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에게 고해성사 후 마을에 불어닥친 소용돌이

김상목 2024. 2. 2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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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갓랜드>

[김상목 기자]

낯선 세계와의 만남은 가슴이 떨리는 흥분과 동시에 익숙했던 것들과 떨어지는 두려움의 순간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일상의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에 눈을 뜨고 자신을 변화시키지만, 오래 길들여진 환경에서 떨어져 고립되는 바람에 위축되거나 퇴행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기존의 환경에서 크게 수혜를 받지 못하거나 경험치가 짧은 이들이 적극적으로 새 환경에 적응해 잘 지내는 반면, 오히려 원래 환경에서 높은 수준의 대우와 조건을 향유하던 중 '추락'하듯 새 환경에선 당황해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영화 <갓랜드>는 그런 극단적 상황 변화에 처한 주인공의 기이한 여정을 다룬다.

주인공의 여정은 숭고한 사명과 공익적 책무를 양어깨에 짊어지는 것 자체다. 일정한 주변의 지원과 본인의 책임감으로 무장하고 험난한 여행을 시작한 그는 상당한 각오와 부담을 동시에 지닌 상태다. 집 떠나면 고생하는 건 어느 정도 각오해야 한다지만 주인공이 직면한 거친 자연과 낯선 동행들은 발견의 기쁨보다는 이해 불가의 영역에 가까워 보인다. 새로운 배경에 적응하겠다고 다짐했건만, 그는 기존에 그가 누렸던 것들과 고정관념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마음 한구석에선 어떻게 해서든 잘 적응해 정착하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를 위해 기존의 관습과 편견을 벗어나 융합하기보다는 두려움과 질투의 대상으로도 여긴다. 그런 주인공이 겪게 되는 변화무쌍한 시간이 웅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낯선 신세계에서: 모험은 성공할 것인가

"아이슬란드에서 발견된 어느 나무 상자에 들어 있던"
"덴마크인 신부가 촬영한 습판 사진 7장은"
"아이슬란드 동남부 해안을 담은 첫 사진 자료이다"
"이 영화는 그 사진들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되었다"

영화가 시작됨을 알리는 첫 출발은 검은 화면에 아로새겨지는 문장들이다. 길지 않지만 다중언어로 표기되기에 눈이 일일이 쫓아가기 바빠진다. 덴마크어와 아이슬란드어로 동시에 표기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개봉 국가별로 해당 언어가 자막으로 배치되니 같은 문장이 3개 언어로 반복되는 셈이다. 이 표기 방식은 영화의 결정적 지점이기도 하다.

18세기 후반 덴마크. 젊은 신부가 나이든 고위직 신부의 부름을 받는다. 젊은 신부에게 머나먼 섬, 아이슬란드로 가서 교회를 새우라는 특명이다. '루카스'란 이름의 젊은 신부는 당황해하는 눈치이지만 나이든 신부는 현지에 잘 적응해야 한다며 겨울이 오기 전에 교회를 완성하라는 임무와 함께 그의 등을 떠밀다시피 미지의 땅으로 파견한다.

유럽대륙에 속한 덴마크와 달리 세계에서 가장 북극에 가까운 땅인 아이슬란드로의 길은 두렵고 낯설기만 하다. 작은 범선에 몸을 실은 루카스 신부는 아이슬란드 선원들과 말도 잘 통하지 않는다. 함께 동행한 통역사에게 의지하며 험난한 항해에 지치지만 어찌해서 큰 탈 없이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다. 작은 보트에 가득 실린 화물과 함께 해변에 상륙한 루카스를 일단의 현지민들이 맞이한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 해변에서 마중 나온 이들의 우두머리 격으로 보이는 건장한 중년 남자가 일행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 많은 책을 누가 다 읽는데?"
"신부 양반이"
"이게 말이 되나?"

자신의 말을 거론되는 당사자가 온전히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 남자, '라그나르'의 푸념과 빈정거림은 거침이 없다. 대충 분위기는 알아차렸더라도 항해에 지친 루카스는 반박할 겨를도 없어 보인다. 라그나르 일행은 여러 필의 말을 데려왔지만 작은 조랑말들에게 사람도 태우고 짐도 골고루 분배하려면 꽤나 번거로운 고려가 필요하다. 아마 교회의 첨탑을 장식하기 위해 가져왔을 묵직한 십자가를 본 라그나르는 너무 무거워 말이 힘들 거라며 톱을 찾는다. 십자가를 잘라서 나눠 싣겠다는 것이다(다행히 일행 중 누구도 톱을 갖고 있지 않아서 십자가는 무사히 한 필의 말 등을 독차지한다). 일행은 아이슬란드 내륙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개시한다.

루카스는 의사소통의 문제를 거의 전적으로 통역사에게 의존한다. 라그나르는 덴마크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듣고 구사할 수 있지만, 루카스와 그는 굳이 서로 말문을 트려고 하진 않는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라그나르의 지나가는 한마디를 보면 그는 덴마크 사람들에 대해 탐탁하지 않게 여기는 구석이 역력하다. 루카스 또한 적극적으로 라그나르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려는 기색은 전해지지 않는다.

광활하고 거친 아이슬란드의 땅에서 일행은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 여정을 이어간다. 승마에 서툰 데다 대화가 원활하지 않은 루카스는 금세 지치기 시작한다. 천막 치는 것도 서툴고 말을 달래는 것도 어렵다. 어서 빨리 목적지로 향하려는 마음에 말을 재촉하다 라그나르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핀잔과 함께 조언을 듣지만, 자신이 일행의 대표이자 신부라는 체면 때문인지 길잡이의 충고를 무시하기 일쑤다. 불어난 강물 앞에서 며칠 기다려 보자는 라그나르의 말을 무시한 채 루카스는 바로 도강을 독촉하지만 그 때문에 사단이 일어나고 만다. 이를 기점으로 어렵사리 견뎌오던 루카스 신부의 내면은 신경쇠약 상태로 치닫는다.

뿌리내릴 것인가, 도피할 것인가: 루카스 신부의 고뇌
 
▲ "갓랜드"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엠엔엠인터내셔널㈜
 
오랜 여정 끝에 일행은 목적지에 도착한다. 교회를 세우기로 예정된 작은 마을에서 반 폐인 상태이던 루카스는 마을의 유력자 '카를'의 집에 머물게 된다. 라그나르와 다른 일행은 교회 건물 공사를 시작한다. 다행히 회복되기 시작한 루카스는 카를의 두 딸 '아나'와 '이다'의 보살핌과 함께 기운을 차리고 활동을 재개한다. 공사는 라그나르의 주관 아래 순조롭게 이어져 겨울이 되기 전 완공될 전망이다. 루카스는 카를의 큰딸 아나와 가까워진다. 안주인 역할을 담당하던 아나는 카를과 자주 어울리며 그를 보살펴준다.

하지만 카를은 루카스를 정중하게 대하면서도 딸들과의 사적 접촉은 차단하려 한다. 작은딸 이다는 언니랑 결혼하고 싶냐며 루카스에게 당돌하게 질문을 던지지만 카를은 깡마르고 말수 적은 젊은 신부가 미덥잖은 눈치다. 마을의 지도자 격인 카를에게 불신을 당한다면 루카스 신부의 정착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 가운데 교회는 뼈대를 갖추기 시작하고 마을의 결혼식 장소로 첫 활용을 맞는다. 여기저기 흩어져 살던 동네 주민들이 나름대로 정장을 갖추고 교회 건물에 모여 축제를 즐기는 광경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카를은 루카스에게 왜 주례를 서주지 않았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신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니냐는 질문에 루카스는 '교회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마침내 교회 건물이 완성되고, 라그나르는 루카스에게 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 부탁하지만 루카스는 재료가 다 떨어졌다며 거부한다. 신부의 변명을 납득하지 못한 라그나르가 거듭 부탁해봐야 소용없다. 오히려 루카스는 신부답지 않게 화를 내며 라그나르를 모욕한다. 하지만 못내 미안했던지 비가 뿌리는 와중에도 얼마 후 촬영을 준비한다. 촬영을 기다리던 라그나르는 신부에게 고해를 시작한다. 하지만 은밀한 비밀이 밝혀지자 거대한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아는 만큼 보이는 영화 속 갈등의 핵심
 

동아시아 3국을 서구인들은 쉽게 분별하지 못한다. 동아시아계 인종차별 사례에서 상당수는 그런 무지와 오해에서 기인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3국 관계는 말 그대로 가깝고도 먼 긴장 관계 자체인데도 민감한 근현대 역사갈등을 모르기에 도매금으로 치부하기 일쑤다. 다소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우리 또한 멀리 떨어진 타 대륙의 내부 사정에 둔감한 건 매한가지다.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는 물론 비교적 좀 안다고 생각하는 서구세계에 대해서도 의외로 우리는 아는 게 별로 없다. 유럽, 그중에도 '스칸디나비아'라 불리는 북유럽 지역에 대해 그저 '바이킹' 후예 백인들로 뭉뚱그려 단정해버리지만 실은 그 안에도 틈새가 갈라져 있음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해당 지역 언어에 익숙하지 못해 온전히 다 소화할 순 없지만, <갓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갈등의 축은 자연 vs 인간, 아이슬란드(어) vs 덴마크(어)로 대비되는 대립 축이다. 똑같은 스칸디나비아 언어이니 적어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말처럼 대충 통하지 않을까 싶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사뿐하게 뭉개버리는 설정이다. 이 언어소통의 장벽은 곧바로 아이슬란드의 역사와 연결되는 항목으로 전환되는 통로 몫도 소화한다.

영화 속 배경인 18세기 후반 아이슬란드는 덴마크 왕국의 영토다. 라그나르가 루카스에게 고백하던 과정에서 드러난 바대로, 그가 유년시절 매 주일마다 참석하던 교회 예배에는 '주일 덴마크어 교실'이 있었다. 교회에선 덴마크 어로 예배를 집전하는 것은 물론, 덴마크 어를 식민지에 전파하는 통로 역할로 강습을 진행했고, 라그나르는 마뜩찮아 하면서도 서툴게나마 덴마크 어를 익힐 수 있었다. 그런 식민화 과정은 일제 치하에서 정규교육과정에 일본어 구사를 강제하던 경험과 고스란히 겹쳐진다. 라그나르는 비록 덴마크 말을 주변에선 잘 구사하는 편이지만 그 말에 대해 혐오감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한편 루카스를 맞아들인 마을의 대표자 카를은 덴마크 출신이다. 그는 아이슬란드에 자리를 잡았지만 그의 젊은 딸들은 덴마크로 돌아가고픈 마음을 종종 드러내곤 한다. 카를은 이웃들을 하대하거나 착취하지는 않지만 종종 덴마크 인의 우월감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루카스, 라그나르와 함께 한 식사 자리에서 그가 저지르는 언행은 카를이 감추고 있던 차별의식을 공공연히 확인해주는 대목이다. 라그나르가 솜씨 좋은 일꾼이라 칭찬하면서도 와인을 제대로 마실 줄 모른다는 폄하는 덴마크 인들이 아이슬란드 현지민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표상하는 상징적 순간이다.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 아이슬란드에 주목하라
 
▲ "갓랜드"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엠엔엠인터내셔널㈜
 
아이슬란드는 척박한 땅이다. 화산섬이다 보니 영화 속에서 인상적으로 표현된 화산 분화 장면이 오늘날에도 계속 발생할 정도다. 북극에서 가깝고 화산섬 특유의 조건 때문에 식물도 잘 자라지 못한다. 주민들은 목축과 어업에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악조건에도 바이킹이 이곳에 정착한 것은 전제왕정의 통제를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중세 노르웨이 왕국에서 이주한 자유민들이 현재 아이슬란드 인들의 기원인 셈이다. 그래서 아이슬란드는 부족 대표들의 의회로 민주주의 전통을 오래 유지해 왔다. 하지만 노르웨이를 병합한 덴마크에 의해 속령이 되었고, 덴마크 왕국은 동화정책을 일정부분 진행한다. 영화 속 시간대는 한창 그런 갈등이 벌어지던 시절인 것이다.

오랜 기간 외부와 교류가 드문 채 고유의 전통과 풍습을 유지해온 아이슬란드 인들은 중세 노르드어를 거의 온존하며 다른 북유럽 계열 언어들과 분리되기 시작했다. 영화 속에서 루카스와 라그나르 갈등을 상징하는 언어 소통의 장벽은 바로 그런 역사적 배경에서 기인한 것이다(그런 특징 때문에 현대 북유럽 인들은 단번에 독해하기 어려운 중세 바이킹 서사시를 아이슬란드 인들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덴마크와 아이슬란드의 본국 vs 식민지라는 조건 차이는, 라그나르가 내키지 않지만 덴마크 어를 약간이나마 구사하게 된 반면, 그 땅에서 교회를 세우고 운영해야 할 루카스는 정작 현지어 배우기를 등한시하는 대조로 확인된다. 원활한 삶을 위해 내심 경멸하며 덴마크 어를 억지로 쓰는 이와 소통의 제약을 알면서도 굳이 배우려 하지 않는 이 중에서 누가 더 현명한지는 영화를 보고 나면 알 수 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유럽 내부의 갈등은 오랜 전쟁과 적대의 역사를 통해 단단히 뿌리내려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대해 서유럽에선 종종 피레네 산맥 이남은 '아프리카'라며 북아프리카 무슬림들에 의해 오랜 기간 지배되었던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를 갖고 놀려대곤 한다. 양차 세계대전에서 적대했던 독일을 영국과 프랑스에선 야만적이란 타이틀을 붙이기 위해 '훈족'이란 은어로 지칭했고,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오래 겪었던 발칸 반도 주민들에 대해 '산적'이라 멸시하거나, 계몽주의 시대에 비유럽적인 흡혈귀 전설 배경으로 묘사하기 일쑤였다.

러시아나 슬라브 계열에 대해선 나치즘만이 '노예민족'이라며 차별한 게 아니기도 하다. 그런 갈등과 분쟁을 <갓랜드>는 우리로선 쉽게 소화하기 힘든 백인 간의 제국주의와 식민지 분쟁단면으로 그려낸다. 영국 vs 아일랜드 근현대사와 함께 흥미로운 관찰점이 아닐 수 없다.

아나는 루카스와의 대화에서 덴마크에서 태어났지만 아이슬란드에서 성장한 자신의 배경을 이야기하며 덴마크의 유년시절 중 뭐가 떠오르냐는 질문에 '나무가 기억나요'라 답한다. 실제로 아이슬란드는 자생하는 나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슬란드에서의 삶이 얼마나 자연과의 투쟁 자체인지 함축하는 대목이다. 그와 함께 세밀하게 묘사되는 영화 속 일상 묘사는 빵이나 야채, 달걀이 이 땅에서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가축, 특히 말이 생활에서 얼마나 필수적인지 굳이 해설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강인하게 삶을 이어가는, 비록 덴마크에선 무식하고 거칠다며 차별하지만 소박한 목가적 생활을 누리는 이들의 힘을 결혼식 장면에서 카메라가 360도로 회전하며 모여든 하객들을 관찰하듯 전시하는 순간을 통해 예찬하기도 한다.

식민주의 비판 담론과 연결되는 영화
 
▲ "갓랜드"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엠엔엠인터내셔널㈜
 
장대한 서사시 같은 루카스 신부의 아이슬란드 연대기는 아이슬란드 그 자체인 대자연의 변덕스럽고 압도적인 배경에 추가로 몇 가지 흥미로운 '디테일'을 추가해 완성된다. 영화의 출발점이라 감독이 밝힌 것처럼 19세기 후반 어느 신부가 촬영했다는 풍경사진 일화는 극중에서 새로운 문명과 권위의 상징처럼 루카스가 독점하던 사진기 활용으로 변환된다.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습판사진술(Collodion Process)'은 1851년 개발되어 기존의 '은판사진술'을 대체한 기법이다. 1888년 '코닥'에 의해 현대적 필름 기술이 첫선을 보이기 전에는 가히 혁명적인 기술로, 기존에 몇 시간씩 고정된 상태로 피사체가 대기해야 하던 것을 몇 분여로 단축한 것이다. 그 때문에 왕이나 귀족이 아니면 담아내지 못했던 인물사진이 보급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오래된 미신,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달아난다는 생각을 여전히 갖던 시절에 루카스가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제안을 현지민들이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묘사는 겉보기엔 퉁명스럽고 거칠지만 속내는 친절한 아이슬란드 주민들의 선량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슈터 shooter'라는 사진촬영의 본질을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사진기술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초창기 사진술의 세부 묘사에 환호할 테고, 영화 전개에 집중하는 이들에겐 '존재할 수 없는 사진'이 등장하는 대목에서 그 의미에 대해 머리를 쥐어짤 법하다.

영화 속 루카스는 개신교의 원류라 할 루터교회 목회자다. 우리는 개신교 목회자를 '목사'라 지칭하는데 익숙하지만 루터교회는 '신부'라 호칭하며 제례의 의식성을 강조하기에 루카스 역시 정장을 갖추고 목주름 칼라라는 고풍스러운 장식까지 착용한 채 연단에 선다. 그런 루카스의 복식이 어떤 운명을 맞이하는지, 그리고 어렵사리 바다 건너 가져온 십자가가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짚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감상 소재의 일환이 되어줄 테다.

교회의 권위와 사회적 역할, 지역사회와의 동기화 측면으로도 생각해볼 거리가 차고 넘친다. 더불어 선교사가 현지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과 성패 부분에선 <미션>이나 마틴 스콜세지의 <사일런스> 속 일본의 가톨릭 사제들이 겪었던 실제 역사적 경험과 묶어서 흥미로운 연상이 가능할 것이다.

다소 과잉된 형식미나 추상적으로 전개되는 심리묘사 때문에 영화는 누군가에겐 불친절하거나 모호하게 받아들여질 구석이 제법 있다. 상징적인 표현이 무척 많기 때문에 관객 각자의 개별적인 지식이나 경험에 따라 주관적으로 해석될 여지도 많다. 주인공 루카스 신부가 선의로 시작했지만 끝내 라그나르로 상징되는 아이슬란드의 자연과 사람들에게 융합되지 못하는 장대한 패배의 과정을 온전히 따라잡기란 만만하지 않은 과제다.

하지만 큰 줄기에서 본 작품이 전달하려는 자연과 인간의 투쟁, 미묘한 제국주의와 식민지 갈등의 추출, 무엇보다 압도적 환경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 방법론과 각자가 맞이할 불가역적 운명에 대한 서사시로서 <갓랜드>는 우리가 떠올리는 고전 대작들의 방식을 현재에 떠올리게 만들기에 손색없는 체험이 될 테다.

<작품정보>

갓랜드
원제 Godland(영어), Vanskabte Land(덴마크어), Volaða Land(아이슬란드어)
2024│덴마크│드라마
2024.02.28. 개봉│143분│15세 관람가
감독 힐누르 팔마손
출연 엘리엇 크로셋 호브(루카스 신부 역), 잉크와르 시구르드손(라그나르 역),
빅토리아 카르멘 손느(아나 역), 이다 메킨 흘린스도티르(이다 역)
수입/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

2022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초청
2022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자발테기상
2022 시카고국제영화제 실버휴고(국제경쟁) 작품상, 촬영상
2023 보딜상 남우주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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