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길' 버리고 새로운 획을 그은 사람들

허미담 2024. 2. 2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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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길 포기한 이들
전문 경영인·스타트업 대표 등으로 제2막
[이미지출처=픽사베이]

최근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직서를 낸 전공의가 1만명을 넘어섰다. 정부는 오는 29일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최소 3개월의 면허 정지 처분 등 사법절차에 들어가겠다며 최후통첩을 내린 상황이다. 극심한 회의감이 든 의료인 중 일부는 의사를 포기하고 창업을 고민하는 등 제2의 인생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가운데 과거 의료인의 길을 걸었다가 다른 길로 선회한 사례에 대해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고(故)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명예회장

고(故)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명예회장. [이미지제공=동아쏘시오그룹]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지난해 10월 별세한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명예회장은 '생명보다 더 큰 가치는 없다'는 철학으로 사회공헌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강 명예회장은 1952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뒤 1959년부터 동아제약에서 근무했다. 그는 1975년 동아제약 대표, 1981년 동아쏘시오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가장 큰 사회공헌은 신약 개발'이라는 신념을 실천했다. 그는 제약업계 최초로 기업 부설 연구소를 설립하고 아낌없는 투자를 통해 신약 원천기술 확보 및 국산 신약을 개발하는 등 한국 제약산업의 연구개발(R&D) 분야를 선도했다.

특히 강 명예회장이 1961년 개발한 박카스는 피로 회복제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박카스'라는 이름 또한 독일 유학을 다녀온 강 명예회장이 함부르크 시청 지하홀에서 본 술과 추수의 신 '바커스'(Bacchus) 석고상을 떠올리면서 지었다고 한다.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은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창업자의 4남이다.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76년부터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했다. 이후 1993년부터 서울대학교병원 기획조정실장, 진료부원장을 거쳐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제11~12대 병원장을 역임하는 등 10년여 동안 주요 보직을 맡았다. 박 이사장은 병원장 재직 당시 한국인 담석 발생의 원인과 특성 등의 연구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받는다.

의료계에 발자취를 남겼던 박 이사장은 뒤늦게 두산그룹의 경영일선에 등장했다. 그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두산그룹 회장을 맡았다. 지금은 두산연강재단 이사장과 두산그룹이 운영하는 중앙대 이사를 겸하고 있다.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 [이미지출처=교보생명·연합뉴스]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도 산부인과 의사에서 전문 경영인으로 변신한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그는 1978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이후 1987년부터 1996년까지 10년 가까이 서울대 산부인과 교수로 일했다. 그러다 1996년 11월 교보생명 이사회 부회장으로 경영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암으로 투병 중이던 부친의 설득이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교보생명 부회장과 이사회 의장을 거쳐 2000년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그러나 당시 교보생명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후유증으로 25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낸 상태였다. 그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외형 경쟁 대신 고객 중심, 이익 중심의 퀄리티 경영으로 내실 성장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을 펼쳤고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신 의장의 경영철학의 핵심은 '사람을 중시하는 인본주의'다. 그는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로 시험관 아기 프로그램을 연구하며 생명의 경이로움과 소중함을 깨달았던 경험이 사람 중심 경영, 인간 존중 경영을 추구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보험업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 보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부친인 고(故) 신용호 창립자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이며, 부자가 함께 수상한 것은 세계 최초다.

고우균 메디블록 대표

고우균 메디블록 대표. [이미지출처=메디블록 홈페이지]

회사를 창업한 의대 출신 경영인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고우균 메디블록 대표다. 메디블록은 클라우드 등 다양한 최신 기술을 기반으로 개인 중심의 통합 의료정보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는 기업이다.

고 대표는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뒤 미국 콜롬비아대학에서 컴퓨터사이언스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다 치과의사로 전향했고, 2017년 4월 메디블록을 창립했다. 그는 의료현장에서 경험한 것들을 IT 지식을 활용해 극복해보고 싶어 도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대표는 서울과학고 동기인 이은솔 대표와 함께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강성지 웰트 대표

강성지 웰트 대표.

강성지 웰트 대표 또한 의사 출신 사업가다. 강 대표는 민족사관고와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삼성전자에 스카우트돼 무선사업부 헬스개발그룹에서 헬스케어전략을 담당했다. 웰트는 삼성전자 사내 벤처 육성 프로그램인 C-Lab의 스핀오프 기업이다. 불면증 개선 디지털 치료기기 '웰트-I(아이)'를 개발해 2022년 12월에는 보건복지부에서 '혁신의료기기' 지정을 받기도 했다.

웰트의 첫 제품은 스마트벨트다. 스마트벨트는 착용하고만 있으면 사용자의 허리둘레, 걸음 수, 앉은 시간, 과식 여부 등을 감지해준다. 특히 강 대표는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유럽 순방 때 스타트업 대표로 동행한 자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스마트 벨트를 선물로 전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가수 이무송· 강산에

이무송. [이미지출처=바로연결혼정보 공식 블로그]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연예계에 발을 디딘 이들도 있다. 가수 이무송과 강산에가 대표적이다. 이무송은 미국 워싱턴 앤드 제퍼슨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연세대학교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면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좋다는 부모님의 약속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부모님을 설득해 뮤지션이 되는 데 성공했다. 이무송은 현재 결혼정보회사 바로연결혼정보에서 사외이사로 재직 중이다.

가수 강산에. [이미지출처=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노래 '라구요'로 유명한 강산에는 1984년 경희대 한의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1년도 안 돼 중퇴했다. 그는 과거 자신이 한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가수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해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고 내가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 문화적인 충격이 컸다"며 "TV나 라디오로 접하던 문화를 직접 보고 문화적 쇼크가 컸다"고 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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