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석의 전술

이마루 2024. 2. 2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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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석이 삶과 연기를 완벽하게 주도하는 법. 그 유연하고 흥미로운 전술.

Q : 오랜만에 출연한 사극 〈세작, 매혹된 자들〉에서 처음 곤룡포를 걸쳤습니다

A : 확실히 옷이 날개라고(웃음)…. 분장이든 의상이든 배우가 그 캐릭터를 입을 때 굉장히 도움이 돼요. 나름대로 해석한 인물에 옷이 덧대어지는 순간, 더 입체적으로 표현할 공간이 생기거든요. 공연할 때부터 그 중요성을 느껴왔기 때문에 부러 비슷한 옷을 입고 연습에 가기도 했죠.

Q : 왕의 모습을 한 자신이 마음에 들던가요

A : 하하, 글쎄요. 잘 어울리나요?

재킷은 Emporio Armani.

Q : 완전히요. 필모그래피상 가장 높은 신분이지만, 마음은 가장 비천한 상태인 이인은 안아주고 싶은 구석이 많은 왕입니다. 폭군이라는 오명을 지녔지만요

A : 높은 자리에 올라설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난 친구예요. 원치 않는데 오르게 된 삶이 안쓰러웠죠. 더 강해져야 하고, 매번 한 수 앞서 생각해야 되고, 누구든 의심해야 하는 존재를 표현하기가 연기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장면마다 아주 작게 디테일을 살리려고 했어요. 특히 ‘흑화’하기 전의 진한대군과 임금이 됐을 때의 인상에 확연한 차이를 주기 위해 애썼죠.

Q : 미워하고 사랑하는 상대인 강희수 역의 신세경과는 눈만 마주쳐도 케미스트리가 쏟아지더군요. 어떤 파트너였나요

A : 세경이는 뭐 ‘최고’ ‘짱’ ‘캡’ 같은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이고 싶어요. 배우로서 눈빛도 좋고 특유의 분위기가 정말 좋아요. 촬영 때마다 느꼈어요. 심지어 희수는 ‘혐관 멜로’라는 표현처럼 상대를 죽이고 싶을 만큼 복수를 꿈꾸지만, 점점 마음이 스며드는 감정선을 지닌 까다로운 캐릭터인데 너무 잘해줬습니다. 배우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도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일 거예요. 현장에서 연기 외에 인간 대 인간으로서 호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요. 그런 점에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람이었어요.

Q : 극찬이네요. 항상 “배우 간 호흡이 빛나야 작품이 산다”고 꾸준히 말해 왔습니다. 현장에서 동료들과 친해지는 방법이 있다면

A : 다들 비슷비슷하지 않을까요? 자주 장난쳐요. 딱히 할 말이 없어도 ‘스윽’ 가서 맛집도 물어보고, 며칠간 보지 못했다면 그동안 뭐 했냐고 묻고요. 또 다른 작품을 촬영하고 있다면 어디서 찍는지, 거기에는 또 뭐가 맛있는지 묻죠(웃음). 그런 얘기하면서 조금씩 돈독해지는 거 아닐까요.

재킷과 팬츠는 Tod's.

Q : 극중에서는 바둑이 두 사람을 이어주는 소재로 등장합니다. 바둑 실력은 좀 늘었나요

A : 제가 초등학교 때 바둑부였습니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이번 기회에 다시 배울 줄 알았는데, 기술보다 수를 둘 때 감정 표현을 살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극중 바둑 신이 실제로 굴러가는 경기지만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짚어주는 수를 둘 때 표정과 손짓에 더 신경 쓰는 거죠. 그래서 세경이나 저나 특별히 실력이 늘진 않았어요(웃음).

Q : 〈관상〉 〈역린〉 〈녹두꽃〉에 이어 네 번째 사극이에요. 조정석이 사극을 연기할 때 더욱 특별해지는 면이 있다면

A : 접근방식에서 달라지는 건 없어요. 저는 시나리오를 읽고 재미있으면 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스타일인데 〈세작, 매혹된 자들〉이라는 다음 발자국을 예쁘게 잘 만들어서 ‘제 발자국 예쁘죠’ 하고 자랑하고 싶었어요. 그럼에도 유념했던 점은 사극이지만 사극다운, 즉 전형적인 말투라든가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대사를 표현하고 싶진 않았어요. 이인을 맡은 배우는 조정석이니 조정석다운 임금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Q : 팬 사이에서 ‘조정석이 피를 묻혔다’는 것이 열광할 만한 지점이었습니다만

A : 정말요(웃음)? 피 얘기는 처음이에요. 물론 고생하는 조정석을 좋아하시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코트와 팬츠, 슈즈는 모두 Alexander McQueen.

Q : 이인의 운명처럼 힘든 길인 줄 알면서 뛰어들거나 알면서도 속아준 적 있나요

A : 저는 알면서 속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진짜 속아야 속고, 알면 절대 속지 않죠. 누가 저를 놀래주었는데 놀라지 않았다면, 그건 정말 놀라지 않은 거예요.

Q : 이인과 조정석의 또 다른 평행이론이 있다면

A : 책임감이 강하다. 나름 자랑인데 초등학교 6년 내내 통지표에서 선생님이 ‘책임감이 강하며…’라고 코멘트하셨어요. 뭔가 주어지면 확실하게 매듭짓는 편이거든요. 그러나 이인은 상상 이상으로 똑똑한 인물이에요. 그런 관점에서 보시면 더 재미있을 겁니다.

Q : 〈세작, 매혹된 자들〉은 진한 멜로물이기도 합니다. 〈더킹 투하츠〉로 시작해 〈오 나의 귀신님〉 〈질투의 화신〉 등으로 이어지는 조정석표 멜로 연기의 ‘맛’을 자평한다면

A : ‘조정석 멜로 눈깔’이란 말을 어디서 봤는데…(웃음). 제 나름대로 분석한 사랑의 정도를 확신을 갖고 표현합니다. ‘요만큼’ 사랑할 때와 ‘이만큼’ 사랑할 때는 온도가 달라요. 그런 디테일을 잘 살리려 합니다. 그런 확신과 자신감이 눈으로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근데 저도 제 ‘눈깔’이 어떤지 잘 모르겠어요.

재킷과 톱, 팬츠는 모두 Bottega Veneta. 슈즈는 Dolce & Gabbana.

Q : 극중 희수처럼 누군가를 매혹시키고자 작정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변하나요

A : 방금 말했듯이 스스로 맞다고 확신한다면 그 확신을 제대로 표현하는 게 매력이라면 매력이지 않을지. 칼을 휘두를 때도 오른손으로 휘두를지 왼손으로 휘두를지, 혹은 체중을 실어 크게 휘두를지 단번에 휘두를지 등 저만의 방향에 확신을 갖고 연기해야 제 것으로 정확하게 보여지는 것 같아요. 또 제 성격이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아요. 엉뚱하거나 가끔 바보스러운 면도 있는데, 예를 들면 팬 미팅에서 ‘갸루피스’의 뜻을 몰라 ‘꽈리고추’로 알아듣는 행동 같은 거죠. 그게 그냥 저예요.

Q : 조정석이란 배우는 대중의 머릿속에 늘 다재다능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새로운 조정석에 대한 기대가 벅찰 때는 없나요

A : 있죠. 늘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다만 새로운 캐릭터 혹은 대척점의 캐릭터를 선보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호흡을 찾는 것에 가까워요. 배우들은 천차만별이고, 호흡도 늘 같을 수 없거든요. 저만의 호흡을 찾아내 어떻게 연기로 구현할지 늘 방법을 강구하죠. 연기를 잘한다는 게 무엇인지 자주 고민하는데요. 자연스러워야 잘하는 건지, 혹은 강렬하고 밀도 있게 해내야 잘하는 건지 말이죠. 멀리 보면 어떻게 가야 할지 답도 없고, 길도 보이지 않지만 적어도 나만의 색깔, 그러니까 어떤 역할을 조정석이 연기하면 어떻게 탄생할지 늘 궁금증이 일게 만들고 싶어요.

Q : 진지한 태도가 멋지군요

A : 이런 얘기를 어디서 할 데가 없어서….

니트와 코트는 모두 Dior Men.

Q :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SNS 계정은 운영하고 있지 않죠. 최근 웹 예능 ‘핑계고’에 출연해 입담을 펼치는 모습만 봐도 유튜브를 가장 잘할 것 같은데 말이죠

A : 그러게요. 신기하게 그런 욕심은 별로 없어요. 사실 작품 들어가면 정신없기만 한데, 겸업하는 분들이 대단한 것 같아요.

Q : 지난해 거미의 20주년 콘서트 게스트로 무대를 펼친 모습이 아직도 ‘밈’으로 떠돌고 있더군요.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즐기는 모습에 정말 무대 체질이라고 느꼈습니다

A : 처음에는 굉장히 긴장했어요. 제 무대가 아니니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떨리더라고요. 막상 무대에 올라가니까 재밌는 거 있죠(웃음). 그래서 그렇게 신나게 하지 않았나 싶어요. 예전에 제 팬 미팅 때 공연했던 마크 론슨의 ‘Uptown funk(Feat. Bruno Mars)’ 커버 무대를 거미 팬들에게도 새롭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Q : 연기는 물론 춤과 노래, 모든 걸 잘하는 사람만이 지닌 고충이 있다면. 가끔 진로를 바꾸고 싶어진다거나

A : 세 영역 모두 결은 조금씩 다르지만, 창작이라는 본질은 같아요. 그래서 특정 영역을 더 잘하고 싶다거나 세 영역의 균형을 굳이 맞추고 싶진 않아요. 그저 뭐든 하나라도 더 잘하자는 주의라서요(웃음). 근데 음악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영역이라 한 번씩 제 안에서 뭔가 꿈틀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재킷과 팬츠는 모두 John Varvatos. 슈즈는 Tod's.

Q : 그렇다면 다시 태어나도 배우를 할 것 같나요

A : 정말 모르겠어요. 행복하고, 때로는 고독하고, 가끔은 버거워요. 힘겹다 못해 너무 지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조차 안 날 때도 있죠. 온전히 나를 보여줘야 하는 일이라 벌거벗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다시 태어난다면 좀 더 평범하게 살아도 좋을 것 같은데요.

Q : 이번 생에서는 누구보다 배우생활을 멋지게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요

A : 그럼요. 이제야 〈세작, 매혹된 자들〉의 이인과 비슷한 점을 찾았습니다. 이인처럼 제게도 이 직업은 숙명 같은 게 아닐는지. 애초에 연기하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학교 다니면서 기타 연주하고 춤추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연극을 열심히 하고 있더군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배우가 됐어요. 어쩌다 보니 숙명을 받아들이게 된 거죠.

재킷과 팬츠는 모두 Emporio Armani. 슈즈는 Alexander McQueen.

Q : 그 숙명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어질까요

A : 8년 만에 다시 뮤지컬 〈헤드윅〉을 연습하고 있어요. 마흔 살 넘어 다시 공연하고 싶다고 말해 왔는데, 마흔셋의 헤드윅은 어떤 모습일지 저도 궁금해요. 소소하게는 우리 아이가 만 4세라 한창 말도 많이 하고 인지능력도 향상되는 시기예요.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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