이다. 광주시와 경기 의정부시에 있는 청소년쉼터도 가봤지만 우울증이 심한 다른 청소년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A양은 빨래봉을 뜯어서 자해하는 청소년도 봤다. 쉼터에 더 있다가는 그 분위기에 젖을 것 같아 나오게 됐다. 의정부시 쉼터에서 나오고는 2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남자친구를 만났다. 하지만 그 남자친구는 계속 성관계만 요구했다. 성병까지 생기자 '이대로는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양은 남자친구와 살던 달방에서 도망나왔다. A양은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 나오지 않으면 평생 이 사람에게 묶여있겠다고 생각해 뛰쳐나왔다"고 말했다.

집에서 나온 후 A양은 돈이 필요했지만,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없었다. 만 18세가 되기 전까지는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부모님 등 법정후견인의 동의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돈 벌 수 없는 A양이 결국 접한 건 성매매다. A양은 SNS를 통해 연락한 유부남에게 자신의 성을 판 적 있다. '앙톡'과 같은 랜덤채팅에서도 쉽게 청소년의 성을 원하는 어른들을 접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청소년 성매수 등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으로 검거된 사람은 2022년 기준 393명이다. 2020년 395명, 2021년 295명 등 아동·청소년의 성을 매수하려는 사람은 줄지 않는다.

트위터에서 '헬퍼'를 태그한 게시물. [출처=트위터 갈무리]

이렇다 보니 사실상 헬퍼와 가정 밖 청소년은 서로 '공생' 관계가 돼 버렸다. 이상한 사람을 만나 억지로 성관계를 하는 것보다, 성매매를 하는 것보다는 헬퍼들의 비위를 맞추고 용돈 받는 게 낫다는 것이다. A양은 2022년 겨울에 만났던 40대 남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원룸에 사는 삼촌이었어요. 우울증이 심했지만, 가면 백숙도 해주고 친절했어요. 그 삼촌이 키우던 강아지에게 백숙 뜯어서 던져주면 그 강아지가 받아먹고, 제일 재밌던 시기였어요." 하지만 A양은 '이상한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나'는 질문에 부인하지 못했다. A양은 과거 헬퍼에게 성폭행을 당한 적 있다고도 털어놨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9년 133명, 2020년 173명, 2021년 134명 등 매해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실종아동법 위반으로 잡혔다. 이미 트위터 등 SNS에서 가정 밖 청소년이 헬퍼를 구하고, 헬퍼가 가정 밖 청소년을 구하는 구조는 자리 잡혀있다. 트위터에는 "07년생 가출 도와주실 분 찾아요" "재워주실 분 구해요, 원하시는 것 어느 정도 맞춰드릴 수 있어요"라는 게시글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게시물에는 "다이렉트 메시지 주세요, 도와드릴게요" 등의 댓글이 달렸다.

A양의 꿈은 작은 카페를 여는 것이다. 나중에 바리스타를 하기 위해 검정고시도 준비하는 중이다. 제빵도 공부하는데 이제 조리법을 보지 않고 빵을 만들 정도라고 자랑했다. 다만 여전히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내일은 또 어딘가 잘 곳이 있겠죠."

경기도 수원에서 만난 A양(16)은 저녁 시간이 지난 무렵에야 친구를 만났다. [사진=박준이 기자]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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