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교회 편의점에 ‘포켓몬 카드’가… 아이들 웃음 끊이지 않아

이현성 2024. 2. 2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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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사회 홀리 브리지] <1부> 다시 쓰는 교회의 길 <6> 현장을 가다
① 영도성광교회·행원교회
영도성광교회 아이들이 최근 부산 영도구의 교회 교육관에 마련된 어린이 편의점에서 간식과 장난감을 고르고 있다. 영도성광교회 제공


소멸 경고등이 켜진 부산 영도구의 한 교회가 1년 예산 중 3분의 1을 어린이 사역에 썼다.

지상 주차장을 밀어버린 자리엔 녹색 인조잔디를 깔았다. 뛰놀다 지친 아이들은 교회 안에 마련된 어린이를 위한 편의점에서 음료와 아이스크림을 달란트로 직접 구입해 먹는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지 오래인 제주 구좌읍의 한 교회는 빚을 내 교회 마당에 복합 놀이 공간을 지었다.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에 아이들과 부모들은 교회로 돌아오고 있다.

이은주(49) 영도성광교회 사모는 주일이 되면 교회 편의점 문을 연다. 어린이 편의점의 상호는 ‘JCU25’. ‘예수가 실시간으로 지켜본다’는 뜻을 담았다.

지난해 3월 편의점이 들어선 곳은 교육관이었다. 지난 21일 교회 방문 당시 3단 진열대엔 각종 과자가 정리돼 있었고 음료와 아이스크림도 냉장고에 가득 차 있었다. 간식거리뿐 아니라 초등학생 몸집만 한 장난감도 판매하는데 모두 출석·말씀 암송을 통해 받은 달란트로 살 수 있다.

교회학교 아이들은 이 사모를 ‘사모님’이라 부르지 않고 ‘점장님’이나 ‘이모’라고 한다. 그는 “어린이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교회학교 아이들의 취향에 민감해졌다”며 편의점 인기 상품인 ‘포켓몬 카드’를 언급했다. 이어 “교회학교 교사가 아닌데도 편의점에서 매주 아이들과 만나 대화할 수 있다. 교회에 처음 나온 아이에겐 달란트 가격을 은근슬쩍 깎아주거나 선물을 줄 때도 있다. 아이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게 가장 큰 유익”이라며 반색했다.

이정환 목사 부부. 국민일보DB


남편 이정환(52) 목사 역시 다음세대 사역에 진심이다.

2022년 7월 이 교회에 부임한 그는 반년 만에 목적 헌금을 제안했다. 교회에 유치부·초등부 아이들이 머무를 공간을 마련하자는 뜻에서였다. 이 목사는 “공장과 바를 바 없던 유치부실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며 “천장엔 낡은 선풍기가 달려 있었다”고 말했다. 목적 헌금은 처음엔 지지부진했지만 교회 학교 아이들이 돼지 저금통을 헌금한 뒤 장년들이 앞다퉈 헌금에 참여했다고 한다.

공사는 지난해 6월 마무리됐다. 35년 된 교육관의 유치부실엔 베이지색 ‘키즈짐’이 들어섰고 어린이 자동차와 오락기 등도 이곳저곳에 자리잡았다. 인조잔디를 깐 외부 풋살장은 여름이 되면 수영장이 된다. 이 목사는 “교인들 간 카풀(차량 공유)을 권하고 인근 공영 주차장을 대여하는 식으로 주차난을 해소했다”고 설명했다.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에서 어린이 사역에 정성을 들이는 사례는 또 있다.

김요한(오른쪽 네 번째) 제주 행원교회 목사가 교회 내 키즈카페에서 아이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국민일보DB


제주 행원교회(김요한 목사)는 2022년 어린이날을 맞아 복합 놀이 공간 ‘들락날락 센터’ 문을 열었다. 956㎡(289평) 규모의 3층 건물이다. 시설은 대형 그물 정글짐과 트램펄린 등 도심 속 키즈카페와 견줘도 부족할 게 없다. 김요한(48) 목사는 “2017년 행원교회에 부임했는데 동네에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 하나도 없었다. 교인들과 뜻을 모아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고 했다.

‘들락날락’이란 이름에는 ‘언제나, 누구든 편히 드나들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센터의 모토는 ‘마음의 구김살이 펴지는 곳’. 아이들이 걱정을 내려놓고 웃음만 가져갈 공간을 지향한다.

교회 마당 빈 땅에 들락날락 센터를 세우자는 결정은 2019년에 했다. 교회 어른들은 다음세대와 교회의 미래를 위해 당장 어린이 사역을 시작하자며 의기투합했다. 2018년이 돼서야 자립한 시골 교회는 교인들의 헌신과 후원자 2000여명의 모금으로 건축비를 마련했다.

이들 교회의 노력은 겉보기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보인다.

영도구청이 발행한 ‘2023 영도구 통계연보’를 보면 영도구 출생 인원은 469명(2017년)에서 266명(2021년)으로 거의 반 토막 났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발표한 ‘지방소멸위험지수’ 자료에서 영도군은 부산 지역구 가운데 소멸 위험도가 가장 높았다. 행원교회가 있는 제주 구좌읍의 노인인구비율은 지난해 기준 27.8%로 전국 노인인구비율(18.4%)을 크게 웃돈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교차한 환경에서도 이들 교회 안엔 다음세대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영도성광교회는 코로나19로 쪼그라들었던 교회학교가 정상화 됐다. 행원교회 센터는 동네 아이들에게 큰 선물이 됐다. 교회 맞은편 구좌중앙초등학교는 물론이고 병설유치원 학생과 교사들도 들락날락 센터의 단골이다. 입소문이 나면서 옆 동네 유치원들의 예약 전화도 잇따르고 있다.

지방 소멸 문제에 맞서며 대안을 찾는 이들 교회는 다음세대를 함께 품자고 제안한다. 김 목사는 “우리처럼 작은 교회가 한 일을 보고 문화와 교육 인프라가 소외된 전국의 여러 지역 교회에도 어린이·청년 센터가 늘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아이들이 뛰어놀 매력적인 곳이 있어야 부모들도 교회에 온다”며 “3040세대 부모를 잡지 않으면 다음세대의 미래도 없다”고 지적했다.

부산=글·사진 이현성 기자 sa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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